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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도플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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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미치겠군.”

시혁이 아무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는데, 몇 십분 전부터 휴대전화의 화면에는 ‘엄마’ 라는 인물의 이름이 띄워져있을뿐, 상대가 전화를 받는 일은 없었다. 시혁은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대충 닦으며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카페 안에는 시혁을 포함해 총 여섯 명의 사람이 있었다. 이 카페의 종업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은 테이블에 고개를 파묻은 채 울고있었으며, 하얀 줄무니 티셔츠를 입고있는 중년 남성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누군가게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저기…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죠?”

중년의 여성이 자신의 딸로 보이는 여자 아이의 손을 꽉 쥔채 말했다. 서로 부여잡은 그 모녀의 손은 가게 안의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 그녀의 질문에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마다 스스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만 하고 있을 뿐이였다.

“글쎄요, 분명한건 지금 이게 전쟁은 아니란 겁니다.”

시혁의 오른 편에 서있던 젊은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시혁은 그의 얼굴을 보고, 그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일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남자의 말에 그녀는 ‘네’ 라고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딸은 본능적으로 지금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부모의 등 뒤에 숨어 주변을 경계하는 눈빛을 띄고 있었다.

그 순간, 울고있던 종업원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곳을 향해 쏠렸다. 젊은 남자는 그녀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를 위로하려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본 시혁은 저절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가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짜증이였다. 

여자가 우는 소리는 결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였다. 안그래도 예민해진 감각을 콕콕 찔러대는 그 느낌이 시혁은 맘에 들지 않았다. 그가 배짱과 용기만 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울지말라고 소리라도 쳤을텐데, 그는 그럴만한 배짱과 용기가 없었다. 하물며 그녀를 위로하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다.

가게안은 꽤나 어두웠다. 밖은 대낮임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카페의 창문 이란 창문은 전부 커튼을 치고 있었다. 게다가 가게 안의 조명까지 끈 상태였다. 커튼 틈사이로 틈틈히 들어오는 불빛이 남아있어서 완전히 어두운 건 아니였지만.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들리더니, 종업원의 울음 소리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카페 안에는 일순한 침묵이 흘렀다.

시혁은 전화를 받지 않는 자신의 부모님을 마음 속으로 욕하며,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일어난 상황을 머릿속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




그가 오늘 집 밖으로 나온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며칠전 책방에서 빌렸던 만화책을 반납하러 가기 위해, 친구와 이른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던가, 연인과 함께 스테이크 썰기 위해 나온 게 아니였다. 만약 책방에서 반납을 독촉하는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오늘 아침 밖으로 나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책방은 그의 집에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가 아니였다. 가까이에 있던 책방은 장사가 잘 되지 않는지 문을 닫은지 오래였고, 그가 지금 이용하는 책방은 도시의 번화가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대형 서점이였다. 시혁은 떡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츄리닝 차림으로 밖을 나섰다. 

간혹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별 다른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런 시선이라면 지금까지 받아왔으니까 말이다. 자신은 책만 반납하고,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려 아이스크림 한 통을 한 후, 집에 돌아가서 어젯밤 다운 받은 SF 영화를 보면 됐었다. 그게 그가 정한 오늘의 일과였고, 그건 내일의 일과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날들과 조금 달랐다. 매일 똑같은 생활패턴을 유지하던 그에게,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였다. 아니, 특별하다기보단 끔찍하다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제일 먼저 달랐던 점은, 아침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했던 말이 살인사건이나, 강도, 강간, 화재와 같은 현실성있는 단어가 아니였던 것이다.

곱게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 앉아있던 그 아나운서는, 너무도 현실과 동떨어진, 마치 그가 어젯밤 다운 받아놓았던 SF영화 와도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아나운서의 입에서 나온 단어중 가장 그의 머리 깊숙히 자리잡은 건 바로 ‘괴물’ 이였다. 파란 색의 괴물, 마치 거대한 젤리같은 형태를 띄고있다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말자 그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그의 방문에 걸려있는 달력을 확인 하는 일이였다.

달력을 보고 오늘이 만우절이 아님을 확인한 그는, 그저 뉴스의 특집인가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그도 그럴것이 서울 한 복판에 사람을 먹어치우는 파란 젤리 괴물이라니, 차라리 슈퍼맨이 실존한다는 이야기가 더 믿음직스러울 것 같았다. 게다가 번화가로 나선 그의 눈에 괴물은 전혀 띄지 않았다. 번화가의 모습은 여느때와 같았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서로 팔짱을 끼고 있는 커플들, 큰 소리를 질러대며 싸우는 사람들.

이렇게 현실성 짙은 곳에서 비현실적인 일을 생각하라니,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렇게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책방에서 책을 반납하고 나왔다. 그 때까지만해도 오늘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였다. 그리고 오늘 하루 쭉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렇게 믿고있었다. 그리고, 그가 책방에서 나오자말자 그의 귓가를 자극한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분명 오늘은 평범한 날이 됐을 것이다.




*





비명을 따라 고개를 돌린 그 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란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꽤나 거대한 크기였는데, 마치 파란색의 큰 솜이불을 도심 한복판에 널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였다. 이미 그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시혁은 그 파란 물체를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사람들 틈을 뚫고 지나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가 본 건 믿을 수 없는 광경이였다. 그 파란 젤리는 어떤 여성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거대하고 알 수없는 생명체는 여성의 입과 눈 속으로 천천히 자신의 몸뚱아리를 집어넣고 있었다. 눈을 부릅뜬 상태로 먹먹한 비명을 질러대는 그 여성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시혁은 동공이 커지는 것을 느끼며 주변을 둘렀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여성을 구하려 드는 이는 없었다. 다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을 뿐이였다. 그들은 모두 지금 이게 마술 극단에서 나온 퍼포먼스라도 되는 양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끼는게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시혁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또 다른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은 그 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 곳에는,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거리 한 복판에서 그 파란 물체에서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짦은 침묵이 흘렀다. 동영상을 찍던 사람들 중 일부는 휴대폰을 땅에 떨어뜨리기 까지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맨 처음 침묵을 깬 젊은 여자의 비명을 시작으로, 거리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귀가 찢어질 듯이 질러대는 사람들의 비명에 시혁은 표정을 찡그리며 쉴새없이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지옥이였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난 그 괴물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자동차들은 차선을 지키지 않고 인도까지 달려들었으며, 미친 듯이 뛰고있는 그의 심장 소리가 한번 울릴때마다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혁은 자신의 눈 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한 채, 그저 계속해서 달릴 뿐이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그가 간신히 들어온 건, 아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번화가의 한 카페였다. 



*



시혁은 카페에 들어온 마지막 사람이였다. 그가 카페를 발견했을땐 이미 창문의 모든 커튼을 내리고 있었고, 문 또한 열쇠로 잠그기 일보직전 이였다. 그리고 그가 간신히 들어서자 말자 열쇠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은 닫혔다. 

시혁은 집에 있을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부모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신호음이 한번 울릴 때 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었다. 설마, 설마. 그리고 그 순간이였다.

“혜연아!”

중년의 남자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소리쳤다. 마침내 그가 기다리던 상대가 전화를 받은 듯 했다. 그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와 뭐라고 계속 떠들어댔다.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은 말없이 그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였다.

“그래, 응 거기. 전에 아빠랑 같이 갔었잖아, 아빠 지금 거기에 있어. 뭐? 이 앞이라고? 알았어. 조금만 기달려. 지금 문이 잠겨있거든, 금방 열어줄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대충 올려져있던 열쇠꾸러미를 들고 천천히 카페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젊은 남자는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서 재빨리 열쇠를 빼앗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놔, 지금 이 밖에 내 딸이있다고.”

“진정하세요, 지금 문을 여는 건 위험해요. 지금 상황에 그 괴물들이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끝이예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일 생각이예요?”

“닥쳐! 지금 내 딸이 밖에 있어, 만약 괴물들이 있으면 어떻게 저기 서있겠어! 됐으니까 얼른 열쇠나 내놔, 얼른 내놓으라고!”

그가 소리쳤다. 하지만 젊은 남자는 열쇠를 쥐고있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쥐며 말했다.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 오늘 아침 뉴스 못 보셨어요? 저 괴물들, 사람 모습으로 변신한다구요. 자기가 잡아먹은 사람으로 변신해서, 완전히 그 사람 흉내를 내면서 다닌다구요.”

그러자 중년 남자의 표정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씨발,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지금 나한테 전화를 건게 내 딸이 아니라, 내 딸 흉내를 내는 괴물이라는 소리야?”

“그럴수도 있죠.”

험악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중년 남자는 화가 난 듯 주먹을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그럴리 없이 이 씨발놈아! 됐으니까 얼른 열쇠를 내놔, 내놓으라고 이 미친놈아! 내 딸이 지금 저 밖에 있단 말이야! 네놈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그 괴물들이 있는 저 밖에서!”

상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끝까지 열쇠를 건네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중년 남자가 그에게 주먹을 내리꽃으려는 그 순간, 창 밖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주먹을 휘두르던 그가 일순간 행동을 멈춘 채, 커튼이 쳐져있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둘러 그 곳으로 달려가 커튼을 걷었다.

“그러면!”

어느새 고개를 들고있던 카페의 종업원이 그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남자는 커튼을 전부 걷어냈고, 새하얀 유리창이 눈 앞에 들어났다. 하지만, 강렬한 태양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커튼을 들춘 남자는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밖을 바라볼 뿐이였다.

태양은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몇 명일까,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가게의 유리창에 들러붙어 두 눈을 부릅뜨고 이 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대채 언제부터 이러고 있던 걸까, 대채 언제부터, 커튼 너머의 먹이감을 살피기위해 이 유리창을 노려보고 있던걸까. 그리고 그 틈에서, 여학생의 목소리로 ‘아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혁은 자신의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씨…발, 혜연아, 혜연아!”

남자가 울부짖으며 소리치자, 유리창에 붙어있던 그 괴물들이 일순간 요동쳤다. 마치 산 낙지가 꿈틀대듯이 유리창에 비벼대는 그 모습에 시혁은 토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억제했다. 하지만 그 다음 가게 안에는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시혁이 고개를 돌리자, 엄마의 등 뒤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대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인간의 몸을 먹어치운 그 괴물들은, 정신없이 가게의 유리창을 두 손으로 두들겼다. 그 몸 속에 뼈가 있는거라곤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유연한 주먹으로, 먹이를 발견했다는 듯한 만족스럽고 소름끼치는 웃음으로 유리창을 두들기는 그 녀석들의 모습에, 여자 아이의 울음 소리는 한 층 더 높아졌다. 그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던 시혁은, 어딘가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울음섞인 신음소리가 자기 입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걸 모르는 지, 잔뜩 팽창된 두 눈으로 유리창 너머, 괴물들이 유리창을 부수려고 노력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젊은 남자가 분위기를 깨고 입을 열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돼요! 2층으로, 2층으로 올라갑시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기 전, 아직도 멍하니 딸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를 힐끗 쳐다보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나재민이라고 합니다.”

2층의 온갖 물건들도 입구를 막아놓은 후에, 젊은 남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이름을 꺼내기 시작했다.

“신민애라고 해요.”

카페의 종업원이 말했다.

“최지현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김현서, 제 딸이예요.”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은 중년의 여자가 말했다. 아이의 눈시울은 여전히 붉은 색이였다. 그 다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은 시혁에게로 향했다. 이제와서 자기 이름을 말하는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권시혁이라고 합니다.”

시혁의 차례까지 끝나자, 재민은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아저씨는….”

“자기 딸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었어요… 말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아서… 강제로라도 끌고 왔어야 되는건데.”

재민의 말에 종업원, 민애는 마치 자기 책임이라도 되는 것 마냥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재민은 민애의 탓이 아니라며 그녀를 위로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이런 상황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영화도 아니였을 뿐더러,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게임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목숨, 그 뿐이였다.

“혹시 오늘 아침에, ○○뉴스를 전부 다 보신 분 계십니까?”

재민이 묻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시혁 또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뉴스를 본 게 저 뿐이라는 소리군요, 실은 오늘 아침에 저 괴물들에 대한 설명을 했었습니다. 뉴스에서 되도록이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었는데, 뭐 말로 해서 믿을 만한 일이 아니니까요.”

“되도록이라면 이라니, 사태가 이러면 무력으로 라도 나오지 않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이건 말이 안됍니다. 무슨 전쟁도 아니고, 아니 전쟁이라면 상대가 사람이기라도 하지. 대채 저게 뭡니까?”

시혁이 답답하다는 듯 말하자, 재민은 헛기침을 한번 내뱉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플갱어라고 하더군요.”

“도플갱어요?”

“예.”

“도플갱어라면, 그 자기와 똑같이 생겼다는.”

“예, 그런데 이건 경우가 조금 다르죠.”

재민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 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그리곤 시혁을 바라봤고, 시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저 괴물들은 사람을 잡아먹곤, 그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갑답니다. 그리고 마치 그 사람같이 행동하죠. 자기가 잡아먹은 사람의 생각, 추억, 키, 생김새, 성격, 습관, 버릇, 말투 등 모든 것을 카피한다 더군요. ”

“말도 안나오는 군. 지금 영화 찍습니까? 아니면 몰래카메라인가? 저 닫힌 문을 열고 나가면 ‘서프라이즈’ 라고 소리치며 절 반기는 겁니까?”

시혁은 웃기다는 듯이 말하며 짙은 연기를 내뿜었다. 그에 말에 최지현은 딸인 현서를 자신의 뒤에 앉혔다. 이런 상황에서 담배연기를 주의하다니, 웃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저도 믿지 않았어요, 제가 저것들을 보기 전 까지만 해도 말이예요. 분명한건 저 들의 지능이 아주 뛰어나다는 거예요. 잡아먹은 사람의 모든 것을 똑같이 카피한다니, 최소한 그 사람의 지능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죠.”

“미치겠군. 그래서, 저희는 이제부터 뭘 어떡해야합니까?”

시혁은 길게 한 모금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재민에게 해봤자 아무런 득도 못 얻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단지 재민이 계속 리더 역을 자처하는 것 같아 약간 짜증이 난 것 뿐이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뭐를?”

“이미 ‘도플갱어 대책반’ 이라는 것이 군에서 생겨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지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죽습니다. 총을 맞으면 죽고, 불에 타면 죽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문제는, 그게 도플갱어인지 실제 사람인지 구분하는게 어려울 뿐이죠.”

그의 말에 시혁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꼈다. 다른 이들은 그저 가만히 시혁과 재민의 대화를 듣고있을 뿐이였다.

“뉴스에서, 그런 것 까지 나왔습니까?”

시혁이 묻자, 재민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께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뭐, 그렇죠. 그것들이 파란 젤리 상태일때는 어떠한 짓을 해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면 죽일 수 있다는 것 같더군요.”

재민은 담배를 길게 태우며 말했다.

이미 지금 이 상황의 분위기가 아주 이상하다는 걸 시혁은 눈치채고 있었다. 뉴스에서 저런 세세한 이야기 까지 나올리가 없다. 국가 수뇌부들이 어떠한 일을 꾸미고 있건, 시민들에게는 단지 쓸데없는 구실을 붙혀가며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충고하면 그만이였다.

“게다가 말이예요, 그 파란 괴물들을 실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녀석들이라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그래서 말이예요, 이런 소문까지 돕니다. 그 녀석들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시민들을 먹이로 내준 것이 아니냐는.”

“…….”

시혁은 침묵을 지켰다. 심장의 박동수가 또 다시 뛰어가는 것 같았고, 담배를 쥐고있는 손 또한 부들부들 떨려갔다. 재민은 그런 시혁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 무표정. 그 모습에 시혁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이상하군요.”

시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가요?”

“당신은 마치 예전부터 저 괴물들을 알고 있던 사람들 처럼 말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뉴스에서 그런 세세한 내용까지 알려줬을 리가 없어요. 당신, 정체가 뭡니까?”

그러자 재민은 옅은 미소를 띄었다.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도플갱어 대책반이라고.”

그렇게 말하던 그는 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 물건이 전부 꺼내지기도 전에 시혁은 고개를 숙였지만, 그 것이 권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짓인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아까 말했죠? 가장 큰 문제는 도플갱어가 맞는지 아닌지 구별하는 거라고. 구별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시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민애와 최지현, 그리고 현서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마치 지금 상황을 이해라도 하고 있다는 듯, 시혁의 머리통을 향해있는 권총의 총구를 바라보면서도 그들은 단 한번도,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도플갱어는 눈을 깜박거리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요. 이 사실을 알아내는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죠, 다른 사람이 눈을 깜박거리는지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다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거든요.”

재민은 다른 손에 들려있던 담배를 단 숨에 끝까지 빨아들였다. 그리고 깊은 연기를 후우 내뿜더니, 시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권시혁, 신민애, 최지현, 김현서, 당신들을 이미 아까전에 죽었어요. 그리고 그들을 죽인 건 바로 너희들이지.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지금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동안에 당신이 두 눈을 깜박거린적이 있는지, 뭐 가끔 자기가 도플갱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놈들이 있다고도 하는데, 뭐 괜찮아요. 제가 본 당신들은 몇 시간동안이나 눈을 깜박거리지 않았으니까요.”

시혁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최지현의 뒷편에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김현서를 쳐다보며 말했다.

“씨발. 그래서 아까 저 년이 울때 그렇게 어색했던거군.”





그 순간, 총구가 번쩍 빛났다. 씨발, 이건 정말 말도 안됀다. 시혁, 그가 기억하고 있는 권시혁이란 인물에 대해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아니, 이건 더 이상 연기가 아니였다. 지금 그는 권시혁이란 인물 그 자체였다. 이십 이년동안 권시혁으로써 살아왔던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정말로 자기 자신이 도플갱어가 맞나 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어쩌면 자신은 정말 도플갱어가 아니라 권시혁이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뭔가,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고? 지난 이십이년 동안 살아오면서 이런 세세한 것에 신경을 썼던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시혁은 자신의 오른 쪽 눈동자를 향해 날라오는 총알을 꿋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그의 두 눈은 깜박이지 않았다.

총알이 그의 눈에 관통하기 전, 시혁은 다른 이들의 눈을 살폈다. 총구가 번쩍거리고, 엄청난 소리가 울려퍼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눈을 깜박거리지 않았다. 그들도 시혁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정체가 들켜버린 이 황당함을.

그리고 총알이 그의 오른쪽 눈을 꿰뚫고 들어오는 그 순간, 시혁은 온전한 왼쪽 눈을 통해 자신에게 총알을 발사한 이 남자를 맹렬히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재민과 눈이 마주쳤다.

총구가 번쩍거리고,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어?’





다른 이들은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도플갱어니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재민은? 재민도 눈을 깜박거리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이럴 수 없었다. 시혁은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은 눈을 깜박거리지 않는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놓칠 0.001 초의 짧은 시간도 그는 모두 봐왔을 터였다. 하지만 재민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는, 재민이 눈을 깜박거리는 광경을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어째서?

총알이 그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고, 머리 속에서는 붉은 피 대신, 파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파란 액체가 그의 두 눈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재민은 끝내 두 눈을 깜박거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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