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 6 -

달달써니 2013.06.17 20: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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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시게의 계획된 장난이었어. 사실은 겁이 많은데도 입만 강한 체 하는 타로를 표적으로 했어. 네가 은신처 이야기를 기억하라고 말한 것은, 그날 밤에 안면굴을 보러 가자고 말을 꺼낸 사람이 시게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려고 그랬던거야. 그렇지만 넌 이상한 착각을 한 것 같아.] 나는 의자에 주저앉아서 가만히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봄에 안면굴에 대한 소문을 듣고 보러 간 아이들은 동굴 안 쪽에서 웃고 있는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손 재주가 있는 시게가 그 얼굴을 보고 장난 칠 생각을 한다. 종이를 붙여서 그 위에 페인트로 얼굴을 그리고, 전부 다 그린 후에 신참인 나를 데리고 간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안면굴에 가자고 말한다. 표적은 건방진 타로 였기 때문에, 다른 겁젱이들이 도망쳐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많이 가게 되면 계획이 들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셋이서 동굴에 도착했을 때, 타로가 들어가기 싫다고 말한다. 무리하게 끌고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거기서 시게는 명안을 생각해 낸다. 웃고 있는 얼굴을 본 적 없는 나를 먼저 데리고 들어가고, 타로에게는 그 다음에 혼자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타로를 남기고 동굴에 들어간 시게는, 화내는 것 같은 얼굴을 보고 놀라는 나에게 [다행이야. 아직 화내지 않고있어.] 라고 말하며 안심시킨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는 지금 보고 있는 얼굴이, 전에 시게와 그의 친구들이 보러 갔을 때와 똑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에 들어간 타로는, 웃고 있어야 할 얼굴이 아니라 화낸 후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친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는데, 설마 동굴에서 뛰어 나와서 벼랑으로 떨어질 만큼 타로가 무서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서워진 시게는 자신의 장난이라는 사실을 탄로나지 않게 하려고, 다음 날 손을 쓰러갔다. 내가 웃고 있는 얼굴을 본 것은 그 후였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제, 시게는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손전등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뭐라고 미쳤다. 시게가 전부 계획 하고 있었던 것인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었다. [웃고 있는 얼굴의 도료가 오래된걸로 봐서는, 화내고 있는 얼굴의 도료는 바위에 붙은지 얼마 되지 않은게 틀림 없어. 그 이유는 당연히 시게가 너를 동굴에 데려가기 얼마전에 그렸기 때문이지. 선생님은 칠판에 점을 콕콕콕 찍었다. [따라서 범인은 시게야. 그리고 이 점 세개가 있는 마크∴는 좀 더 나중에 배우는 기호란다.] 분필을 살짝 둔 선생님이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그 기호도, 분필을 두는 손가락도, 그 때의 나에게는 모든게 멋있게 보였다. 태양은 천천히 높게 떠올랐고, 햇살은 책상이나 교실 바닥으로 퍼져갔다. 그 후, 나는 수학 수업을 들었다. 같은 과목인데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렇게 즐겁다니 어쩐지 이상하다. 부지런히 문제를 푸는 내 곁에서, 선생님은 학을 접고 있었다. 창문 쪽에 있는 종이학의 수가 늘어간다. 그것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는 여름방학 학교의 아이들이 감기가 다 나아서, 선생님과 나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는 것도, 그리고 아침이 낮이 되고 낮이 오후가 되고, 여름도 언젠가는 끝나고, 내가 여기를 떠나는 날이 오게된다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 선생님을 만난지 며칠이 지났는지 세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둥실둥실 한 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다른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는지 생각해본적 없다. 때때로 보이는 선생님의 어딘지 슬픈 표정, 그리고 선생님의 마음 안 쪽에 가려진 그 뭔가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그냥 오로지 문제만 풀었다. 역사를 알았다. 수학을 알았다. 그리고 여름 속에 있었다. [잘 했어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선생님이 나의 답안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벌서 오후다. 여름방학 학교 시간이 끝나는 시간이다. 나는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말했다.

 

[선생님이 화낼때 진짜같았어요!] 정말이다. 다가올 때, 무조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들은 선생님은 그냥 웃었다. 매우 기쁜 것 같이. [고마워.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러면 내가 이참에 연기자를 목표로 하고....] 갑자기 선생님이 조용해졌다. 얼굴이 한순간 굳어지고 눈을 내리깐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바람이 분다. 높고도 높은 하늘아래에서, 나는 선생님의 꿈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할 수 없을만큼 섬세하고 예쁘지만, 계속해서 봐서는 안되는 것. 그런 것이다. [콜록, 콜록] 기침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에서 들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선생님이 입을 누르고 있다. 단순한 헛기침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또 [콜록, 콜록] 기침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든다. [미안. 나도 감기에 걸린 것 같아. 감기를 옮기면 안되기 때문에, 내일부터 쉬도록하자.] 그런건 싫다. 감기따위 얼마든지 걸려도 좋다. 결석은 절대로 안한다. 그런 말을 생각없이 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눈을 가늘고 뜨고 말했다. [안돼. 고약한 감기야. 다 나으면, 꼭 세계사를 계속해서 가르쳐줄게.] 떼를 쓰는 나를 향해,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조용히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오늘은 너도 안색이 나빠보여. 너도 조금 쉬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럴 일이 없다. 그렇게 말하며, 나름대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제자리에서 점프를 했지만, 무릎이 덜덜거린다. 무리다. 사실 아침부터 상태가 나빴다. 감기가 아닌데도. 분했다. 이제 두 번 다시 선생님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돌리고, 또 콜록거리는 선생님의 모습은 어딘지 슬퍼보였다.

 

[네가 처음에 동굴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환상을 봤다고 말했지. 빨간 기모노가 팔랑이고 있는 것을.] 끝났다고 생각한 일을 갑자기 말해서 놀랐지만 바로 수긍했다. 동굴 안 쪽에는 숨을 수 있는 장소도 없고,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환상임에는 틀림 없다. [이 마을에서는 어린 나이에 죽은 여자 아이에게 빨간 기모노를 입혀서 애도를 한단다. 그 아이가 시집을 가려고 모으고 있었던 돈으로, 부모가 마지막으로 선물을 해주는 것이지. 지금은 하지 않고 있는, 먼 옛날의 풍습이지만. 그리고 저 동굴이 있는 산은 사망자의 혼이 머무는 장소로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곳이야. 등신불이 된 스님은 그것을 진압하기 위해서 입산했다고 전해지지.]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가 본 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러자 선생님은,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이 대답을 했다. [아니야. 환상이야. 이미 이 세상에는 없지. 그러나, 너는 그것을 본거야.] 선생님의 눈동자가 나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갈듯이 바라본다. [너는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 이상한 것을 보는거야. 앞으로도 쭉.]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매끄럽고도, 요염하게.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은 [잘 가. 안녕히.] 라고 말했다. 나도 [안녕히 계세요.] 라고 말했다. 교실을 나와서, 복도로 빠져나가고, 계단을 내려가고, 나막신상자에서 구두를 꺼내 신는다. 그리고 교정에 나와서, 조금 걸은 후 뒤를 돌아본다. 이 층 교실 창문에는 선생님이 있다. 처음 만났을때의 그 미소 그대로. 그 옆에는 종이학 무더기가 흔들리고 있다. 1000마리에는 모자라지만, 많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선생님이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든다.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고나서 단 한번도 선생님이 학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태양은 내리쬐고 있는데도, 교사의 낡고 퇴색한 기와지붕은 무척이나 오래되어 보였다. 고개를 내려 가자, 조금씩 조금씩 학교의 모습이 사라져간다. 나는 손을 내리고, 두렁길을 통해서 숲으로 향한다.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은 평소처럼 어둡고 습기가 차있다. 나무 아치를 빠져나가고, 검은 흙 길을 힘껏 밟는다. 머리가 멍해진다. 기분이 언짢다. 신사를 참배하는 길로 간다. 항상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이상한 기분에 이끌려서 들어가버린다. 어디선가 새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10엔짜리를 새전상자에 던져 넣는다. [치링] 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손을 합친다. 선생님의 감기가 낫기를. 학교의 모든 아이들의 감기가 낫기를..... 그리고 다시 되돌아간다. 갑자기 머리 속이 빙돌기 시작한다. 시간이 남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니, 다르다. 멈춰 있었던 시간이 지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숲을 빠져나가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기억이 잘나지 않지만, 그 다음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 안에서 땀을 흘리며 누워있었다. 나는 2일동안 누운 채로 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알 수 없었다. 미지근해진 이마 위의 수건을 누군가가 바꾸어 주었다. 그것은 아주머니 같다는 생각도 들고, 요우 같은 생각도 든다. 기침은 나오지 않았다. 콧물이 마구 나왔다. 열이 내린 3일째 아침. 눈을 뜬 나의 옆에 시게가 앉아 있었다. [이제 정상체온이야.] 그렇게 말하고 이마 위의 수건을 갈아준다. 타올을 빼앗는다. 밖은 날씨가 좋은 것 같다. 생각해보니까, 이 마을에 있는 동안,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밭에 있는 야채는 괜찮을까 생각했다.


시게가 결심한 듯 입을 벌린다. 그리고 바위의 얼굴을 바꾼 것은 자신이라고 말했다. 나는 [알고 있었어.] 라고 말한다. 놀란 얼굴. 모든 것이 선생님의 추리 대로였다. 그러나 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시게가 그 사건이 있었던 다음날, 안면굴에 붙인 또 하나의 얼굴을 벗겨 낸 후에, 혼자서 옆 도시에 있는 병원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타로를 보러 가려고. 병실에서 녹초가 되어 축 늘어지고 있었던 타로는, 이미 그것이 시게가 계획한 장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타로는 화를 내지 않고 이상하게 멋쩍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쓴웃음을 보였다. 깜짝 놀라서 도망쳤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긁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게는 어른들에게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 가만히 입 다물고 꾸중을 듣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시게가 꾸중을 듣는 것이 무서워서 자신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책임을 지는 것이 두목이 보여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실망했었는데, 시게는 타로의 심정을 생각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시게는 훌륭한 두목이었다. [선생님? 어떤 선생님?] 갑자기 시게가 그렇게 말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말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열이 나고 있을 때 선생님을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데도. 서투른 발뺌은 쓸데없는 귀찮음을 낳을지도 모른다. 나는 체념하고,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의 맞은 편 마을과 여름방학 학교를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는 동안,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님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게의 얼굴을 보자, 의아한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아직 열이 나는 것 같다.] 시게는,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 저쪽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수건을 들고 방에서 나갔다. 나는 여우에 홀린 것 같은 마음이 들면서도, 어째서 시게는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걸까? 라고 초조해하면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누가 방으로 들어오는 기척이 들려서, 눈을 떴다. 문을 닫고 이불 옆에 온 것은 할아버지였다.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 저쪽에 갔느냐?] 라고 할아버지가 물었다. 시게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말하자, 평소와 다르게 언짢은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귀로 믿을 수 없는 것을 들었다. 그 마을은,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무서운 병이 유행해서 사람들이 거의 다 죽어버렸고, 남은 사람들도 마을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서, 지금은 아무도 없는 마을의 가옥만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까닭이 없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그 마을에 갔는데. 실제로 선생님을 만났고. 실제로... 확실히 저 숲에 있는 맞은 편에는 편안하고 한가로운 산간의 마을이 존재했지만, 선생님 이외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아차렸다. 이웃집에 있다는 선생님의 어머니도, 나 이외에 4명이 더 있다고 하는 여름방학 학교의 학생도, 결국 누구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버림받은 마을이라면, 어째서 선생님은 저런 곳에 혼자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생각하고 있으면, 또 열이 날 것 같다. [그 병은 뭐였어요?] 할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결핵]

 

결핵. 텔레비전으로 본 적이 있다. 옛날 드라마에서, 요양소에 있는 여자가 기침하고 있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폐결핵이란다. 진찰할 수 있는 의사가 없었어.] [감기가 유행하고 있어. 감기가 유행해.] 기침이다. 기침. 선생님도 기침하고 있었다. 나는 이유도 모르고, 그 말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되풀이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에게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일어섰고, 방에서 나가려고 손잡이에 손을 대는데,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나도 어릴 적에, 안면굴이 화내고 있는 얼굴을 봤었지.] 문이 닫힌다. 영문을 모르겠다. 아니, 나의 머리 어딘가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단지, 알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나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데, 또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들어왔다.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알고 있었어요. 큰 향나무가 정원에 있는 집이라고 말했을 뿐인데도, 시게가 사는 집이라는 사실을요.] 할머니는 뭐든지 알고 있다는 얼굴로 중얼댔다.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대단히 유명한 장난꾸러기로, 이웃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고 할 만큼 악명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름은 시게하루. 손자인 시게는 그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한다. [역시 홀렸었구나. 천벌로 죽지 않은 게 다행이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홀린 거라고? 내가? 몸이 떨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의 감기는 단순한 감기였다. 무서운 병이 아니었다. 완전히 몸이 나아져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집에 틀어박혀서 숙제하고, 숙제를 전부 다 했을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었다. 시게와 병원에서 되돌아온 타로가 같이 놀러 가자고 말해도, 흥미가 없었다. 그래도 골판지로 만든 슈퍼카에 올라타서 놀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허접스럽게 만든 모습이 웃겼기 때문에, 나도 멋진 페라리를 만들고 놀이에 뛰어들었다. 그냥 서로 부딪치고 놀 뿐이지만, 페라리의 빛나는 모습을 두려워한 놈들이 여기저기 도망쳐다니는 모습은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에는 시게와 일대일 승부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지고 말았다. 시게의 차에는 [롤스로이스 팬텀]으로 모자라서 [크라이슬러]와 [람보르기니]라는 글자까지 매직잉크로 쓰여 있었다. 역시 이길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조금씩 건강해졌지만,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에는 가지 않았다. [이제 더는 갈 생각하지 마라.] 라고 할아버지에게 들은 소리. 그리고 선생님이 오지 말라고 말한 것.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뭔가를, 모든 것을 뺏기고 마지막 남은 그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마저 나 자신 스스로 깨부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생각하지 않아도 여름은 끝난다. 나에게도 돌아가야 할 진짜 집이 있고, 학교가 있다. 이대로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로 있을 수 없었다. 내일은 그동안 신세를 진 시게의 집에 작별을 고하는 날. 나는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에 혼자 들어갔다. 여전히 귀가 아파지는 것 같은 매미 소리 속에서, 어둑어둑한 나뭇잎 그늘을 묵묵하게 걷는다. 신사를 참배하러 가는 길을 곁눈질로 바라본다. 그리고 길 안쪽으로 발을 돌린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으므로, 부드러운 흙이 들러붙은 발자국이 추접스럽게 남아 있는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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