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언니 2] 여자들이 모여있는 길

달달써니 2013.03.27 06: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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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낡은 것에는 혼이 머문다고 해요.

긴 세월이 지나서 혼을 얻게 된 것에는

마치 신 또는 요괴처럼 일종의 신앙의 대상과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왔지요.

 

풍속학자 시부사와 다쓰히코는 이러한 것을

일본인의 낡은 것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의 표시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정말로 그것뿐일까요?

그중에는, 기나긴 세월처럼 기억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도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초등학생 때, 저는 흔히 말하는 말괄량이였어요.

그래서 중학생이 될 때까지

방과 후에 어린이 보육원에 다녔고요.

그건 그렇고, 저의 집 근처에는

저 보다 다섯 살 많은 사촌 언니가 살고 있었는데

저희 집에 자주 와서 놀았어요.

근데 이 언니라는 사람이 조금 색다른 사람이에요.

같이 지내면서, 이상한 체험을 하곤 했죠.

 

걷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더위도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사그라졌어요.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전이었을 거에요.

보육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그때도 역시 사촌 언니랑 같이 상점가의 뒷골목을 걷고 있었죠. 

자주 다녀서 익숙한 코스였어요.

 

왼쪽에는 상점가, 오른쪽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샛길이 있었죠. 

사람들은 그 샛길을 [여자들이 모여있는 길]이라고 부르고 있었어요.

땅거미가 다가오는 가운데,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제외하고 

근처에는 인기척도 없었고, 조금 떨어진 상점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빼고는

역시 그곳도 조용했어요. 

 

돌을 발로 차면서 걸어가는데

시냇물 쪽에서 뭔가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길래

저는 헛들은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또 아까 그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이번에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도 섞여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까

또 어느 사이에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또 어느 순간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요. 

한순간이지만, 누군가가 웃는 소리까지 확실하게 들렸답니다.

 

그럴 때마다, 주위를 둘러봐도 저와 사촌 언니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다 주변에 보이던 땅거미가

짙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기묘할 정도의 조용함이

오히려 귀를 아프게 할 만큼 다가왔어요.

 

사촌 언니를 불러 세우고 조금 전에 들은 것을 이야기했어요.

 

[저기 언니,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아무도 없는데도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자 언니가 말했어요.

 

[이 냇가, 옛날에는 좀 더 컸다는 사실, 알고 있니?]

 

언니가 말하는 도중에도, 여지없이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옛날, 상점가가 들어서기 전에는, 여기에 민가가 쭉 줄지어 서 있었어. 그리고 이 시냇가는 여기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꾸리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릇을 씻는 소리, 젖은 천을 짜내는 것 같은 소리도 났어요.

 

[그때는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할 때는, 이 시냇가의 물을 대부분 이용했었어. 그러니까 이곳에서 살던 아줌마들이 수다를 떠는 장소로 바뀌게 된 거지. 그래서, 지금도 이 길을 여자들이 모여있는 길이라고 부르고 있는 거야.]

 

사촌 언니는 말을 끝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촌 언니와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럼, 이 소리는 그때 그 소리에요? 어째서 지금도 들리는 거에요?]

 

사촌 언니는 지긋이 저의 얼굴을 들여다봤어요.

 

[이제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시냇물은 그 시절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옛날에 자신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나, 그 추억들을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저에게서 시선을 돌리더니, 강을 바라보더라고요. 

저도 얼떨결에 따라봤지만..

 

그때, 강가에서 식기를 씻고, 빨래하면서 잡담에 흥겨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잠시나마 눈앞에서 보이다가 사라졌어요. 

저는 어쩐지 그리운 마음이 들어서, 그것을 넋 놓고 보고 있었죠.

그러자 사촌 언니가 저의 머리를 쳤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멀리서 상점가의 웅성거리기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확실히 아줌마들의 수다 소리였어요.

세월이 흘러서 장소는 변했지만

아줌마들의 수다만큼은 여전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