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저희 집은 여름이 되면 강이나 바다로 가족끼리 텐트를 가져가 며칠씩 놀다 오곤 했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경주에 있는 감포라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우리 가족이 자주 놀러갔던 곳이었는데, 수심이 얕아 어린 아이도 걸어서 꽤 멀리 갈 수 있었습니다.
또 바위섬들이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바다와는 달리, 아주 가까운 곳에 바위섬이 몇 개 있었죠.
그런데 바위섬 주변은 유독 수심이 깊어서,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그 곳에서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갔는데도 익사한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저는 그 날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서 한참을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쳐서 텐트로 돌아가려는데, 바닥에 발이 미끄러졌습니다.
분명히 바닥에는 물때도 그다지 끼지 않아 반들반들한 자갈들만 있었는데도 무언가에 잡아 당겨진 것처럼 엎어지고 말았죠.
그리고 저는 그대로 바위섬 근처까지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괜찮을거라는 생각에 물장구를 쳐서 얕은 곳으로 빠져 나가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앞으로 전혀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해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죠.
마치 만화에서 눈 앞의 풍경이 점점 작아지며 제 주변이 어두워지는 효과를 보는 듯 했습니다.
그 날은 해도 높이 뜨고 날도 더워서 물의 온도가 높았는데, 그 곳에서는 유독 굉장히 물이 찼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한참을 버둥거렸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점점 얼굴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손을 흔들며 주위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외쳤죠.
그런데 주위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 하나도 저를 바라보지 않는 겁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분명히 소리는 지르고 있었는데, 누구 한 명 저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더군요.
그제야 제 머릿 속에는 어른들께 들었던 [바위섬 근처에 가면 빠져 죽는다.] 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이제 끝인가 싶어지며 절망이 몰려오더군요.
그런데 그 때 저보다 두 살 정도 많아보이는 언니가 얕은 곳에서 허리를 숙여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자.] 라고 말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그 손을 붙잡고 겨우 얕은 곳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뒤를 돌아봤는데,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계속 얕은 물 주변에 몰려서 놀고 있을 뿐이었죠.
한 번 놀라가면 2박 3일 정도는 그 곳에서 머물렀기에 그 언니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그 이후로 만난 적은 없습니다.
손을 잡으려고 올려 봤을 때 잠시 봐서 흐릿하게만 기억하지만 평범한 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언니는 거기서 사고를 당했던 사람의 영혼이나, 저의 수호령이 아니었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