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adic] 손가락

달달써니 2013.08.21 0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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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현지는 오늘도 문을 열며 다녀왔다고 인사를 했다. 


얼마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인사를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온기라고는 감돌지 않는 공책을 집어든 그녀는 문득 허전한 감을 느꼈다.


곧이어 자신의 손을 바라본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 손가락도, 익숙해 지지는 않는구나."


하필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그녀의 둘째 손가락도 함께 잘렸다.


어른들 몰래 훔쳐본 차갑고 딱딱한 아버지의 시신처럼,


같은 날 죽은 그녀의 손가락 윗부분도 검붉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을 뿐 


생명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아버지의 사망에만 신경을 쓰느라 그녀의 사고는 금새 묻혀버렸다.


결국 잘린 손가락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몰랐던 그녀는 장례식 내내 한 손에 손가락을 쥐고 울리는 곡소리를 들어야 했다.


집안의 어두운 분위기에 그녀는 자신의 사고를 차마 얘기할 수가 없었다. 



이미 살았을 때의 생기 넘치는 붉은 빛은 검은색으로 말라 버려 주름진  흉측한 모습의 손가락이었지만


한때 그녀의 것이었기에 차마 버릴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흰 붕대에 감아 서랍 속에 넣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랍 속에 있었던 그녀의 애꿏은 손가락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가 지낸 아버지의 사후 49일 제사때 사라져 버렸다.


현지는 손가락이 없어짐에 어머니가 치우셨을 거라 생각하고 더 이상 손가락의 흉한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됨에 기뻐했다. 


아버지의 제삿날 웃음짓는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이 들기엔 아직 철이 없었다.



손가락을 보고 얼마전을 떠올렸던 현지는 애써 웃어 보였다. 


오늘 저녁에 어머니가 출산한 남동생을 데려오실 날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머니는 동생을 출산한 후 퇴원할때까지 그녀에게 동생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현지는 아마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동생을 보게 되면


자신이 동생을 미워할 것이라 생각하셨을거라고 추측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녀는 남동생이 오면 꼭 잘 챙겨주겠노라 다짐하고, 빨리 저녁이 되기를 기대했다.


드디어 저녁이 되었다. 애를 태우며 줄곧 기다리던 현지의 귀에 드디어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어머니가 남동생을 안고 들어오셨다.


현지는 활짝 웃으며 달려나가 어머니와 남동생을 맞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낯빛이 약간 어두웠다. 


분명 웃고 계셨지만 뭔가 걱정스럽고 염려하는 빛이 일었다.


활기찬 성격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누구보다 빨리 상황을 극복해 내셨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이 어둡자, 현지는 의아해 했지만 곧 몸이 피곤하셔서 그럴 거라 생각하며 어서 동생을 보여 달라 졸랐다. 


어머니는 머뭇머뭇 거리시다 포대기에 싼 동생을 현지 쪽으로 내밀으셨다.


현지가 기뻐하며 동생에게 손을 뻗는 순간, 손가락 끝부터 싸한 기운이 밀려왔다.


증오와 원한이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현지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어머니는 왜 그러냐는 듯 물었고 현지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아이를 받아 들었다.


네 개의 손가락은 받으면 안 된다는 듯 부들부들 떨리고 차갑게 질렸지만 현지는 애써 무시하며 아이를 얼굴 가까이 들어올렸다. 


아기는 완벽하게 정상이었다.작고 귀여운 볼에 아직 보들보들한 살인 머리.


현지는 자신의 과민반응이었다 생각하며 아기를 찬찬히 뜯어 보았다.


한참 아이를 살펴보던 현지가 살며시 포대기를 푸르고 아기에 팔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귀엽다는 듯 웃으며 동생의 손을 바라본 순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공포심이 그녀를 감쌌다.



아기의 오른쪽 손에는 검지가 두개 였다. 그저 육손이 아니라,


두 번째 검지 손가락은 웬만큼 큰 아이의 손가락이었다. 


곧이어 사라진 자신의 손가락이 생각난 현지는 온몸이 경직 되는 기분을 느끼며  커다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근두근,심장이 뛰는 소리가 거실에 울리며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엄청난 공포심에 현지의 눈이 커다래지며 울음이 나오려는 순간,


아이가 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며시 웃음 지었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을 보라는 듯 들어올렸다.


손과 손가락이 이어진 부분에는 선명한 이 자국이 나 있었다.


현지는 무언갈 알아차리고 그 상태로 기절했다. 


어머니는 쓰러진 현지에게 달려갔고 


현지가 쓰러지며 소파에 떨어진 그녀의 남동생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여전히 싱긋 웃고 있었다.


기이하게 긴 그의 손가락을 떨궈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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