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사슬

달달써니 2013.04.25 00:43:25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kTofD



[가로 1M, 세로 1M, 길이 50Cm 의 거대한 찜통에서 수증기가 올라온다. 찜통의 뚜껑을 열자 작업장 안은 회색빛 수증기로 덥혀 졌다. 손으로 수증기를 헤치고 바닥을 더듬어 앞발과 뒷발을 잡아 찜통으로 집어넣었다.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던지 70 도 가 넘는 뜨거운 물속에서 발악을 했다. 난 재빨리 뚜껑을 덮었다.] 








신용카드로 인한 내 삶의 행로는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신용카드를 발행 받았을 당시 만해도 '돈이 없으면 사지 말고 먹지도 말아야 겠다' 며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 굳은 결심은 한 달이 못가 무너지고 말았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의리인양 카드를 꺼내 계산을 마치고 여자친구가 필요하다는 물건은 당연히 사줘야 한다는 생각에 숨 쉬듯 카드를 사용했다. 




그 결과 200만 명중 한명인 신용불량자 신세를 피해갈수 없었다. 직장도 없고 은행에 예치한 돈도 없었던 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날 원하는 직장은 없었다. 




카드회사의 반 협박성 경고 전화와 은행에서의 대출 불가 판정으로 이성은 조금씩 야성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뭐든 해야만 한다. 그까짓 돈 5천만원...' 




우선 밤늦게 배회하는 여성들을 먹이 감으로 선택했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으므로 사람이 드문 곳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며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경동시장을 발견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기에 몇몇 점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제 내 앞을 지나가는 먹잇감만 낚기만 하면 된다. 




10 여분을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건너편 상가 1층 인삼 가게가 문을 닫고 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40대 중년의 여자는 문밖을 나와 핸드백을 자신의 옆에 내려놓고는 힘겹게 셔터를 내리려했다. 그여자가 셔터를 내리기 전에 핸드백을 훔쳐야 했으므로 서둘렀다. 주변을 재빨리 살피고 그녀의 뒤로 단숨에 뛰어가 핸드백을 쥐어 채고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뒤도 보지 않고 뛰었다. 




"도둑이야 도둑" 




중년 여자의 비명이 시장전체로 울려 퍼졌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오토바이를 탈수가 있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으로 올랐다. 아랫배에서 심한 진통을 느끼며 땅바닥을 굴렀다. 아픈 배를 감싸 쥐며 고통의 원인을 찾아 고개를 들자 눈앞으로 수박만한 주먹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오물 투성 이의 바닥을 구른 후, 도망가려고 뒷걸음 쳤지만 이내 '그놈' 에게 잡히고 말았다. 




"나이도 새파른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도독질을하노" 




"사..살려 주세요 잘못해..윽" 




'그놈' 은 내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을 때는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걸어가며 싸움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놈'의 장남감이 되어 바닥을 굴러다녔다. 입안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눈꺼플은 부었는지 무거워져갔다. 




"이제 그만 하세요 사람 죽겠네요" 




중년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을때 일어설 기운조차 없었다. 중년여자는 '그 놈'에게 고맙다는 인사만 짧게 마치며 나를 '그 놈' 앞에 버려두고 서둘러 사라졌다. 도망갈 힘도 없었다. 눈에서는 비굴함과 아픔에 눈물까지 흘러 내렸다. 차라리 경찰이 와서 나를 잡아가주길 바랬다. 




"인나라" 




일어나기 싫었다. 기절한척을 해야 덜 맞을 것 같았기에 목구멍으로 나오는 신음소리도 참아냈다. 




"다시 한번 말한데이 인나라"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게 무섭게 들리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 놈'의 눈치를 살피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놈'의 얼굴은 지금까지 보았던 사람 얼굴이 아니었다.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으며 코는 귤을 갔다 붙여 놓은 것처럼 노르스름했다. 나이는 50 초반으로 보였으며 나를 보고 미소 지을 때는 이물질이 잔뜩 낀 누런 이가 나를 더욱 주늑 들게 만들었다. 




"니 젊은 놈이 뭐하는 짓이고?" 




"죄송합니다" 




"마! 죄송하다면 다가? 니그마 전과자 되고 심노?"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봐주십시요" 




"따라 온나" 




따라오라는 '그 놈'의 말을 듣고 도망 칠 수가 없었다. 어설프게 도망갔다가 아까처럼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그 놈'을 뒤따라가게 만들었다. '그 놈'은 뒤도 쳐다 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대포집 앞에서 뒤 따라오는 나를 기다렸다. 난 그놈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따라 들어갔다. 




대포집 안은 '그 놈'과 비슷하게 생긴 남자 둘이 더 있었다. 




"최씨 뭐하다 이제와 막걸리 두 사발 짼데" 




"행님 언제왔는교? 난 이놈아좀 데리고 오느라 늦었심더" 




"누군데? 같이 일하는 애야?" 




"아님더 그런게 있심더 막걸리나 한잔 주이소" 




나에게도 막걸리 한잔을 따라 주었다. 막걸리를 받는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마시라는 한마디에 긴장을 풀 수가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나에 대해 궁굼 하지도 않은듯 "최씨"라고 불리는 남자가 늘 이래왔다는 듯 태연하게 자신들의 얘기만 한 채 막걸리를 마셨다. 시간이 지나고 최씨는 나에게 나가자며, 같이 술을 마시던 남자 둘에게 인사를 했다. 아무말 없이 일어서 그를 따라갔다. 아까 맞은 얼굴이 점점 부어오르는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니 집이 어디고?" 




"네 장안동 입니다" 




"장안동? 아 그기 박사장 작업장 있는 덴데 니 개고기 먹을줄 아나?" 




"네 ?" 




"개고기 먹을줄 아냐 말이다? 모르나?" 




"아 보신탕은 몇 그릇 먹어 봤습니다만..." 




"그래? 그럼 따라 온나 술이나 한잔 더하자" 




몸이 무거워 걸을 수조차 없던 나에게 따라오라는 '최씨'의 말은 한숨을 토해 내게 만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시장 골목 깊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다 허름하고 낡은 상점 앞에 멈추더니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푼 후 방화셔터를 위로 올렸다. 




"드온나" 




짧고 강한 한마디로 자신의 가게 안으로 불렀다. 안에 들어서자 역한 냄새가 코를 자극 시켰고 천장위에서 깜빡거리는 형광등은 가게 안을 서서히 밝히고 있었다. 처음 보는 기계들과 바닥에 너저분하게 깔려있는 동물의 털들이 보였고, 쓰레기봉투 안에는 동물의 내장으로 보이는 창자와 간이 피가 덜 마른 채 봉투 밖으로 비쳐 지고 있었다. 온몸이 경직이 돼가면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최씨'는 거대한 창고 같은 냉장고 문을 열더니 가죽이 벗겨져 나간 동물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그 동물이 살아 있을 때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기보단 내가 저렇게 가죽이 벗겨져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부가 뜯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저 아저씨...저...아까는 죄송했어요... 이제 가면 안될까요...."


"간다고? 와 내가 니 잡아 믁기라고 할까봐? 이와 앉아봐라"


먼지가 내려앉은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쳐졌다. 평소 얼굴의 두 배로 커진 얼굴은 검푸른 멍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프라스틱 의자에 앉아 마른침을 삼키며 도망갈 기회를 노렸다.


"아까는 미안했데이 살다보면 여러가지 일을 겪는거 아이겠나? 안그렇나?"


'최씨'는 나무도마위에 동물을 올려놓고는 도끼 같은 칼로 머리와 다리 가슴 등을 토막 내고 있었다. 머리로 봤을 때는 초식 동물 같지는 않았다. 개고기 먹을 줄 아냐는 '최씨'의 말이 다시 한번 귓가에 울렸다. 잘게 토막 나 고기 덩어리로 변한 저동물이 살아 있을 때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기다렸던 '개' 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평소에 즐겨먹던 보신탕이 저렇게 만들어져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보신탕을 먹지 못할 것이다.


최씨는 뒷다리 한 개를 압력밥솥에 넣고 된장과 생강을 다리위에 올려놓았다. 영업용 가스버너에 불을 붙이고 냉장고 구석에서 소주를 꺼냈다.


"개고기는 뒷다리가 살도 많고 먹을 만하끼다 원래는 배바지 라고 배 부위가 끝내주그든"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속이 느글거리기 시작했으며 이내 밖으로 음식물을 토해냈다. 


"니 쏘주 믁지 몬하노? 막걸리 세잔 먹고 오바이트 하노 와~미치뿌네"


"죄...송해여 제가 치울께요"


"그럼마 니가 치우제 내가 치우노 언능 물 뿌리라 저기 수도꼭지 보이제"


코에서도 음식물이 흐르고 있었다. 소매로 코를 훔치고 수도호스를 끌어 물을 뿌렸다. 물에 밀려 흘러가는 음식물을 보고 앉아 있으려니 속이 또다시 울렁거렸다.


"니 무슨 일하노"


"저는 지금 아무 것도 안 합니다"


"아이고 니같은 새끼 때문에 세상이 이모양 이꼴 인기라...일할 생각도 않고 남 피해만 주고 안카나?"


개나 잡는 주제에 남에게 잔소리나 하는 '최씨'의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마 니 속으로 개 잡는 주제에 잔소리 한다고 모라캤지?"


순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부인했다. 속마음을 들킨 난 애꿎은 수도호스 끝을 힘껏 눌러 물을 뿌렸다.


"마 잘들어라이~세상에 먹고 살라고 노력하려면 어쩔수없이 살생도 하고 그러는기다 알았나? 암것도 모르는 새끼들이 개잡는다고 백정 취급하는데 먹고 살라면 어쩔수 없는기다 알았나?"


'시파 니가 먹고 살라고 그랬듯이 나도 먹고 살라고 강도짓 한것을 지랄 하냐'


차마 입 밖으로는 말하지 못했지만 '최씨'가 개를 잡아 돈을 버는 것이나 내가 강도짓을 하는 것은 똥 묻은 개냐 겨 묻은 개냐의 차이다.


"하긴 살생 말고도 좋은일 만재...하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우짜노 안그러나?말좀해보라카이"


"네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개 잡는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굴했다. 차라리 대답이라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최씨'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압력밥솥에서 물이 끓고 있었다. '최씨'는 고기를 꺼내 잘게 썰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소주병의 마개를 틀고 종이컵에 가득 술을 담고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느글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술을 단숨에 비웠다.


"마 술 잘하네~ 안주도 먹어라 보신탕 먹어 봤다믄서"


"네..."


젓가락을 들어 잘게 잘려진 고기 앞으로 손을 옮겼다. 눈을 감아 젓가락을 입에 넣고 대충 씹는척 하며 재빨리 삼켰다. 느낌은 좋지 않았으나 맛은 꽤 좋았다. 


"먹을 만 하재?"


"네 좋은 데요"


닭고기와 개고기, 돼지고기와 소고기, 어차피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최씨'는 고기 두 점을 입에 넣고는 술을 내게 따랐다. 술을 받고 바로 술잔을 비워 '최씨' 에게 술잔을 돌렸다. 오고 가는 술잔에 취기가 올라왔고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해졌다.


시끄러운 기계소리에 놀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옆에 놓여있는 술병의 개수로 보아 둘이서 아홉 병은 마신듯했다. 머리 뒷골이 심하게 울렸다. '최씨'는 알지 못하는 기계 앞에서 물을 뿌리고 있었다. 기계는 두꺼운 원형 플라스틱으로 안으로는 나사모양의 고무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밑에는 모터가 있는지 빙글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일어났나? 냉장고에 물있으니 꺼내 먹어라"


"아저씨 그게 뭐하는 기계인가요?"


"탈모기 아이가 모르나? 털 벗기는 기계 모르나?"


탈모기 안에서는 개 한마리가 자신의 털을 벗어던지며 알몸을 드러냈다. 개의 살빛은 무척 희고 윤기가 흐르는 것으로 죽은 지 얼마 안되 보였다.


물을 찾으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속에는 수십 마리의 개들이 똑같은 자세로 갈코리에 걸려 고깃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며 비릿한 냄새가 코를 감싸고 있었다. 더 이상 물을 찾을 수가 없어 냉장고 문을 닫고 어제와 같은 자리에 음식물을 토해냈다.


"아~~ 비싼술 다 토해삐내 아이고마 자슥아 그럴라믄 뭐하러 쳐믁노"


'최씨'는 기계에 물을 뿌리다 말고 내가 토한 자리에 물을 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스위치를 끄고 탈모기 안의 개를 꺼내 커다란 그릴 위에 올려 논 '최씨'는 나에게 물러서라며 손짓을 했다.


L.P.G 밸브에 연결된 긴 호스 끝에서 귀가 찢어질 듯 소리를 내며 불이 나오고 있었다. 마술쇼에서 마술사들이 오일을 마신 후 불을 내뿜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소리는 L.P.G의 압승이었다. 그릴위에 올려진 개는 거대한 불길이 지나자 노랗게 익어가며 불길위의 오징어처럼 오므라들고 있었다. 


'최씨'가 밸브를 잠그자 가게 안은 멍할 듯이 조용해졌고 문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최씨'는 그릴 위에 놓여 진 개의 배를 칼로 가르기 시작했고 갈라진 배속에서는 어제 쓰레기통에서 보았던 내장이 피와 함께 흘러 나왔다. 내장을 끄집어낸 최씨는 수돗물을 틀어 피를 씻겨냈으며, 개의 머리에 갈코리를 꽂고는 냉장고를 열어 위쪽에 걸었다.


가게 밖으로 작은 개장이 보였다. 어제는 천막으로 가려져 보지 못했던 살아 숨 쉬는 개들이었다. 차 트렁크만한 작은 개장에 개는 서로를 엉키며 헐떡거렸고 바닥에 깔린 개는 이미 숨이 멎은 듯, 혀를 입 밖으로 내민 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재내들 몇 마리에요?"


"아 개들? 열두마리 아이가 와?"


"저 밑에 깔려 있는 개는 죽었나 봐여 움직이질 않네요..."


"뭐 매일 있는 일이다카이 저런것은 '떨어졌다고' 하는거다 저거 꺼내긴 꺼내야하는데 위에놈들이 하도 지랄해싸서 미치뿌네"


밑에 깔려죽은 개를 보자 2년 전 부모님 집에서 놀고 있을 때 마당에서 키웠던 '바둑이' 가 생각났다. '바둑이' 는 주둥이가 까맸고 주인을 보면 꼬랑지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던 똥개였다 이사하면서 개장수에게 '바둑이'를 팔았다. '바둑이'가 저렇게 깔려 죽거나 '최씨'에 의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메어졌다.


"아저씨 어제 술 잘 마셨어요 이제 그만 가 볼께요..."


"가긴 어디가노 먹었으면 일해야제? 저기 고무장화 있으니 바꿔 신고 이리와서 일이나 도와라"


"네? 저 지금..."


"마..니 집에 가서 빈둥 대지말고 일이나 배워라 내가 한달에 200 마쳐줄테니 열심히 돈모아봐"


'최씨'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최씨의 눈빛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눈을 느낄 수 있었다. 생전의 아버지는 노동일과 막일로 고생하시면서 아들놈 인간 만들겠다며 돌아가셨다. 심한 갈등이 머릿속 을 복잡하게 했다. 200만원이라는 돈과, 불쌍한 개들을 죽이면서 일을 해야 하는 갈등.


갈등의 끝은 돈이었다. 한쪽구석에 주인 없는 고무장화를 바꿔 신고 '최씨' 앞으로 다가갔다.


"저 이런일 해본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어차피 일을 해야 하기에 열심히 배워볼께요"


"아이고 자슥 시원한 구석은 인네 처음부터 개잡기는 무리가 있을테니 쓰레기는 주서담고 물청소나 해라 알았나?"


"네.."


입술을 물며 바닥에 널 부러진 털들을 주워 담았다. 역한냄새도 차츰 익숙해졌고 털을 주어 담는 손에 피가 묻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일을 해나갔다. '최씨'는 가게 밖으로 나가 개장을 열고 올가미를 이용해 개한마리를 꺼냈다. 개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눈치 챘던지 네발을 질질 끌어가며 반항을 했다. 최씨는 개의 목을 장화신은 발로 발고는 쇠꼬챙이 같은 작대기를 개의 입에 물렸다.


전기였다. 예전에 개는 때려서 잡는 줄 알았지만 전기로 잡고 있었다. 전기를 물은 개는 기지개 펴듯 쫙 퍼졌고 경련을 일으켰다. 개의 경련이 끝난걸 보아 개는 숨을 멎은듯했다. 최씨는 개목에 걸린 올가미를 풀고 커다란 찜통을 열었다. 개를 찜통에 넣더니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온도가 몇도인지 아나?"


"네?? 온도여?"


"털이 가장 잘빠지는 온도는 70도에서 75도 사인기라 알았나?"


"온도계가 있나요?"


"없지! 그런게 어딨노 20년동안 일하믄서 온도계 같은거 모른채 일했다"


"그럼 어떻게..." 




"마 일하다 보믄 감이 잡히는 기라 김 올라오느거 보이제? 내는 그거만 봐도 몇도인지 알아뿐다"


'최씨'는 일에 대해 하나씩 알려주고 있었다. 수증기에 서린 거울로 내 자신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부기가 빠지지 않았는지 얼굴이 올록볼록했다. 애써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긴장감을 풀었다.



담배를 피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옆 가게는 생 오리와 생닭을 파는 곳인지 닭의 털들과 오리의 털들이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그때 가게 안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밖으로 나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최씨'의 가게로 오리를 가지고 들어갔다.


"최형 이거 작업 좀 해줘 우리 탈모기가 고장났는가 안돌아가네"


"거기다 놓고 가. 야 담배 다 폈음 들어와라"


담배를 땅에 던지고 고무장화로 비볐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오리는 두개의 날개가 서로 엇갈려 묶여 있었다. 시끄럽게 "꽤객" 거리며 나를 피해 달아나려고 했다.


"닭하고 오리는 잡을 줄 알재? 내는 개 작업 해야 하니까 이거 작업 좀 해라"


"저여? 못해요... 한번도 안해봤어요" 




탈모기에 개를 던지고 스위치를 올린 최씨는 물을 뿌리며 그것도 하나 잡지 못 하냐는듯 나를 쳐다보았다. 시끄러운 기계소리에 최씨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렸다.


"야~ 내가 하라는 대로 해봐~ 우선 날개를 엮어나야지 오리가 못 도망가 알끗제? 그리고 오리 목 밑으로 가슴 보이제? 저기 작은 칼로 거기를 찔러"


"제가여?"


기계소리에 목소리가 높여졌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리는 개와 틀려 감정에 사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호흡을 하고 오리를 잡았다. 오리는 빠져나가려고 몸을 비틀었고 그 힘은 내손으로 전해졌다. 오리의 고개를 뒤로 젖힌 후 날개 속으로 집어넣었다. 다른 손으로 칼을 집어 눈을 감고는 깊숙히 쑤셨다. 오리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마지막 발악을 했고 난 더욱 손을 움켜잡았다. 오리는 그렇게 고깃덩어리로 변해갔다. 


온몸에 묘한 전율이 흘렀다. 오리가 내손에 잡혀 발악 하는 동안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와 나를 흥분 시킨 것 같았다. 오리를 땅에 놓고 손을 바라보았다. 일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극도의 흥분이 교차하면서 피로 범벅이 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라 오리는 자블제 아네? 근데 모이리 떠러 대노? 이노마야 겁먹을거 없다 그냥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었다 생각해라 알끗제?"


묘한 전율이 끝날 때 쯤 허탈감이 느껴졌다. 여자와 ㅅㅅ를 마친 후 느끼는 허탈감을 오리 한 마리를 잡고도 느낄 수 있었다. 긴장을 심하게 한 탓에,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모하노? 여기다 지버 넣어라 빨리 안돌리믄 털 안뽀핀데이"


고무장갑을 손에 끼고 오리를 찜통에 담갔다 물이 따뜻했다. 최씨가 보여 준대로 마구 흔들고 탈모기 속으로 던져 스위치를 켰다. 탈모기 속에서 오리는 빙빙 돌더니 자신의 허연 피부를 내게 보여주었다. 입가에 알수 없는 미소가 피어났다.



정신없는 기계소리와 L.P.G의 가스소리, 개짓는 소리와 닭오리 의 소리가 멈친 것은 저녁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최씨'가 살아있는 개들을 다잡은 후였고 난 정신없이 쓰레기를 치워가며 뒷마무리를 마친 후였다. 


"쏘주 한잔 하끼나?" 


"네 좋죠 안그래도 슬슬 허기졌는데 하하"


최씨 앞에서 너털웃음을 보일정도로 가까워졌다. 어제 먹다 남은 압력밥통 속의 개고기를 가스버너에 올린 후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마 니가 주인이가? 허허 이자슥이 누가 보믄 니가 주인인지 알긋다 허허"


최씨와 난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1톤 화물차 소리가 덜덜 거리며 경적을 울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가 못된 시간이었다. 가게 문을 열어 나가보니 화물차 위에는 개장이 실려 있었다. '최씨'는 차문을 열고 나와 나에게 개장 한쪽을 잡게 하고서는 나머지 한쪽을 들어서 내려놓았다. 들어가서 더 자라고 말한 최씨는 화물차를 몰고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다시 누우려던 차에 오토바이가 생각났지만 몸이 너무 무거웠다. 허리도 끊어 질것 같았고, 온몸의 근육이 꿈틀 거렸다. 그렇게 또다시 잠이 들었다.



탈모기 소리에 깨어나 시계를 봤다. 10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몸은 개운했다. 




"언제 오셨어요?"


"8시"


"깨우죠..."


"니 나이때는 아침자미 많은거 아는데 모하러 깨우노"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가며 일을 했다 늦게 일어 난점이 미안해서라도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해야 했다.


옆집사장이 오리 두 마리를 가지고 왔다. 탈모기를 아직 고치지 못했다 면서 옆구리에 5천원을 찔러주고는 부탁을 했다. 오리 한 마리는 날개를 엮어 바닥에 던졌고 다른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아 목을 뒤로 젖혔다. 손에 칼을 쥐자 어제 같은 흥분이 느껴졌고 익숙하게 칼을 꽂자 오리는 몸을 버둥거렸다.


작업을 마치고 옆집사장에게 주었다.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일을 마쳤다는 성취감으로 흥이 절로 났다. '최씨'는 가게 안에서 개 두 마리를 작업하고 있었다. 밀린 작업량이 많은 듯 땀을 흘려가며 말도 없이 묵묵히 일만 하고 있었다.


"아저씨 오늘은 어제보다 더 바쁘네요?"


"야야 말도마라 미치겠다 배달도 가야 하는데 왜그리 일이 밀리노?"


"배달요? 제가 다녀올까요?"


"아서라 니가 어딘지나 아나? 내가 갔다올테니 이것만 그슬러 놔라 알끗제?"


"가스 열고 구우면 되는거죠?"


"오케이~"


최씨는 나에게 가스 호스를 넘기고 시계를 올려다 보더니, 서둘러 배달을 갔다. 가스로 굽는 일이 은근히 재미있었다. 한 마리는 시커멓게 타버렸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최씨'가 한 것처럼 적당히 구워졌다. 두 시간이 지났지만 '최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멀리 배달을 간 것 같았다. 지루함이 밀려오자 개의 배에 칼을 그는 척을 했다. 힘을 좀 더 가했더니 배가 갈라지면서 피가 옷과 얼굴에 튀었다. 배에서는 창자와 간 허파 심장이 흘러 내렸다. 조심스럽게 손으로 만져 보았다. 미지근하며 물컹거렸다. 손에 묻은 피가 굳어가면서 손가락이 뻣뻣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모하노?"


"아! 깜짝이야... 제가 한번 해보려고요"


"마 그러면 똑바로 할것이지 모하러 주멀러 싼노"


"이게 심장이고 이게 간이죠?"


"오~맞어 잘아네~허허"


웃는 최씨의 입안으로 누런 이가 보였다. 갑자기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물질이 낀 누런 이를 보이며 나를 밟아 대던 '최씨'의 모습이 떠오르자 같이 웃던 난 웃음을 멈추고 거울을 보았다. 부기는 빠졌으나 검푸른 멍은 더욱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최씨'는 올가미를 들고 개장으로 다가가 개한마리를 꺼내고 있었다.


"아저씨 제가 해볼께요"


"니가? 개한테 물리면 마이 아픈데? 안 무섭나?"


"까짓거 해 보죠 전기를 입에 물리면 되잖아요?"


"위험한데...전기도 잘 다러야 하는데..."


"아이 줘보세요"


갑자기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올가미를 빼서들고는 만만하게 보이는 놈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이빨을 보이며 경계하는 놈을 재빨리 끄집어내 고무장화로 목을 밟았다. 쇠꼬챙이의 끝을 주둥이에 물리자 '쫙' 벌어졌다. 스트레스가 풀렸다 '최씨'에게 맞아 욱신거리는 부위도 사라졌다. 발밑에서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몇 분이 지나자 멈추었다. 오리를 처음 잡았을 때 보다 더욱 강력한 희열을 느꼈다. 



가로 1M, 세로 1M, 길이 50Cm 의 거대한 찜통에서 수증기가 올라온다. 찜통의 뚜껑을 열자 작업장 안은 회색빛 수증기로 덥혀 졌다. 손으로 수증기를 헤치고 바닥을 더듬어 앞발과 뒷발을 잡아 찜통으로 집어넣었다.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던지 70 도 가 넘는 뜨거운 물속에서 발악을 했다. 난 재빨리 뚜껑을 덮었다. 찜통속의 개는 울부짖었고 휘파람을 불며 뚜껑을 꽉 붙들었다. 




'니들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발악하지 말아라' 




뒤에서 지켜보던 '최씨'는 익숙하게 일을 해나가는 나를 보더니 놀랐듯이 말을 꺼냈다. 




"야야 니 그러다 황소도 때려 잡겠다?" 




"헤헤 제가 남보다 눈썰미가 있어서 일은 빨리 배우는 편이예요" 




"와 그래도 중국 놈들 보다 마이 난네 중국 놈들 내가 150씩 주고 일 시켰는데 못 시켜 믁겄더라" 




"그럼요 한국 사람이 얼마나 눈치도 빠르고 일도 잘 하는데요" 




찜통을 열어 물에 젖은 개를 탈수기로 던졌다. 탈수기가 돌아가면서 물에젖은 털이 벗겨져 나갔다. 






= 두 달 후= 






'최씨'는 배달을 가서 일곱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모든 일을 나에게만 맡겨둔 채 술 쳐 먹으로 나간 것이다. 이 일도 점점 흥미를 잃어간다. 몸에서는 개 비린내가 진동 하는 것 같고 몇 일째 갈아입지 못한 옷이 빨갛게 물들어져 있다. 다섯 마리를 더 잡아야 하는데 지루함이 앞서간다. 오늘은 말해야겠다. 그만둬야겠다고. 하지만 맞을까 두렵다. 일주일전에도 말을 꺼냈다가 맞아서 얼굴에 멍이 가시질 않고 있다. 




네 마리 남았다. '최씨'가 돌아오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는데 지겹기만 하다. 이곳을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면 두 달 전 일을 경찰에 불어버리겠다는 '최씨'말이 떠올라 그럴 수도 없다. 월급은 안 받아도 좋으니 이곳을 나가고 싶다. 




세 마리 남았다. 오토바이 키를 '최씨'가 숨겨 놓았다 빨리 일하라고 재촉을 한다. 




두 마리 남았다. 나에게 술 한 잔 먹으라고 권하지도 않은 채 혼자 쳐 마시고 있다. 




한 마리 남았다. 개장은 텅텅 비웠다. 이제 이것만 작업하면 지겹고 힘든 하루가 끝나는구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한마리가 더 있었다. 몇 일만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놈은 엄청 무겁다. 털도 머리하고 팔 밑 다리사이로 조금 났을 뿐이다. 




찜통 안에서 소리를 지른다. 물이 끓는 것으로 봐서 100도가 넘는데도 아직 숨이 붙어 있는가보다. 모처럼 휘파람이 절로 난다. 




탈모기 안으로 집어넣기 위해 고생을 했다. 탈모기도 잘 안돌아 간다. 




그릴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놈을 보니 배가 고프다. 



닭고기와 개고기, 돼지고기와 소고기, 어차피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제법 맛이 좋다.






"[웃긴대학] 먹이사슬":http://r.humoruniv.com/W/fear66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