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예뻐졌다

달달써니 2013.05.03 02: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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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년차.


아내는 다릴 모아 틀어 앉은 채 TV를 보고 있다.

드라마에 열중인 얼굴 속에 아직 남아있는 예전 모습이 얼핏 스친다.


나는 아내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슬쩍 어깨동무를 하니 아내가 내 팔을 더 감았다.

그러던 아내는 내 입가에 말없이 사과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먹으라는 둥 가만 멈춰 섰다.


사과를 받아 입을 우물거리며 아삭아삭 씹는 소리를 내자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사과 잘 샀지? 응?"


틀림없다. 틀림없이 내 아내다.


아내는 빈 사과접시를 보고는 "하나 더 깎을까?" 하고 물었다.

별로 생각이 들지 않아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 아내는 다시 TV로 시선을 가져가 드라마에 몰두했다.


가볍게 어깨에 기대오는 아내의 머리에서 진한 샴푸향이 어려 있다.

아내는 위, 아래 입술을 번갈아 삐죽삐죽 내밀며 눈을 가만히 찌푸렸다.


내가 잘 알고있는 아내의 버릇이다.


나는 너무도 내 아내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금 어깨에 기댄 이 여자는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아닌 것만 같다.




입사 2년차 시절, 경리를 맞고 있는 아내를 알게 되었다.


내 스스로 아내를 평가하기에 이런 식의 표현은 조금 얄궂을지 모른다.

아내는 평범했다. 정말 말 그대로 평범한 여자. 평범함, 그 자체.


언뜻 보기에 느껴지는 첫인상, 말투, 목소리, 걸음걸이, 손짓 발짓.


어깨춤을 간지를 듯 말 듯 한, 약간은 푸석한 느낌의 검은 머리칼,

화장기가 보이지만 그다지 노력의 성과가 없어 보이는 전체적인 모양새.

조금 살이 붙어 짧은 소매의 블라우스를 입으면 슬쩍 늘어져 보이는 팔뚝 살까지도.


난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그녀가 좋았다.


어릴적부터 연애에는 젬뱅이였던 나는 여성들에게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를 얕보거나 쉽게 생각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난 아내와 있을 때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그런 아내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나의 푸념에 맞장구를 치거나 나의 농담에 큰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가 너무 좋았다.


친구들이 말 했었다.


“니 새끼, 스스로가 여자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여자에게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자신 스스로에 대한 비굴함이 날 인기 없는 남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그들의 개똥철학을 귀담아 들어보려 노력했다만, 나는 나였다.

나는 자신이 없다. 없는 자신감을 돈 주고 대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자신감이란 것은 내겐 너무 어렵고 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내에게 만큼은 달랐다.


아내는 내가 함께하기에 너무 안락했다.


내가 편해질 수 있는 이성을 만난 것에 대한 환희감에 몇 날, 며칠, 몇 달을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그녀를 내 운명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믿음은 시간이 지나며 돌덩이처럼 굳어만 갈뿐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생기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결혼반지를 건네었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결혼을 승낙해 주었다.


그녀가 내 것이 되어준 이후로, 세상도 내 것이 되었다.

출근길 막힌 도로 위 정신없이 울리는 경적소리도 정겨웠다.

길 막고 어정어정 걷는 비둘기새끼들 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받은 것이다. 그 모든 행복들을.



결혼 전까지만…….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와 장을 보러 나갔을 때였다.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끄는 내 옆에서 아내가 팔짱을 건체 느릿느릿 따라 걷고 있었다.


별 쓸데없는 과자 몇 상자와 샴푸 한 묶음, 페어 머그 컵 등을 카트에 싣고

매장을 이리저리 도는데 아내가 생각이 번뜩 든 것처럼 내게 말했다.


"자기! 오랜만에 갈비찜 해 먹을까?"

"갈비찜?"


아내가 싱글벙글하며 손끝으로 매장 한 구석을 가리켰다.

손끝을 가리킨 곳에는 <특별 할인행사 돼지고기 전 상품 25% 폭탄세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내는 세일중인 갈비 한 상자를 카트에 실으며 신이 난다는 듯 기뻐했다.

그 모습이 흐뭇한지 옆에서 장을 보던 아주머니께서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신혼인가 봐요? 참~ 좋겠네."


아내와 난 인상 좋아 뵈는 아주머니에게 예의상 고개를 꾸벅하며 웃어보였다.

내가 카트를 밀며 앞으로 나아가자 아내가 금방 다시 내 팔춤에 팔을 엮으며 따라 걸었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말씀.


"색시가 참~ 곱네. 좋겠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난 그날 아내의 칭찬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뒤돌아 다시 아주머니에게 꾸벅 고개를 조아리며 슬쩍슬쩍 웃는 아내의 모습.


확실히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비해 객관적인 측면에서 예뻐 보였다.


피부가 밝아지고 어딘지 모르게 머릿결에 탄력이 보였다.

슬쩍 입술에 바른 립글로즈가 환한 매장의 조명에 부딪히며 반짝반짝 윤이 흘렀다.


아주머니의 칭찬이 기분 좋은지 아내가 나를 응시했다.


내 눈을 바라보는 아내의 똘망똘망한 두 눈이 작은 반달모양으로

매끄럽게 처지며 평소완 다르게 어려 보였다.


아내가 예뻐졌다.

알 수 없는 아내의 이질감이 조금씩 가슴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반년이 조금 안됐을 무렵.


점심시간, 팀의 선후배들과 회사 앞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내가 김치찌개를 주문하자 옆에 앉은 선배가 어깨로 나를 뚝하며 밀쳤다.


"새끼, 요즘 살맛나지?"


그 소리를 듣자 입사동기 녀석이 거들듯 입을 열었다.


"와, 넌 진짜 좋겠다. 재수씨가 완전히~"

"경리과에 그분이죠? 그분?"


입사 신입인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약간 흥분조로 야단을 떨었다.

나는 사람들의 질문세례에 되려,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어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뭐가?"


동기가 내 목덜미를 손날로 슬쩍 치더니 말했다.


"임마, 회사에서 제일 이쁜! 여자를 낚아갔으면 죄송한 표정을 지어야지. 왜?! 뭐가?! 이 지랄은! 이 새끼!!"

"저도 입사해서 사람들한테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저보다 어린 줄 알았는데 결혼했다고 해서."


선배가 한심한 듯 신입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마, 일이나 열심히 해, 마 자식아. 어딜! 쯧…."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아내의 칭찬을 뱉을 때마다 머리에 쇠망치를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집사람이 정말, 그렇게 예뻐?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어?"


나의 사뭇 진지해진 표정에 사람들이 일순 조용해 졌다가

무슨 헛소리냐며 사람 염장을 지른다는 투로 나를 나무랐다. 


점심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경리팀과 같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내를 멀찌감치에서 바라보았다.

어느새 머리칼이 저렇게 길어졌을까? 선들선들 부는 바람에 부딪히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춤까지 오는 머릿결이 들썩였다.


선배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왜? 그렇게 예뻐 죽겠냐?" 하고 물었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 정신이 몽롱해져 왔다.


멀찌감치에서도 우리 쪽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경리팀원들이 아내에게 무엇인가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내 아내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결혼을 한지 반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들으며 나는 이상하게 가슴속에 불안감이 점점 커짐을 느껴야만 했다.



'난 저 여인에게 지금까지처럼 스스럼없는 농담을 할 수 있을까?'



그 이후부터 아내가 나를 향한 어떤 행동들 이라면 어떤 것이든 거부감이 일었다.

출근길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껌을 손에 집어 내 입 앞으로 들이 밀었다.


"껌!"


나는 아내의 애교 섞인 행동들이 신경질 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척 웃음을 지으며 껌을 넙죽 받아 질겅질겅 씹었다.


아내는 부쩍 웃음이 늘어, 별것 아닌 일에도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했다.


처음 아내는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 여성들의 이미지처럼 조용한 편이었고 웃음이 헤프단 느낌이 없었다.


조수석에 아낼 태우고 드라이브 할 때면 내 옆에 앉은 여인이

내 평생의 짝이라는 것에 자부심마저 느꼈건만,


지금 내 옆에서 괜히 기분이 들떠 있는 이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어디 대학교의 새내기학생과 같았다.


그만큼 달라보였고 이질감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 몰래 미안하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 몰래 아내를 싫어했다.


나는 아내의 존재 자체를 참으며 살아야했다.

가끔이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며 인생에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로 잘 못 느꼈을지 모르나. 나는 아내에게 필요한 것 외의 대화를 걸지 않게 되었다.



이후 결혼 일 년이 조금 안됐을 무렵.


경리팀 팀장님과 잠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때였다.


경리팀장님은 30후반의 유부녀로 깐깐한 성격은 물론이고

원래부터 성질이 사나운편이라 후배사원들에게는 말 한번 붙여보기 힘든 선배였다.


경리팀장님이 흡연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곤 얼른 꼬았던

다리를 고처 앉은 채 스스로 최대한 자연스러운척 창 밖을 응시했다.


그런 내 행동이 가소로웠는지 귀여웠는지 경리부장님은 "하" 하고 헛웃음을

치시곤 내 앞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너 대단하더라?"

"네?"


경리팀장님이 한손에 든 커피를 홀짝하고 넘기더니 말을 이어갔다.


"대.단.하.다.고."

"뭐가요?"


팀장님의 입꼬리가 슬쩍 들리며 미소가 새겨지자, 기묘한 정적이 느껴졌다.


"경리팀의 얼음공주를 그래, 일 년만에 저렇게 녹여놨어? 어떻게?"

"저희 집사람 말씀이세요?"

"그래! 느그 마누라! 요즘 아주 흐물흐물해 그냥. 입사하고 내가 걔 한번 웃는 걸 못 봤는데, 요즘 보기 좋아. 아주."

"아니에요. 원래 집사람 잘 웃어요."


팀장님이 코웃음을 쳤다. 가소롭다는 듯 한껏 얼굴도 일그러트렸다.


"너한테만 그런 거겠지."

"아, 아하, 하하."

"아니면 그 전부터 그렇게 남자들이 못살게 구는데, 너한테만 그렇게 들러붙었을 라고?"


난 얼굴을 굳어졌다. 팀장을 돌아보았다.

팀장님은 내 표정 따위엔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어갔다.


"홍보팀에 김 대리, 개발부의 차 차장, 영업팀 박 팀장. 우리 회사 날고 긴다는 애들

다 얼음공주한테 나가 떨어졌잖아. 하긴 그렇게 이~! 쁘면 나같았어봐. 그냥 부자집에 시집가서..."


귓속에 싱~하는 백색소음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후배가 어떤 심경인지 헤아리지도 안고

실컷 떠드는 팀장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체 이를 악물고 인내심을 발휘해야했다.


"아무튼 너 진짜 대단해."


팀장은 기특하다는 듯, 칭찬이라는 듯 내 등을 툭툭 두들이며 흡연실을 빠져 나갔다.

얼마 안 있어 다가올 결혼 일주년을 생각하면서 눈앞이 흐려졌다.


내가 사랑한 여인이 나 때문에 행복에 겹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내가 사랑하던 여인은 지금 영영 먼 곳으로 떠난 것 같이 이별을 느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누구하나 붙잡고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제 아내 좀 돌려놔 주세요! 결혼 전의 평범했던 제 아내 좀 찾아주세요!"






결혼 일주년 기념일이었다. 별 특별한 준비를 하고 싶지가 안았다.


아내를 위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모를 깊은 마음속에선 아내와의 단절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무준비 없이 일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퇴근 후 집 앞, 예전 아내의 얼굴이 가슴에 밟혀 도저히 맨손으론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변변한 선물도 준비하지 않은 염치지만, 내가 사랑했던 아내다. 라며 마음을 다잡고 꽃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산 달랑 한 송이의 장미.

도저히 아내를 위해 뭘 사고 싶지가 안았다.


집 현관 앞에 들어서며 난 벨을 누르지 않고 직접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온통 불이 꺼진 거실에 붉은 촛불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한 불빛에 어린 아내의 미소.

아내는 나를 보고는 성큼성큼 다가들어서는 와락 안겨왔다.


"결혼기념일 잊어먹은 줄 알았잖아!"

"뭐야, 너 울어?"


내 품에 안겨있던 아내는 내 손아귀에서 장미를 빼앗아 들고는 빙그레 웃음 지었다. 

아내는 이제 도저히 누군지 모를 사람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내리는 동안 앳되 보이는 뺨이 불그스름 달아올라있었다.

한참을 기른 긴 생머리가 어깨 한쪽만 타고 앞으로 쏟아져 내렸다.


작은 촛불 빛에도 그 깊은 검정색의 머릿결은 감탄이 터질듯 부드럽고 탐스러워 보였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촉촉한 눈이 나를 바라봤다.


큰 눈망울이, 어른거리는 불빛을 담은 채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다른 말로는 형용이 안됐다. 정말,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더욱 소리 지르고 싶었다.


“너 정말! 도대체 누구야!” 하고….


주방테이블에 와인을 따른 잔과 촛불이 하나만 올라서있는 케잌을 올려둔 채 나란히 앉았다.

한참동안 내 옆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와인을 급하게 목으로 넘겼다.


"천천히 마셔, 술도 약하면서."


아내는 그러면서도 내 잔에 와인을 또 반쯤을 채우곤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내게 물었다.


"자기 뭐 소원 같은거 없어?"

"소원?"


소원? 있다. 너무나 간절한 소원.


"자기 머리 있잖아. 한 이정도로 다시 자르면 안 돼?"


내가 아내의 어깨쯤에 손을 얹으며 묻자 아내는 긴 머리칼을 만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자기 긴 머리는 싫어?"

"아니, 나 긴 머리 좋아하는데, 짧은 머리는 진짜 좋아해. 옛날처럼."


'예전의 네 모습이면 더 좋고….'


혹시나 머리가 짧아지면 좀 예전과 비슷해질까 싶었다.


아내는 배시시 웃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그리곤 평소와 다르게 내게 먼저 키스해왔다.


아내는 다음날 바로 머리를 단발로 커트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연예인의 머리를 했다는데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머리를 밝은 금색으로 염색했다는 것이다.


"야, 너 회사에서 뭐라고 하겠다."

"아니야. 괜찮아. 디자인실 서 대리도 노란머리 하고 다니던데 뭐."


‘그래서 서 대리가 개념 없다고 소문 난건 모르고?’


회사에서 뭐라고 하는 것보다도 길거리에서 아내가 팔짱을 끼워오는 순간이 더 두려웠다.

마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과 조금 나이 어린 삼촌처럼 사람들 눈에 비출 것만 같은 어색함. 두려움.


내 생각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듯, 거리의 몇몇 남자들 무리는

우리를 뒤돌아보곤 알 수 없는 옹알이 소리를 내며 사라져갔다.



반년 뒤 애지중지 하던 장미꽃은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 거실 바닥을 뒹굴었다.

아내는 봉오리가 떨어져 가지만 남은 장미를 끌어안은 채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도 가증스러워 보였다.

결혼생활, 일 년 반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시던 날.


아내는 분주하게 장을 보며 음식을 준비했다. 평소 집안청소에

시끄러운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이 끔찍했던 나는 청소를 도맡기로 했다.


연애 때부터 손맛이 좋았던 아내는 작정을 한 듯 주방에 판을 벌여놓았다.


머리를 말아 틀어 올린 겉모습이 아직 영락없는 대학새내기인데 반해

손놀림은 종갓집 며느리 마냥 앙칼졌다.


부모님이 도착하실 저녁때가 되어 아내는 추리닝을 벗어 던지곤

단정한 옷차림으로 바꿔 입으며 마중을 준비했다.


집 근처 역 앞에서 차를 주차한 채 십분 여가 흘렀을까. 부모님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드셨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잽싸게 빠른 걸음을 하며 어머니의 손에 들린 짐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나도 냉큼 다가서는데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며 물으셨다.


"야야 아들, 야는 누구여? 야 누구여 시방?"


아내가 당황한 듯 무안한 표정을 하며 나와 아버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내 대답에 목이 마른사람처럼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셨다.





어머니가 아내의 등짝을 기분 좋게 철썩하고 치시더니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더 이뻐젔네! 더 이뻐젔써어~!, 기냥~ 이? 몰라보겠네. 너~허! 무 이뻐저서, 잉?!"


아내가 어머니 칭찬소리에 어색하다는 듯 뺨을 붉히며 수줍어했다.


평소에도 자주 듣는 칭찬이데, 어째서인지 입꼬리가 귀에 가 닿을 듯 환한 미소를 보였다.

다 똑같은 칭찬인데, 괜히 수긍이 안 들었다.


편부가정에서 자란 아내였던지라. 어머니는 평소에도 조금 유난스럽게 아내에게 신경을 쓰셨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애정이 조금을 낯선 듯 어색함을 들어내는 부분이 있었지만, 아직 어머니의

직설적인 애정표현에 적응이 덜되 소화가 버거울 뿐, 나와 단 둘인 곳에서 어머니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주 눈물을 흘리곤 했다.


'딸처럼 굴고 싶다.'는 아내.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기는 아직 조금 시기가 일렀는지 모른다.

허나 어머니는 그런 아내의 모습이 보기가 좋은 듯, 낯간지러운 표현도 서슴치 않으셨다.


"머리도 노오~랗게 해가지고 인형 같네 그냥!"


"엄마, 아들은?" 하고 농담조를 던지자 모두가 깊은 미소를 지어줬다.


그 전에 비해 부모님 앞에서 한결 어깨에 힘을 뺀 듯 아내의 모습이 자연스러워보였다.


나 몰래 준비해둔 선물을 부모님께 건네며 "엄마!"하고

애교부리는 아내의 모습은 타고난 교태꾼이다.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나와 아내는 차를 역 앞에 주차한 채 십오 분여 거리를 걸어서 돌아왔다.


부모님께 다가가려 애쓰는 아내가 조금씩 애절하게 느껴지며 처음 만났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한사람이었던 두 여인의 얼굴이 시간 앞에 슬슬 무뎌지며 닮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다시 아내가 사랑스러워 질수록, 아내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결혼 2년차에 접어들고, 한번은 직장 동료들과 부부동반 회식모임에 나갔다.

출근 전부터 옷매무새를 단단히 하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때?" 하고 몇 번이고 되묻는 아내가 싫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 아내와 함께 나서는 것은 여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회식자리를 찾는 다는 것은 연애기간을 모두 포함하여 처음이었다.

그 반동 때문이었을까. 회식자리의 온 이목이 아내에게 집중되었다.


과연 남들이 말하듯 조금은 새침때기처럼 눈에 날이 서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자꾸만 나왔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며 술잔이 진도 좋게 넘어갔다.


"진짜 가까이서 보니까…. 장난 아니시네요." 하고 후배 놈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후배에게 사람들은 득세같이 달려들며 나무랐다.


놈의 모가지가 물어 뜯겨나갈 것만 같았다.


동기가 아내에게 실눈을 뜨며 조용히 물었다.


"솔직히, 왜 쟤랑 결혼했어요?"


한참동안 냉랭하던 아내의 표정이 난감함을 표하며 내 주변에 눈동자를 굴렸다.


"뭘, 왜 결혼해. 대충 얘기해줬잖아?"


내가 대신 대답하듯 나서자 동기가 고개를 휘저으며 다시 물었다.


"재수씨 솔직히요. 예?"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는 슬슬 입모양을 둥글게 말더니 깊은 눈웃음을 쳤다.


"처음에 이이가요…."


"네, 네 저 새끼가요. 네."


아내가 반 줌을 쥔 손으로 조신이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조금은 술기운이 오른 듯 선분홍색으로 뺨이 달아올라 은은히 번져있었다.


"저를 막 대하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요?"


"그 왜, 남의 팀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보통 안 그러잖아요. 남에 자리에 앉아서 거드름 피우고."


"쟤가 그랬다구요? 저 새끼가? 재수씨 한테? 진짜로?"


"네. 근대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너무 편하고 좋더라구요."


"예? 꼴랑 그게 이유에요?"


"그러게요. 꼴랑 그게 이유네요. 저한텐 저를 그렇게 편하게 봐주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살쩠다고 팔뚝살 막 잡고 농담하고, 이상하게 자존심 상하다가도 좋더라구요. 이이가."


동기가 반만 수긍한다는 듯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요즘은 잘 안 그래요………."


"예?!??"


아내가 서운한 듯 표정을 어둡게 흐리며 고개를 떨궜다.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오랜 죄가 밝혀진 듯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한 쪽으론 뜨끔한 가슴 한켠이 아리고 있었다.



아내의 표정이 흐리다. 아내가…… 서운해 한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술기운이 온몸으로 퍼진 듯 몸이 나른하고 무거웠다.

웃옷을 대충 벗어 팽개치고 침대에 쓰러지자 아내도 냉큼 옆에 쓰러지듯 누웠다.


고개를 들어 아내를 잠시바라보다 "취했어?" 하고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쌀쌀한 기운에 눈을 떴다.


아내와 난 이불도 덮지 않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내가 내 품 깊숙이 머리를 끼워 맞춘 채 안겨있었다.


단발머리가 좋다는 말에 이후로 아내는 머리를 기르지 않는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옆으로 살살 쓸어 넘기자 곤히 잠든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기억하던 얼굴보다 더 오랜 기간 봐온 얼굴.


이젠 흐릿해져가는 예전의 얼굴을 떠올리며 무덤덤한 마음이 이는 것을 느꼈다.

그 무덤덤함 마저 무덤덤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기억속의 아내가 '못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랑비에 젖어드는 것처럼 천천히 스미는 충격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한번 떠올라버린 생각은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잡히지 않았다.


언제 잠이 깨었는지 알 수없는 아내가 옆으로 흐른 내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왜 울어 자기?"


내가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아내가 쌩긋 웃으며 물어왔다.


"꿈꿨어?"

"아니."

"그럼 왜 그래?"

"나도 니가 편해서 좋았어."

"음?"

"그러니까, 서운해 하지 마."

"자기 어제 밤 일 다 기억하는구나?"


아내가 내게 입을 맞추곤 자세를 가다듬어 더 가슴 깊이 안겨왔다.

아내를 처음 가슴에 안았던 것처럼 마음이 평안했다.


이제 두 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머릿속이 검게 물들어가듯 아무런 생각도 들지가 않았다.


흐리멍덩하던 아내의 옛 얼굴이 다신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꿈을 꾸었다.


거실 소파위에 아내가 쪼그려 올라앉은 채 무릎 위로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내가 아내를 소리 내어 "여보" 하고 부르자 거실천정에서 얇은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점점 그 수를 불리더니 이내 '솨'하는 소리와 함께 마룻바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구? 어느 쪽을 부르는 거야?"


아내가 고개를 들며 울먹였다. 내리는 빗물에 섞인 아내의 눈물이 수십 가닥으로 갈라진 듯 하염없어 보였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내의 모습, 오랜만에 아내의 얼굴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일었지만 한편으론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옛 모습이 정말 그 시절의 모습인지,

내가 조각한 상상속의 모습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당신은 한 사람이잖아."

"당신은 한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았었잖아!!"


아내의 고함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말을 잃은 모습을 보며

아내는 놀란 듯 눈을 번쩍 뜨더니 다시 무릎사이로 고개를 떨궜다.


"자기는 날 버린 거야."


아내의 작은 속삭임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이 주며 주위에 냉랭한 한기가 느껴졌다.


차라리 더 화를 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아내의 차가운 눈빛에 불안함이 엄습하며

가슴이 막힌 듯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나도 당신이 그리웠어. 오랫동안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렸었어."


아내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거짓말, 그깟 머리카락 좀 짧게 자르면 내가 돌아올 줄 알았어?"

"그러는 너는, 너도 말없이 사라졌잖아!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내가 되려 화를 내는 기색을 보이자 아내가 소파에서 일어서며 날 응시했다.


"날 잡았어야지. 가지 말라고 빌었어야지! 변하지 말아달라고 매달렸어야지!!"


가슴속을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후벼 파는 듯 괴로웠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아내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것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위로 떨어지던 빗방울들이 멈추는 듯, 하더니 빗소리가 점점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꺼풀 위로 밝은 빛이 느껴지며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싸 올랐다.


눈을 떠보니 회사 경리 사무실 안이었다.


사무실 밖 복도에선 좀 전보다 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며 경리실 안으로 요란한 빗소리가 울렸다.


"영수증은요?"

"네?"


뒤를 돌아보니 지금의 아내가 퉁명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전산팀 회식 영수증 합산해서 올려달라고 했잖아요."


나는 슬금슬금 앞, 뒷주머니를 뒤적였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속주머니에 손을 가져가 깊숙이 집어넣으니 가시에 찔린 듯 따끔한 느낌이 들어 얼른 손을 끄집어냈다.


"왜, 평소처럼 친하게 안 굴어요?"


아내의 굳은 표정, 한 번도 꿈쩍하지 않는 눈가에 와락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절 버리는 줄 알았잖아요."

"뭐?"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서더니 내 손아귀에 있는 장미 한 송이를 냅다 빼앗아 들었다. 바로 뒤편 복도 내리던 빗물이 굵어지며 태풍이라도 몰아친 듯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이내 귀가 아파올 만큼 큰 천둥소리가 들리며 번쩍하는 번갯빛이 섬광을 뿜었다.


"내가 싫어요?"


아내가 애원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버릴 거 에요?"


"아니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럼 왜 그렇게 말투가 차가워 진 거 에요? 왜 이젠 내가 다가가기 전엔 키스도 한번 안 해주는 거 에요?"


아내가 품에 안고 있던 장미 꽃송이가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바래가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며 흩날렸다. 아내는 떨어진 장미 꽃송이의 가루들을 주위 올리며 나를 응시했다.


아내의 눈에 모여 있던 눈물들이 이내 툭하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변한거야. 내가 싫어졌어. 재미없고 평범한 내가 싫어진 거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너밖에!!………."


복도에서부터 강한 바람이 들이치며 경리실의 서류들이 소용돌이 처 오르며 공중에 흩뿌려졌다.

내가 뒤를 돌아 문을 닫으려고 하자 아내가 급하게 달려들며 팔을 잡아끌었다.


"어차피 알맹이는 같은 사람이잖아요! 어차피 같은 인격이라면 예쁜 내가 더 좋지 않아요?"


주변의 소음들이 마치 전원 나간 스피커에서 들리던 소리처럼 툭 하며 끊어졌다.

복도에서 느릿느릿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은 이내 내 뒤에서 멈춰선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이이는 내 평범함을 사랑했어. 나의 수수함을 존중해줬어. 내가 평범했기 때문에 비로소 마음을 열어 준거야."


빗물을 뒤집어쓴 아내가 또 다른 아내를 향해 이야기했다.

옛 모습을 한 아내의 소리를 들은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며 연신 눈물을 흘리다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자기가 선택해줘. 자기가 싫다고 하면 나 더 이상 귀찮게 하지도, 나타나지도 안을게."


물에 젖은 손이 내 허리춤을 스르륵 감싸왔다.

내 등에 얼굴을 묻은 옛 모습의 아내도 선택을 하라며 나를 부추겼다.


“자기가 말 하는 대로할게. 모두 당신 마음대로야.”

“자기가 말 하는 대로할게. 모두 당신 마음대로야.”


아내가 한목소리로 나에게 애원했다.


나는 다시 질끈 눈을 감았다.



***



"자기, 자기~ 자기야!"


아내가 날 흔들어 깨웠다. 슬쩍 벽시계를 바라보니 열두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뭐야~ 언제까지자~, 오늘 같이 옷보러가기러 했잖~아~ 일어나 빨리~이!"

"아후, 시간 많이됐네."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


아내가 내 엉덩이를 툭 치며 재촉했다. 내가 일어나며 아내에게

쪽하며 가볍게 입을 맞추자 아내가 배시시 웃으며 "한 번 더!" 하고 앙탈을 부렸다.


대충 씻은 후 옷을 챙겨입자 아내가 물었다.


"밥 먹고갈래?"

"아니야. 맛있는거 사먹자."


아내가 기분이 좋은듯 엉덩이를 툭툭툭툭툭 하며 두드렸다.

"어디 나도" 하며 아내의 엉덩이를 두드리려하자 아내가 새침한척 몸을 옆으로 쑥 빼며 손을 피했다.


"어딜! 백주대낮에!"

"내껀데?"


아내가 팔짱을 걸어오며 입을 삐죽 내밀더니 이내 쌩긋하고 웃었다.


쇼핑몰을 층별로 한바퀴씩 전부돌자 아내는 드디어 옷을

살 마음이 들었는지 남/녀 정장매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내는 내 몸에 이 옷, 저 옷을 대보며 고심을 하더니 마음에 드는 놈 한 벌을 건넸다.


"자기 이거 입어보고 와. 나 이거로 갈아입고 나올게. 같이 서서 대보자."


옷을 입어보니 핏이나 소매길이가 적당한게 잘 맞는 것 처럼 느껴젔다.

매장 커다란 거울앞에서서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정리해보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어디 서봐, 보자~ 우리 서방이랑~ 나랑."


아내가 나란히 선 채 거울을 보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위, 아래 입술을 번갈아 삐죽이며 고심을 하는 듯 가만히 서있었다.


"두 분 잘 어울리시네요."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점원이 웃음을 띠며 다가왔다.

아내는 점원에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참 거울을 바라보다가 나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자기 역시 아까 그걸로 입어봐야겠다."


아내가 다시 옷을 갈아입으려는 듯 몸을 돌렸다.


"여보, 잠깐만."

"음?"


내가 아내를 불러 세우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옆으로 다가섰다.

나는 아내를 다시 옆구리 춤에 바싹 붙여 안으며 아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어울려요?" 하고 점원에게 묻자


"네 정말 잘 어울리세요. 두 분." 하며 점원이 깊은 미소를 짓는다.


거울 속 나란히 선 아내와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말끔히 차려입은 한 쌍의 부부는 생전부터 정해져 있던 인연과 같았다.

나와 아내가 나란히 선 모습이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무슨 옷을 입은 들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거울 속엔 나와 아내가 있겠지.



"마누라! 이거로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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