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날자 돈가스
2012.05.18 01:14:15
치이익’
문이 열렸다. 무거운 발에 억지로 힘을 주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움직였다. 몇 걸음 걷지 않았지만 나의
뇌는 모든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휴식을 원하도록 계속적인 명령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많은 회사원들 사이
에서 축 처진 채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에서의 좀비의 모습을 연상시키듯 손과 고개를 아래
로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따금 느껴지지만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은지 오래다.
“우.... 우웩...”
계속적인 헛구역질은 어제 마신... 아니 정확히 오늘 낮까지 마신 막걸리가 내 몸속에서 빠져나오길 원하였
지만 지나가는 사람들과, 혹시나 이물질을 밖으로 배출했을 때의 창피함 때문에 목에 힘을 주어 억지로 오
바이트를 참고 있었다. 오늘따라 스스로에 대하여 원망스러운 날이었다.
갓 입학한 대학생 새내기란 모든 선배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물론 남자가 대체로 많은 우리 학과에
서 남자 따윈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OT나 개강파티, 각종 행사에서 장기자랑이나 큰 소리로 자기소개 등
1학년들은 선배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나 역시 그러한 새내기들 중 하나였다. 특별한 장기자랑이나 말재주는 없지만 동기들 중에서는 술을 꽤나
마실 줄 아는 편이여서 선배들은 너나할 것 없이 술자리에 나를 불렀다.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배 중
하나가 휴가를 나왔다는 이유로 나는 술자리에 끼게 되었는데 10시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날이 밝도록 계속
되었고 오전이 되었을 때는 이미 만취상태가 되었지만 오후에 수업이 있어 술이 덜 깬 상태로 강의를 들어
야했다.
하루 종일 한 끼의 식사도 하지 못했을 뿐더러 술까지 숙취해소가 되질 않아서 오는 내내 주변사람에게 불
만의 눈초리를 받아야했다. 다행히 열차 안에서는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고 무사히 하차하여 집에
가는 골목을 걷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있던 나는 나와 반대로 오던 사람의 어깨와 ‘툭’하고 부딪혔다.
평소 같았으면 사과를 하고 넘어갔을 일이지만 상대방의 몸짓이 나보다 작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고 또
한 신체적 피로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터라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 씨발...”
이러한 나의 욕설에도 상대방은 자리에 멈춰서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주변에 시간이 멈춘 듯 아무런 소리
도 들리지 않았다. 내심 상대방의 사과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한 번 더 외쳤다.
“씨발놈아 사람하고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냐”
상대방은 움찔하더니 갑자기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죽인다....”
굉장히 듣기 싫은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몰랐지만 분명 나보다 나이는 한참이
많은 것이 분명하였고 그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는 듣기 싫다 못해 공포까지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진짜 뒤지고 싶나..... 별 것도 아닌 새끼가 분위기... 헙...”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대방은 움직였다. 갑작스레 몸을 낮추고 돌진하는 그 남자를 무방비 상태로 있
었던 나는 막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쿵’
엉덩이와 허리에 느껴지는 충격은 조금은 멍하게 있던 나의 신체에 자극을 주었다.
“죽인다.”
남자는 갑자기 안주머니에서 신문지에 말려있는 칼을 꺼내더니 나를 향해 휘둘렀다. 넘어져있던 나는 그
남자가 꺼내는 큰 식칼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기운에 계속 처져있던 나의 몸과 정신은 완전히 깨
어났다. 그리곤 동시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죽는다.’
많은 생각 중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 사람은 골목길을 지나가던 동네주민이 아니다. 진짜 나를 죽이려
고 칼을 휘두를 것이며 찔리거나 베이면 죽는다. 도망쳐야 한다.
빠르게 몸을 일으키면서 칼을 휘두르는 남자의 행동을 저지하였다. 다행히도 남자의 행동은 재빠르진 않았
고 몸을 완전히 일으키는 데는 성공하였다. 이 상황이 영화에서의 상황이었다면 나는 분명 이 남자를 단숨
에 제압하고 경찰에 신고하여야 했지만 이상하게 내 몸은 그 남자를 피해 도망가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쉬지 않고 달렸다. 계속적으로 칼을 들고 쫒아왔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날은 어둡고 골
목길이어서 쉬지 않고 뒤는 나를 남자는 나를 찾지 못한 듯하였다.
“헉헉....”
힘든 몸으로 계속해서 쉬지 않고 뛰어 집 앞까지 와서 숨을 돌렸다. 남자를 따돌린 것은 좋았지만 끝내는
해소되지 못한 술기운에 오바이트를 하고 말았다.
“우웩....”
몸에 있는 이물질을 어느 정도 배출하고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었을 땐 온몸에 힘이 풀렸고 거의 네발로 잡
에 들어왔다. 집에 도착했을 땐 바닥에 대자로 누웠고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잠들
었다. 중간에 부모님의 잔소리가 들렸지만 이상하게 내 몸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으...”
다음날 눈을 떴을 땐 목이 마르고 속도 쓰리고 심지어 어제 넘어졌을 때 받은 충격이 근육을 놀라게 했던
것인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집에 혹시 누군가 있을까 가족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없단 것을 확인
했을 땐 일단 해장을 해야겠단 생각에 아픈 허리를 잡고 일어나 찬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에 마시는 찬 물이란 메마른 땅에 비를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거의 여섯 잔
에 물을 마신 다음에서야 물 마시는 것을 그만두었다.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땐 해장하기 위하여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집을 나서려다 한 가지 사실을 깨
달았다. 지갑이 사라진 것이다.
모든 집을 다 찾고 옷을 다 뒤져보았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청바지의 뒷주머니에 있던 지갑은 분명 어
제 열차에서 내릴 때 버스카드를 찍었으니 그대로 있어야한다. 나의 지갑이 없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떨어
뜨린 것이고 그럴만한 상황은 남자의 공격으로 넘어졌을 때밖에 없었다..
서둘러 집을 나와 어제 내가 뛰었던 골목길을 모조리 찾아보았지만 결국은 찾을 수 없었다. 지갑을 잃어버
렸단 사실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 안에는 나의 주소와 전화번호 등의 몇 가지의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
만약 내 지갑이 어제 그 남자가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생각과 동시에 어제 칼을 들고 쫓아오던 남자
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선 안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국 지갑은 찾지 못했지만 일주일 넘게 그 남자를 볼 수 없었다. 분명 다른 사람이 지
갑을 주운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굉장히 불안해 학교가 끝나는 즉시 집으로 돌아와 몇 시간
이든 밖을 주시하였다. 항상 술자리라면 빠지지 않던 내가 일주일을 넘게 계속 불참하고 곧장 집으로 들어
가자 선배들이나 가족들은 의아해하였지만 결국은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면서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그 남자는 나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가며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알람을 끄는 버튼을 누름
과 동시에 핸드폰의 시간을 보았을 때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키고 몸을 튕기듯 완전히 일어나 다시 한 번 시
계를 확인하고 외쳤다.
“지각이다!!!”
학교까지 다니는 열차는 한 시간에 한 대씩 있기 때문에 하나를 놓친다면 무조건 지각일 수밖에 없다. 이
러한 지각생활에 익숙한 나는 몇 초의 낭비도 없이 아무 옷이나 껴입고 간단한 세안에 모자를 눌러쓰고 현
관문을 열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지 7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밖은 어두웠다.
“스슥...”
내가 현관문을 급하게 나오고 문을 닫는 사이 분명히 무엇인가 급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순
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을 응시하였다. 그렇게 몇 초를 응시하였지만 내가
잠결에 잘못들은 것인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번쩍!’
아래층의 센서등이 켜짐과 동시에 복도를 급하게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쿵쾅쿵쾅!!”
순간적으로 멈칫했던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새끼다...’
머릿속엔 나를 쫓아오던 그 새끼의 모습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목소리와 도망가는 모든 모습이 머릿속에 그
려졌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 짧은 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려가다 갑자기 돌아서 칼로 나를 찌르
면 어쩌지, 그 새끼가 아니면 어떡하지, 그 새끼를 잡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등의 생각을 하였지만 지금은
그저 도망가는 그 새끼를 잡는 것이 중요했다.
1층까지 내려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혼자서 귀신에 홀린 것처럼 주위는 고
요했다. 그러한 고요함 속에서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으며 온몸에선 식은땀이 나고,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술을 먹고 도망쳤을 때처럼 다리엔 힘이 풀렸다.
“나와 씨발놈아!!!”
이른 아침에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아파트가 많아서 그런지 나의 소리는 몇 번이고 울렸다. 하
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다. 결국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새
끼가 우리 집 현관문에서 우리를 감시했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몸의 떨림을 막을 수 없었다. 치밀하고 용의
주도한 놈이었다. 결코 단시간에 나를 괴롭힐 놈이 아니다. 또한 나의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게 집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방을 나오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안색이 좋지 못한 나를 본 어머
니는 어디 아프냐며 물으셨고 병원에 가보라는 말에 며칠간 집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도대체 어떠한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경찰을 불러도 아무런 증거가 있지 않은 상황이고 가
족에게 얘기하자니 크게 걱정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항상 남들이 걱정하는 일도 별 일 아닌 것처럼 넘기곤 했다. 가령 초등학교 때 누나를 괴롭히던
형들을 홧김에 때려눕혔을 때도 나는 그들의 보복을 일주일 밤낮으로 걱정하며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부모
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몇 년 전 연쇄살인범이 우리 동네에서 살인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에도 다른 가족들은 벌벌 떨었지만 우리 가족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하였다. 내가 이런저런 일에 두려
움을 느끼며 부모님께 이야기 할 때마다 부모님은 웃으며 말씀하였다..
“괜찮아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날부터 나는 며칠간 악몽을 꾸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칼을 들고 웃으며 쫓아오는 그의 모습을
보았고 사방에서 그의 쇳소리 섞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은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몇 번이
고 약을 사왔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꺄아아아악!!!!”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든 나를 깨운 것은 누나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였다. 그 소
리와 함께 나는 정신이 들며 현관문으로 달려 나갔다. 누나는 문 앞에 주저앉아 소리 지르며 울고 있었다.
누나를 부축하기 위해 문 앞으로 갔고 바닥이 축축하다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무슨 일이야!”
“흑흑... 밖에...밖에...”
누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계속 ‘밖’ 라는 말을 반복했다. 혹시나 그 새끼가 있을까봐 문을 잠그
고 현관문의 구멍을 통해 밖을 보았다.
“억....”
나는 호흡이 멎을 것 같은 비명소리와 함께 누나와 똑같이 주저앉아 버렸다.
문 앞 센서등에는 고양이가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흘리며 우리 집 현관문을 바라보고 죽어있었다. 어떠한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주말치곤 굉장히 시끄러웠다. 집 앞에 와있는 소방관들은 이런 일로는 자신들을 부르지 말라며 우리를 나무
랐고 동네사람들은 큰일이라도 난 듯 삼삼오오 모여서 위아래 층으로 우리를 구경했다. 평소에 왕래가 전
혀 없던 옆집에서는 마치 우리 때문에 집값이라도 떨어졌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더 이상 나는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충격에 빠진 누나를 진정시키고 가족들을 불러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
을 이야기했다. 칼을 든 그놈에게서 도망쳤던 이야기와 아침에 복도에서 숨어있던 그놈의 모습을.. 그에
대한 나의 설명이 계속 될 때마다 누나는 공포영화를 본 듯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아버지는 우선 경찰에 신고를 하고 당분간은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행동을 주의하라고
하시곤 밖을 나가셨다. 평소에 걱정을 잘 안 하시던 어머니도 깊은 한숨과 함께 자리를 일어나시더니 자
리를 일어나셨다.
오전에 아버지를 제외한 온가족이 집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고 나 또한 특별
히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기에 서로의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주말에 집에서 컴퓨터를 하
거나 티비를 본다는 등의 행동은 무척이나 무료하고 따분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거실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초
인종 소리에 몸을 흠칫하며 인터폰의 화면을 바라보았고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아버지란 것을 알았을 때 의
아해 하며 문을 열었다.
“CCTV 설치하려고 갔었는데 거기다 열쇠를 두고 온 모양이다. 아저씨 여기 현관문 앞에 설치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버지 뒤에 있던 모자를 눌러 쓴 사내는 대답과 함께 가지고 있던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현관문 앞에
어디다 설치를 해야 할지를 정확히 물어본 다음 CCTV 설치를 시작했다. 박스에서 이것저것을 통하여 설치
를 마쳤을 땐 리모콘을 주며 CCTV에 대하여 설명을 시작했다.
“TV를 외부입력으로 설정해 놓으신 다음 이 버튼을 누르시면 실시간으로 확인가능 하시고 녹화한 자료도
돌려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내의 설명이 끝나고 아버지는 그 사내의 설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려는 듯 리모콘을 만지작거리셨
다.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와 누나는 마치 모든 사건이 해결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버지의 CCTV 조
작을 지켜보았다.
CCTV의 설치로 우리가족은 다시 평범한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에겐 고양이 사건이후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
지 않았으며 수시로 티비를 확인하며 긴장을 했지만 복도를 지나다니는 이웃사람들이나 이따금 아랫집 사
람이 담배를 피기위해 CCTV에 잡히는 경우를 빼고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오히려 현관문 앞에 있던
CCTV가 무색할 정도로 집 앞은 조용했다.
거의 2주 만에 학교에 나갔을 때는 나는 이미 선배들의 관심에서 제외가 되었으며 몇몇의 아는 동기만이
슨 일이 있었냐며 나의 안부를 물었다. 형식적인 안부 묻기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출석부를 부르
던 교수가 이대로 영영 못 볼 줄 알았다며 농담을 치며 웃음을 유발했다.
“딴딴딴~ 문자왔숑”
따분한 교수의 강의에 슬슬 눈에 힘이 풀리고 졸음이 쏟아질 무렵 내가 조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듯 나의 핸드폰은 큰소리로 강의실을 울렸다. 잠결에 얼른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었지만 그 소리는 결코 작지 않은
소리였기에 이미 많은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저 학생 아까 그 학생 아닌가?”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도대체 이 시간에 누가 문자를 보내는지 확인했다.
-오늘 엄마 동창모임 갔다가 늦는다.
평소에 문자를 잘 안 보내던 엄마가 하필 이럴 때 문자를 보낸 것이다. 핸드폰의 화면을 끄고 수업에 다시
임하는 교수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하여 고개를 숙였다.
안타깝게도 한 번 잠이 완전히 깨자 결국 끝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루한 전공수업이 세 시간 끝나고
동기들과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집으로 향하였다. 술 한 잔 하자는 동기에게 다음에는 꼭 가겠다는 말을 남
긴 채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으니 상당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집에 와서 쇼파에 잠깐 쉬려고
누웠을 땐 이미 잠이 들었다.
“띵동~ 띵동~”
나를 깨운 것은 초인종이었다. 그 남자를 만난 이후로는 초인종 소리만 들리면 자다가도 몸이 벌떡 일어나
졌다. 일어남과 동시에 핸드폰의 시간을 보았다.
‘8시 45분’
집에 6시에 돌아온 것을 생각하였을 땐 상당히 많은 시간을 잔 것이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CCTV설치할 때 열쇠를 잃어버려 저녁마다 초인종을 누르셨다.
‘철컥’
“자고 있었어?. 이거 얼른 열쇠를 하나 복사하든가 해야지 불편해서 이거 원...”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아버지를 향해 쓴웃음을 짓고 들어와 저녁을 준비하였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기에
아버지와 먹는 밥상은 계란후라이와 김치 두 가지 반찬밖에 없었다. 아버지와의 식사에는 반찬 수만큼이
나 대화가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의미 없는 마우스클릭을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이나 한 잔 하고 올 걸...’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의 따분한 시간이 계속되자 뒤늦은 후회를 해보았지만 이미 시간은 12시를 넘기고 있
었다. 방 안에서는 아버지가 많이 피곤하신 듯 쉬지 않고 코를 고셨다. 그 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집이야?
핸드폰 화면에는 누나의 메시지가 보였다.
-ㅇㅇ 어디야
벌써 12시가 넘은 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누나가 걱정되어 바로 답장을 보냈다.
-가고 있어 엄마는 왔어?
밤늦게 돌아다니는 자신을 걱정하기보다는 늦게 들어오면 부모님께 혼날 것을 걱정하는 듯 했다.
-아직... 빨리 와
마지막으로 답장을 보낸 후에 어머니가 많이 늦는 다는 것을 느꼈다. 술을 좋아하시지 않아 동창모임이나
사교적 모임을 가도 항상 10시면 들어오시는 어머니가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연락 한 통 없이 들어오시지
않는 것이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무엇인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곤 쇼파에 앉아 티
비를 외부입력으로 바꾼 후 리모콘을 이용하여 녹화된 CCTV를 돌렸다.
“어?”
티비에서는 검은색 화면만 나올 뿐 아무런 화면도 나오지 않았다. 밖에 나가 CCTV를 확인해보았을 때
CCTV에 붙어있는 껌을 보고 무엇인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도대체 언제부터 껌이 붙어있던 것일까... 화면을 쉬지 않고 돌렸다. 검은색 화면이 계속되다 어느 순간 다
시 녹화된 화면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의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CCTV 화면에 껌이 붙는 화면을 재
생하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껌을 붙인 다음 바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잠겨있던 문을 열쇠로 열
고 들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전 11시면 집에는 어머니밖에 없을 시간이다. 누군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
어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열쇠란 단어가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면서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CCTV 설치하려고 갔었는데 거기다 열쇠를 두고 온 모양이다.’
‘이거 얼른 열쇠를 하나 복사하든가 해야지 불편해서 이거 원....’
이러한 아버지의 말이 상기되면서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아버지는 열쇠를 도
둑맞은 것이다. 애초부터 CCTV가게에 전화를 해서 열쇠를 찾는 일 따위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과 함께 몸이 떨리며 한 가지 사실이 더 떠올랐다. 오전 11시면 집에 어머니 혼자 계실 시
간이다. 급하게 핸드폰을 들어 문자가 온 시간을 확인하였다.
‘오후 1시 30분’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어머니가 보낸 문자가 아니다. 애초에 동창회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공포가 온몸의 세포를 자극했다. 연이은 공포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를 깨우기 위
하여 방문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다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코골이가 들리지 않는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서 주무시기 때문에 코골이가 멈춘 것일까, 중간에 잠이 깨신 것일까 등의 생각은 이 상황에 아무런 도
움이 되질 않는다. 조용히 방문에 귀를 대어보았지만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내방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찾는다. 사뿐사뿐 움직이고 조용히 물건을 찾는 나의 모습은 누군가를 놀라게 하
기 위하여 발뒤꿈치를 들고 움직이는 초등학생의 모습과 같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아버지의 방
문 앞에서 나는 조용히 방문을 돌렸다. 그리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주위는 어두웠다. 침대위에 아버지
의 모습이 보였지만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혹시나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하고 불을 켰을 땐 눈앞의 광경
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옥이 있다면 과연 이러한 풍경일까? 붉게 물든 침대는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을 정
도로 진했으며 목에 칼이 꽂힌 채 누워있는 아버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신을 위하여 제사지낼 때의
희생양과 같은 모습이었다. 눈에 힘이 들어갔다. 눈물이 고였다. 슬픔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들고 있던 야
구방망이를 꽉 쥐었다. 이 방 안에 숨을 곳이라곤 장롱밖에 없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장롱 문 앞에
섰을 때 발에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큭...”
“사삭....”
애초부터 장롱에 숨어 있지 않았다. 침대 밑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나온 그 새끼의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올
라온 마귀를 연상케 했다..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당했는지 다리에는 엄청난 통증이 있어 침대에 손을 얹은
채 겨우 서있는 것을 유지했지만 고통 때문에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나도 살해당할 것
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흘렀을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나가 온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그 새끼는 흠칫하더니 방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오지마!!!!”
아픈 다리 때문에 달려 나가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도망가!!!!”
“뭐...뭐야 꺄아아악!!!”
벽에 기대어 방문을 나가자 주저앉은 누나와 칼을 휘두르는 그 새끼의 모습이 보였다.
“안 돼!!!!!”
왼쪽다리에 온 힘을 다하여 그에게 달렸고 누나를 난도질 하던 그의 머리를 향하여 방망이를 휘둘렀다.
“퍼억!”
잘 익은 수박을 힘차게 내려치는 것 같았다. 머리를 맞은 그는 그대로 쓰러졌고 나 또한 다리의 통증 때문
에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넘어졌다. 목에서 많은 피를 흘리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꿀럭... 컥.,..”
온힘을 다하여 누나에게로 갔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몸을 비틀어 방망이를 들고 그 새끼의 머리를 사
정 없이 내리쳤다.
“퍽! 퍽!”
“으아아!!! 죽어!! 죽어!! 씨발놈아!!!!”
머리가 완전히 으깨져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시체를 계속해서 내려치던 나의 소음 때문이었을까 짜증을
내며 들어오던 경비는 소리를 지르며 경찰을 불렀고 나는 경찰이 오고 나서야 행동을 멈추었다. 내가 행동
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경계 자세를 취했지만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내가 겪었던 사건은 신문에 첫 면에 보도되고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나는 재판을 받았지만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얼마 후에는 한정치산자라는 법정선고를 받았다.
부모님의 재산을 관리 해주어야할 외삼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항상 멍하게 걷기만 했다.
오늘도 목적지 없이 멍하게 걷기만 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미친놈으로 취급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나를
불쌍한 노숙자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을 신경 쓰진 않았다. 그렇게 멍하게 걷기를 계속했다. 해는 저물고
날은 어두워졌다. 그래도 쉬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걷던 도중 술에 취한 것 같은 한 남성과 부딪혔다.
나를 향해 욕설을 뱉는다. 갑자기 웃음이 난다. 참 좋은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