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소년

날자 돈가스 2012.05.18 01:15:29
처음엔 모든 것이 원만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소년의 어머니도 가출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부터인가 뉴스에서 IMF한파가 몰아친다는 말이 종종 들려왔다. 검정색 가방을 든 외국인들의 사진이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소년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뉴스는 그냥 뉴스일 뿐이었으니까. 소년에게 있어 그건 그냥 어른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소년은 아버지가 난생 처음으로 술에 취해서 귀가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 아빠..."

"오... 우리 아들 아직 안자고 있었구나? 아빠가 용돈 좀 줄까?"

"당신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용돈이라면 으레 10만원짜리 수표를 한장씩 꺼내 주시던 아버지가 지갑을 열었을 때, 텅빈 지갑에는 고작 천원짜리 몇장만이 애처롭게 몸을 숨기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것을 모두 꺼내서 소년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는 몸을 어머니에게 기대어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갑에 돈이 없을수도 있지. 소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아버지의 지갑에 돈이 없었던 것을 본적은 없지만 술에 취한 모습을 본적도 없었으니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일 뿐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도 아버지는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취한 채로 회사 부하직원의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에 이사가야 하니까 짐 싸놔."

"이사요?"

소년은 한참이 더 지나서야 아버지의 회사가 망했다는 것을 알았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빛을 지게 되었다는 사실도, 이젠 앞으로 처럼 부유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끔찍한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달 관리비만 서민 월급에 육박하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이젠 난방비가 아까워서 한겨울에도 추위에 떨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언젠가 부턴 어머니를 때렸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아버지의 머리를 망치로 후려 갈겼다.

"뱁죠... 나 배거프다..."

소년의 아버지는 저능아가 되었다. 오로지 본능에만 충실한 동물이 되어버렸다. 배고프면 소리를 내었고, 아무도 오지 않으면 쓰레기통을 뒤졌다. 졸리면 자고, 배설의 욕구는 아무데서나 해결했다. 불과 6개월 전만해도 직원 200명을 거느린 회사의 사장이었던 남자가 말이다. 동네 꼬마가 먹고 있는 500원짜리 과자에 침을 질질 흘리고, 예쁜 여자를 보면 달려가 덥썩덥썩 안아 버리는 그 남자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소년은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슬펐다. 육체적으로 멀쩡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던 것은 처음 그가 정신이 들었을 때 뿐이었다. 지금 같아서는 차라리 거동이 불편한 쪽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이 새끼야. 니가 날 때리고도 멀쩡할 줄 알았니?"

늘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하던 소년의 어머니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에 뒤섞인 술냄새를 풍기며 소년의 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부어 댔다. 그럴때면 아버지는 유치원생이 어머니에게 혼나듯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아내의 설교가 조금 길어질라 치면 그는 슬금슬금 소년의 뒤로 가서 숨었다. 이제 겨우 13살이었던 소년은 이 모든것이 괴로웠다.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을 것 같던 상황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꼭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틈만 나면 성기를 쥐고 손으로 주물럭 거리는 아버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신은 소년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최구명씨가 돌아가셨습니다. 해서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는데요. 그분께서 가지고 계시던 논 2마지기를 최경원씨가 상속승인을 해주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2마지기요? 그까짓거 얼마나 한다고요?"

"원래 1평당 4,5만원 하던 땅이었는데요. 이번에 수도권 이전이 확정되면서 값이 100배로 뛰었어요. 못해도 20억 정도는 받으실 수 있을겁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그자리에서 실신을 해버렸다. 정신을 차린 후엔 소년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유산으로 10억 가까이 되던 부채를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래도 10억이나 남았다. 그녀는 그 돈으로 조그만 카페를 차린 후 남는 돈으로 집을 샀다. 지하실이 딸린 아담한 주택으로 말이다. 그녀는 유독 지하실이 있는 집을 고집했다. 소년은 그 이유를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겐 남편을 가두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는 마치 동물처럼 남편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벌거벗은 채로 개목걸이를 목에 찬 남자는 그야말로 한마리의 동물이었다. 그것을 본 소년이 미쳤다. 처음엔 아주 미묘한 변화여서 아무도 소년이 미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남편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상관없어. 저능아거든. 게다가 지하실에서 살아."

소년의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남자들을 집에 데려오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바꼈는데 모두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돌아갈 무렵이면 여인은 항상 십만원짜리 수표를 그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소년의 머릿속에선 벌써 수십번이나 그들이 찢겨져 죽어나갔다. 아이의 무서운 상상은 점점 실제적인 계획으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정확히 여인이 4번째로 바뀐 남자를 3번째로 집에 데려왔을 때 소년의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 중에서 네가 가장 잘하는 것 같아."

"그래요? 후후, 이렇게 해달라는 말씀이시죠?"

침실에서 노골적인 정사가 한창일 무렵 방문이 아주 은밀하게 열렸다. 모든 기척을 죽인 존재가 살그머니 그들의 정사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채로 쾌락의 정점을 향해 몸부림 치던 그들은 '헤에'라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놀라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인의 남편이 순진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예전에 여인이 썼던 쇠망치가 들려 있었다. 주저없이 '퍼억'.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여인의 비명소리는 다시 한번 들려온 '퍼억'소리에 묻혔다. 남자가 해맑게 웃으며 방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소년이 서 있었다.

"잘하셨어요. 상으로 초코볼을 드릴게요."

"초코볼. 히히히."

"이거 가지고 지하실에 들어가 계세요. 아셨죠?"

소년이 경찰에 신고한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순찰차가 도착했다. 소년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이런 상황이 되어 있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경찰은 어린 소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한 한가지를 알고 있었다. 바로 소년이 미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피가 잔뜩 튄 옷을 입고 있던 소년은 그자리에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겁에질린 소년은 진실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모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소년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간혹 소년의 또 다른 인격인 아버지가 눈을 뜰때마다 소년은 저능아가 된 성인남자가 되었다. 아무데서나 성기를 주물렀고, 음식은 손으로 먹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원만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소년의 어머니도 가출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소년도 미치지 않았었다.

[에필로그]

"원하시는 모든 조건을 갖춘 집이죠. 거기다 급매물이라 가격도 절반밖에 안됩니다. 계약하시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일 겁니다. 망설이면 손해에요. 이 집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요. 전 주인이 한달정도 살았는데 그래도 가구나 벽지 모두 새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모두 두고 가서 그냥 몸만 오셔도 될 정도죠."

신혼부부는 저렴한 가격에 나온 멋진 주택을 보고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생각했던 것과 가장 비슷한 집이었고, 가격은 부동산 중개인의 말처럼 시가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즉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온갖 달콤한 말로 신혼부부를 유혹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차마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집이란 말은 하지 못했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처럼 이들은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

"꿈만 같아요."

"나도 그래.'

풋풋한 신혼부부는 하얗게 웃었다. 굉장히 싼값에 원하던 집을 얻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진한 입맞춤을 나누던 그들은 침실로 들어갔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뜨거운 숨을 토해내던 그들은 쾌락의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얼마나 서로에게 열중했는지 침실문이 열리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천진한 표정의 사내가 방안으로 스윽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망치에 피빛 광채가 충만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