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3

Yeul 2011.07.10 22:20:28
아내가 재 놓은 안심 고기를 이용해 돈까스를 만들었다. 

슈퍼에서 사 온 빵가루를 묻히고, 식용유로 잘 둘러놓은 프라이팬에 고기를 튀긴다. 

튀겨지는 동안 다지기를 이용해 참깨를 갈았다. 

고소한 냄새가 풍겨온다. 

소스는 아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을 꺼냈고, 밑반찬은 간소하게 차렸다. 

방울토마토와, 양배추, 오이 등이 담긴 셀러드를 가운데에 놓고, 

김치와 오이지를 작은 접시에 담아 양 옆에 두었다. 

자, 이것으로 셋팅은 끝났다. 

이제 튀겨진 고기를 접시에 담아 오는 일만 남았다.



......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딸칵



“여보세요?”



-아 자기 집에 들어왔어?



“응, 지금 밥 먹는 중이야. 고기 잘 재 놨네. 맛있어.”



-신경 좀 썼지. 나 지금 막 동창들 만났어. 늦지 않게 들어갈게.



“그래, 모처럼이니까 재밌게 놀다 와. 은비 때문에 안 불편해?”



-은비 지금 잠들었어. 식사 나오면 깨워야지. 동창들이 귀엽다고 좋아하네.



“역시 우리 딸은 어딜 가도 환영을 받네. 알았어. 끝날 때 쯤 전화 해. 끊어~.”



-딸칵



......



......



한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고, 나머지 손으로 리모콘을 이용 해 티비 채널을 돌린다. 

마침 푸드 채널에서는 태국 고추를 이용한 놀랍도록 매운 요리가 소개 되고 있었다. 

열시가 넘으면서 부쩍 시계를 쳐다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지금도 시계를 쳐다보며 10시 15분인 것을 확인했다.

방금 전에 입에 넣은 껌에서 씹는 족족 넘치도록 단물이 흘러나온다. 

이제 껌은 네 개 밖에 남지 않았다. 



......



......



-여보세요? 자기야 나야. 미안해. 많이 늦었지? 응. 어 아니. 

동창 중에 한 명이 갑자기 밥을 먹다가 쓰러

져서 지금 응급실에 와 있어. 

응? 어 어. 은비는 옆에서 자고 있어. 자기 먼저 자. 어. 동창들 아무도 집

에 안 갔는데 혼자만 집에 간다 그러기가 좀 뭐 해서. 

그래도 이따가 슬쩍 먼저 나오려고. 아무래도 은비

도 있으니까. 어 어. 아 무슨 떡 종류를 먹다가 식도에 걸린 것 같아. 

얘가 조금 급하게 먹는 버릇이 있거

든. 아휴. 걱정이야. 응. 

그렇게 됐으니까 계속 기다리지 말고 시간 늦으면 먼저 자라고. 

응. 사랑해 자기

야~



......



......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벽에 걸린 시계의 작은 바늘이 숫자 12를 약간 넘기고 있었다. 

아내는 어떻게 빠져 나오겠다더니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 밖에 없는 집은 상당히 조용했다. 

일정의 소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적막하고 쓸쓸한 기분에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탁상위에 있는 라디오를 켰다. 



-치익, 치익 네 김....기자. 거...치익, 치익



뉴스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맑은 소리를 듣기 위해 천천히 주파수를 조절해 본다.



-치익. 네, 부산 해운대구에서 신종 마약 사범이 잡혔다는 속보입니다. 이 들은 특이하게도 껌을 통해 마약
을 판매하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껌 얘기였다. 

왠지 귀가 솔깃해지는 뉴스였다.



-껌을 씹으면 마약 성분이 흘러나와 우리 몸의 중추신경으로 퍼지고, 이내 다른 마약과 같은 증세를 보이
게 된다고 합니다. 이번 같이 껌을 매개로 해서 마약이 등장한 것은 처음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일반인들
까지 마약의 마수에 걸려들 수가 있으니 국가적으로 대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약이 함유된 껌. 

그러니까 마약 껌이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씹고 있는 껌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사람을 매료시키는 껌은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약을 할 때 처럼 환각이나 환정이 생기진 않았다. 

대신에 씹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약이라기보다 담배에 가까웠다. 

뭐, 담배도 마약의 한 종류라면 종류겠지만.

그리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껌의 근원지는 부산이지만, 내가 가진 껌은 강원도였다. 

그러니 이쯤에서 대충 합리화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쨌건 뉴스는 내가 잠드는데 도움을 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주파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주파수에서 손을 멈춘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때, 푹 빠져 지냈던 빌리홀리데이의 슬픈 재즈였다.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조금씩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껌을 뱉는 것도 잊은 채.



......



......



“커억, 컥, 컥.”



잠에서 깨어났다. 

목구멍에 뭐가 걸린 느낌이 나 헛기침이 계속 나온다.



“커억, 퉤.”



껌이었다. 

뱉지 않고 자는 바람에 목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가까스로 뱉어낸 후에도 몇 번 더 기침을 한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래도 삼키진 않았으니 다행이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시계를 확인한다. 

5시 40분. 

조금 일찍 일어났지만 다시 잠을 청하기도 애매한 시각이었다. 

아내는 여전히 없었다. 

외박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아내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자기야, 자는 중일 것 같아서 문자로 보내. 동창이 결국엔 죽고 말았어. 이제 막 가족들 불렀고, 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라 다 들 슬픔이 커. 그래서 나도 아침까지는 같
이 있기로 했어. 미안해 자기야.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 은비는 대기실에 있는 침대에서 잘 자
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어. 늦지 않게 출근 잘 해. 미안해 자기야♡]



......



......



새벽 공기가 무척이나 차갑다. 

아침을 차려 먹기가 귀찮아 일찌감치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근처에 있는 샌드위치 매장에 들어가 카푸치노 커피와 에그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갓 구운 토스트 안에 잘 으깬 계란과, 야채들이 알차게 들어 있었다. 

입 가에 카푸치노 거품을 잔뜩 묻히며 허겁지겁 아침을 해결한다. 

물론 다 먹은 후에 껌을 입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김대리, 김대리. 잠깐 이리 와 봐.”



박과장이 일찍부터 나를 찾는다. 

잠시 자리에서 기지개를 한 번 펴고 박과장에게로 갔다.



“기획서 이야기는 들었어. 뭐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잖아. 너무 담아두지 말라고.”



“예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가보다 해야죠.”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아, 그건 그렇고. 김대리 하루만 더 수고해야 할 일이 생겼어.”



역시 용건은 따로 있던 모양이었다.



“예? 하루만이라는 건...”



“오늘 점심 먹고, 강원도에 한 번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아.”



나는 깜짝 놀랐다. 

강원도를 내려가라니. 

불과 이틀 전에 당일치기로 다녀오지 않았던가.



“아아, 그런 표정 짓지 말어. 상무님 지시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아니, 이유가 대체 뭐에요. 뭐가 또 빠졌어요?”



“우리 쪽 확인서를 팩스로 보내야 되는데, 팩스기가 고장 난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상무님이 직접 다녀오 라고 지시하셨어. 

 그런데 너를 지목하시더라고.”



미칠 노릇이었다. 

이건 단순한 응징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팩스가 고장 났으면 다른 데서 양해를 구하고 받으면 되잖아요.”



박과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박과장이 무슨 죄가 있겠냐마는.



“아 요즘 상무님한테 기획부가 별로 안 좋게 찍혀서, 

 출장 가 있는 사람들한테도 잘 믿음이 안 가는 모양이야. 

 더군다나 어제는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됐잖아. 

 가서 업무 상황도 체크 해 보라는 이유도 있는 거지.”



어이가 없었다. 

업무 상황 체크를 대리 밖에 안 된 내가 왜 해야 하며, 

당장 다시 써야 하는 기획서는 어쩌라는 말인가. 

스트레스 때문인지 난폭하게 턱이 움직인다.



“당일치기로는 죽어도 못 갑니다.”



“누가 당일치기로 가랬나. 내가 간신히 설득해서 내일 하루 빼주기로 했으니까. 

 하루만 수고 좀 해 줘.”



다행히 당일치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기획서의 압박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기획서는 어떡합니까. 김상무님이 당장 갖고 오라고 난리인데.”



“아 그것도 말 다 끝났어. 일단 다녀오는 것을 우선으로 해. 
 기획서는 조금 천천히 써도 되니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어쩌겠는가. 

위에서 하라면 하는 게 직장생활인 것을.

아내와 딸을 또 못 보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어제도 내내 혼자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최대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껌도 세 개 밖에 안 남았으니, 

내려간 김에 다시 그 가게를 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열 통 정도는 사 와야지.



......



......



“은비는 학교 잘 갔어?”



-어, 거기서 곧 바로 보냈어. 조금 늦게 갔는데, 미리 학교에 전화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안 피곤해? 자고 있는데 내가 깨운 건가?”



-아예 꼬박 밤을 샌 것도 아닌걸 뭐. 집 좀 치우고 자려고. 



“으응. 어쨌든 나는 그렇게 됐어. 내일 회사 쉬게 해 준다니까, 늦어지면 하루 자고 갈게.”



-아휴... 우리 자기 힘들어서 어떡해. 은비도 아빠 보고 싶다고 난리일 텐데.



“이러다가, 나 강원도 사투리까지 쓰는 거 아냐? 하하. 아무튼, 도착하면 전화할게.”



-추우니까, 단추 잘 잠그고 다녀. 감기 조심하고. 끊을게~



......



......



점심식사는 박과장과 함께 서울역 근처의 유명한 게장 집에서 먹었다. 

늘 주문하던 매운 게장 무침을 시켰는데, 

박과장은 매운 맛에 별로 소질이 없는지 버벅 거리며 잘 먹지 못 했다. 



“매운 거 좋아하나? 간장게장을 먹을 줄 아는데, 게장무침은 너무 매워서 못 먹겠어.”



먹느라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다리 한 쪽을 입에 넣고 아그작 아그작 씹으며 맛을 음미한다. 

말랑말랑한 속살이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매콤짭잘한 맛이 입에서 사라지기 전에 숟가락에 밥을 가득 담아 입에 넣었다. 



“에이. 이것도 못 먹어서 어쩌려고 그래요. 강원도에는 여기랑은 상대도 안 되는 

 매운 가게도 있는데.”



“아후. 됐네, 됐어. 매운 거 좋아하면 빨리 죽는다는 말도 있잖나. 

 자극적인 건 피해야 돼.”



박과장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 한다. 

어쩔 수 없지. 

박과장 몫까지 내가 먹는 수밖에. 

식사를 마치고, 

아무래도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계산은 박과장이 했다. 

가게를 나서자 매운 음식에 입이 뜨거워진 탓인지 벌써 하얀 입김이 나온다. 

박과장은 서울역까지 나와 함께 가 주었다. 



“이번에 고생하면 상무님 시선도 조금은 좋아질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전화 오면 꼭 잘 받으라고. 알았지?”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박과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박과장은 돌아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예 알았어요. 제 밑으로 집합시켜서 기합 한 번 주고 올게요.”



“그래. 그럼 내일 모래 보자고.”



“예. 다녀올게요. 밥 맛있게 먹었습니다.” 



말을 마치고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껌 하나를 입에 넣었다

-오늘의 날씨를 알려드립니다. 먼저 서울은...



......



-강원도 지역은 서울과 비슷한 기온으로, 약간 쌀쌀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단 강원도 춘천 지역

의 경우 저녁에는 영하까지 떨어질 정도로 추워질 전망이니, 
외출하실 때 겨울옷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틀간 후평동 쪽에 안개가 많이 낄 전망이니 

운전자들은 각별히 주의하셔야겠습니다. 

다음은 영남지방입니다...



......



......



“으으 추워라.”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서울에서는 그럭저럭 견뎌주던 가을 자켓이 여기서는 힘없이 추위를 허락한다. 

이틀 전만 해도 이렇게 춥지는 않았는데 정말 이상한 날씨였다. 

춘천은 여름에는 무지 덥고, 겨울에는 또 엄청 춥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덜덜 떨면서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4시 45분. 

애매한 시각이었다. 

일단 거래처로 가서 확인서를 주고 와야 할 것 같다. 

6시 전에는 가겠다고 말 했으니까 말이다. 

추워져서 그런지 부쩍 턱 운동이 심해진다. 

그만큼 단물도 많이, 빨리 빠지겠지. 

자켓의 단추를 목까지 잠그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유난히 희뿌연 안개가 눈에 거슬린다.



......



......



“아, 이거 하나 주려고 서울에서 내려온 건가? 팩스야 아무데서나 받으면 그만인 것을.”



“아, 뭐. 저희 회사의 정성이라고 생각 해 주세요. 건물이 참 좋네요, 내부도 좋고.”



“하하. 올 해 초에 지사가 들어왔으니까. 비교적 새 건물이지.”



“아 그렇구나. 네 사장님. 더 필요하신 건 있으세요?”



“아니 뭐, 이 정도면 충분하지. 혹시 시간 괜찮은가?”



“예? 아. 예. 뭐 시간이야 괜찮습니다만.”



“그럼 같이 저녁이나 들지. 춘천의 매운 맛을 보여주겠네. 허허.”



“저야 좋죠.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



......



얼떨결에 저녁식사까지 했더니 시간이 벌써 7시였다. 

거래처 사장은 춘천의 매운맛 어쩌고 하더니 결국 닭갈비를 사 주었다.

다른 데보다 확실히 맵기는 했지만 춘천을 대표하는 매운맛이 되기에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었다. 

더군다나 이틀 전에 이 동네에서 이보다 열 배는 매운 맛을 맛보지 않았는가. 

생각난 김에, 식사 중 사장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사장님 혹시, 정말 매운 집이라고 아세요?”



사장은 허겁지겁 고기를 건져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음식의 풍미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말 매운 집?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 춘천에는 유명한 매운 집이 많은데.”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모양이었다.



“아뇨. 가게 이름이 정말 매운 집이에요. 이틀 전에 점심을 거기서 먹었거든요.”



사장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매워선지, 뜨거워선지 반쯤 입을 벌리고 ‘쓰읍’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음. 이 근처에 유명한 집은 내가 거의 다 아는데 말이야. 

그런 상호명은 처음 들어보네. 그런 독특한 이름을 잊어버릴 리도 없을 테고.”



그다지 의외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일단 워낙 외진 곳에 있었고, 메뉴도 하나뿐인 데다가, 

그런 매니악한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은 드물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봉내산 쪽으로 들어가는 외진 길에 있는 가게인데 잘 모르시겠어요?”



“봉내산이라... 그 쪽 길이면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을 텐데 음식점이 있단 말이야?”



소수의 등산객들은 있겠지만 이런 날씨에 굳이 산을 찾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더군다나 정식 등산로가 아닌 외진 길이었기 때문에 더욱 인적이 드물 것이었다. 

사실 그런 곳에 가게를 차린다는 것부터가 이상하긴 했다. 

굳이 고생해서 갈 만큼 서비스가 좋거나 내외관이 훌륭했던 것도 아니고. 



“다 쓰러져가는 건물 두 개가 있더라고요. 하나는 음식점, 하나는 구멍가게.”



“아! 혹시 그 집을 얘기하는 건가.”



사장이 갑자기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예? 그 집이라는 것은...”



사장이 씹고 있던 닭갈비를 꿀꺽 삼키고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봉내산 쪽에 낡은 기와집이라면 알고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역사적인 집이지. 

 그런데 거기가 음식점이 되었단 말이야? 전혀 몰랐는데. 

 자네는 어떻게 알고 간 건가?”



원래는 음식점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인터넷에 검색되던데요? 약도도 나오고. 그런데 예전에는 그냥 일반 집이었어요?” 



사장이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옆머리를 톡톡 치며 말을 꺼냈다.



“그게 조금 기구한 사연이 있는 집이야. 나도 어릴 때라 나중에 아버지에게나 들었었지.”



어떤 사연일까. 

사장이 다시 한 번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자네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라고 알고 있나?”



국민보도연맹 사건. 

물론 알고 있었다. 

6.25 때, 이 연맹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 아닌가. 

북한에 동조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예 알다마다요. 살인마 이승만의 이름을 드높인 사건이었죠.”



“말 한 번 잘했네. 살인마 이승만. 
허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임 당한 대부분이 

그냥 평범한 민간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지.”



말 그대로였다. 

국가는, 보도연맹에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신고하는 사람들에겐 쌀과 음식을 나눠줬었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알 게 뭐였겠는가.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신고하고 음식을 얻기 바빴던 것이다. 

결국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전쟁이 터지자 국가는 제일 먼저 그 들에게 총부리를 겨눴고, 

무려 3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죽고 말았다.



“30만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자기가 연맹원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도 짧은 시간 안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죽었어.”



“음... 이 사건이 그 음식점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아, 그 기와집. 그 집 주인이 그 당시 연맹원 들을 밀고하는 일을 했었네.”



"예에!?"



“그도 연맹원 소속이었는데, 애당초 그는 명단을 작성하기 위해 들어간 거였다네. 

새로운 인원이 들어올 때마다 그는 몰래 기록을 남겼었지. 

물론 그런 사람은 각 지역마다 있었을 거야. 

그는 후평동만을 맡은 걸로 아니까. 

어쨌든 그의 명단 덕분에 이쪽에서의 처리는 손 쉽게 끝났다고 하네.”



충격적인 얘기였다. 

그 정도면 거의 학살의 주범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알다시피 그 당시 강원도에서의 삶이란 건 정말 끔찍했다고 하네. 

가난과 기근이 너무 심했다고 하지. 특히 이 근방은 더 심했지. 

그러니까 그가 넘긴 명단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야. 

그 들은 단지 배가 고플 뿐이었다고.”



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왕이면 오늘 내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슬 마무리하고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왠지 이 이야기만큼은 꼭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당연히 사람들에게 원망을 샀지. 

오죽했으면 그를 죽이기 위해 사람들이 결사대까지 만들 정도였네.”



“용케 죽지는 않은 모양이죠? 버젓이 가게도 차렸으니.”



“그는 영악한 사람이었네.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그는 재빨리 잠적을 해 버렸다네. 

 하나 뿐인 어린 딸을 데리고 말이야.”



“그렇다면...”



“그래, 그 잠적한 곳이 자네가 갔다던 그 곳일 걸세. 

 사람의 발길이 없는 외진 곳. 그 곳에 있는 낡은 기와집 말일세.”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야기를 듣느라, 남은 닭갈비가 점점 식어가는 줄도 잊는다. 

그만큼 나는 이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



“하지만 아예 못 찾을만한 곳은 아니던데요. 
약도를 보긴 했지만 저도 어렵지 않게 찾아갔으니까요.”



사장이 고기 하나를 입에 넣는다. 



“맞네. 시간은 걸렸지만 여기저기서 그를 찾았다는 소문이 들려왔었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이제야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해.”



“그런데 왜 죽지 않은 거죠?”



“그건, 마을에 갑자기 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네.”



......



......



그렇게 늦은 시각도 아닌데 주의가 온통 컴컴했다. 

익숙하지 않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탓이다. 

가뜩이나 낯 선 곳에서 시야까지 좁아지니 그다지 심기가 좋지 않았다. 

물론 심기가 불편한 데는 거래처 사장의 거북한 이야기도 한 몫 했지만 말이다.

이왕이면 오늘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두 가지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첫 번째는 지사에 들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제 한 개 밖에 안 남은 껌을 충원하는 것이다. 

우선 지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주임이 껌을 잔뜩 얻어놨으면 좋겠다. 

웬만하면 그 기와집에는 가고 싶지 않으니까. 

방금 입에 넣은 껌에서 넘치도록 단물이 흘러나온다.



......



......



낡은 건물. 

우리 지사의 건물이었다.

아까 전에 봤던 거래처 건물이 워낙 새건물이라 그런지,

유난히 낡고 허름해 보인다. 



“사장은 돈 벌어서 어디다가 쓰는지 모르겠네.”



혼자 말로 중얼 거렸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7시 30분. 

서울에서 출장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퇴근 했을 시간이다. 

고개를 올려 보니, 

역시나 4층만 불이 켜져 있고 나머지는 꺼져 있다. 

야식으로 산 보쌈과 족발의 양이 많지 않았는데 다행이었다. 

손에 쥔 봉지를 열어 젓가락 개수는 충분한지 다시 한 번 세어 보았다. 

열한 개.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끼이익



문을 열었다. 

온통 컴컴하다. 

1층 현관 정도는 불을 켜 놓는 게 좋을 텐데 말이다. 

불 키는 곳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현관문 근처를 더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에 닿는 것은 울퉁불퉁한 벽면뿐이었다. 

그냥 핸드폰에서 나오는 빛을 이용하기로 했다. 



-딸칵



핸드폰 액정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너무 컴컴한 탓이었는지 생각보다 많이 밝게 느껴졌다. 

벽면을 비춰 1층의 전등 스위치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그냥 이것만으로도 4층까지는 그럭저럭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발 앞으로 핸드폰을 비추고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발에 툭툭하고 살짝 걸리는 것들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다. 

현관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 끝에 계단이 있었는데, 

나는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가운데 보폭을 좁게 움직이니 꽤나 길게 느껴지는 거리였다. 

혹시라도 넘어지진 않을까 한 손으로는 벽면을 짚어가며 걸었다. 

그렇게 한 발, 두 발... 



-뚜벅, 뚜벅



얼마나 걸었을까. 

정적 속에서 발걸음 소리만이 도드라지고 있다.


그러던 중,



-물컹



벽면을 짚은 손에 뭔가 이질적인 게 만져졌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웠지만, 뜨끈하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났다. 

뜨거운 설탕물에 담가 놓은 찰흙 같다고 할까? 

핸드폰을 그 쪽으로 비춰보았다. 

밀가루 반죽 같은 둥그런 흰 덩어리가 보인다. 

찰흙은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껌에 더 가까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