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옥은 혹시 0을 하나 더 세진 않았나, 다시 한 번 헤아려 봤다.
25만 원이라 해도 도둑놈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두 번, 세 번 헤아려도 마찬가지였다.
자막 실수가 아니라면 저 인 형의 가격은 250만 원이 분명했다. 해옥의 두 달치 월급에 육 박하는 액수였다.
“그 돈이면 루이비통을 사고 말지.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인형을 사나. 진짜 막장이네. 아, 시간 아까워.”
해옥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진행자는 떳떳이 상품을 설명했다.
“이 인형의 최대 장점은 바로 저주의 인형처럼 보이지 않는다 는 점입니다.
유명한 캐릭터 디자이너를 납치해서 개발에 참 여시켰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외형적인 퀄리티를 높였는데요,
너무 흉측하게 생겨서 집에서만 쓸 수 있던 기존 저주의 인형 들과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습니다.
누가 이 인형을 보고 저주 의 인형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곰돌이 푸우구나, 하지. 안 그 렇습니까, 경은 씨?” “맞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의 우수성뿐만이 아닙니다. 기존 저 주의 인형과 비교했을 때 성능에도 확실한 차이가 나는데요.
목숨까지 빼앗으려면 워낙 고가이고, 그렇다고 싸구려 인형을 사자니 이건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미미한 효과만 내고.
하 지만 이 인형은 다릅니다. 가격은 보급형 수준으로 내리고 성 능은 거의 최고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해옥은 도무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형의 기능 적인 측면을 자꾸 강조하는 걸로 보아 아동용은 아닌 듯했다.
“자, 이 놀라운 성능을 한번 보실까요? 벌써부터 주문 전화가 오고 있네요.
잠시 후부터 주문 폭주가 예상되오니 갈등은 안 드로메다에 잠시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호 씨 어서 벗겨 볼 까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옆의 물건으로 다가갔다. “짜자 잔” 하며 천을 벗겨 내자, 놀랍게도 의자가 하나 나타났다.
정 확히는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더 정확히 는 그 사람이 재갈을 물고 묶여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때부 터 해옥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24회 때 민폐를 끼쳤던 곽태동 회원입니다.”
진행자들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반면 포박당한 남자는 공 포와 두려움으로 질려 버린 표정이었다.
얼굴 곳곳에 핏자국 이 있었고, 눈과 뺨에 붓기가 있었으며, 옷 여기저기에 흙먼지 가 묻어 있었다.
제 발로 걸어온 손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인형과 대상이 가까울수록 위력이 강해집 니다. 이 정도면 지하철에서 서로 마주보는 거리 정도는 될 텐 데요.
차근차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자 진행자가 네 발자국 정도 뒷걸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고 는 인형이 있던 선반 밑에 손을 넣어 포스트잇 같은 종이 뭉치 를 꺼냈다.
“우선 저주가 걸린 종이에 정보를 넣어야겠죠?
아, 안심하세 요. 오늘 주문하시는 고객님들 전원에게 저주의 종이 두 세트 를 무료로 드리고 있습니다.
한 세트에 10장이니까 한동안은 걱정 없겠죠? 신상 정보를 넣으실 때 포인트는 최대한 상세히 기록해야 위력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그냥 이름만 쓰면 동명 이인들 모두에게 저주가 분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하죠.
기왕이면 겹치는 사람이 없도록 이름, 생년월일, 핸드 폰 번호, 집 주소 등등 아는 범위 내에서 상세하게 적어 주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곽태동…공일공칠일일…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천구백칠십 구년…… 자, 이정도만 적어도 저주가 분산될 일은 없겠죠?
이 제 붙이는 일만 남았는데요. 포스트잇처럼 접착 처리가 되어 있으니 그냥 툭, 떼서 붙여 주시면 됩니다.
여기서 또 루마니아 저주의 인형의 장점이 드러나는데요.”
남자가 인형의 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이렇게 남들 눈에 안 띄게 붙일 수가 있습니다. 인형에 옷을 입힌 이유가 이것 때문이거든요.
루마니아 저주의 인형은 고 객님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네요.” “와, 정말 감쪽같네요.
누가 저주의 종이를 인형에 붙였다고 생 각하겠어요.”
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 순간 옆에 있던 포박당한 남자가 온 몸을 흔들면서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카악, 칵칵.” 하는 비명 아닌 비명이 흘러나왔다. 진행자들의 웃는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자, 움직여 볼까요?”
여자가 남자 진행자를 향해 말했다. 남자 진행자는 고개를 끄 덕이며 인형의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포박된 남자의 얼굴 또 한 거의 동시에 돌아갔다. 이번엔 인형의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포박된 남자의 고개 또한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해옥 의 머릿속에 ‘설마’ 두 글자가 풍선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남자 진행자가 인형의 머리를 마구 돌렸다.
포박된 남자가 정신없 이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반응 속도 보이시죠? 실제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게 다가 이 위력이 느껴지십니까? 저가의 인형들은 상상도 못할 움직임이죠.
자, 이번엔 못을 박아 보겠습니다.”
남자 진행자가 눈짓을 하자 여자가 탁자 밑에 손을 넣어 못과 망치를 꺼냈다. 건네면서 여자가 말했다.
“저주의 인형 전용 미니 망치와 미니 못입니다. 상품 가격에 1 만원 만 추가하시면 직접 보내드리고 있고요.
시중보다 절반 정도 저렴한 가격이니까 필요하신 분들은 함께 주문하셔서 더 큰 할인 혜택 누리시면 어떨까요.
못은 열 개 한 세트로 준비했 습니다.”
남자가 망치와 못을 받았다. 그리고 인형의 어깨 부근에 못을 대고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소리가 끝나자 포박 된 남자의 신음이 이어졌다. 어깨에는 전에 없던 검은 구멍이 하나 보였다.
그 구멍은 금세 빨갛게 물들었고, 얼마 안 있어 폭죽 같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해옥의 머릿속에 둥둥 떠 있 던 풍선이 펑, 하고 터지는 순간이었다.
“허억!”
숨을 들이쉬며 양손으로 입을 막는 해옥. 얼굴에는 믿기 힘들 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사이 남자 진행자는 다음 망치질을 시작했다.
반대편 어깨였다. 핏줄기가 멎기도 전에 포박된 남 자의 다른 쪽 어깨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여자는 포박된 남자의 뒤편에 서서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있었 다. 망치질은 멈추지 않고 인형의 양다리를 향했다.
포박된 남 자의 다리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해옥은 티브이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소파를 더듬어 핸드폰 을 찾았다.
어찌나 손을 떠는지 핸드폰을 세 번이나 떨어뜨린 끝에 겨우 잡아 올릴 수 있었다. 주소록을 열 필요도 없었다.
숫자 세 개와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그 런데 남자 진행자는 다리를 끝으로 더 이상 망치질을 하지 않 았다.
그뿐 아니라 별다른 멘트조차 없었다. 포박된 남자가 신 음이라도 내지 않았으면 정지 화면으로 착각할 만큼 적막한 화면이었다.
“경찰서죠? 지금…”
숨이 덜컥 막혀 말을 멈춘 해옥. 진행자들의 표정에서 웃음기 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미간에 주름이 진 것으로 보아 인상을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시선은 카메라 정면.
해옥과 브 라운관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치고 있는 셈이었다.
핏물이 튀고 사방에 비명이 울려 퍼져도 사람 좋은 인상을 잃지 않았 던 진행자들이 급변하자 해옥은 당혹스러웠다.
그것도 하필이 면 자신이 신고하는 타이밍에.
“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생방송인 것 같은데 티브이에서 살 인이 일어나고 있어요. 아니에요. 홈쇼핑 채널이에요.
네? 제가 처음 신고한 게 중요한가요? 틀어 보시면 알 거 아니에요. 몇 번이냐면…”
해옥이 말을 멈췄다. 진행자들이 정면을 주시하며 점점 다가 오는 탓이었다.
해옥은 이대로 저들이 앞으로 나와 티브이를 뚫고 자신의 앞에 설 것만 같았다.
29인치 화면이 본인들의 얼 굴로 꽉 차자 진행자들은 멈췄다. 해옥은 어서 신고를 접수하 고 티브이를 끄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428번이요. 28번이 아니고 428이요. 잘 안 들리세요? 사, 백, 이, 십, 팔 번이요. 네? 채널이 거기까지 안 넘어간다고요?
티브이가 후졌네. 다른 걸로 해…….”
그 때 남자 진행자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감정이 전혀 안 느껴지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깜짝 놀란 해옥 이 또 한 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남자 진행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민폐를 끼친 회원이 나타났군요. 다른 날도 아니고 30회 특집 인데 정말 화가 납니다.
서약서를 쓰고 특별 회원제로 운영을 하는데도 불량 회원은 반드시 생기더라고요. 방송은 이쯤에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민폐를 끼친 회원에게 우리의 분노를 보여 줘야겠죠?”
그러면서 남자와 여자는 탁자 쪽으로 돌아갔다. 여자가 인형 을 눕혀 고정시키고 남자는 아까보다 훨씬 강도 높은 망치질 을 시작했다.
정확히 인형의 이마 한 가운데였다.
“네, 네? 지, 지, 지금 엄청난…”
해옥이 말을 더듬었다. 포박된 남자의 이마에서 핏줄기가 솟 구쳤다. 그리고 길고 긴 절규가 이어졌다.
핏줄기가 약해질수 록 남자의 소리도 작아졌다. 여자의 한쪽 뺨으로 반죽처럼 들 러붙은 핏덩이가 목덜미로 흘렀다.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던 여자가 화면 가까이로 다가오며 말했다.
“민폐의 끝은 사망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계신 서약서에 분명 히 적혀 있어요. 자, 그럼 오늘의 민폐 회원 정보를 알려드리겠 습니다.”
해옥은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여보세요’ 소리를 전혀 듣지 못 했다.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백칠십삼 다시 사십육.”
해옥의 동공이 팽창했다. 지금 여자가 읊는 주소는……
“송양빌딩”
해옥이 사는 곳이었다.
“302호. 장석윤.”
해옥이 거친 숨을 뱉어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호 흡이 가빴다. 해옥의 집은 301호, 302호는 바로 옆집이었다.
“회원 여러분 모두 협조하셔서 빠른 시일 안에 방송이 재개되 길 염원합니다.
오늘 상품 저주의 인형은 현재 시간까지 주문 한 고객에 한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자와 남자가 꾸벅 인사를 하자 서서히 화면이 어두워졌다. 잠시 후 소음과 함께 늘 그랬듯 흑백 화면으로 돌아갔다.
핸드 폰 액정 위로 통화 종료 문구가 네온 사인처럼 껌뻑이고 있었 다. 시계를 보니 2시 20분. 겨우 20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해옥은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이대로 잠이 들면 처음 보 는 장소에서 꽁꽁 묶인 채 깨어날 것 같았다. 1분이 참 길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10초가 참 길었다.
-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몇 초간 천장을 바라보다가 황 급히 상체를 일으켜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묶인 곳은 없었 다.
잠들었던 곳은 소파 위, 장소도 변하지 않았다. 알람을 끄 고 시계를 확인했다. 6시 1분. 머리는 지끈거리고 팔다리에 힘 이 없었다.
잠시 멍하니 앉아 리모컨을 들어 티브이 전원을 켰 다. 어제 일이 꿈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음과 함께 화면이 송 출됐다.
상단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연두색 숫자, 428. 그 숫자 가 사라지기 전에 티브이를 꺼 버렸다.
마음에 갈등이 일었지 만 오후에 잠들었던 이성이 깨어나 이내 감성을 누르고 만다. 해옥은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해옥이 정문을 나섰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용변이 급한 사람처럼 문을 잠갔다.
몸을 돌려 계단으로 향하는데 하얀 연 기가 얼굴에 닿아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불이라도 난 거 아 닌가, 아래를 보니 웬 처음 보는 남자 셋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 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찬 해옥이 코와 입을 막고 계단을 내려갔다.
방역 가스 같은 연기를 뚫고 2층 계단으로 향할 때 쯤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가 “저기요” 하고 해옥을 불렀다.
“말씀 좀 물읍시다.”
해옥은 대꾸 없이 걸음만 멈췄다.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옆집 양반 언제쯤 들어오는지 아시나요?”
순간, 어제의 방송이 떠오른 해옥이 말을 더듬었다.
“여, 옆집 남자 말씀이신가요?” “네, 그 사람이요.”
해옥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그, 글쎄요. 제가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마주치 는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한 번도 없었습니까?”
“평일에는 정말 한 번도 없었고요. 주말에는 가끔 있었어요. 그 런데 요즘에는 통 보이질 않네요.
4층이 집주인 사는 데니까 한번 물어보시겠어요? 저는 늦어서 이만.”
해옥이 다시 코와 입을 감싸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 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았다.
건물 정 문을 나섰다. 입구 앞을 막아 놓은 불법 주차 차량들을 피해 본 격적인 출근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제까지의 출근길 과는 확실히 달랐다.
음침하고 추레한 사람들이 전봇대 근처 혹은 주차장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는데 해옥을 발견하자 마자 일제히 시선을 모았다.
거미줄처럼 질긴 시선은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고 해옥은 뭐라도 훔친 사람처럼 불안한 표 정이었다.
“분명히 남자라고 했어. 사진이랑도 많이 다르잖아.” “얼굴도 길쭉한 게 아니라 동그란 편이네.”
해옥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추측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이 옆집 남자를 찾으러 온 것이다.
아마도 ‘민폐’의 죗값을 묻기 위해서. 해옥은 최대한 걸음을 빨리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버스에나 올라 타고 지뢰밭을 빠져나온 군인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옥은 자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를 묻는 것은 나 중 일이었다. 우선 저들에게 잡히면 훈계 정도로 끝나지 않으 리라.
다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저들이 노리는 사람은 옆 집 남자가 분명했다.
진행자가 마지막으로 알려 준 주소와 이 름도 옆집 남자의 것이었다. 비회원인 해옥이 티브이를 시청 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태연하게 행동하면 된다. 해옥이 숨을 골랐다.
해옥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추측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이 옆집 남자를 찾으러 온 것이다.
아마도 ‘민폐’의 죗값을 묻기 위해서. 해옥은 최대한 걸음을 빨리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버스에나 올라 타고 지뢰밭을 빠져나온 군인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옥은 자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를 묻는 것은 나 중 일이었다. 우선 저들에게 잡히면 훈계 정도로 끝나지 않으 리라.
다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저들이 노리는 사람은 옆 집 남자가 분명했다. 진행자가 마지막으로 알려 준 주소와 이 름도 옆집 남자의 것이었다.
비회원인 해옥이 티브이를 시청 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태연하게 행동하면 된다. 해옥이 숨을 골랐다.
퇴근길. 해옥은 또 한 번 당혹스러운 일을 겪고 말았다. 이번엔 스스로 자처한 일이었다.
핸드폰 주소록을 보다가 ‘바보똥개’라 는 이름에 무심코 통화 버튼을 눌렀는데,
어제 이름을 바꾼 남 자친구의 번호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것도 여 보세요, 가 나온 후에.
벙어리 상태로 일관하며 해옥은 결국 전 화를 끊고 말았다. 얼마 안 있어 문자가 왔다.
[스토커처럼 굴지 마라. 짜증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