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가 6일만에 가능했던 이유

샹키 2016.01.25 21:00:30


이것은 아주 짧은 이야기이지만 나의 다른 꽁트들처럼 말장난으
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는 사실 꽤 웃기고 또 웃음을 자아
낼 목적으로 쓰여졌지만, 순전히 웃기는 이야기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사용할 수 있는 기록매체가 파피루스  뿐이고  인쇄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쓸 수  있
는 책은 오늘날에 비해 상당히 제약될 수 밖에 없다.  즉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당신이 쓰려는 글이 무엇이든간에  파피
루스를 많이 쓸 수 없다는 사실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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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은 할 수있는 가장 엄숙한 목소리로 구술을 -여러 부족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기대하는 예언을- 시작했다.
  "태초에," 하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정확히 152억년전 빅뱅이
있었고 우주가......"
  그러나 나는 받아쓰기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150억년 전이
라고?" 내 목소리는 불신에 가득차 있었다.
  "물론이지, 난 계시를 받았어." 하고 그는 대답했다.
  "네가 받는 계시를 믿지 않는 것은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믿어야만 했다. 내 동생은 나보다 세살이 어리지만 그가 받
는 계시에 의문을 품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또 지옥에 떨어질 각
오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의문을 품을 생각도 하지 못할  것
이다.) "그래도 설마 150억년에 걸친 창조의  역사를  구술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해야만 해," 하고 내 동생은 말했다. "그게 우주가 창조된  역
사니까. 모든 우주의 역사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바로 이곳에  다
기록되어 있다구," 그는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철필을 내려 놓으며 투덜댔다. "너 요즘 파피루스 값이 얼
마나 하는지 알기나 하니?"
  "뭐라고?" (그가 신성한 계시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때때로 그러한 계시가 파피루스의 가격같은 추잡한 세상사는 고려
하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네가 파피루스 한 두루마기마다 백만년에
걸친 역사를 구술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려면 우리에겐 파피루스
두루마기가 만오천개나 필요하겠지. 파피루스 만오천개를 쓸 정도
로 말을 많이 하려면 얼마 안가서 네 목은 완전히 쉬어버리고  말
게다. 그리고 그 많은 양을 받아쓰고나면 내 손가락은 떨어져  나
가버리겠지. 좋아. 우리가 그 많은 파피루스를 구입할 능력이  있
고 또 네 목은 쉬지도 않고 내 손가락도  멀쩡하다고  생각해보자
구. 도대체 어떤 미친 녀석이 그 많은 양을 다시  베끼려고  들겠
니? 우리가 책을 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사본이 적어도  100개는
있어야 할텐데 사본을 못만들면 인세는 어떻게 받니?"
  동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을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고 그가 물었다.
  "물론이지," 하고 나는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읽히려면 그  수
밖에 없어."
  "백년 정도로 줄이면 어떨까?" 하고 그가 제의했다.
  "엿새면 어때?" 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창조의 역사를 겨우  엿새
에 구겨넣을 수는 없어."
  "내가 가진 파피루스는 그 정도가 다야. 어떻게 할래?"
  "좋아,"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다시  구술을  시작했다.
"태초에- 창조에는 엿새가 걸렸다 이거지, 아론?"
  나는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지, 엿새였단다. 모세야."


아이작 아시모프 작
원래는(How It Happened)
윤태원 역


아이작 아시모프의 걸작 sf 단편인 최후의 질문에 이어지는 단편 콩트입니다.
http://cs.sungshin.ac.kr/~dkim/last-question.html
최후의 질문을 읽어 보시고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family/217/read?articleId=15947372&bbsId=G005&itemId=64
이건 루리웹 회원이 그린 만화 버전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