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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선생님 -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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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나의 발자국 같았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 날, 처음으로 이 숲을 빠져나갔을 때, 신사에서 저쪽에는 누구의 발자국도 찍혀 있지 않았던 것을. 잘 생각하면 이상하다. 선생님이 말했던 것 처럼, 우리 마을과 숲의 맞은 편 마을 사이에는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을 지나가는 것 이외에 길이 없는 것이라면, 사람의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을 것이다. 동사무소와 우체국도 우리 마을 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어느 순간 이 세상의 뒷면에 발을 디디고 있었던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계속해서 걸어서, 어두운 나무의 아치를 빠져나가자 푸른 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졌다. 똑같다. 초록의 두렁길. 밭. 개구리의 울음 소리. 하늘을 가로지르는 제비의 날개짓. 눈앞의 광경에 한순간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침내 알아차린다. 두렁길에 잡초가 무성하다는 것. 밭에도 잡초가 무성하다는 것. 개구리의 울음 소리는 계속해서 작아지고 있다는 것. 산 속에 있는 민가는, 지붕에 구멍이 뚫려서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보이는 것. 그리고 전신주도 전선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두렁길을 걷는다. 풀을 밟으면서, 언덕길 앞에 도착했다. 계속 언덕길을 올라가자 저편에는 오래되고 퇴색한 기와지붕이 있다. 땀을 뿌리치면서 나는 고개를 오른다. 도중에 뒤돌아서, 마을을 내려다본다. 아무도 없다. 움직이는 그림자는 오직 제비뿐. 여기저기에 흰 꽃이 피어 있다. 나는 광장에 도착한다. 교정이라고 불리우는 곳. 썩은 목재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광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매일 올려다봤던 교사건물은 검게 변색되고 지독하게 비뚤어져 있다. 벽에는 구멍이 뚫리고, 나무와 못이 이곳저곳 툭 튀어나와 있다. 나는 눈앞의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흔들흔들 몽유병에 걸린 것 처럼, 출입구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건물 안은 매연 자국과 나뭇 조각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나막신상자의 잔해를 지나서, 구두를 신은채로 복도로 올라간다. 거미줄을 손으로 훔치면서 계단에 발을 올리자, [빠지직] 거리는 소리가 나서 밑바닥이 빠질 것 같았다.

 

발을 움츠리고, 괜찮은 것 같은 부분을 몇번이나 확인하면서 한층 한층 올라 갔다. 너덜너덜한 벽에 손을 짚고, 손바닥이 검게 변하면서 이층에 겨우 도착했고,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다. 육학년이라고 쓰여져 있는 알림판은 어디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완전히 죽어버린 나무 바닥과 회색 복도만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선생님이 처음으로 나를 반겨준 교실로 발을 디뎠다. 그 순간, 머리가 아찔아찔했다. 선생님이 직접 손수 하나 하나 날라서 총 여섯개 정도 있었던 책상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나무 잔해가 교실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이었다. 교단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고, 칠판이 있었던 장소에는 그을린 벽만 있었다. 뭘까 이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은. 그렇다. 하리보테다. 이거면 모두를 속일 수 있다. 할아버지도, 시게도. 나도. 사실은 교실에 선생님이 숨어있고, 갑자기 나타나서 내가 모르는 먼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모든 것을 하리보테로 감추고 있는 채로. 그러나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득, 창문쪽을 보았다. 색종이 학으로 가득했던 창문에는 아무 것도 매달려 있지않다. 다리를 끌어서 그쪽으로 다가간다. 선생님이 항상 턱을 괴고 있었던 창문 쪽에 나도 섰다. 창틀은 썩어서 틀이 내려앉았기 때문에, 팔 꿈치를 댈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선생님과 학교에 같이 있을 때마다, 매번 나에게서 멀어지던 느낌이 든 것을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봤고, 선생님은 언제나 어렴풋이 창 밖에 턱을 괸채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몇번이나 선생님을 불렀고, 드디어 나를 알아차렸을 때, 현실 세계가 여물어 터진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나와 선생님의 세계가 연결된 것이다. 선생님은 항상 흰 꽃무늬 옷을 입고 있었다. 청결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림받은 교사 안에서, 선생님의 시간은 멈춘 채였던 것일까?

 

어쩌다 가끔식 신기하게도 비가 내린 적이 있었지만,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을 빠져나가면 날이 개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가랑비라서 그럴거라고 생각했지만, 가령 폭풍이 와도 저쪽 세계는 날이 갠 채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서히 매미가 울고 있다. 어딘지 텅 빈 소리였다. 다른 세계의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이미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게됐다. 나는 계속 서서,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보고 있었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눈에 광장의 구석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항상 거기를 보고 있었다. 같은 장소를. [저기에는 무엇이 있어요? 선생님...?]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다면, 나 자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누구에게 배울 수 만은 없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복도가 삐걱거려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계단을 반 부수듯 뛰어 내려와서, 현관을 나와 광장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홀로 적적하게 서있는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다. 예전에 화단이 있었던 것일까? 검은 흙이 쌓여 있는 곳이 있었다. 그 흙 위에 나무판자 한 개가 꼳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묘비처럼 보여서 가슴이 뜨끔거렸다. 판에는 뭔가 쓰여져 있었지만, 비 때문에 흐려진건지 더이상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나뭇 조각을 뽑아 와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바로 위에 뜬 태양이 나의 그림자를 지면에 새긴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그것이 흙에 떨어진다. 흙을 계속해서 파는데 나뭇 조각 끝에 뭔가 다른 감촉이 느껴졌다.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흙을 파낸다. 손가락 끝에서 느껴진 것은, 뼈가 아니었다. 너덜너덜해진 종이봉지가 흙을 뒤집어 쓰고 나타난 것이다. 봉지 입구를 집어 올려서, 흙을 없애려고 하자마자 봉지의 밑바닥이 뚫려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색종이였다. 종이학이다. 축축해지고, 퇴색되고, 흙 투성이가 되어버린 학이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도 없는 폐허 같은 교정에 서 있었다.

 

환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더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만 나는 상상한다. 거기에 있을거라고 상상한다. 나의 옆에 선생님이 있다. 투명하지만 서 있다.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고 있다. 곤란한 것 같은, 수줍은 것 같은, 상냥한 얼굴로. 바람이 얼굴로 세차게 불고, 마침내 그것은 사라졌다. 아름다움이 흔적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나는 희미해지는 시야로 눈 앞을 바라본다. 1000마리는 아니지만, 거의 다 끊어져버린 실에, 많은 학이 매달린채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이상한 것을 찾았다. 그것은 꼴사납게 보였다. 삐뚤어지고, 동체가 기울어지고, 얼굴이 못생긴 것을. 그렇지만 하나만, 단 하나만 멋진 부분이 있었다. 나는 손을 높이 들고, 그 학의 전투기 같이 뾰족하게 서있는 날개를 하늘에 대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여름이 끝나는 냄새를 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살며시, 사전을 닫는다. 어릴 때의 기억이 꿈처럼 넘치고, 그리고 사라져 갔다. 사전을 책장에 돌려놓고, 내가 이때까지 대학 도서관에 있었던 것을 마침내 떠올린다. 부드러운 바닥이 여러가지 소리를 흡수하고, 주변은 지독하게 조용하다. 눈을 감고, 천천히 대학생인 자신을 되찾는다. 문득, 시게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여전히 두목을 하고 있을까? 안면굴도 여전히 웃고 있을까? 얼굴바위 뒤에 있는 스님의 등신불은, 지금도 산에서 방황하는 사망자의 영혼을 조문하고 있을까?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이 끝나고 신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수학 성적이 눈에 띄게 올랐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나중에 세계사를 배울때는, 이미 잊어버리고 없었지만. [후후] 웃음이 새어나온다. 책장에 있는 책을 본다. 거기에는 내가 방금 꼳아둔 책도 있다. 완전히 관계가 없는 것을 조사하고 있었는데도, 문득 눈에 뜨인 페이지에 오랜 시간을 빼았겼고, 나의 그 여름날 마지막 수수께끼를 마침내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를 옛 추억의 저편으로 유혹한 것이다. [결핵] 학명 : tuberculosis 결핵균에 의해 야기되는 감염증. 호흡기관이나 임파 조직, 관절이나 피부등 발생하는 기관은 다방면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표적인 폐결핵은 옛부터 일본에서 많은 감염자가 발생해서 죽음의 병으로 두려워했다. ...중략... 의사가 사용하는 약칭은 TB. 이런 의학용어가 민간에도 널리 퍼졌고, 은어적으로 테베(Thebes)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 날 교실에서, 아테네를 아테나(Athenai)라고 쓰지 않았는데, 테베(Thebes)만을 [테바이] 라고 고쳐 쓴 선생님의 무겁게 가라앉은 등이 어제있었던 일 처럼 되살아난다. 어쩌면 이것이 선생님이 나에게 내준 마지막 여름방학 숙제였는지도 모른다. 그 때 선생님은, 자신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환상을 보고 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후로도 몇번이나 다른 해에,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을 지나서 저 폐교로 발길을 향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다.

 

또 만나고 싶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지금은 망설여진다. 선생님이 말한대로 눈을 뜨고 있어야 할지, 감고 있어야 할지 모르기에. 그 시절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나 끝없는 악의가 이 세상에는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중학교 삼학년때, 저 폐교가 헐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규모 공사로, 큰 길이 사라진 모양이다. 저 버림받은 마을을 삼킨채로. 내가 그자리에 다시 묻은 종이 학들도 다시 파헤쳐지고, 더욱 더 깊이 묻혀버린 것일까? 나는 그 너덜너덜한 종이 학 안에, 한 장의 종이가 파묻혀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것은 어디선가 본 적있는 필적이었다. 시인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쓴 편지 같았다. 나는 그것만을 가져 갔고, 그 종이로 종이 학을 만들었다. 실제로 집으로 돌아간 후, 잠시동안 나의 방 창문 쪽에 매달린채 흔들리고 있었지만, 어느새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린 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뒤로 한채, 내가 찾고 있었던 책을 들고 대출 수속을 마친다. 그것을 겨드랑이에 끼고 도서관을 나가자, 얼굴이 잘려나갈 것 같은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 왔다. 한겨울이었다. 완전히 여름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도.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코트 옷깃을 세웠다.






괴담돌이 http://blog.naver.com/outlook_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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