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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독신녀의 방에 어서오세요 -5부-
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려웠다.
은은한 거실 불빛이 방으로 흘러들어 가 그녀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 책은 이제 다 봤어요.'하는 쪽지들이 책장에 가득했다.

"왜 나에게 직접 말해주지 않아요."하고 묻고 싶다.

난 당신이 무섭지 않다. 자주 들려라.
하지만 더 이상 가까워 지지는 말자.

그런 뜻을 보였던 사람이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체
남의 침대에서 세상모르는 척 잠들어 있었다.

순간 그녀를 흔들어 깨울까 하는 생각이 들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자꾸만 어딘가에서 내가 먼저 잘못을 했다는 미안함이 일었다.

조용히 방문을 닫으며 거실로 되돌아서 나왔다.

아무리 화가 났었다지만 정말 심한 광경이었다.
어질러진 거실을 치우려면 한참의 시간이 들것 같았다.

한쪽이 쪼그라든 사과를 집어들자 시큼한 냄새가 확 퍼지며 이상한 국물이 뚝뚝 떨어져 내랬다.
생각 없이 맨손으로 집어 들었던 나는 어느 정도 들어 올렸던 사과를 그대로 다시 거실 바닥에 떨궜다.

손에 묻어난 이상한 액을 바라보다 잠시 냄새를 맡아보니 쉰내와 썩은 내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베란다에 묵혀 두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 들었다.
깨진 유리잔들과 접시들을 쓸어내는데 웃음이 나왔다.

원래는 어떤 성격의 여자일까?

그 개미 같은 목소리를 내던 여자가 아니었다. 집어던져 산산조각이 난
유리조각들이 스토킹 상대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듯 반짝반짝 소리치고 있었다.

쓰레받기에 유리조각들이 묵직했다. 쓰레기통에 접시들을 쏟아부으니
모래가 떨어지듯 솨아하는 소리를 내며 쓸려 내려갔다.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자잘한 유리조각이 맨살에 파고 들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만, 청소기 소리에 지영씨가 잠에서 깨는 것이 두려웠다. 

쓰레기통이 거진 유리조각들로 가득 차올라서야 대충 거실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방 수납장에서 검정색 비닐봉지를 꺼내 들며 고무장갑을 끼우고 바닥의 과일 조각들을
주워담았다. 과즙액이 눌어붙어 끈적거리며 주욱하고 늘어져 과일을 따라 선을 만들었다.

배가 부른 검은 봉지들을 현관 앞에 대충 늘어놓고 뒤를 돌아보니 아직 할일이 태산이었다.
방에서 곤히 잠든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무슨 불평의 말을 해줘야 속이 시원해질까 궁리를 했다만,
담배를 달라는 말밖에 붙여보지 못했던 자신의 초라함만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내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그녀의 고함을 들으며
되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졌다.

거실의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고 깨지지 않은 그릇들과 가재도구들을 한꺼번에 싱크대에 얹었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그릇이 이가 나가서 쓸 수가 없었다.
설거지가 다 끝날 무렵에는 쓰레기통에 그릇들과 유리조각들이 산처럼 쌓여버렸다.

산처럼 쌓인 유리들을 보며 한숨을 짓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젖은 손을 싱크대에 서너번 털어내며 라이터 끝을 조심히 잡아들어 불을 붙이는데
그 적은 물에도 부싯돌이 젖어버린 듯 불이 들어오질 않았다.

라이터를 몇 번 더 돌려보다 주변을 돌아보는데, 거실에는 라이터의 흔적이 없었다.

라이터를 찾으려 내 방의 문은 조심히 열어젖혀자 지영씨가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지영씨와 나는 침묵을 지키며 마주치는 눈빛을 피했다 다시 마주치기를 반복했다.

입에 물었던 담배가 무안스러워져 베어 물었던 것을 손에 쥐어
슬며시 담배각에 밀어 넣자 지영씨가 입을 열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출장이요."

"왜, 말 안 해줘요?"

"..."

처음 해보는 정상적인 대화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왜 추궁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면서도 추궁을 당하는 모습이
싫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것처럼 갑작스레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는 거에요?"

그녀의 울먹임에 나오던 말도 되려 다시 목구멍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 같았다.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직장과 집, 이름, 나이밖에는 없다.

"다 아셔서 그런 거에요? 이제 저 안 따라 다니시는 거에요?"

"출장 갔었어요."

"정말요?"

"네, 정말이요."

소리를 눌러담듯 서럽게 우는 그녀를 보면서 우습게도 담배가 더 피우고 싶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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