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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단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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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무슨 글자인진 알 수 없지만, 붉은 색으로 씌여진 부적이 벽 곳곳에 붙어있었고, 오싹한 표정을 짓고있는 인형이 진열되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재대로 말 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두 사람은 꽤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말해봐.”

여자가 짙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이곳의 분위기로 봐서는 여자의 입에 물려있는건 일반 담배가 아니라 곰방대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여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사실은 꿈 때문에 그러는데요.”

남자가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런데 남자의 다음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여자가 담배를 떼고 입을 열었다.

“일 년? 아니, 반 년정도인가.”

여자가 말하자 남자가 한층 더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여자가 자신의 담배 하나를 남자에게 건네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혔다. 한 모금을 길게 내쉰 남자는 조금이나마 진정 된 듯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꿈을 꾸기 시작한지는 거의 육 개월이 다 되어가요, 맨 처음엔 그냥 단순한 악몽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런게 아닌 것 같아서요. 육 개월동안 반복되는 악몽이라는게 말이나 됍니까?”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그의 입에 물린 담배가 재빠르게 타들어갔다. 여자또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근데 이게 진짜 미쳐버릴 것 같거든요, 지금은 깨어있으니까 이렇게라도 말하지 꿈 꿀때는 진짜 몸이 굳어버린다니깐요. 아 진짜, 무서운건 질색이라서 공포영화도 못보는데….”

“그래서?”

그러자 남자는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 쳤지만, 이내 담배를 다시 빨아들이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어느새 남자의 담배가 끝까지 타들어가있었다. 남자는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 정신을 차리면 전 침대 위에 누워있어요. 근데 아까 말했던 것 처럼 꿈 속에서는 움직일 수 가 없어요. 몸이 굳은 것 처럼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다니깐요. 근데 가장 엿같은게 뭔지 아세요? 눈도 못 감는다는 거예요. 미칠듯이 무서운데, 눈도 안감겨요. 칠흑같이 어두운 창문 밖을 계속해서 바라만 보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눈도 못감고.”

남자가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설명을 계속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여자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는 건 이번이 처음일 테니까. 남자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였다.

“그렇게 꿈 속에서 몇 시간동안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말이죠. 너무 생생해요. 꿈 인데, 사람이 어두운 곳을 처음 볼때는 바로 보이지 않잖아요. 그리고 보다보면 눈이 익숙해져서 어두운 부분이 조금씩 보이고. 그런데 이 현상이 꿈 속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천천히.”

남자는 여자에게 담배 한 개비를 더 줄 것을 요구했다. 여자는 순순히 담배갑을 열어 한 개비를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곧바로 불을 붙히지 않고,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하얀 담배를 바라보며 또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여자는 알 수 있었다.

“꿈이 처음 시작될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창 밖에서 천천히 뭐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 씨발 지금 생각해도 온 몸이 오싹거리네, 그게 뭔지 아세요?”

남자는 욕설까지 섞어가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여자는 담배만 뻑뻑 피워대며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남자는 신경질이 나는 것인지, 단지 가려운 것 뿐인지 연신 뒷머리를 긁어댔다.

“사람이였어요, 사람. 거꾸로 메달려있는 사람말이예요. 그 썅년이 창문 모기장 밖에서, 허공에서 거꾸로 메달려서 절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응? 얼마나 개같은 상황인지 모르실거예요. 눈동자도 안 움직여요, 그냥 그렇게 몇 시간동안 허공에서 거꾸로 메달려있는 그 썅년이랑 눈을 마주치고 침대에서 누워있어야되요. 씨발, 그리고 또 좆같은 게 뭔지 아세요?”

그 말에 여자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것이 말해보라는 제스처라고 생각한 남자는 이윽고 담배에 불을 붙히며 입을 열었다.

“그 년이, 그 썅년이 절 보면서 웃고있다는 거예요. 입이 찢어지듯이. 그리고 허공에서 손을 들어올리면서 창문 모기장을 긁어대요. 그 소리가, 씨발 그 소리 때문에! 미쳐버릴거 같아요….”










*










남자, 민식은 자신이 이 지옥같은 악몽을 꾸기 시작한 날이 언제인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도 말이다. 그건 지금으로부터 대략 육개월 전의 일이였다. 그 날은 먹구름이 끼어있던 탓에 아침부터 하늘이 어둑어둑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분명 그 전날의 날씨예보에서는 비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는 학용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판매하기 시작한 신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왔기에, 최근에는 그 문제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아주 잦았다. 그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낮 보다 한층 더 어두워진 밤거리를 거닐며 그는 모자를 고쳐썼다. 분명 검은색 모자였을 것이다.

머리는 이틀에 한번 감는게 두피에게 가장 좋은 습관이다,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모자를 쓰는 일이 잦았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귀차니즘에 찌든 자신의 행실을 좋은 단어로써 무마시키려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반 쯤 떡진 머리를 항상 모자로 가리며 생활했었다.

그는 가려운 뒷머리를 긁으며 집 안에 들어서며, 오늘은 머리를 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현관에 들어서는 그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라면 아내와 아들이 있어야 할테지만 오늘 하루 동안은 두 사람 다 외갓집에서 자고온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반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생각보다 쓸쓸하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신발을 벗기 전의 그는 당장에라도 욕실로 달려가 씻고싶은 생각이 강렬했지만,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자 그의 몸은 자동적으로 침대를 향했다. 천근같이 무거운 몸둥이를 침대 위에 던진 그는, 땀이 흐르는 자신의 이마를 향해 손부채지를 하며 습관적으로 휴대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휴대폰 화면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하다고 느껴졌지만, 그는 지금 이 포근한 유혹을 떨쳐낼 배짱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침대에 기대어 눞히고는 멍하니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다 문득 그는 시선을 창문 밖으로 옮겼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바깥은 마치 지금 자신이 누워있는 이 공간과는 다른 세계로 느껴졌다. 모기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라져있는 두 가지 세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깥을 계속 바라보자, 무언가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듯 했다.

그리고 그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모자를 벗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가 계속 간지러웠던건 바로 그 때문이였을리라. 그는 자신의 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였다.

창문 밖을 향해 있던 그의 두 눈동자 속의 동공이 일순간 엄청난 크기로 팽창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힘없이 놓쳤다. 분명 아주 짧은 시간이였다, 눈을 통해 비춰진 그 광경이 그의 뇌 속으로 들어가 인식되는 그 순간, 그는 집이 떠나갈듯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순간, 고깃덩어리가 터지는 기분나쁜 소리가 모기장 너머로 들려왔다.

퍽 -

그의 몸은 마치 석상처럼 굳어버린 듯, 아까와 동일 자세로 누워있었고, 그의 두 눈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모기장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는 분명히 봤다. 앞으로 평생 잊혀지지 않을 거라고 판단되는 엄청난 사건.

지금 모기장 너머, 창 밖으로 여자가 떨어졌다.








*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 건 해가 뜬 다음 이였다. 그리고 그는 그때까지 한 숨도 자지 않고 있었다. 아니, 잘 수가 없었다. 그는 몇 시간 전과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부분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기장 너머의 그 부분.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는데, 몸이 불편하다거나 하는 기분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멍할 뿐이였다. 머릿속은 패닉 상태가 되어있었다. 분명 여자가 떨어졌다. 그의 집보다 높은 층에서, 그것도 머리가 아래를 향한 채. 그는 자신의 덜덜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람이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방법으로 자살을 한다면, 그리고 머리가 땅을 향해 떨어진다면 땅으로 추락할 시의 바람과 중력에 의해 자동적으로 웃는 표정을 짓게 된다고. 

그래, 그게 전부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여자는 분명 자신을 향해 웃음짓고 있었다. 바람과 중력에 의한 웃음이 아니였다. 찰나의 시간이지만, 모기장의 그 작은 구멍 틈 사이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웃음지었다. 마치, 술래잡기를 하던 술래가 숨어있던 상대방을 찾았을때 지을만한 웃음이였다. 바람과 중력이 더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건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봤던 웃음중 가장 크고, 가장 섬뜩한 종류의 웃음이였다.

떨어진 게 정말로 사람인지, 자신이 너무 피곤해서 헛 것을 본게 아닌지 같은 생각은 방금 전 들려왔던 사이렌과 사람들의 비명 때문에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사이렌 소리를 듣자, 그는 팔려있던 정신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아직도 모자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그 날 밤 부터 그 빌어먹을 꿈을 꾸기 시작했다.






*






죽은 여자는 아직 학생이었던 듯 했다. 고등학교 삼 학년의 어린 아이였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소문은 천천히 퍼져 그의 귀 까지도 들려왔다. 정확한건 아니였지만, 소문에 따르면 그녀가 자살한 이유는 ‘성폭행’ 이였다. 

그것 외의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는 경찰도 아니였고, 아파트 내부의 CCTV를, 그것도 경찰의 손에 들어가 있는 부분을 마음대로 볼 권한도 없었다. 그는 단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있는 아줌마들의 대화 내용을 엿듣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지금 중요한 건 그녀가 죽은 이유가 아니였다, 왜 그녀가 자신의 꿈에 나타나는가. 오로지 그것만이 목적이였다. 맨 처음 꿈을 꿨을땐 그 당시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꾼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꿈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고, 꿈 속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은 점점 더 공포스러웠다.

매일 밤이 지옥같았다. 깊은 잠에 들면 꿈을 꾸지 않는 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면제를 먹은 적도 있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매일 밤마도 그를 반기는 그녀의 손짓은 날이 갈수록 해괴해져만 갔다. 온 몸이 피멍이라도 든 듯 시퍼런 몸뚱아리로, 손톱으로 모기장을 긁으며 허공에 거꾸로 메달려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그녀의 손과 무릎은 이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각도를 향해 꺾여있었고, 입은 귀 끝까지 찢겨진 상태로 그를 향해 웃고있었다. 미칠 것 같았다. 아예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해봤자, 다음 날 꿈 꾸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였다. 누구에게 쉽사리 말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전긍긍하다 겨우 알게 된 곳이 바로 이 여자였다.







*






“어떻습니까, 쫒아낼 수 있으신가요?”

긴 이야기를 마친 민식은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자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피워댈 뿐이였다. 그는 여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럼’ 이라고 대답해주길 바랬다. 그렇지 않으면 안됀다. 

“후우….”

여자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녀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다음 말없이 앉아 그를 바라볼 뿐이였다. 

“왜… 그러시죠? 쫒아낼 수 있으시냐구요.”

그가 말하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안돼요, 전 이대로는 못산다구요. 매일 밤마다 꿈 속에서 저를 찾아오는 이 년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요, 근데 죽지도 못한다구요!”

그의 말에 그녀는 또 다시 담배갑을 꺼내었다. 하지만 담배갑 안에 담배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르켰다. 그는 자동적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쫒아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은 자기 머리 위에서 멈췄다.

“이게 무슨 뜻이죠?”

그가 묻자,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처음부터 있었어.”

“네?”

“네가 말한 그 여자말이야. 네가 설명할 필요도 없었어. 네가 여기 들어오는 순간부터 보였거든. 네 머리 위에 거꾸로 메달려있는 그 여고생.”

그녀의 말에 그는 흠칫하며, 굳어버린 듯 말없이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아직 몸이 벌벌 떨리는 단계는 아니였다.

“내가 지금까지 네 욕 섞인 얘기를 듣고있었는 줄 알아? 나는 네 머리 위에 메달려있는 저 여자애의 얘기를 듣고있었어.”

“그게 무슨….”

“웃겼어, 네가 열심히 지껄이는 말이랑 이 여자애가 떠드는 말이랑 전혀 달랐거든.”

그녀가 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지금까지 참아왔던 감정을 한번에 폭발시키는 듯, 여전히 자기 머리 위로 시선을 향한채 목청을 높히기 시작했다.

“입 닥쳐! 미친년이 노망이라도 났어? 귀신이 보인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넌 그냥 내 꿈에서 그 미친년이 안 나오게 할 방법만 설명하면 됀다고 이 썅년아!!”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그는 계속 자기 머리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옮긴다면 예의 그 여자아이가 나올 것 같아 무서운 걸까, 아니면 이미 그 여자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니, 그럴 순 없어. 죗값은 받아야지.”

“이 미친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네가 말한 성폭행범, 네가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어. 그도 그럴것이 네 머리통 위에 있는 애가 시끄럽게 떠들어댔거든. 네가 범인이라고.”

“이 년이 단단히 미쳤군. 사람보다 귀신말을 더 믿는다고?”

그의 말에 그녀는 그의 손에 들려있던 담배 개비를 빼앗아 자신의 입에 물며 말했다.

“살아있으면 거짓말한 이유가 있어도, 죽으면 그럴 이유가 없거든. 얘가 말하더군. 네 말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너 사실은 회사에서 해고당한지도 꽤나 오래 됐다면서? 그 날 먹구름이 끼었다는 것도, 네가 회사에서 늦게 돌아왔다는 것도, 게다가 아내랑 아들이 외갓집에 간 것도 거짓말이고. 그러니까 하루가 지나도 가족들이 안 돌아왔지. 그럼 지금 그 가족들은 어디 있을까?.”

그녀가 슬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런 씨발! 이 미친년!”

그리고 그 순간, 민석은 알수없는 신음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보던 그의 동공이 점점 팽창했다. 그의 눈에 그 여자 아이가 보이는 듯 했다.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이, 어둠 속에 묻혀있던 물건을 비추듯이, 비어있는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손과 발을 경련하듯 떨어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마치 잠에 드는 것 과도 같이 그가 기절했다. 그가 기절하자,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의 머리 위를 쳐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여자애의 이름을 알려줄까?”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녀의 다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리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고, 그녀의 긴 머리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완전히 허공에 거꾸로 메달린 그녀는 그의 귀에 가져다 댄 입을 조용히 속삭였다.







*











남자, 민식은 자신의 생활이 언제부터 꼬여갔는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그가 자신이 일해오던 회사에서 해고당했던 그 날일 것이다. 먹구름이 짙게 끼어 아침부터 어둑어둑하던 바로 그 날, 그 날 민식은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죽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실수였다. 울컥하고 치민 화가 불러일으킨 아주 잔혹하고 비극적인 실수. 흘린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있었다. 그렇기에 그 또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한 상태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바로 자살이였다. 자신에게는 살아갈 용기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직도 아내와 아들의 시체를 화장실 욕조에 쳐박아둔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민식은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다음엔 20층 버튼을 누르고,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나가서 뛰어내리면 모든 것이 될 터였다. 그렇게 마음먹은 그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그는 그 안에서 그 소녀를 만났다. 어짜피 죽음을 각오한 그가 그 소녀를 보고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어쩌면 인간으로써, 남자로써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20층이 아닌, 이름조차 모르는 소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날 새벽 2시에, 그와 그 소녀는 모기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시 얼굴을 마주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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