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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언니 4] 벽 속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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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친척 중에는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할머니나 큰아버지를 조르면 언제든지 이야기 해주셨죠.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입담꾼은 연상의 사촌 언니였어요.

 

이 언니는 평소에는 과묵하지만, 흥미를 느끼면 이야기를 해줬어요.

조용한 어조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무서운 부분에서 저를 겁주거나 했지요.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어디 갔다가 저녁쯤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촌 언니와 같이 걸어가면서 들은 이야기에요. 

 

사촌 언니는 어렸을 때, 주택가에서 살고 있었어요.

언니의 집 주변에는 민가나 상점이 줄지어 서 있었고

항상 소음이 들렸다고 해요.

 

정말 이것저것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정작 어린이들이 놀만 한 곳은 없었다고 해요.

사촌 언니는 매일 이리저리 돌아 다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터널을 발견하게 됐어요. 

무성한 숲 속에 홀로 남겨진 터널. 

사촌 언니는 호기심에 들어가 봤지요.

터널의 길이는 10미터도 채 되지 않았어요.

 

터널 내부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서

더운 날이라도 터널 안은 어둑어둑하게 싸늘했어요.

전철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소리 빼고는

마치 바깥세상과 격리된 것 같이 조용했기 때문에

사촌 언니는 그곳을 자신만의 비밀 장소로 정했어요.

 

그런데 그 터널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사촌 언니가 터널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어도 밖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네요. 

그리고 터널 안에 있으면 항상 시간이 빨리 지나는 것 같아서

해 질 무렵을 알리는 시청의 종소리를 무심코 듣게 되는 일도 자주 생겼다네요. 

 

어느 날 터널 벽에 기대고 있었던 사촌 언니가

어디선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 

몸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벽에 기대니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벽에 귀를 대어보니까, 조금 전보다 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대요. 

 

여자가 남자에게 빠른 어조로, 웃으면서 말을 걸고 있었다고 해요.

남자도 가끔 웃으면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요. 

열심히 듣는 동안에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고

언니는 바로 터널에서 나왔대요.

 

다음 날 터널에 간 사촌 언니는

곧 바로 벽에 귀를 대어봤어요.

역시 들리더래요. 어제와 똑같은 남녀의 목소리.

오늘은 남자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여자가 웃고 있었대요. 

말하는 것을 전부 다 알아들을 수 없던 것이 참 안타까웠다네요.

그 후로, 사촌 언니는 날마다 터널에 가게 되었어요.

 

벽에서 들려오는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연인 관계에 있는 것 같았대요.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애정이 더욱더 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어째서 이런 터널 벽 속에서

남녀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건지

이상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어린아이답게 그냥 그런 장소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을 했어요.

여자는 일을 그만두고 주부가 된 것 같았어요.

그리고 가끔은 말다툼을 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행복한 것 같았어요.

 

남의 일이었지만, 그것을 계속 지켜봐 온 사촌 언니는

자기 일처럼 기뻤다고 해요. 물론 아무리 시도해봐도

대화의 사소한 부분까지는 알아들을수 없었지만요. 

하지만 계속될 것만 같던 그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요.

 

여자가 임신했는데, 남자는 아직 아이를 원하지 않았고

여자는 아이를 원했던 거지요.

초등학생이었던 사촌 언니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이나 괴로웠대요.

 

여자가 얼마나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지 있었기 때문이지요. 

조금씩 그 두 사람에게 어두운 구름이 살며시 다가오더니

마침내 그들의 생활 전체를 덮어버렸어요.

여름의 폭풍처럼 순식간에 말이죠.

 

사촌 언니는 두 사람의 관계가

원래대로 돌아가길 바랐어요.

그래서 더더욱 귀를 귀울었지요.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말다툼과

비탄의 목소리뿐이었어요.

 

어느 날, 평소처럼 터널 벽에 귀를 붙이니까

여자 목소리만 들려왔다고 해요.

훌쩍거리며 우는 목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자세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이 때문에 자신들의 행복이 무너진 것

일을 그만둬서 친구가 떠나가게 된 것

그리고 계속해서 남자를 저주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네요.

 

사촌 언니는, 어둑어둑한 부엌에서

혼자 저주의 말을 퍼붓는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고 몹시 떨었다고 해요.

그날을 끝으로, 터널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어요.

 

며칠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촌 언니는 그들의 목소리를 서서히 잊어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이불을 덮고 자려던 사촌 언니의 귀에

확실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대요. 

그들의 목소리. 확실하게 들었다네요.

 

겁내면서 베개에 귀를 갖다 대보니까

여자가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남자의 욕소리도 들렸고요.

그런데 베개에서 귀를 떼니까 안 들렸어요.

 

사촌 언니는 베개와 터널 벽이 서로 연결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사촌 언니는 무서워서 잠도 못 자고, 그대로 천장만 바라본 채

밤을 지새웠다고 해요. 그리고 다음 날.

사촌 언니는 무서운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베개뿐만이 아니라, 뭔가로 귀를 눌러 덮을때 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해요! 

심지어 자신의 손으로 귀를 덮어도 들렸지요. 

그리고 마침내 다른 목소리도 섞여 들리기 시작했어요. 

때로는 노파의 목소리가, 때로는 소년의 목소리가 제각기 들렸다고 해요.

그리고 그 대화의 내용은 전부 끔찍한 내용이었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귀를 막을 수 없게 됐어.]

 

사촌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멈춰 섰어요. 

벌써 사촌 언니와 저의 집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와 있었어요.

 

[지금도 들리나요?]

 

저는 물었어요.

 

[계속 들리고 있어. 요즘에는 귀를 막지 않아도 들리게 됐어. 그래서 이렇게라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야만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머릿속이 온통 목소리로 넘쳐나기 때문에..]

 

사촌 언니는 이야기를 끝내고

안녕이라고 말하고 집으로 갔어요.

어느새 주위는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어요. 

집에 가보니까, 저녁밥 짓는 냄새가

떠다니기 시작하더라고요.




괴담돌이 http://blog.naver.com/outlook_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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