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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 전봇대
눈을 뜨자, 낯선 무늬의 천장이 있었다.

"여긴… 어디……?"

몸을 일으키자 보인것은 낯선 침대, 낯선 책상 그리고 낯선 방.

나는 이런 방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난 왜 이곳에 있는거지?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의문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침대의 오른쪽에 위치한 창문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는 본적이 없는 기이하고 낯선 풍경이 있었다.

높이는 약 3,40층?

너무 높아서 대략적인 추측만 가능할 정도 였다.

그러한 높이에서 내가 바라보고 있는것은 우뚝솟은 회색의 가느다란 기둥들.

하늘 끝까지 치솟은 회색 기둥들은 저 멀리 까지

드문드문 솟아 있었고 그 수는 약 20여개.

거기에 땅은 지평선 너머까지 온통 초록색의 나무들로 밀림을 이루고 있다.

대체 어느 나라의 어느 곳에 이런 풍경이 존재할까?

30층 정도의 높이에서 보이는 거라곤 밀림, 하늘, 기둥 단 세가지였다.

이 풍경을 간단히 묘사하자면,

흰 스케치북을 가로 방향으로 절반 나누고,

아래에 초록색 물감을, 위엔 하늘색 물감을 칠한 뒤 그 위에

가느다란 회색 세로선을 몇개 긋기만 하면 된다.

정말 그것 뿐이었다.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예 열 수 있게 만든 창문이 아니었다.

하긴, 초고층 건물일 경우 창문의 개폐가 불가능하도록 설계되기

때문에 이상할 것도 없다.

어쨋든 난 열리지 않는 창문의 낯선 풍경을 뒤로 하고 이 방을 나서기로 했다.

방을 나오자 상당히 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 왔다.

고급스런 가구와 최신형의 가전제품들로 꾸며진 거실은

누가 보아도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것이었다.

"누구 없습니까!"

대답은 없다.

다른 방들을 뒤져 보자 두가지 사실이 확실해 졌다.

첫째로 이 집엔 나 혼자뿐이란 것.

둘째로 난 이 집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

대체 날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일까..

배가 고프다.

'뭐라도 찾아 먹어야 겠어..'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가서는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한다.

역시나 냉장고도 상당한 고급품.

하지만 중요한 것은 냉장고가 아니라 냉장고 안의 음식이다.

"냉장고가 아깝군.."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생수병 몇개와 가지런히 쌓여져 있는

수십개의 칼로리 바 뿐이었다.

칼로리 메이트를 대충 먹어 치우곤 생수통의 물을

병째로 집어들어 마신 나는 배가 불러 오는 것을 느끼며 또 다시 의문에 빠진다.

일단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사실 더듬을 것도 없지만.

언제나 처럼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자기 전에 친구와 영양가 없는 문자를 주고 받았던 것 까지

기억 날 정도니 어제의 기억은 틀림 없으리라.

그러나 일어나 보니 나는 내 방의 침대가 아니라

본 적도 없는 집의 본 적도 없는 침대에서 깨어난 것이다.

밤 사이 누가 날 데려나 놓은 건가?

우리 동네 근처엔 이렇게 높은 아파트가 없다.

창 박의 이상한 풍경도 우리 동네에선 찾아 볼 수 없다.

동네 단위 이상의 거리를 이동하는데 아무리 자고 있었다 해도 내가 모를리가 없다.

어쩌면 기절 시켰거나 수면제를  썻을지도..

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겠지.

아니 애초에 동기가 없다.

그들이 사용한 수단이야 알 바 아니고 그들의 목적을 아는게 중요했다.

돈을 노린 납치?

어떤 멍청이가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만만한 어린아이들을 놔두고

집에서 얌전히 자는 고등학생을 노리는 지는 몰라도..

게다가 납치한 대상을 이런 고급스런 아파트에 가두는 놈은 없다.

그러고 보니 난 갇힌건가?

왜 나가려고 시도조차 않하고선 갇혔다고 멋대로 단정지은거지?

당황스러운 상황에 부딪히니 머리도 매끄럽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집이 넓었던 터라 현관문을 찾는데도 꽤 애를 먹었는데,

역시나 라고 해야 할지, 문은 잠겨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무심코 베란타 쪽을 바라 본다.

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밀림 사이로 높이 솟은 회색 기둥이 세워져 있는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저 회색 기둥들,

전봇대를 닮았네."


'전봇대라..'

확실히 전봇대를 닮았다.

전봇대 치곤 비 정상적으로 길고 전선 또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회색의 기둥이란 점은 역시 전봇대를 생각나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 나는 갇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곤 묘하게 긴장감이 없는데,

아마 내가 갇힌 곳이 이런 고급스런 아파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할 일도 없어 소파에 누워 TV를 켠다.

TV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벽걸이형에 슬림하면서 화면은 커다란 것이

비싼것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리모콘을 이리 저리 눌러 대니 영화 채널이 눈에 띄었다.

영화채널이니 당연히 영화를 상영중이었고,

딱히 볼것도 없어 보았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

눈을 떳을때 집안은 상당히 어두워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 영화를 보다가 잠든듯.

보통 영화를 보면 납치범이란 놈들은 납치된 사람이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 하던데, 날 납치한 놈들은 뭐하는 놈들인지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내가 납치당한건지도 불확실 하지만.

칼로리 메이트를 씹으며 집안을 구석구석 둘러보기 시작한다.

범인들의 지령이 담긴 쪽지나 녹음기를 발견하는,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다.

내가 찾아본 범위 내에선 이 집엔 내가 기대하던 물건은 없었다.

대체 나보고 어쩌란 건지..

일단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다음날-

시계가 없어서 몇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해가 높이 떠 있는걸로 봐선 상당히 늦잠을 잔 모양이다.

벌써 물려버린 칼로리 메이트를 하나 입에 물곤 TV를 켠다.

TV말곤 재미있는것이 하나도 없는 이 집에 온지 딱 하루가 지났다.

이쯤 되면 범인들이 나와서 돈이든 뭐든 요구해야 할 텐데 그런것도 없고...

인터넷에서 몇번 해본 방탈출 플래시 게임이 생각 났지만

역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몰래카메라가 아닐까도 생각해 봤는데..

'음...'

몰래카메라는 보통 연예인들을 대상으로하는것 아닌가.

친구들이 준비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말이 안된다.

이런 값비싼 아파트를 빌리는 비용으로 시작해서 무엇보다

나에게 몰래카메라를 시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현실적인 이유를 대가며 하나하나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처한 상황부터가 비현실적이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는 있는 것이다.

몰래카메라 라면 분명 어딘가의 카메라로 날 지켜보고 있겠지.

'일단 말로 해볼까.'

그리고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이쯤되면 그만 할 때도  됬잖아? 몰래카메라인거 다 아니까 빨리 나와서 나좀 내보내줘!"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몰래카메라를 시도하였을 법한 친구들의 이름을 생각하곤

계속해서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야! 000, 니가 한거 다 아니까 이제 그만 하고 나좀 꺼내 달라고!"

아직까지 대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역시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수단을 써보기로 했다.

나는 침대가 있는 방에 들어가서 아까 봐두었던 크레파스 세트를 가지고 나왔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게 몰래카메라라면

이집은 몰래카메라를 위해 빌린 집 일것이다.

그런 집에 크레파스로 낙서를 하려고 하는데 안나오고 배길 수 있을까.

유치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붉은색 크레파스를 집어 어딘가에 있을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머리 위로 치켜 들었다.

이제 경고는 주었다.

잠시 후 나는 붉은색 크레파스를 벽에다 마구 칠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 의미 없는 곡선이나 불규칙한 도형들을 그리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간단한 그림이나 도형들을 그려나갔다.

곧 집안은 온통 붉은색 크레파스로 도배되었고 이내 나는 기운이 빠져

소파에 드러누웠다.

'이래도 아무 반응이 없는것을 보면 몰래카메라 라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인가.'

지금까지 내가 한 짓이 바보같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울음으로 바뀌었다.

너무 무섭고 한편으론 억울해서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러는 것인지..

집에.. 가고 싶다...


눈을 떠보니 소파 위였고 밝은 아직 밝았다.

잠깐 졸은건지 아니면 하루를 꼬박 잔것인지는 모르지만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세안을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통과할 때 왠지 문이 작아진 느낌이 들었는데...

스치는 수많은 생각중 하나로 치부하고 그대로 흘려버린다.

간단한 세안을 마치고 부엌으로 가서 냉수를 들이키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듯 하다.


".....?"

물을 마시는 동안 아무렇게나 둔 내 시선이 향한곳은 냉장고 옆 커다한 액자.

정확히는 액자 틀 바로 옆이지만..

사람은 가끔 일부러 기억하려고 한것도 아닌데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별로 인상깊은 사건도 아니고 기억하려고 애쓴것도 아닌데,

그냥 기억에 남는 경우.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분명 여기에 별 모양으로 낙서를 해놓았는데."

수 많은 낙서를 했지만 여기에다 별 모양 낙서를 한것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은 말끔히 사라져 있다.

"착각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액자를 들어내 보았지만 액자 뒤편에도 낙서는 없었다.

뭔가 의심스럽지만 별이 살아서 도망갈리도 없고

내 착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분명 난 저곳에 별모양의 낙서를 한적이 있다.

'…뭔가 이상해'

그 미심쩍은 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소 되었다.

바로 오늘 아침에 알게 된 일이었다.

이곳에 온 후로 내 침대는 거실의 소파로 정해졌고,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화장실을 갔는데,

평소보다 좁았다. 잠이 덜 깨서 그런건가 했지만 역시 좁았다.

화잘실 문이 좁고, 화장실 내부도 좁다.

화장실 문이 줄어들었고, 화장실 내부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벽이 수축되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부터는 그야말로 순식간 이었다.

처음부터 날 이런 목적으로 가둔것인가?

왜 벽이 줄어들기 시작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밤이면 밤마다 벽이 줄어들어감과 동시에 비좁아지는 공간에 끼어,

가구들이 뭉게지는 소리를 들으며 공포에 떨어여 했다.

너무 무서우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이다.

벽이 줄어드는것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며 보냈다.

밤에는 TV의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는 공포로 기절하기 전까진 잠들 수 없었다.

그렇게 벽은 쉬지 않고 나를 조여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줄어들대로 줄어든 벽은 집안의 가구들을 무참이 뭉게버렸고

다른 방으로 갈 수 있는 문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가구들의 잔해에 둘러 쌓여 한평 남짓한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자살도 생각해 보았지만 겁이 많은 나로선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은 불가능했다.

나의 목숨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이런 곳에 끌려와 이런 엽기적인 방법으로 죽어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제 나에겐 어떠한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것은 그냥 죽음을 기다리는것 뿐...

가구들의 잔해 사이로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이상한 풍경.

처음 봤을때 이후론 신경도 쓰지 않았던 바깥 풍경.

전봇대를 닮았다고 생각해 버린 회색 기둥.

그렇게 전봇대를 바라보던 중-

한가지 기분나쁜 상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혹시,

이 아파트가 줄어들면 저 전봇대들 처럼 가늘어 지는게 아닐까?

어쩌면 저 전봇대들의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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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카시야스
  • 2012.04.04

어쩌라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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