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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이상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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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갈게요. 나오지 마세요."

 

깜빡 선잠에 빠졌던 어머니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리고 가방을 들고 일어나는 딸의 뒷모습을 보았다. 떨쳐내지 못한 몽롱한 잠기운이 나른하게 발목을 붙들었지만 어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딸을 배웅도 없이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으응? 벌써 가게?"

 

딸은 구두를 신다가 말고 돌아보며, “나오지 말래두.”하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어머니는 개의치 않고 마루에서 내려와 신발을 꿰신었다.

 

“예주야. 주말마다 내려오긴 힘들지?”

“엄마가 서울로 올라오시라니까. 이제 아빠도 안계신데 굳이 여기 머물러야할 이유가 있어요? 매번 이렇게 내려오기엔 차비만 해도 만만찮구.”

“너도 네 오빠도 다 여기서 낳고 키웠는데……너희 아빠도 여기서 돌아가셨구. 내가 떠나면 보나마나 거미줄이 치렁치렁할 텐데.”

“……노력해볼게요.”

 

또각또각.

흙길을 걷던 딸의 신발이 시멘트길로 접어들면서 소리를 내었다.

 

“감 열리면 따서 보내줄게!”

 

그녀는 잠시 돌아서서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는 뒷마당에 서있는 나무를 노려보듯 흘겨보곤 미련 없이 그곳을 벗어났다.

 

그녀는 이유 없이 저 나무가 싫었다.

유년기 최초의 기억으로 더듬어 올라가도 저 나무는 저 자리에 서있었다. 검푸른 이파리를 가만히 흔들면서.

 

그녀의 조부는 남달리 식물에 대한 애정이 깊었고, 마당에 나무를 몇 그루 옮겨 심었다. 그러니 저것 역시 마당을 차지하는 나무 중에 하나일 뿐이다. 온종일 양팔을 벌리고 광합성을 하기에 바쁜 나무 주제에 무슨 위해를 가할까.

 

 열 살 무렵 감나무에서 떨어져서 다친 기억 때문에?

 

하지만 그녀가 떨어진 건 저 나무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애지중지 가꾸는 감나무였다. 이 이유 없는 불쾌감을 나무라는 종에 대한 증오심으로 포장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봄이면 벚꽃구경을 갔고 가을이면 단풍잎을 밟으며 산에 오르기도 했다. 게다가 매년 어머니가 보내주는 감을 맛있게 먹어치운 것도 그녀였다. 유독 저 나무만, 무슨 종인지도 모를 저 기묘한 나무만이 강렬한 불쾌감을 안겨 주었다. 마치 집요한 시선을 받는 기분이었다. 만약, 나무한테도 시선이란 게 있다면 말이겠지만.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흩날렸다. 조금 전에 샤워를 마친 탓에 은은한 샴푸 냄새가 퍼져나갔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한동안. 그녀를 훑고 지나간 바람이 나무의 검푸른 잎을 흔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나무가 손을 흔들며 그녀를 배웅하는 듯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백예주.

나무의 맹목적이고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최근에서야 알아차렸지만 나무의 소리 없는, 그러나 집요하고 맹목적인 사랑은 계속되어 왔다. 그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감나무에서 떨어지던 날, 나무에 기대어 엉엉 울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사랑이었다.

나무는 그녀의 성장과정을 면밀하게 지켜보았으므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백예주라는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또한, 나무는 예주씨가 감나무에서 떨어지던 순간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이었다.

 

감나무는 원래부터 성질이 고약한 놈이었다. 날아드는 새도, 벌레도 모두 떨궈내기로 유명했다. 그런 놈의 몸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어 올라갔으니, 감나무가 가만 내버려두는 게 더 이상했다. 예상대로 감나무에서 떨어진 예주씨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쉴 곳을 찾아 나무의 그늘 아래로 들어왔다. 그리곤 처음으로 나무의 몸에 기대어 앉았다. 그것이 최초의 접촉이었다. 나무는 그 접촉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향긋하며,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곧 예주씨의 어머니가 딸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 나왔다. 나무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떠났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의 따스한 체온은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몽글몽글 따뜻한 기운들이 나무의 차가운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을 부드럽게 물들였다.

 

그날부터 나무는 이 개구쟁이 소녀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나무는 사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수십년의 세월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무슨 종인지, 어떤 향기가 나는 열매를 맺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소녀는 무럭무럭 자라나 버스를 타고 멀리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커다란 짐가방을 들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렸다. 소녀의 머리칼에서 풍겼던 향기와 거친 나무껍질을 쓰다듬던 손길, 그리고 그녀가 흘린 눈물의 짭쪼름함을 기억하면서.

 

그녀가 기차에서 내려서 고향집으로 오는 버스에 오를 즈음부터 나무의 축 늘어진 이파리에 생기가 흘러 넘쳤다. 바람결을 따라 그녀의 향기가 그곳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장기간의 부재 끝에 귀가하는 주인을 반기는 충견의 그것과도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물론 나무한테는 맹렬히 흔들 꼬리도, 다리에 매달릴 앙증맞은 앞발도 없었지만. 전에 없이 생기 있게 빛나는 나뭇잎으로 그 모든 것들을 대신할 뿐이었다.

 

나무는 예주씨를 사랑했다.

나무 스스로도 자신이 이상한 나무임을 알았지만,

나무의 사랑에는 이유도 변명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데는 이유가 없었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고 그것을 깊은 곳에 간직할 뿐이다. 더구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로서는 그의 유일한 장기인 인내심을 발휘해 그 사랑을 이어나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어느 날 예주씨의 어머니가 딸에게 보낼 감을 따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탐스러운 주홍빛 감을 하나하나 골라서 정성스레 포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무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 되기에는 가능성이 희박했다. 게다가 조금 위험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 다음해, 나무는 생애 최초로 열매를 맺었다. 크기는 작지만 탐스러운 열매였다. 누가 봐도 한번쯤 입에 넣고 살살 굴려보고 싶을 열매였다. 나무는 작은 열매를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감추고 그녀가 고향에 돌아오길 기다렸다. 내가 움직일 수 없다면 그녀를 내 곁에 머물게 하면 된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면서.

 

보름이 지났다.

예주씨는 이번에야말로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가고 말리라 다짐을 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약혼자가 함께였다. 그들을 팔짱을 끼고 대문 안으로 들어와 흙으로 된 마당을 가로질렀다. 나무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며 나뭇잎을 힘차게 흔들었지만 예주씨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예주씨의 어머니는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엄마. 이제 결혼하면 자주 못 내려온대두? 여기서 혼자 쓸쓸하게 살 거야?”

“난 싫다.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그 순간 약혼자가 예주씨의 귀에 속삭였다.

 

“내가 설득해볼게. 잠깐 나가있어.”

 

예주씨는 밖으로 나와 마당을 거닐었다. 초가을의 밤이었고, 달빛이 밝았다. 잠시 산책하기에 맞춤인 날이었다. 며칠 전 내린 비 덕분에 풀잎들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발가락을 간질이는 촉감이 싫지만은 않았다. 안채에서 약혼자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예주씨는 그 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 나무였다. 기분 나쁜 나무.

평소 같았다면 즉시 자리를 떠났을 테지만 그녀는 웬일로 나무 가까이 바짝 다가갔다. 무언가를 발견한 까닭이었다.

 

“어?”

 

열매였다.

작고 동글동글한 열매.

 

바로 옆의 감나무는 해마다 감이 주렁주렁 열렸는데, 이 나무는 단 한번도 열매를 맺지 않았었다. 그 사실조차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런 만큼 나무가 처음으로 맺은 결실은 진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홀린 듯 손을 뻗었다. 부러 코를 대고 냄새를 맡을 필요도 없이, 근처에만 가도 향긋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열매를 입안에 넣었다. 시큼한 과즙이 입안에서 톡 터졌다. 혀에 착 감기는 달콤함이 그녀를 또 한번 움직이게 했다. 이번에는 세 개였다. 한번에 세 개의 열매를 입에 넣고 씹으니 향기가 더욱 진해졌다.

 

그녀가 정신없이 열매를 맛보고 있을 때였다. 약혼자가 마당으로 나와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일단 한번 가보시겠대. 다행이지?”

“정말? 어떻게 설득한 거야??”

 

그날 처음으로 예주씨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심에서의 삶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주일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결혼준비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던 예주씨가 갑작스레 쓰러지고 말았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명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녀는 하얀 웨딩드레스 대신 병원 이름이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곁에 머무르며 간호했지만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나무의 검푸른 이파리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마치 그녀에게 손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약혼자는 급히 호출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장모님이 되었어야 할 여인은 한켠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약혼자는 연인의 곁으로 갔다. 예주씨는 나무의 작은 열매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시큼하고 달콤한 맛. 단 한번 뿐이었지만 눈에 어른거릴 정도로, 상상하면 침이 고일 정도로 강렬한 맛이었다. 그녀의 두 눈이 몽롱하게 빛났다.

 

그 순간 예주씨는 불현듯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나무의 계획이었음을. 자신의 병이 그 열매 때문이었음을.

 

“그 나무……마당에 있는 나무…….”

 

예주씨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약혼자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을 끝맺기 직전에 그녀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 버렸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는 금세 힘없이 축 늘어졌다. 약혼자는 미동없는 연인의 손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약혼자와 예주씨의 어머니는 한줌 재로 변한 예주씨를 품에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인의 유언에 따라 마당의 나무 주변에 그녀를 뿌렸다. 일부는 땅 속에 묻어서 그녀가 영원히 이곳에서 평온을 되찾도록 하였다.

나무는 그 과정을 평소와 같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검푸른 잎을 흔들면서.

 

“어머니, 서울로 아예 옮기시죠.”

 

아들이 말했다. 예주씨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영원한 이별이었다.

 

 

 

 

 * *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길 반복했다.

 

어느 날이었다.

 

이웃의 어느 집에서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르는 리트리버가 홀연히 나타나 마당을 파헤쳤다. 그곳은 몇 해 전에 예주씨가 뿌려진 자리였다. 리트리버의 땅 파는 솜씨는 형편없었지만 촉촉한 봄비를 머금은 흙은 금세 부드러운 속을 드러냈다. 이 생후 7개월의 혈기넘치는 리트리버는 구덩이를 파고 무언가를 파묻으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주인의 등장으로 인해 꼬리를 말고 달아나야만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봄바람에 날아온 씨앗이 리트리버가 파놓은 흙 안으로 떨어졌다. 한동안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화는 흙 안에서 부터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오로지 자연만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미미했다. 따스한 햇살과 촉촉한 봄비, 그리고 평화로운 밤바람이 살랑살랑 불며 흙을 보드랍게 품어 주었다. 그동안 씨앗은 인내심있게 발아해, 곧 흙 위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발견한 나무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씨앗은 깨닫지 못했지만 나무는 알 수 있었다.

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예주씨의 따스한 온기와, 향긋한 향기, 그리고 부드러운 숨결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나무는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나뭇잎을 힘차게 흔들었다.

 

씨앗은 자신의 이름이 한때 백예주였다는 것도, 한때는 두 발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었던 인간이었다는 것도, 모두 잊은 것 같았다. 마치 나무가 아주 오래전, 예주씨를 만나기 전에 그러했듯이 말이다.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나 작은 나무가 되었고, 곧 나뭇잎과 열매가 열린 훌륭한 나무로 성장하였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은 굉장했다. 나무는 기꺼이 예주씨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을 펼쳐서 바람을 막아주었고, 태풍이 불면 듬직한 몸으로 거센 빗줄기를 막아주었다.

 

나무의 보호 아래 예주씨는 무사히 성장했다. 점점 키가 커졌고 수십년이 지났을때, 마침내 나무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높이까지 자라났다.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나무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예주씨는 나뭇잎을 갸웃거리며 나이 많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절 아시나요?'

 

나무는 인자하게 가지를 살살 흔들었다.

 

'당신이 아주 어릴때부터 지켜봤답니다.'

'아! 태풍이 불던 날 절 잡아주신 분이군요?'

 

예주씨의 가지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나무가 조심스레 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뭐하시는 거죠?'

'악수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호감을 가진 상대하고 접촉을 하곤 가지를 부드럽게 흔들죠.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하고 꼭 한번, 이렇게 악수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호기심 많은 예주씨는 나무의 가지를 붙잡았다. 바람이 불어서 가지 사이를 떼어놓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조심스레 가지를 뻗어 보기도 했다. 가만히 서있어야 되는 나무의 삶은 무척 무료했기 때문에, 예주씨는 다정한 이웃사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훌륭한 나무가 되어갈수록 차츰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었다는 것도, 이 집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까지 깨닫게 되었다.

 

나무는 맞닿은 가지를 통해서 예주씨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나뭇잎을 흔들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예주씨는 예전처럼 끔찍한 눈으로 나무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는 나무한테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맞닿은 가지가 떨어지지 않았다. 예주씨가 달아날수록 나무는 줄기를 뻗어 그녀의 가지를 꽁꽁 감쌌다. 그녀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울부짖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만 보일 뿐이었다.

 

나무는 마침내 예주씨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다.

맹목적인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어느 어린 소년이 아버지를 보며 질문했다. 소년의 손가락은 기묘하게 얽혀있는 두 나무의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이상한 나무는 뭐예요? 갈라진 거예요? 번개를 맞았나?”

 

아버지는 하하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리지라고 하는 거야. 이 나무들은 원래 각기 다른 나무였지. 이제 하나가 되었지만. 이건, 아주 특별한 사랑을 의미하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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