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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고향땅.
여기.
여기는,
휘영청 밝은 달이랑
우중충 초라한 나랑
낚시터 밖에는 없다.
주변은 온통 밤이라 검기만 하다.
어차피 전부 논, 밭, 숲이지만.
낚시터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곳인데, 망했다.
망할 이유는 널렸다.
일단 물고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손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모든 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뭐, 그렇다.
물고기가 아주 없는 것도,
손님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더 이상 밤낚시를 즐기러 오는 사람은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진정한 낚시는 밤에 시작된다고 본다.
낚시는 시간을 낚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니던 회사가 쫄딱 망하고,
두 달 치 월급도 못 받은 채 고향으로 내려왔다.
7년 만의 귀향.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고, 7년.
내 인생이었는데….
허무하게 무너졌다.
부도. 기가 막혀서 원…….
뭔가.
이제는 뭔가…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하기 싫다는 마음도, 없다.
그저 이곳에서, 세월이나 낚으며 살고 싶어졌다.
물론 사회가, 또 삶이, 또 내 목구멍 포도청이 그것을 허락할리 없지만.
그런 걸 생각 할 때면, 물고기 없는 낚시터와 나는 닮았다.
저 물 벽에 설치 된 타이어 들이 특히나 그렇다.
사람이 빠졌을 때, 사다리처럼 타고 올라오라고 만들어 놓은 타이어.
그게 얼마나 나와 닮았냐하면…
"저기요."
허익! 깜짝아!
아…이씨.
사색을 즐기는 중에, 웬 아가씨가 하나 다가왔다.
어디서 솟아났어?
놀래키려고 작정을 했나….
놀란 나는 아랑곳 않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 유료 낚시터에요."
유료라고?
여자는 은근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돈 내고 하시는 거예요?"
뭐야 이거?
오지랖인가?
주인한테 이를 건가?
내가 주인인데?
그녀는 당당했다.
뭘까 싶으면서도, 오묘하니, 망측하니,
그런 그녀를 보자니,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 끼가 발동한다.
"몰랐네요. 죄송해요?……얼마죠?"
여자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어쭈?
직접 받겠다는 건가?
받나 안 받나, 어디 한 번 보자, 하는 생각에 삼천 원을 건넸다.
그랬더니, 얼씨구나 그녀는 삼천 원을 받았다.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았다.
사기꾼인가?
삼천 원 사기?
그건 사기인가?
고소가 가능한가?
귀엽다.
뭔가, 귀엽다.
애야?
생긴걸 보면, 애 같기도 하고.
삼천 원이라니…….
그녀가 물었다.
"더 필요한 건 없어요?"
일종의 시치미인가?
연기? 연기파 사기꾼?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까지 하는지, 보고 싶었다.
"라면……되나요?"
그녀는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낚시터 관리실에 들어가, 라면을 끓여 나왔다.
어디서 났는지, 단무지 까지 곁들였다.
떡도 있다.
떡라면이다.
떡라면 좋아한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웃음은 그녀의 당돌함 때문에 나온 것 같기도,
떡라면까지 동원한 사기극 때문에 나온 것 같기도 하였다.
"왜 웃어요?"
그녀는 내 웃음이 기분 나쁜 모양이다.
게슴츠레 한 눈을 감아 뜬 그녀는 나를 위로, 그리고 아래로, 흘겨봤다.
"아니요…. 그……어……저…"
"왜.웃.냐.구.요."
여자의 목소리가 한 층 더 낮아졌다.
변명을 해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진 모르겠다.
애초에 내가 여기 주인이라고 말할까도 싶었지만,
그러면 재미없잖아?
대답했다.
"떡…그…떡…라면이네요?"
"그게 웃겨요?"
아……
이 여자는 왜 사람 기를 죽이지?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을 하더니 휙 돌아서 가버렸다.
관리실에 들어앉은 모습이 창을 통해서 보였다.
이걸 가관이라고 해야 할까.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응?……
재미있나?
아닌가? 내가 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습… 내가 골려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내가 여기 주인이라고 밝히면, 어떻게 될까?
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 혼자만 알고 있을 순 없었다.
누군가에게 전해야만 했다.
하지만 막상 핸드폰 액정을 켜고 나니, 연락할 곳이 없다.
내가 지금, 내 낚시터에서 낚시를 하다가,
웬 이상한 여자가, 내 낚시터 요금을 나에게 물었는데,
심지어는 라면까지, 그것도 떡라면까지 해줬는데,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없다니.
반 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에게라도 전화를…….
"저기요."
허익! 이…씨….
귀신이야? 왜 발소리도 없이 자꾸 다가와!
두 번을 놀라니까, 짜증이 난다.
나도 사색 좀 하자고 좀!
"왜요!"
"왜 화를 내요? 어이없게?"
어이는 내가 없다.
"아! 놀래키니까! 그러죠…."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사람 놀래킨 게 그렇게 좋은가?
그녀는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영문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물었다.
"물고기 안 잡히지 않아요?"
당연하다.
물고기가 없는데, 잡히면 이상하다.
그리고 밤이면 걔네들도 좀 자겠지.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내 물고기 어망을 유심히 보더니, 다가가선 손으로 흔들었다.
당연히 물고기는 없다. 물고기 없는 망은 휘청휘청 뼈다귀처럼 춤 췄다.
그녀는 휘청이는 망을 보며 꺄르르 웃었다.
그녀는 쪼그려 앉은 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 물고기 안 잡혀요."
나도 안다.
여기 내꺼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을 안 해요?"
"어…음…저…그…."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녀는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주 자리를 터버린 그녀를 보고 있자,
그녀가 이상해도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이 없는 것도 같고.
그걸 천진무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같고.
그나저나 이 시간에 여긴 왜 있는 거야?
남의 낚시터에.
그것도 주인행세까지 하면서.
그녀는 수수께끼를 내듯 물었다.
"여기 물고기가 왜 안 잡히는 줄 알아요?"
"물고기가 없잖아요. 딱 봐도…."
텅 빈 낚시터……나랑 닮았잖아.
아무것도 없는 걸, 들어가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아닌데?"
아닌데? 반말?
"아니라구요?"
"네."
그녀의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이 차기 시작했다.
뭔가 신이 났나?
왜 웃지?
그녀가 말했다.
"궁금하죠?"
별로.
물고기도, 관리인도 없는 낚시터에 낚시가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주인이기도 하고. 궁금하면 등신이지.
그녀는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여기 인어가 살아서 그래요. 인어는 물고기들에게 지혜를 나눠 준대요. 그래서 물고기는 미끼에 입질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녀는 낚시터 물 위에 찰랑이는 달을 보고 있었다.
아직 입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지만, 눈이 쓸쓸해 보였다.
난해한 성격인 것 같다.
실웃음이 나왔다.
인어라니.
"인어가 웃겨요?"
그녀는 다시 한 번 정색을 했다.
그녀의 굳은 얼굴을 보니, 아니요, 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그럼 왜 웃어요, 자꾸?"
"인어가 세상에 어디있어요…. 있다고 치더라도, 이런 망한 낚시터엔 없을 거예요."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망해?" 라고 했다.
"망했다고 했어 지금?"
또 반말?
"어딜 봐서 망했어?"
그녀는 나를 드세게 몰아 붙였다.
보이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수밖엔 없다.
"아니 그냥…. 손님도 없고. 썰렁하고…."
"손님 없고, 썰렁하면 망한 거예요? 인어가 사는 낚시턴데?"
손님 없으면 망한 거 아닌가?
인어가 산다고 다 땡은 아니지 않나?
내가 말했다.
"애초에………애초에 여기 인어가 왜 살아요…."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인어가 왜 살긴! 사니까 살지!"
사니까 살지가 설명인가?
아니면 설득인가?
너무나 당당히 말하니,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사는데요? 여기에?"
내가 묻자, 여자는 억울한 듯,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그녀가 말했다.
"몰라."
몰라?
뭐야 이거?
앙탈?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지 말구요. 여기 인어가 왜 살아요?"
그녀는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언제, 앙탈을 부렸냐는 듯, 기운이 펄펄 넘치는 것 같다.
꼭 만화에서 튀어 나온 거 같다.
조울증 환자 같기도 하고.
그녀가 말했다.
"궁금하죠?"
그녀에게 말린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신이 난 것처럼 말했다.
"여기 주인이 풀었어요. 아! 그러니까 전주인이."
우리 아빠?
그녀가 말을 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전 주인의 아들이 풀었다고 해야겠네요."
나?
내가 풀었어?
얼떨결에 말이 나와 버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내 말을 들은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요. 아니에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곧 빵긋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물었다.
"여기 전주인 알아요?"
안다고 해야 되나?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알면, 김철민이란 사람 알아요? 전 주인 아들인데?"
내 이름이다.
김철민.
이름도 맞을 뿐더러, 전주인 아들이라면, 그것도 내가 맞다.
여자는 물어 놓고는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는지,
그저 어깨만 으쓱하곤 자기가 할 말을 줄줄 읊었다.
"여기 전주인 아들이 어릴 때…. 그러니까, 아직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인가요?
국민학교도 안 들어갔을 때. 그 때, 그 아이가, 그러니까 철민이가, 저기 산 넘어 계곡에 놀러 갔는데,
거기에 인어가 있었대요. 그 철민이란 꼬맹이는 인어가 뭔지도 모르고,
처음 본 인어랑 친구를 하기로 약속을 했대요. 아니, 졸랐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손가락 두 마디? 정도나 되는 큰 유리구슬을 주면서,
자기 갖고 있는 구슬 중에 가장 큰 녀석을 줄 테니까, 자기랑 친구하자고. 졸랐대요.
그리곤 인어는 물에 사니까, 자기네 아빠 낚시터에 살면 되겠다고,
인어를 낚시터로 데리고 온 거죠. 이해가 가요?"
디즈니 만화 동산인가?
뭔가 내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남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내 얘기라면.
인어는 어서 날조 된 거야?
그녀가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어떻지?
내가 물었다.
"인어가 그러니까, 일종의 낚시터의 파수꾼이네요."
그녀는 끄덕끄덕 하고, 심심하게 웃었다.
웃으며 앞으로 쏟아진 머리칼을 넘기는 게, 느낌이 이상했다.
친숙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아련하다고 해야 하나?
낚시터엔 아직도 한가득 달만 차올라 있다.
넘실넘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죽어있었다.
둥둥 떠다니며, 그렇게 죽어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소식을 받았을 때,
어쩌면 아버지란,
그런 마지막이 어울리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한 사람.
쓸쓸하게 갔구나.
그런 수긍이 갔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알아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뭘 알까요?" 내가 말했다.
"여기 전주인은 그 인어한테 살해당한 거예요. 물속으로 끌고 내려갔대요. 인어가."
웃어버렸다.
인어가, 아버지를 죽였다.
그녀는 내가 그 인어에게 살해당한 사람의 아들이란 걸 모르고, 이렇게 떠드는 거겠지?
장난 끼도, 슬슬 사그라든다.
이제는 내가 그 전주인의 아들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요, 라고 말하려는데, 그녀는 내 말허리를 잘랐다.
"그 인어를요. 철민이는 새까맣게 잊어버렸어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그 아버지만, 그 사실을 기억한 거예요.
인어가, 낚시터에 있다고.
인어를 옮겨온 철민이는 그 사실을 잊고,
아버지만, 그걸 기억한 거예요…."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녀가 말을 않자, 긴 정적이 찾아왔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잊어버렸어요.
그렇게 말하니, 내가 정말 어린 시절의 친구인,
인어라는 존재를 잊어버린 듯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희한한 일이다.
그녀는 빈 그릇을 내려다 봤다.
"그거 알아요? 인어는 떡라면을 좋아한대요. 철민이가 어릴 적에,
밤마다 찾아와서 같이 먹곤 했대요. 모르죠?"
떡라면?
그녀는 빈 그릇을 줍더니, 말없이 관리실로 걸었다.
뒷모습이 외로워보였다.
그녀는 왜.
왜, 이런 말을 지어낼까.
아버지만, 인어를 기억했어?
나는 까맣게 잊고?
왜?
그게 왜?
그리고 떡라면은 또 뭐야?
그녀는 관리실에 들어가선 불을 꺼버렸다.
그녀를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이 꺼진 관리실에서, 그녀는 나올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괜히 속이 탄다.
그녀가 돌아올 것만 같아서, 기다리는 동안 담배를 한 대 필터 끝까지 피웠다.
그녀는 오지 않는다.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관리실로 다가갔다.
불 꺼진 관리실 창을 통해서 쪼그려 앉은 그녀가 보였다.
다리를 부둥켜 앉은 모습이 움찔움찔, 그래. 마치 우는 것처럼 흔들린다.
노크를 해도, 대응하지 않는다.
문을 열어도, 쳐다가도 안 본다.
저기요, 불러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녀에게 다가가니,
훌쩍훌쩍.
훌쩍하는… 그런 소리가 들린다.
묻기가 조심스럽다.
갑자기 왜 이래요?
묻는다면, 그거야 말로, 오지랖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두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내가 관리실 문 밖으로 나서려 했을 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어를 먹으면, 영생을 살 수 있대요."
관리실은 참이 높다.
거의 종아리 높이다.
한 쪽 다리는 관리실 밖에,
한 쪽은 관리실 안에.
자세가 어정쩡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나를 보고 웃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들어가서 말을 더 들어야하는지, 이대로 떠나야하는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론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커피를 권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나는 관리실에 커피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고 보면 아까는 라면에 단무지까지 대령을 해왔다.
이 여자는 뭘까.
그녀는 내게만 커피를 건넸다.
그쪽은요?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만 흔들었다.
내가 홀짝하고 한 모금을 들이키자, 그녀는 푸~ 하고 한숨을 쉬었다.
"더 들어볼래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들어볼래요? 란 말이, 들어주세요, 처럼 들렸다.
그녀가 말했다.
"전주인이 병에 걸렸어요. 암이었대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는데,
심지어는 그 아들인 철민이도 그 사실을 몰랐는데,
그렇게 전주인은 죽어가고 있었는데…
전주인은 뭔가를 달관한 것처럼.
그저, 이제 때가 됐으려니… 그렇게 체념하고 살았대요.
그런데 어느 날. 낚시터에 인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 거예요.
아들이 방생한 인어요.
인어를 먹는다면, 병을 고칠 뿐 아니라, 영생을 얻을 수 있다잖아요.
전주인은 낚시터로 뛰어들었어요.
오늘처럼 깊은 밤이었죠.
하지만 오늘처럼 밝은 달은 없었어요.
깊고 어두운 물은 전주인을 삼킨 것처럼,
삼켜서 소화를 시킨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대요.
관리자가 가로등 하나 켜놓지 않은 낚시터는 깜깜하게 침묵했어요.
찰박찰박, 가끔 그 속을 헤엄치는 전주인의 몸부림만 들릴 뿐이었구요.
낚시터 그 어두운 물속에서, 전주인은 인어를 만났어요.
인어는 그를 기억했죠.
사실은 그보다 그의 아들인 철민을 더 기억하고 있는 거였지만요.
전주인의 얼굴은 절박했대요.
인어를 죽여야 했으니까요.
전주인은 인어를 육지로 끌고 올라갔어요.
벌거벗은 인어는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손에 붙들렸구요.
전주인은 인어에게 회칼을 들이 밀었대요.
달빛도 없는데.
칼은 어디에서 빛을 머금는지,
퍼랗게, 그러니까, 시퍼렇게, 차가운 빛을 뿜더래요.
전주인이 그랬대요.
미안하지만, 내가 너를 좀 먹어야겠다. 하구요.
인어는 그제서야 전주인의 절박한 표정을 읽었대요.
인어야말로 달관한 것처럼, 전주인의 회칼이 자신을 난도질 할 순간을 기다렸죠.
인어는 눈을 감았대요. 그리곤 그랬대요.
철민이에게 안부 전해줘요.
오래 못 만났지만, 아주 옛날이지만,
혹시 나를 잊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친구도 해주고, 살 곳도 마련해줘서, 고맙다고도 전해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도 철민이에게 전해줘요. 라고 했대요.
그렇게 말한 인어는 유리구슬 하나를 꺼내서 전주인에게 건넸대요.
전주인은 그 유리구슬을 보곤 혼란에 빠졌대요.
그 유리구슬에 전주인 자신이 써준 이름이 적혀있었거든요.
철.민. 하구요.
전주인은 미친 사람처럼, 인어를 내쫓으려고 했대요.
내 낚시터에서 나가.
썩 꺼져.
다시는 내 눈 앞에도, 철민에게도, 나타날 생각하지마.
인어는 그게 싫었던 거예요.
철민이는 인어에게 유일한 친구인걸요.
그래서 인어는 낚시터 저 밑까지 도망을 쳤대요.
전주인이 자신을 잡을 수 없도록. 저 밑까지.
그게 그를 죽이는 행동이 될 줄도 모른 채.
전주인은 인어를 잡기위해 다시 낚시터로 뛰어 들었대요.
숨이 멈출 때까지 전주인은 그 검은 물속을 뒤졌대요.
인어를 잡기 위해서.
그게 무슨 뜻이었을 줄은 아무도 몰라요.
죽음 앞에 초연하지 못한 자신이 혐오스러웠는지,
아니면 아들의 친구를 죽이려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건지.
추측만, 그리고 소문만, 이렇게 많이 남았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혼이 빠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기분마저 들었다.
꼭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만도 같았다.
이것이 누군가가 지어낸 소문이라면, 왜 이런 소문을 만들어 낸 걸까.
그리고 정말 만약, 이것 진짜 이야기라면, 그렇다면,
누가 이 이야기를 그녀에 전해준 것일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누구한테 들었어요?"
그녀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에요."
미친 여자.
내가 미쳤지.
괜한 호기심에 시간 빼앗겼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관리실을 나왔다.
낚시 도구를 챙겨서 빨리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녀는 돌아선 나를 몇 번이고 불렀다.
저기요, 왜 그래요, 화났어요?
어떤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남의 아버지 소문을 내는 사람들이라니.
그것도 헛소문을.
인어가 아버지를 죽였다느니.
그런 소리를.
참을 수가 없다.
가슴이 답답하다.
낚시 도구를 주워 담는데, 그녀가 바로 옆까지 쫓아왔다.
그녀는 내 팔을 부여잡고 이유를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라는 식이었다.
사실, 갑자기가 아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글러 먹었다.
애초에 뭐야.
남의 낚시터를 자기 것이라며 요금을 받질 않나.
남의 관리사무실을 자기 집 안방처럼 쓰질 않나.
신경질이 나서 그녀를 뿌리쳤다.
내 팔이 잽싸게 원을 그렸다.
그 덕에 밀려난 그녀는 내 팔을 놓쳤고,
그와 동시에 휘청, 하고 몸이 뒤로 밀려났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녀는 낚시터의 검은 물 밑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주변이 조용했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몸이 굳는다.
달을 품은 낚시터 물은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떠오를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보통이라면, 허우적거리는 것이 맞는데.
가슴이 뛰었다.
수영은 잘 못하는데.
그녀를 구하려면 뛰어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낚시터의 수심이 얼마나 되지?
모르겠다.
이대로 여자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녀가 익사한다면,
그녀를 죽이게 되는 것은 바로 나.
바로 나다.
뛰어들어야했다.
신발을 벗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수면 위로 넘실거리는 달빛을 믿으며,
그 달빛이 낚시터의 저 밑까지 밝혀 주리라 믿으며,
몸을 던졌다.
생각보다 훨씬 차가운 물.
물이 차가워서 일순 몸이 경직되었다.
눈을 뜨자, 시야는 뿌옇게 안개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더 밑으로.
더 밑까지.
그녀가 얼마만큼 빠져버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계속해서 내려갔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낚시터 물 벽에 걸려있는 타이어를 사다리삼아,
가장 밑바닥에 진흙 같은 것이 만져질 때까지 내려갔으나,
이것은 그저 내려간 것일 뿐, 그녀를 찾기 위한 방법이라곤 할 수 없었다.
타이어를 놓으면, 금방 다시 몸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그녀를 찾아야하는데, 숨이 부족해오는 고통도 밀려오기 시작했다.
위로 돌아가 숨을 골라야했다.
그동안 그녀의 숨이 끊어지면 어쩌지, 라는 불안이 엄습한다.
거칠게 타이어를 찼다. 수면 위까지 단숨에 올라가야 했다.
빨리 올라갔다가, 재빨리 다시 내려와야 했다.
나는 숨을 마셔서 준비 후에 입수 했지만,
그녀는 불시에 물에 빠졌다.
내 잘못으로, 그녀는 죽을 수도 있다.
서둘러야 한다.
몸이 부상하려는데, 무언가가 바지를 끌어 당겼다.
왼쪽 다리.
바지에 뭔가 걸렸어.
손을 뻗어 바지춤을 더듬자, 따끔, 하고 손이 찔렸다.
낚시 바늘.
누군가 잘라낸 낚시 바늘인가?
밑바닥에 내려갔을 때, 바지에 걸린 건가?
바보 같은.
낚시 줄을 손으로 끊어버릴 순 없는 일이었다.
바지에 엉킨 바늘을 빼는 것도, 이 안개 속 같은 물속에선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물속에 얼마나 있었지?
숨을 참는 고통이 심해졌다.
다시 타이어를 향해 헤엄을 쳤다.
타이어에 매달려 다리를 잠아 당겼지만,
낚시 줄은 어디에 걸려있는 건지, 보통 힘으론 때어낼 수가 없다.
의식이 멀어질 때 즈음.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차마 돌아볼 여유도, 정신도 없이 시야가 멀어지는데,
몸이 급격히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내 가슴을 감싸 안은 무언가의 손길에선 미약한 온기가 전해온다.
온기는 도망치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를 놓고는 사라져버렸다.
나는 계속하여 허우적댔다.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그녀는 저 밑에 있는데.
"괜찮아요?!"
제길.
언제 올라갔어?
낚시터 위에 있던 여자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곤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정신이 돌아왔을 땐, 그녀가 내 뺨을 치고 있었다.
황당했다.
정신을 잃은 나를 구할 만큼, 수영을 잘 하는 여자였다는 걸 알았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그녀를 죽일 뻔했다고 생각하면, 십년을 감수했다.
화가 난다.
그녀의 손에 놀아난 기분이다.
수영할 줄 알았으면, 진즉에 물 위로 올라와야지.
그녀에게 소리쳤다.
"5000원 내놔요!"
"예?"
그녀는 놀랐는지, 주춤거렸다.
상관없었다.
"제 5000원 돌려줘요."
그녀는 젖어버린 지폐를 주섬주섬 내밀었다.
사실을 말해줬다.
내 이름이 김철민이고, 그 인어 때문에 죽었다는 사람은 내 아버지이고,
나는 그 인어를 애초에 만난 적도, 아니 본적도 없으며, 당연히 친구도 아니다.
다시는 내 낚시터의 주인행세를 하려 들지 말아라.
신고할테다.
한바탕 따끔한 소리도 해줬다.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물가의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휙 던지더니
"나도 다 알아! 너나 기억 못하지!"
하고 소리치곤,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달빛이 바닥을 비췄다.
그곳에는 투명한 유리구슬이 달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유리구슬 옆구리에 흐릿하게 적힌 '철민'이란 글자가 보였다.
낚시터엔 잔잔한 물결이 계속해서 일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물결에 대고 소리쳤다.
야! 하고.
술렁이는 물결은 대답이 없었다.
다시 소리쳤다.
몇 번이고.
그러자 저만치서 빼꼼하고, 그녀의 머리가 떠올랐다.
콧잔등까지만 내밀 얼굴이 보인다.
눈을 매섭게 뜨고 있는 그녀는 다시 머리를 물속으로 담궜다.
다시 불렀다.
"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또 콧잔등 까지만 고갤 내밀었다.
뭐라고 말해야하지? 고민하자, 그녀는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물속에 팔을 넣고 휘저었다.
미끼를 던진 낚싯대처럼.
팔이 떨어져라 물을 헤집자, 그녀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 고갤 내밀었다.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찰박찰박 물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너 진짜 인어야?"
내 물음에 그녀는 일순 얼굴을 찡그리더니, 내게로 물을 뿌려왔다.
얼굴에 낚시터 물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그녀는 "몰라!" 하고 신경질내곤,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하늘이 푸르스름 새벽빛에 물들고 있었다.
낚시터를 비추는 새벽은 그 밑에 담긴 보석 같은 것을 반작이기 시작했다.
유심히 그것을 바라보니, 그건 모두 물고기 들이었다.
낚시터를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
그녀는 물고기들 사이에서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인어를 알았었다면,
그리고 내가 인어와 친구였다면,
나는 그 사실을 언제 잊게 된 걸까.
무슨 이유로 잊은 걸까.
잊을 이유가 있나?
그녀에게 유리구슬을 건넸다.
유리구슬과 함께 젖어버린 지폐도 두 장 건넸다.
“떡라면, 되나요?”
이곳에서 다시 어려진다면,
어쩌면, 그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
나는 공허한 게 아니라.
아주 편히 쉬고 있는 거야.
라고 마음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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