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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면 항상 유령의 집을 찾아갔었다.
당연히 친구들은 무섭다고 거절했지만, 매번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는 조건 하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곤 했다.
내부에 장식되어 있는 기괴한 형상들과 음침한 분위기는 충분히 고객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타이밍 좋게 나타난 귀신이 괴성을 질렀다면,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아르바이트의 개념을 몰라 진짜 귀신이라고 믿었지만 그렇다고 무섭지도 않았기에.
오히려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얘, 넌 안 무섭니?”
“별로요. 근데 아저씨 진짜 귀신이에요?”
오히려 당황하는 귀신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픽 웃어버리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던 시절.
그 시절이 쌓이고 쌓여서 거대한 모래성을 이루었을 때는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고 몇 달 뒤였다.
우연히 같은 반 친구에게 학교 지하창고에 관한 비밀을 들었는데,
밤마다 누군가가 지하 창고 안에서 문을 두드린다는 괴담이었다.
나는 조건반사처럼 흥분했고, 당장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거렸다.
“정말 확인할거야?”
“당연하지. 난 공포 따위 느끼지 않아”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친구들이 무색할 정도로 환하게 웃고는 지하창고 앞 계단에 걸쳐 앉았다.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을 막고 있는 거대한 철문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은 여간 심심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리 챙겨둔 만화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기로 결정했다.
그 날 문 두드리는 귀신은 어디서 죽었는지, 마지막 권을 다 읽고 내려놓았을 때는 벌써 아침이었다.
‘흥! 귀신은 개뿔’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반짝 스타가 되었다. 아마 그 때부터 공포를 무시하는 습관을 가졌을 것이다.
매 여름 쏟아지는 공포영화들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았고, 무섭기로 유명한 게임들은 무표정으로 턱을 괴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가위 한 번 눌린 적이 없었기에, 더욱 기고만장 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사진첩을 꺼내 정독한 효과는 곧 나타났다. 부쩍 자신감이 상승한 것을 손 아귀에서 느꼈다.
곧 이어 손잡이를 돌리자, 육중한 소음이 허름한 건물 전체를 가득 메웠다.
예상 외로 분위기는 밝았다. 고등학교 지하 창고처럼 어두컴컴할 거라는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오히려 실소를 터트리게 하는 꽃무늬 벽지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서 오세요”
역시나 ‘공포를 팝니다’ 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남들이 보면 지레 겁부터 먹겠지만, 애석하게도 ‘공포’ 라는 단어는 이미 내 안중에 벗어난 지 오래였다.
내가 굳이 멀리서 찾아와 아무도 찾지 않는 듯한 이 허름한 건물에 서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나에게 공포심을 줄 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공포를 파는 것이 가능한가요?”
다짜고짜 소파에 앉은 내게 녹차를 건네는 여자. 이 곳의 주인장처럼 보였다.
온 몸을 휘감는 로브를 걸쳤는데, 마술사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물론이죠. 못 믿으시겠다면 한 번 체험 해보실래요?”
“가격은 얼마죠?”
“제일 싼 공포는 천 원이고, 제일 비싼 공포는 10만원이에요”
“그럼 적당히 만 원짜리로 체험 해볼게요”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서 탁자 위로 내리쳤다. 힘이 들어간 것은 자만심 때문이었으리라.
여자는 묵묵히 돈을 집더니 한쪽 구석에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저 방이었구나. 저기서 아마 무언가를 준비해 나온다고 했었지.
나는 이미 지인의 경험을 듣고 온 뒤라 느긋하게 몸을 뉘고 다리를 꼬았다.
‘어디 한 번 재주를 감상해볼까?’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은 여자가 들어간 방을 향해 고정되었다. 아직까지 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순간, 테이블에 있던 꽃병이 툭 – 하고 떨어졌다.
“뭐야?”
방심하고 있던 터라 살짝 놀랬다. 고개를 숙였더니 금사철 여러 송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손을 뻗어 그 것들을 집었다. 드문드문 유리 파편이 있어서인지 조금은 따끔거렸다.
괜히 오해하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는데, 정수리에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거미줄에 머리카락을 갖다 댄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천장도 아니고 이 정도 높이에서 거미줄이라고?
확실한 사실은 무언가 내 머리 위에 떠 있다는 것.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목에 밧줄이 걸려 있는 여자가 밑에 있는 내 얼굴을 향해 초점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질감의 정체는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었다.
“아이, 깜짝 놀랐잖아요! 여기 알바생이세요?”
여자는 물음에 답을 하기는커녕, 변함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괜히 심술이 나서 같이 노려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방 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사실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어느 귀신의 집에서도 겁주지 못 했던 나를 잠깐 소름 돋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목 주위에 있는 상처며, 썩어 문드러진 피부가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꺄아아아!!!”
아까 닫힌 문이 다시 열리고, 처녀귀신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가 앞 뒤로 심하게 흔들렸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아마도 뜬금없이 놀래 키려는 계획이었겠지만, 놀이기구 같은 소파에 재미가 들려버렸다.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죽는 내 표정에 겁주기를 포기한 듯, 여자는 힘 없이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만 원짜리를 꺼내어 도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저희는 공포를 파는 곳이지 재미를 파는 곳이 아니니깐요”
오히려 영업 방해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괜스레 미안해 졌다.
하지만 내 잘못도 아니었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공포를 사러 왔고, 주인장은 아직 공포를 내놓지 않았다.
“그럼 10만 원짜리로 체험 해 볼게요”
여자가 올려 놓은 만 원짜리 위에 9만 원을 더 얹었다. 더욱 힘내서 나를 겁 주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포함.
뭔가 엄청난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만 같았던 기대와는 달리, 여자의 대답은 뜬금없었다.
“이미 체험 하셨어요”
“네?”
“이벤트 중이었거든요, 10만 원짜리 무료 공포 체험”
“무슨……”
“얘들아, 그만 나와도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파 안에서 남자 두 명이 기어 나왔다.
소파를 움직인 것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었구나. 몸으로 애썼는데 허탕을 치게 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10만 원어치 겁 먹은 표정을 지어 보일 걸.
아직 반이나 남아 있던 녹차를 순식간에 들이키고는 멋쩍은 듯이 일어섰다.
“아…… 그럼 다음에 다시 올게요”
“감사합니다. 그 땐 제대로 된 공포를 드리죠”
“네. 그럼 기대하고 있을……”
갑자기 머릿속에 번개를 맞은 듯 번쩍였다.
탁자 위에 놓인 십만 원도 잊은 채, 허겁지겁 문을 열고 나왔다.
왜냐하면, 고작 소파가 흔들리는 것으로 10만 원을 받는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서서히 닫히는 문 틈으로 가게 주인이 씨익– 하고 웃었지만 나는 이미 계단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어떤가요? 귀신을 직접 체험해 본 소감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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