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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떤 사탕을 드시겠습니까? <딸기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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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빛나는 눈에 먼지 한 점 내려앉지 못할 것 같은 말끔한 양복, 그 남자는 지금 와서도 그저 ‘수상한 남자’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불지옥의 그것 같은 뙤악볕이 내리 쬐는 여름 길을, 그런 차림과 눈빛으로 통통 튀듯 걷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역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던 내 앞에 서서는 천연덕스럽게 '이 도시에서 가장 퇴폐스런 곳'이 어디인지 물어왔다. 나는 대강 유흥업소와 불법 영업을 하는 오피스텔이 군집한 사창가를 가르쳐 주곤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그는 길 안내에 대한 보답이랍시고 딸기맛 사탕 봉지를 내밀었다. 내가 얼떨떨해 있는 사이, 남자는 '음-' 하고 추임새를 넣더니 의뭉스런 미소를 지으며 “당신, 여자에게 아주 거세게 차였더군요?“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얼굴에 씌여 있다는 듯한 말투에 말문이 막혔다. 남자는 방긋 웃으며 사탕을 드시면 정확히 24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니 걱정일랑 말라했다. 나는 얼이 빠져 있던 중 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맞은 기분이 되어 눈앞의 남자가 제정신일지에 대해 가만히 저울질해 보았다. 그는 내 의심어린 눈빛에 아랑곳 않고 다시 특유의 말끔한 함박 미소를 지으며, 대신 수명 중 5년이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아주 신이 나서 설명을 해댔다. <기브 엔 테이크> 라는 식의 말도 했던 것 같다.

 

“아, 예...”

 

 나는 남자의 질 나쁜 장난질을 치는 꼬마 같은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수명 5년과 돌아갈 수 있는 하루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머리의 한 부분을 굴려 잠시 생각해 보았다. '행복 전도사나 약장수 같은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일까?' 남자는 여전히 사탕 봉지를 내민 채였다. 별 수 없이 받아들었다.

 

“예, 그럼, 어디 맛 좀 볼까요?”

 

 빨리 이 괴짜와 광인 사이의 어딘가 쯤에 있을 듯한 남자를 제 갈 길로 보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그 자리에서 한 알을 까서 입 안으로 던지듯 넣었다. 초면의, 그것도 디테일한 헛소리를 남발하는 남자에게 사탕을 받아먹는 행동은 점잖지 못하단 생각에 이어, 혹시 이 자가 사탕 안에 독극물이라도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려던 찰나였다. 남자는 이제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신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한 상상 탓인지 그 미소는 조금 섬뜩해 보였다.

 

“사탕은 한 번 먹으면 자꾸 먹고 싶어지죠?”

 

 남자는 또 고개를 갸웃- 한 채 물었다. '저 갸웃- 하는 것은 버릇인가?' 딸기 향이 입과 코 안으로 퍼졌다. 침이 고였다.

 

“그야, 뭐...”

“조심하세요, 이가 다 썩어버립니다.”

 

 남자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순간, 나는 정확히 24시간 전에 머물던 레스토랑에 있었다. 항상 앉던 난간 쪽의 10번 좌석. 손가락에는 담배가 걸린 채 타 들어가고 있었고, 반대편 손엔 얼떨결에 받아 들었던 딸기맛 사탕 봉지가 그대로 쥐여 있었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는 한참 전부터 씩씩거리며 자신의 짐을 주섬주섬 챙겨 넣더니 내 얼굴에 마시던 물을 끼얹곤 나가버렸다.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내 앞에 있던 여자가 내 애인, 아니, 전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4시간, 하루를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확신하기 까지, 다시 하루가 걸렸고, 만약 그 남자를 만났던, 아니, 만날 시각이 됐을 때 그 자리로 간다면 이 기상천외한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사탕을 꺼내기 위해 봉지를 받아 들었지만 애초에 전부 주려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전부 되돌려 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려 눕히고 도망쳐야 할까? 흠...' 어쩌면 사탕을 더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자를 만났던 역 앞으로 뛰어가는 길엔 온갖 복잡하고 음흉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데굴거렸다. 역에 다 도착할 무렵엔 남자가 양복의 어느 주머니에 사탕을 더 숨겼을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남자는 온데간데없었다.

 

 남자는 '자꾸 먹고 싶어 지죠?', 그리고 '이가 썩어버립니다.' 라고 말 했다. 나는 그것을 사탕 봉지를 전부 나에게 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로또 추첨 방송을 보며 처음 결심이 섰을 땐, 한 번 더 사용하는 것 만으로 충분해 보였다. 하루 만에 5년의 수명이 통째로 사라진단 말이 사실이라면 끔찍한 일이거니와, 몇 번 씩이나 로또에 당첨되는 사람이 등장한다면 누구라도 수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내 통장엔 29억이 들어 있었다. 29 뒤로 0이 8개. 일단은 그것으로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신중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48시간의 대가로, 내 인생은 벌써 10년이 사라진 것이다. 그 중 5년은 얼굴에 물을 맞고 실연당하기 위해 낭비됐다.

 

 하지만 남자의 충고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나는 곧 사탕과 주식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불리기 시작했다. 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투자로도 거액을 쥘 수 있었다. 주위의 의심을 사지 않을 정도의 텀을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두고, 단 한 건씩 거대한 투자를 성공시켜 나갔다. 그렇게 부유한 생활을 하고 돈을 굴리며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은 기대 수명이 30년이 됐을 때, 나는 브레이크를 걸듯 그 짓을 그만두었다. 내가 그 남자를 만난 것이 30살 무렵이었으니, 이제는 딱 그만큼의, 내리막길이 보일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나는 경제적으로 운 좋고 무능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다소 늦은 나이였지만 결혼을 했고, 강아지 같은 딸아이도 생겼다. 딸의 재롱을 보며, 나는 그간 잊고 있었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딸기맛 사탕 같은 마법은 전부 잊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사탕의 존재를 잊은 나를 벌하기라도 하듯, 위기가 닥쳐왔다. 나는 내 능력만 믿고 주식에 손을 댔고, 그간 사 모은 지분을 팔고 잃어가며, 그대로 보기 좋게 파산에 골인했다. 아니, 파산했었다. 아니, 그러니까, 애최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사설 금고에 맡겨 두었던 사탕은 조금 부스러지긴 했지만 지독할 정도로 강렬한 딸기 향과 효과는 그대로였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난 그 사탕이 없다면 아무런 대책도 없는데... 어쩌면 사탕이라는 보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 보겠다는 시도는 그렇게 무너졌다.

 

 100세에 사망한다는 가정 하에, 총 8개의 사탕을 사용한 나는 이제 60세가 되면 사망하게 될 것이었다. 100세라는 수치는 수명을 다루는 일에 부담을 느꼈던 내가 100세 시대니 하는 변명 거리를 끌고와 상당히 넉넉잡았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 더 짧을 수도 있었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20년, 25년. 사탕은 앞으로 고작 몇 번 더 사용할 수 있다. 그마저도 늙어가며 기회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더 이상 사용할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역 앞의 그 남자를 쓰러뜨리고 나머지 사탕도 전부 뺏는다는 계획은 어처구니도 없는 것이었다. 사탕은 아직도 스무 알이 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만큼 오래 살 수 없다.

 

그 날의 실수 이후, 시간은 유난히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사탕을 보관한 금고 앞에 섰을 땐, 딸이 2주 전에 죽어있었다. 이제 막 어설프게나마 숙녀 티를 내기 시작했던 나의 딸.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을 땐, 이미 실종 후로 이틀이나 지나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필 나에게... 경찰과 보안 업체 직원들, 각종 역추적 전산 장치들에 둘러싸여 범인의 전화를 받던 나는 소파 위로 주저앉으며 이 비극이 마법 같은 속임수로 얻고 지켜낸 그 많은 부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이렇다할 권력도 명예도 없는 졸부였고, 졸부의 딸은 노리기 좋은 표적이 된 것이다. 그 남자의 마법을, 사탕을 훔쳤던, 도둑질에 대한 벌일지도 모른다.

 

 통금 시간만큼은 철저히 지키던 딸이 집에 돌아오지 않던 날, 딸바보의 기질을 발휘해 바로 하루 전으로 되돌아가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내가 생각했던 최악은 어떤 시시껄렁한 녀석이 내 딸을 데리고 석양이 지는 겨울 바다를 향해 차를 모는 광경이었다. 이틀 후, 납치 됐다는 사실을 확신했을 때에도 간신히 돌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딸을 지키고 범인을 잡는다는 확신이 없었다. 범인을 체포하지 않은 상태로 어떻게 딸을 지켜낼지, 나의 수명이 얼마나 남게 될지, 사탕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나의 수명도 거기서 끝나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무엇 하나 알 수 없었다. 돈은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었지만,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결국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고 딸은 며칠에 걸쳐 범인이 곳곳처에 숨겨둔 배낭과 캐리어 안에서 차례차례 발견되었다.

 

 범인이 딸애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겠다고 우기기 시작한 날, 내 아이는 이미 죽은 후였다. 수사망이 좁혀져 가자 몸값을 포기하고 장기 매매로 손을 뻗힌 모양이다. 딸애는 산 채로 밀매 가능한 대부분의 장기가 적출되었다고 한다. 출고 날짜와 생명 유지의 필요성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신선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대부분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어울리지 않게 파마머리에 염색을 한 근육질의 문신 기술자는 영등포구, 문길동 따위의 주소지와 전화번호, 날짜와 시간, 사망한 연쇄 납치-살인범의 사진 따위를 피부 위에 새겨 달라는 남자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호텔방의 벽과 천장 너머에선 청춘을 즐기는 사람들의 신음과 교성이 들려왔다. 손바닥 위엔 다 부스러져 가는 열다섯 알 가량의 사탕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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