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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다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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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오는 방금 끄집어낸 백사 한 마리를 들고서 부엌으로 갔다.


연노랑의 줄무늬가 새겨진 백사는 포대 자루에서 나오자마자 온 몸을 실룩거렸는데, 몸
통 길이가 칠십 센티미터도 넘는 그 놈이 준오의 손목을 두어 번 감고 나자 잠깐 사이에 손목전체가 하얗게 뒤덮여버렸다.


꼬랑지부터 대가리까지 윤기가 좔좔 흐른다.

 

갈라진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그 놈을 보고 있자니 입안에 단물이 가득 고였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준비한 도마 위에다 백사를 끄집어 내렸다.

 

제법 튼실하게 감긴 모양인지 손목에 은은한 압력이 전해져온다. 

고무장갑을 낀 나머지 손으로 백사를 억세게 훑어 내리자 '툭'하고 도마 위에 떨어진다.

 

똘똘 말린 상태로 대가리만 쳐들고서 또다시 혀를 낼름 낼름 거린다.

 

어찌나 귀엽던지 하마터면 대가리를 깨물어 버릴 뻔했다.

 

고소한 생살을 씹는 것도 운치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때가 아니었다.

 

준오는 백사의 대가리와 꼬랑지를 움켜쥐고는 쭈욱 당겼다.

 

놈의 몸통이 일자로 팽팽하게 당겨지자 머리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셋! 신호와 함께 놈을 힘껏 패대기쳤다. 철퍼덕 소리와 함께 도마가 웅웅거린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고정식 도마는 제작년에 준오가 특별 주문 제작한 것이었다.

 

너비 오십센티미터에 길이는 일미터나 되는 대형 도마였다.

 

그 덕에 베란다를 뚫어 부엌을 확장시켰지만, 도마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방금만 해도 한 번만에 백사가 기절해 버렸던 것이다.

 

간혹 구렁이나 칠점사 같은 놈들이 오면 서너번 내려쳐야 했지만, 이번처럼 몸집이 작은 백사나 능사는 한번이면 충분했다.

 

기절한 백사가 깨어나기 전에 작업을 마쳐야한다.

 

준오는 벽에 비스듬히 걸린 도끼칼을 빼들고는 사정없이 찍어내렸다.



“쿵, 쿵, 쿵, 쿵”

육중한 칼질 네 번에 백사의 몸이 순식간에 다섯 토막으로 분리되었다.

 

'찌익'하고 핏줄기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미리 비닐로 덮어둔 상태였다.

 

자기 몸이 토막 나는 줄도 모르고 뻗어있는 백사를 보고 있자니 코미디프로를 보는 것처럼 우스웠다.

 

준오는 토막들을 바가지에 쓸어 담은 뒤 식탁위에 준비해 둔 믹서기로 가져갔다.

 

믹서기 안에 막 세 번재 토막을 넣으려 할 때 백사가 깨어났다.

 

토막난 몸들이 제각각 꿈틀거리면서 바가지안을 휘저었다.

 

준오는 얼른 바가지를 손으로 가린 다음 믹서기 안으로 한꺼번에 들이 부었다.

'후두둑'소리를 내며 토막들이 모조리 쏟아지자 잽사께 믹서기 뚜껑을 집어 들었다.


“이런”


큰일 났다. 뚜껑을 닿기 직전에 토막하나가 믹서기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바닥에 피칠갑을 해대며 그것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토막은 대가리 부분이었는데 입을 찢어져라 벌린 채 온 바닥을 팔딱팔딱 뛰어다녔다.

 

준오는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 잡으려다간 백방 물리고 만다. 

아무리 온순한 백사라도 죽기 직전엔 흉폭하게 변한다.

 

파닥거리던 대가리가 삼십초도 못 가 축 늘어졌다. 

조금씩 꿈틀대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위험하지는 않았다.

 

입을 쩍 벌린 채 굳어져 있는 대가리를 들고서 믹서기 안으로 마저 집어넣었다.

 

뚜껑을 단단히 닫고 난 후에 작동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믹서기의 칼날이 세차게 회전하자 
투명하던 플라스틱 용기에 시뻘건 국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갈렸을 때 작동을 정지시키고 내부를 관찰했다.

 

칼날은 멈췄지만 걸쭉한 국물이 관성에 따라 여전히 돌고 있었다.

 

용기 벽으로 희멀건 살점 덩어리들이 몇 번 부딪히자 준오는 다시금 기계를 작동시켰다.


“위이이잉”

일분 정도를 더 갈고 나자 마침내 백사는 한 사발의 찐득한 핏물로 변했다.

 

용기를 기울여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바가지에 부으니 역한 비린내가 사방으로 진동한다.

 

준오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가지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꿀꺽 꿀꺽꿀꺽”


걸쭉한 백사국물이 목젖을 넘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뜨끈뜨끈한 국물을 한 호흡에 비워내 버리고 나자 준오의 입에서 묵은 트림이 터져 나왔다.


“꺼어어억”


오묘한 냄새가 식도를 넘어왔지만 준오는 개의치 않고,

 

거실 한쪽의 거울로 가서 치실을 꺼내들었다.


“슥슥,슥”

 


이빨사이에 낀 비늘 조각들을 제거하고 나자 다시금 트림이 터져 나왔다.

 

준오는 헤벌죽 웃으며 뒷정리를 시작했다. 바닥을 닦고 믹서기 용기를 씻었다.

 

바가지는 특히 공을 들여 씻었는데 그것은 쌀 푸는 바가지였기 때문이다.


 

 


올해 마흔 다섯 살인 준오는 이십 년 동안 뱀을 잡아 먹었다.

 

허약체질이던 준오에게 아버지가 뱀탕을 끓여 주면서 뱀과의 인연이 시작됐는데, 한겨울에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준오가 뱀탕을 먹고 나자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온 몸에서 힘이 불끈불끈 솟았고, 푸석하던 얼굴에선 기름기가 좔좔 흘러내렸다.

 

그 후론 닥치는 대로 뱀을 잡아 먹었는데 먹구렁이, 능구렁이, 화사, 실사, 기름사, 능사, 백사 같은 무독성에서부터 칠점사나 불독사 같은 맹독성 뱀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었다. 


처음에는 푹 고아서 그 물을 마시거나 뱀술을 담가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직접 갈아 마시기 시작했다.

 

실사나 물뱀 같이 몸통이 작은 놈들은 날 것으로 뜯어 먹기도 했는데, 신문이나 티비를 보면서 간식거리로 씹어 먹는 것이었다.

 

그들에게선 마른 오징어 씹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고소함이 느껴졌다. 

생살이 씹히면서 입 안 가득 핏물이 고이면 환장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독뱀은 대가리를 썰어내고 몸통만 섭취했는데, 놈들을 먹으면 톡 쏘는 맛과 함께 속에서 불구덩이가 치솟아 올랐다.

 

몸통에도 독이 남아 있는 모양인지 몸이 덜덜 떨리고 한기가 찾아오지만 하룻밤만 자고 나면 말끔히 나았다.


준오는 백사를 먹고 내리 스무 시간을 엎어져 잔 뒤에 일어났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니 구석구석에서 활력이 솟구쳤다.

 

가볍게 국민체조와 스트레칭까지 끝내고 나자 괄약근에서 신호가 울렸다.


“뿌지직, 뿌직”


몇 번 항문에 힘을 준 뒤에 몸을 일으켰다. 물을 내리려던 찰나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변기통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옅은 설사 덩어리들을 가르며 길쭉한 것이 유연하게 헤엄치고 있었던 것이다.


“으잉?”

준오가 똥 덩어리를 헤치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에서 갈색 건더기가 뚝뚝 떨어졌지만, 더러운 줄도 모르고 그것을 관찰했다.

 

지렁이로 보기엔 길이가 짧았고, 실뱀으로 보자니 생김새가 달랐다.

 

물로 헹구어 내자 투명한 피부가 드러났는데, 내부장기가 보일 정도로 맑은 피부였다. 

잠자코 들여다 보고 있자니 엉덩이에서 미끌거리는 감촉이 전해져왔다.

 

뒤돌아서서 허리를 숙이자 축 늘어진 엉덩이 두 짝이 화장실 거울에 비쳐졌다.

 

갈라진 엉덩이 사이에서 뭔가가 꿈틀댔지만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안방에서 손거울을 가져다가 아래를 비추자, 알록달록한 새끼뱀 한마리가 보였다.

 

항문구멍에서 몸통의 일부가 빠져나온 상태로 그것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중이었다.

 

엉덩이를 실룩거리자 미끌미끌한 뱀대가리가 양쪽 볼기짝에 철썩철썩 부딪쳐왔다.

 

뱀대가리를 붙잡고 쭈욱 끌어내리자 묘한 느낌과 함게 놈이 항문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변기통에 들어있던 놈 보다 몸통이 두배는 굵은 뱀이었다. 

알록달록한 반점에 길이는 삼십센티미터 정도로, 아직 눈도 못뜬 새끼뱀이었다.

 

준오는 양손에 하나씩 놈들을 쥐고 한참을 관찰했지만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뱀 전문가인 준오가 보기에도 놈들은 처음보는 종류였다.

 

투명한 뱀이 있다는 말은 농담 속에서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준오는 두 놈을 유리병에 담아서 병원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게 몸속에서 나왔다 이 말입니까?"

"그렇소"

머리가 희끗희끗한 매부리코의 의사는 유리병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재차 물어왔다.

 

유리병 속에서는 뱀 두마리가 서로의 몸을 꽈배기 꼬듯이 꼬고 있었다.

"불가능 합니다"

"하지만 사실이오"

"스파르가눔은 인간의 몸안에서 절대로 성충이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이 놈들은 스파르가눔의 성충도 아니예요"

"스파..그게 뭡니까?"

의사가 답답하다는 듯이 설명을 해나갔다.

 


"스파르가눔은 인간의 체내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뱀 기생충입니다,

 어쨌든 제 말은 이것들이 스파르가눔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뭡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저는 의사지 생물학자가 아니라구요"

"거 참 이상하다, 분명히 똥구멍속에서 나왔는데..."

"아저씨! 실없는 소리 그만 하시고 집으로 가세요"

"귀신에 씌였나? 그것 참 이상하네.."

준오가 궁시렁거리며 진료실을 나가려하자 의사가 급히 불러 세웠다.

"유리병 가져 가셔야죠"

"필요없소"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푹 고아 드시오"

 


의사는 그만 벙찐 표정을 짓고 말았다.

 

준오가 진료실을 나가버리자 무언가 깨달은 듯 후다닥 뛰어가 그를 붙잡았다.

"왜 그러시오?"

"CT촬영 한번 해봅시다. 스파르가눔이 아저씨 뇌속에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스파..그게 뭡니까?"

"........"




일주일 후에 준오는 두번째로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 안에는 매부리코의사 말고도 세명이나 더 있었는데, 모두들 준오가 들어서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왜 바쁜 사람 오라고 하는 거요?"

"김준오씨, 지금부터 저희 말 잘들으세요"

매부리코 의사가 옆에 서 있던 뚱뚱한 남성에게 눈빛을 보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몸속에서 수십마리의 뱀들이 발견됐습니다.

 위장과 소장, 대장 심지어는 십이지장에까지 뱀들이 골고루 퍼져 있는 상태입니다"

"댁은 뉘슈?"

"네?"

"뭔데 그렇게 잘난 척을 하냔 말이야"

준오가 집무실의 책상을 쾅 소리나게 쳤다.

"저,저는 홍주대학교에서 생물학 교수를 맡고 있는 박..."

"아가리 닥쳐, 찢어 버리기 전에"

 


뚱뚱한 남성이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너 말고 니가 한 번 얘기해봐"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말이야. 니가 제일 못생겼어"

"쿨럭, 알겠습니다. 제가 설명을 하죠"

 


반대편에 서 있던 중키의 남성이 헛기침을 한 번 터트리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뱀들이 어떻게 김준오씨 몸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김준오씨 몸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였습니다"

"정말?"

"네, 뱀은 김준오씨가 섭취한 음식물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았던 것 같습니다.

 얼룩뱀과 투명한 뱀 두 종류가 발견됐는데, 둘 다 처음보는 종이었어요"

"종? 딸랑딸랑 종"


준오가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맞장구쳤다.


"식물도감을 모조리 뒤져봐도 그런 종류의 뱀은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종이었던 겁니다"


남성이 준오의 행동에 실실 쪼개면서도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사람의 인체에 적응한 새로운 종류의 뱀! 그것이 준오씨 몸속에 있는 것의 정체입니다"

"아니 도대체 뭘 먹은 거요?"


매부리코 의사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물었다.


"뱀 먹었지 뭘 먹었겠어"

"얼마나 많이 먹은거요? 대체 얼마나 먹어야 몸이 그 지경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일년에 이백마리쯤 먹었어, 갈아서 마시거나 잘근잘근 씹어 먹었지"

"날 걸로 드셨단 말입니까?"

"삶아 먹든 데쳐 먹든 뭔 상관이야! 이 미친놈아"

준오가 성질이 난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는 육백마리씩 잡아먹는단 말야, 난 반도 안되는구만 왜 이렇게 지랄들이야"

"준오씨! 한가지 말 안한게 있는데 당신 몸에서 스파르가눔도 발견이 됐습니다"

"스파..그게 뭡니까?"

"뱀 기생충인데... 아니 어쨌든 당신 뇌속에서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


준오가 무섭다는 듯이 온몸을 떨어댔다.


"현재로선 딱히 치료법이 없어요, 일단 약물치료와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도록 합시다"

"제가 미쳤단 말씀입니까?"


의사는 준오의 물음에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꼭 그렇다라기 보단 예방을 하자는 뜻입니다. 우선 뱃속에 있는 뱀들부터 끄집어 내자구요"

"미쳤소?"

"........"

"돈 주고도 사서 먹는 판인데, 이 복덩이를 잘라낸다고?"

"준오씨, 그 뱀은 위험합니다. 어떻게 인체에 적응 했는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다구요"

"그건 당신 사정이잖아"

 


의사의 입에서 딸꾹질이 튀어 나왔다.

 


"이제 안 올거니까 까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준오씨!"

 


준오가 양손을 휘휘 저으며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준오는 사방을 연신 살펴대며 옷을 벗었다.

 

알몸으로 변기에 앉은 뒤 괄약근에 힘을 주자 방귀가 뿡뿡 튀어나왔다.

 

한참을 끙끙 거렸지만 성과를 못 얻자 신경질을 부리며 거실로 나왔다.

 

식탁위에 있던 믹서기를 보자 기운이 빠진 듯 벌러덩 자빠져 버렸다.

 

한참을 자빠져 있던 준오가 별안간 손뼉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싱크대로 곧장 달려간 준오가 머리를 쳐 박고 헛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우웩..우웍.."

 


묽은 침만 질질 흐르자 중지 손가락을 목구멍 깊숙히 집어 넣었다.

 

목젖을 딸랑딸랑 거리자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역한 느낌이 솟구쳐 올라왔다.


"우웨엑..우웩"


식도를 통해 시큼한 위액과 함께 미끌거리는 꼬랑지 하나가 올라왔다.

"물컹"

 


꼬랑지를 잡고 잽싸게 빼내자 알록달록한 뱀 하나가 입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토사물과 함께 싱크대 바닥에서 요동치는 뱀을 바라보며 준오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위이이잉"


토막낼 것도 없이 통째로 집어 넣고서 믹서기를 돌렸다.

 

십초도 못 가 거무죽죽한 액체가 차오르자, 전원을 끄고 용기를 빼들었다.


"꿀꺽 꿀꺽"


용기채로 입안에 들이 부었다.

 

간에 기별도 안가는 양이었지만,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듯 했다. 

미처 갈리지 못한 작은 살덩어리 하나를 잘근잘근 씹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쩝..쩝...뉘슈?"

"김준오씨! 여기 홍주대학병원입니다"

"아니 아직도 쩝..쩝..쫓아 다니는 쩝..쩝..거요?"

"지금 준오씨 몸은 무척 위험한 상태입니다. 뱀들의 적응 매커니즘이 밝혀지지도 않.."

"좋아하는 숫자가 뭐요?"

"뭐라구요?"

"좋아하는 숫자 말이오, 부끄러워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보시오"

"삼십요"

"너무 많아"

"네?"

"너무 많다고 이 미친새끼야"

"아..아홉이요"

"고마우이"

 


준오를 전화를 벌컥 끊어 버렸다.

 

벌써부터 온 몸에서 힘이 넘친다.

 


"아자 아자!"

 

 

 



천원 한장 기부해 본 적이 없던 준오는 문득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넓은 아량으로 동포애를 실천해 나가기로 결심한 자신이 너무도 대견스러웠다.



 

 

 

 

 



늦은 밤, 택시운전수인 상진은 손님을 태우고 방배동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시공을 앞둔 아파트 재건축 단지에 손님을 내려놓자 잠시 시동을 끄고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추위에 몸을 덜덜 거리며 몇 모금 빨고 있자니 저만치서 여고생 둘이 다가왔다.

 


"아저씨, 압구정 가죠?"

"잠깐만, 이거 마저 피고"

 


여고생 둘이 조잘거리며 택시에 오르자 상진이 서둘러 담배를 빨았다.

 


"카악, 퉤!"

 


구두로 담배를 비벼 끈 뒤 찐득한 가래를 뱉어냈다.

 

상진이 택시에 타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고생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압구정 말고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가줘요"

 


상진이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구정이나 백화점이나 거기가 거기였다. 시동키를 막 돌렸을 때 문득 두달 전의 사건이 떠올랐다.

 


'그래, 그 여자도 압구정까지 갔었지'

 


두달 전 상진은 신촌역 근처에서 젊은 여성 하나를 태운 적이 있었다.

 

여성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탱탱한 허벅지에 자연스럽게 상진의 시선이 쏠렸다.

 


"압구정이요"

"네, 손님"

 


상진은 평소와 달리 친절하게 대답했다.

 

올림픽 대교를 반 쯤 건넜을 때 여자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아저씨, 피곤하시죠?"

"네? 하하.. 괜찮습니다"

"에이 피곤해 보이시는 데요 뭘.. 그러지 말고 이거 한 병 드셔 보세요"

 


여자가 손바닥만한 갈색 병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뭐죠?"

 



"자양강장제예요, 진짜 좋은 건데 아저씨 드릴게요"

"하하..이걸 제가 먹어도 될지.."

"싫은면 도로 주세요"

"아닙니다"

 


상진은 속도를 줄이고 냉큼 뚜껑을 열었다.

 

썩은 비린내가 확 끼치자 상진의 인상이 보기좋게 찌푸려졌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았다.

 


"몸에 좋은 거예요, 어서 드세요"

"아..네.."

 


걸쭉한 액체가 상진의 입으로 쏟아졌다.

 

추어탕이라도 마신 듯 입 안 전체가 텁텁했다.

 


"칠천원 입니다"

 


여자는 돈을 건네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아저씨가 아홉번째예요, 이제 저는 다 채웠어요"

"네?"

"저는 동네 아줌마한테 세번째로 받았는데요, 정말 끝내줍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저씨도 베푸세요, 귀찮으셔도 아홉명한테만 나눠 주세요. 아셨죠?"

 

 


여자는 기묘한 말을 남긴 채 택시에서 내렸다.

 

상진은 여자의 말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 했으나 도저히 알아 낼 수가 없었다.

 

뜬구름 잡는 소리에 골통만 아파올 뿐이었다.

 

여자가 건네 준 액체의 효능인지 다음날 부터 피로가 싹 사라져 버렸다.

 

몇 년 째 그를 괴롭히던 만성피로가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수고하세요"

 

 


여고생들을 백화점 앞에 내려주고 나서 상진은 다시금 택시를 몰았다.

 

노량진을 막 지나쳤을 때 별안간 속이 니글거리기 시작했다.

 

느끼한 비계덩어리의 감촉이 식도 전체에서 느껴졌다.

 

길가에 택시를 세우고 심호흡을 연거푸하고 나자 불쾌함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응?"

 

 


별안간 입속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미끌미끌한 뭔가가 상진의 입안에서 꿈틀 거리고 있었다.

 

택시 내부의 전등을 켜고 입을 크게 벌렸다.

 

 

 


입안에는 새끼뱀 한 마리가 자신을 흉내라도 내 듯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었다.











출처 : 웃대 k12kb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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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kendrick
  • 2016.11.27
이건 참 글을 잘쓴듯
나는 글 재주가 없어서 글이 두서없는데
이번꺼는 단편 소설 모읍집에 수록해도 이상없을 정도로 참 잘쓴듯
재밌다

이 댓글을

단순 2ch번역이 아니라 웃대에 올라온 글이니 가끔 이런 잿팍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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