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YdIBx
성진은 한번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 한 일이다.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무르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성진에겐 왕따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따라왔다.
적어도 초등학교 때 까지는 그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이 비극이 시작된 것은 중학교 무렵이 되어서다.
남들보다 조금 어눌한 말투는 첫 등교 날 부터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성진도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자꾸만 자신의 말투를 흉내 내는 친구들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자꾸만 놀리는 친구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진은 천성이 착해서 그런지 마냥 웃기만하고, 싫다는 내색은 잘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성진의 그런 밋밋한 반응이 괜찮다는 줄 알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진의 말투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세 명, 세 명에서 다수. 그렇게 성진을 둘러싼 조롱은 점점 범위를 넓혀갔다.
심지어 성진이 가지고 있던 선천적인 아토피마저 재미있는 노리감이 되었다.
평소 아토피를 앓고 있던 성진은 몸이 가려울 때마다 손톱으로 긁곤 했는데, 그 긁는 정도가 심해 어떨 때는 피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성진의 피부는 마치 나무껍질마냥 거칠었고 곳곳에 붉게 긁힌 상처가 있었다.
친구들은 그것이 또 재밌던 것이다. 말투라는 장난감의 단물이 빠지자, 아토피를 타겟으로 삼았다.
친구들은 성진을 살아있는 나무라고 부르며, 마치 피에 굶주린 모기마냥 성진의 심장을 마음껏 찔러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강도는 심해졌다. 성진이 2년 뒤 중학교 3학년이 될 무렵에는, 학교 대표 왕따 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친구들도 덩달아 왕따 당하는 게 두려워 떠난 지 오래였다.
그 후로 정말 혼자가 된 성진은 점점 어두운 성격으로 변해갔다. 말투를 지적받을까봐 말도 하지 않았다.
딱 필요한 말을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성진은 평소 때와 마친 가지로 고단한 학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이었다.
오늘도 왕따의 주동자, 자칭 반 일진이라고 부르는 병재가 성진에게 우유를 던졌다.
단지 자신이 먹기 싫다는 이유로, 성진을 쓰레기통이라 부르며 던진 것이다.
덕분에 우유곽이 터져 성진의 교복은 우유로 떡칠되었다. 지금 입고 있는 교복에서도 희미한 우유냄새가 베어 나온다.
학교 정문 밖으로 걸어 나오는 성진에겐 아무도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성진의 뒷모습은 너무나 처량했다.
성진은 그 힘없는 뒷모습을 이끌고 학교 옆 가로수 길을 걸었다. 첫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 때도 이 푸르른 가로수 길을 걸으며 등하교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 때의 가로수 길과 너무나 달랐다.
그 땐 모든 게 다 아름답게 보이고 즐거웠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쓸쓸하고, 외로운 길이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성진은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왜 자신은 이렇게 생겨먹어 놀림감이 되어야 할까. 그 질문은 성진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을 원망해 보기도 하고, 이렇게 태어난 자신을 비관해 보기도 하고, 자신을 왕따로 만드는 세상을 저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얼마간 걸어 크고 작은 상가거리에 들어설 무렵,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전신주위에 걸쳐진 석양이 보였다.
파란 하늘과 한대 섞인 주황색 노을빛은 보라색 구름을 만들어 너무도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마치 상처 입은 성진을 위로하듯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그를 쓰다듬었다.
저 구름에 섞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진은 생각했다. 만일 자신이 죽어 뼛가루가 된다면, 바람에 실려 저 구름 속으로 날아가고 싶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얕게 드리워진 성진의 그림자가 자신의 발목을 축 늘어지게 붙잡았다.
거리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한적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와는 달리 사람도 보이지 않고 도로에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걸까. 거리의 적막함이 성진을 더 처량하게 했다.
그 때, 누군가 성진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긴 생머리의 여자애였다.
전체적으로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까만 머릿결에 옅은 다크서클이 드리운 눈매, 검은 교복과 짙은 갈색의 구두가 특이하다.
그 압도적인 어둠은 성진을 당황케 했다. 여자애가 입을 열었다.
"배고파."
뭐지, 이 여자는. 다짜고짜 배고프다니. 그 막무가내의 요구에 성진은 혀를 찼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꽤 대담한 여자였다.
성진이 돌부처처럼 가만히 굳어있자 여자애가 다시 말했다.
"배고파, 먹을 것 좀 줘."
겉보기엔 멀쩡한데, 혹시 거지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녀가 입고 있는 교복은 전혀 더럽지도 않고 오히려 먼지가 내려앉는다면 미끄러질 것처럼 깔끔했다.
그럼 가출소녀일까? 지금의 물증으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뭔가 낯설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지만 성진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왠지 도망가면 계속 쫒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성진은 소녀를 때어낼 요량으로 근처 빵가게에 들러 슈크림빵과 녹차크림빵을 샀다.
둘 다 성진이 평소에 좋아하던 빵이다. 자신이 맛있으면 남들도 맛있을 거라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성진은 소녀에게 비닐에 포장된 빵 두개를 쥐어주었다. 희미하게 웃는 소녀의 모습에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어차피 집에 가도 할 건 없었다. 굳이 있다면 병재가 시킨 빡지가 있었지만, 성진은 그 나름대로의 반항일까. 그것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은밀히 따지자면 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빡지를 내일까지 해가지 않으면 병재한테 맞을 텐데도 성진은 무슨 생각인지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성진은 이 미스테리한 소녀를 탐구할 생각으로 소녀와 함께 교차로 근처 벤치에 앉아 주황 빛 저녁을 맞이했다.
소녀는 빵을 맛있게도 먹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먹방' 이라는 것에 나가도 잘 할 것 같다. 성진은 조심스럽게 소녀의 신상을 캐물었다. 호의를 베푼 자신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저, 이름이 뭐예요?"
소녀는 말없이 짭짭쪕쪕 거리며 빵만 씹어댄다. 소녀의 깊은 갈색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성진은 왠지 모를 쑥스러움에 고개를 딴 곳으로 돌렸다. 멀리 있는 신호등이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그럼, 이름 말고 학교는 말해줄 수 있죠?"
"..."
"..."
소녀가 묵묵부답을 고수하자 성진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누군가와 이렇게 대화 한다는 건 몇 년 만의 일이라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가야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보자, 이럴 때는 공통된 취미 같은걸 이야기 하면 좋다고 어느 책에서 본 것 같다.
하지만 또 막상 취미 같은걸 이야기 하자니, 처음 보는 상대에게 이런 예기를 무작정 하는 건 실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가 먼저 나서서 이 어색함을 중화시켰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갑작스러운 감사인사에 성진은 볼을 붉혔다. 그러면서 손을 정신없이 좌우로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뭐. 그 정도 쯤 이야 하하.."
소녀가 입가를 씨익 올리며 교복상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소녀가 내민것은 사탕이었다.
주황색깔 바탕에 그보다 더 진한 붉은색으로, 건더기가 부분부분 박혀있는 원반모양의 사탕이다.
왠지 모르게 먹기 싫어지는 비주얼 이다.
"보답이야."
"아.. 고마워.."
사탕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긴 했지만 역시나,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슨 맛 사탕일까? 이런 모습의 사탕은 난생 처음 본다. 설마 이걸 먹어야 할까?
소녀가 먹어보라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성진에게 신호를 보냈다. 성
진은 안 먹으면 왠지 그녀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투명한 사탕비닐을 깠다.
에라, 모르겠다. 성진은 눈 딱 감고 사탕을 혀 위에 올려놓았다. 천천히 침이 섞이고 맛이 느껴졌다.
약간 매운맛. 계속 맛을 보니 김치맛이 느껴졌다. 분명 김치맛이다.
뜬금없는 김치맛에 성진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디서 이런걸 구했을까. 성진은 소녀가 더욱 궁금해졌다.
"두 시간이야."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소녀. 무언가의 수수께끼일까? 성진이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을 때쯤 소녀가 부연설명을 했다.
"그 사탕을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어. 하루에 세 번, 두 시간동안."
사탕맛 만큼이나 생뚱맞은 그녀의 농담은 성진을 다시 한 번 웃게 했다. 조금씩 세어 나오던 웃음은 그세 터져 나와 교차로에 울려 퍼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움 이었다. 세상이 밝게 보였다. 이런 기분을 어디서 느껴봤을까. 그래, 그건 자신이 왕따를 당하기 전이었다.
세상엔 재미난 게 넘쳐나고, 친구들이 있어 마냥 즐겁던 그 시절. 성진은 희미한 향수를 느꼈다. 그 사이 소녀가 벤치에서 엉덩이를 땠다.
"이걸로 빵 한 개 값은 치룬 거다?"
"어.. 응."
겉은 어두워 보이지만 살짝 웃는걸 보면 상당히 귀여운 면이 있는 여자애다. 뭐하는 앨까? 성진도 소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다음에 봐."
소녀가 말했다. 성진도 급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어.. 그래, 잘 가."
뭔가 허무맹랑한 인사가 끝나고 소녀는 어둑해진 거리를 향해 걸어갔다.
무언가의 여운이 남은 듯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성진도 반대방향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파란불이 꺼지기 전, 아슬아슬 세이프.
다음날 아침, 학교에 등교한 성진은 교실 중앙 맨 뒷자리에서, 한 칸 앞 책상에 앉았다.
1교시가 시작되자 아침부터 머리 아픈 수학이라고 아이들이 징징댔다.
하지만 성진은 1교시 과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 때면 온 정신이 그 수학문제에 빠져들고, 그건 곧 다가올 괴롭힘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게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1교시가 끝나자마자 누군가 성진에게 다가왔다.
성진은 책상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푹 숙이고 있었다. 어두운 주황색으로 염색한 남자애가 성진에게 집적댔다.
"야, 박성진. 내가 시킨 거 해왔냐?"
성진은 옆으로 살짝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어, 어.."
성진이 책상 옆에 걸려있는 가방에서 꺼낸 것은 얇은 공책 이었다.
남자애는 공책을 거칠게 받아들더니 숙제검사를 하는 선생님처럼 책장을 넘겨 훑어봤다.
"야, 씨발 장난하냐?"
무릎 위 두 손을 어루만지는 성진. 성진은 주황머리 병재가 자신을 때릴까봐 안절부절 못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하는 욕이 마치 온몸을 칼로 도려내는 듯 찌릿찌릿 했다.
"내가 빡지 열장이라고 했지? 근데 왜 아홉 장 쓰냐? 뒤질래? 뒤지고 싶어 환장했지?"
"미, 미안.. 그게 너무 졸려서 깜박했나봐."
"그걸 변명 이라고하냐 이 씹새끼야? 그럼 나보고 이걸 마저 적으라는 거냐? 어?"
병재는 성진의 뒤통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주위 아이들은 이 두 사람 근처를 피하려는 듯 소근 대며 급히 지나쳤다.
교실 사이사이에 자신을 재미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저 찢어 버리고 싶은 사악한 입 꼬리.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지만, 그럴만한 용기가 없다.
그리고 또 비굴하게 부탁하겠지.
"미안.. 미안.. 제발 한번만 봐줘. 나머진 내가 오늘 안에 꼭 적을게."
"아놔, 이 새끼가. 좋아, 그럼 봐줄게 그 대신 오전까지 다 써놓고 손해비 내놔."
"소, 손해비..?"
"하기 싫다는 거냐? 아 뭐, 그래도 상관없고. 좆같은 사회쌤한테 빡지 안해서 쳐 맞으면 그 배로 너한테 되돌려주면 되니까. 그렇게 하지 뭐, 마침 내가 신기술도 연마해서 말이야."
성진의 손이 떨렸다. 언제 갑자기 자신을 때릴지 조마조마했다. 차라리 어디론가 어둠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건들지 않는 그런 곳으로..
노을 진 가로수 길을 또 걸어간다. 파란색 캔버스화의 앞코만 내려 본 체, 성진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오늘도 정신이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성진은, 문득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렇게 맞고, 삥뜯기고,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이렇게 살아있는걸 보면 인간의 생명력은 참 끈질기다고 생각된다.
성진은 조용히 실소를 토했다. 언제나 지나치던 상가거리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인적이 드물다.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외롭다. 기댈 나무가 필요하다.
정작 학교에 있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곳을 그렇게 원했으면서, 학교를 벗어나면 또 사람이 그리웠다.
이렇게 아이러니할 수가.
도로 옆 전봇대에 버려진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검은 고양이가, 바스락 거리는 동작을 멈추며 성진을 바라본다.
다행이다.
고양이라도 있으니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마치 독거하는 사람이 집에 가면 반겨주는 강아지처럼. 아니, 고양이인가... 어쨌든 그런류의 반가움이다.
"너라도 나를 반겨주니 고맙네."
고양이가 도망간다.
"아닌가..."
성진은 조금의 실망감을 머금고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하늘은 오늘도 보라색이다.
보라색하늘은 성진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몽환적인 판타지를 느끼게 하는 보라색 하늘은 언제봐도 지겹지 않았다.
저 하늘과 한대 섞일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성진은 날고 싶었다.
날아서, 저 하늘을 마냥 떠다니고 싶었다. 안된다면 죽어서라도. 성진은 슬며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켰다.
선선한 저녁공기가 폐를 가득 부풀렸다. 성진의 머릿속엔 벌써 자신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꿈으로 가득 찼다.
기분 탓일까.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이대 로면 정말 하늘을 날아갈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게 기분이 좋다. 이제, 슬슬 가볼까. 성진은 왼쪽 발을 내딛었다.
"응?"
동시에 눈을 뜬 성진은 하늘에 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밑에서 본다면 보라색 하늘과 섞여있는 듯 한 그런 모습이다.
발밑은 아찔한 허공이다. 건물들이 바둑판위에 놓여 진 바둑돌처럼 보인다.
이건 꿈일까? 설마, 꿈일 리가 없다. 이렇게 온 몸으로, 피부로, 세포 하나하나로 생생히 느끼고 있건만.
확실히 지상보단 하늘이 더 공기가 맑았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생각하자 정말 앞으로 날아갔다.
성진은 환호성을 질렀다. 유치원 때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아본 이후로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질러본건 처음이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유일까.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살아있다! 내가 바로 박성진이야!
성진의 볼이 방긋 부풀어 올랐다. 이대로 계속 날아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지만, 그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행복했다. 문득 어제 만난 여자애가 떠올랐다.
"그 사탕을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어. 하루에 세 번, 두 시간동안."
분명 두 시간 이라고 했다. 정말 그 김치맛 사탕이 자신을 날개 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그 여자애는 마법사일까. 전체적으로 검은색 오라를 뿜고 있었으니 마녀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성진에게 있어서 그 여자애는 참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성진은 모든 걸 잊은 체, 하얗게 비운 머리를 내밀고 하늘을 날았다.
하염없이, 정처 없이, 목적 없이. 얼마나 날았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날아다녔지만 이 상쾌한 기분은 질리지 않는다.
여자애 말대로라면, 두 시간이 지나면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한시간정도 날아다녔으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성진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하늘을 가슴 가득히 품고 죽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은 죽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죽음은 고통도 없을 것 같았다. 땅으로 곤두박질 친다면 닿는 순간 기절해 버릴 테니깐. 그리고 죽음 후엔 지긋지긋한 왕따와 괴롭힘도 없겠지.
그때였다. 점점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곤 성진의 몸이 점차 땅으로 가라앉더니 순식간에 추락했다.
성진이 비명을 질렀다. 땅이 점점 가까워졌다. 온 몸에서 소름이 돋고 머리가 비죽 솟아올랐다. 그 순간 성진은 깨달았다.
-살고 싶다! 살고 싶어! 살려줘!
잠시나마 그런 어리석은 상상을 해버린 자신을 자책했다.
-멍청하게 죽긴 왜죽어! 이렇게 난 살고 싶어 하는데! 왜!
이젠 고층건물보다 조금 높은 곳까지 다다랐다. 살수만 있다면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도 보고 싶고, 아빠도 보고 싶다.
아빠는 내가 죽어버린다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남아있는 엄마는 영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빠도 그런 건 원치않을 것 이다.
-이런 멍청이! 제발! 누가 좀!
떨어지는 사람에게 도움 이란건 바랄 수 없다. 성진의 눈물이 솟아올라 하늘에서 반짝였다. 그 때 허리를 감싸 안는 가벼운 손길이 느껴졌다.
"어?"
눈물로 흠뻑 젖어버린 눈에 한 여자애가 들어왔다.
검은색 머리에, 검은색 교복, 검은 갈색 구두. 전에 교차로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검은 소녀였다.
그녀는 성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그 앵두같이 귀여운 입술로 말했다.
"이걸로 두 번째 빚도 갚은 거다?"
여자애가 싱긋이 웃었다. 천천히 땅으로 내려와 여자애와 성진이 착지를 했다. 여자애는 뒷짐을 쥐면서 주저앉은 성진에게 허리를 굽혔다.
"너 괜찮아?"
"으... 응, 덕분에. 고마워."
"그러게 조심해야지, 하루는 생각보다 짧다고. 먹을 걸 찾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면 하루가 다 간다니깐?"
성진은 긴 머리를 늘어트리며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여자애와 얼굴을 마주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두근대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거지? 순간, 이 여자애를 더 많이 알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샘솟아 올랐다. 그리고 성진은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여자애는 여전히 그 앙증맞은 미소를 지은 체.
"나리."
라고 답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성진의 등 뒤로 걸어갔다.
"다음에 나 보면, 모르는 척 하면 안 된다. 알았지? 꼭 맛있는 거 줘야해!"
성진이 "응." 이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뒤로 돌리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여자애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성진은 소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본 체, 한참을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
일주일 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성진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성진은 그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사실을 담임선생님과 부모님께 모두 말씀드렸다.
살아난다면 새롭게 살기로 결심했으니, 그 약속은 꼭 지키고 싶었다.
용기있는 성진의 고백에, 결국 성진을 괴롭히던 왕따의 주동자 병재는 다른 학교로 쫓겨났다.
덕분에 괴롭힘도 아예 없다시피 줄어들었고, 아이들도 더 이상 자신을 희롱하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어느 정도의 왕따 분위기는 남아있지만.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 이라고 성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밝은 성격과 재밌는 입담이라면, 분명 다른 아이들과도 순식간에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성진은 자신이 있었다. 상가거리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마, 일 끝난 직장인 이거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정주부일 것이다. 도로 근처 전봇대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쓰레기봉투를 뒤적거리던 검은 고양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늘 맛있는 빵 냄새를 풍기는 단골 빵집은 언제나 성진의 식욕을 자극한다.
푸근하게 생긴 빵집 아저씨가 빵을 들고 가게 밖을 나왔다.
그 앞엔 검은 고양이가 그 똘망똘망한 갈색 눈동자를 굴리며 아저씨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성진이 그 옆을 지나칠 때.
"또 왔냐, 나리야. 저번엔 호두사탕 먹고 배탈 나서 고생하더니, 이번엔 빵이 먹고 싶어서 온거냐?"
성진이 옆을 보자, 아저씨가 쭈구려 앉아서 단팥빵을 손으로 뜯어 고양이에게 주고 있었다.
고양이는 손으로 주는 빵 조각을 맛있게도 받아먹었다.
'나리' 라는 말에 돌아 본거지만, 자신이 바라던 그 여자애가 아니라는 사실에 성진을 살짝 실망을 했다.
그리고 다시 발을 옮기려던 순간 딸랑이는 방울소리와 함께 무언가 성진의 발목 깃을 붙잡았다.
검은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물고있던 바지자락을 놓고, 성진을 올려다보며 오른쪽 앞발을 내밀었다.
"야옹."
http://todayhumor.com/?panic_57761
글은 참 잘썻다고 느끼는데 한가지 아쉬운점은
나리 라는 여자아이가 떨어지는 성진이를 어떻게 구할수 있었는지가 의문점으로 남네
아마도 고양이였던 나리가 사람이 된다는 신비로움으로 그를 살린거에 대한 의문을 메우려는 의도같은데
차라리 고양이보다 새 같은걸로 했으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성진이를 구하는거에 대한 의문도 풀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만 남네
하지만 작성자가 글을 잘썻다는건 변함없ㅇ므
이 댓글을
특별한 능력이 생기는 사탕이라는 주제로 창작 작품들 너도나도 자신있는 사람들이
도전해서 올라왔었음^^
이 댓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