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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건강염려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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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염려증 (hypochondriasis, 健康念慮症)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 있는 상태. 
[출처 - 두산백과]









두툼한 약봉지들을 주머니 속 손에 꼭 쥔 채

아무도 없는 단칸방의 불을 켠다.

약봉지들로 엉망이 되어 있는 바닥을 발로

이리저리 차 자리를 만들곤 털썩 주저 앉는다.

오늘 타온 약봉지들을 눈 앞에 진열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제 술을 마신 것도 아니건만 속이 너무나 쓰리다.


' 위염인가? 아니면 위궤양? 설마 위암? '


밤새 온갖 상상을 다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날이 밝자마자 대학병원을 찾았다.

별다른 검사조차 하지 않은 채 의사는 단순한

위염이라고 말하며 커피를 많이 마시는 습관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증상이란다.

하지만 난 30년을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다며

억지로 고집을 피워 기어코 두 번이나 

내시경 검사를 했다.

그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자기 몸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하질 않았던가.

미칠 것 같다.

분명 큰 이상이 생긴 것이 틀림 없다.

당장이라도 다시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

방바닥에 던져 두었던 잠바를 급하게 움켜쥐곤

문을 연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응급실 밖에 갈 수 없는 시간.

응급실에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사람에게

내시경을 해 줄 것 같진 않다.

분명 아침 진료시간에 다시 오라고 하겠지.

열었던 문을 다시 닫으며 방 안으로 들어와 

넓지도 않은 방을 이리저리 걸어다닌다.

초조하다. 



' 내일 병원을 갔을 때 의사가 왜 조금 더 일찍

오지 않았냐며 한숨을 쉬면 어떻게 하지.

병은 원래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던데 '



손톱을 물어 뜯는다.

초조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 때문에

손톱은 이미 톱날처럼 바뀌어져 있다.

톱날에 찢긴 입술에서 피가 난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아 담배를 꺼내어문다.

깊게 한모금 빨아들이자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두번째 모금을 빨아들이는데 목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든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목이 부었나 보다.

커피를 마시면 괜찮을 것 같다.

찬장 구석에 쳐박혀 있는 스틱커피를 꺼내

커피를 타서 한모금 마신다.



이상하다.

커피를 마시는데도 목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다.

갑자기 예전에 흡연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던 

기억이 났다.

화면 속의 그 남자는 후두암으로 목에 구멍을

뚫는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고 있었다.


' 잠깐만, 후두암?'


그래 맞다.

난 15년 동안 하루에 담배를 두갑씩 

태워대는 골초였다.

식은 땀이 흐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인터넷 창을 열고 후두암을 검색한다.

후두암의 초기 증상은 목소리가 변하고

목에서 쉰 소리가 난다고 한다.

혹이 만져지기도 하는데 혹이 만져진다면

빠른 진단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목소리! 

갑자기 목소리가 변한 것 같다.

쉰 소리도 나는 것 같다.

떨리는 손으로 목을 더듬어 본다.

혹이 있는 것 같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손톱을 물어뜯는다.

톱으로 변했던 손톱이 부러진다.

위암도 모자라 후두암이라니.

시계를 봤다. 

하지만 아침이 되려면 한참이나 있어야 한다.

1초가 억겁의 시간이 되어 흐른다.


빠른 진단!

인터넷 창에서 봤던 문구가 떠오른다.



' 그래, 빠른 진단!

어차피 병원 가서 내시경을 받아봐도

오늘 그 의사처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무적인 말만 하겠지? '




내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돌팔이 같은 의사와 내시경 기계 따위에 맡길바에야

내 눈으로 직접 보면 그것만큼 확실한게

없을 것 같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싱크대를 열어 제일 날카로워 보이는 놈으로 

꺼내서 물을 끓여 소독을 한다.

소독을 하지 않으면 균이 내 몸으로 들어와

이상이 생길 것이다. 

한참을 끓는 물에 담궈 두었던 놈을 꺼내어

손에 든다.

그리곤 모니터에 후두암 덩어리로 보이는 

혹 사진을 띄워두고 그 옆에 거울을 가져다 둔 뒤

크게 숨을 들이 마신다.

긴장 된다. 

아니, 설레인다.

내 목에서 만져지는 혹이 저 사진처럼 생긴 것만

아니면 난 후두암이 아닌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가죽을 잡고 지그시 눌린다.



아프다.

하지만 혹시 저 사진 속의 것과 같으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더 크다.

거의 다 됐다. 

숨을 쉴 때마다 빨간 거품이 인다.

손에서 힘이 빠져 그 놈을 놓쳐버린다.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쓰러진다.

하지만 얼굴은 기쁘다.

그 사진 속의 것과 내 것은 틀렸기 때문이다.

콜록 대면서도 웃으며 생각했다.

내가 만진 혹 같은 것은 아마도 성대였나 보다.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리고 내 눈도 서서히 감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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