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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기묘] 사람고기
고기가 먹고 싶었다. 

돼지고기값이 폭등하고, 돼지고기를 싸먹는 상추값은 돼지고기값보다 더 비싸지고, 닭고기도 물가 오름세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광우병 파동으로 수입 금지된 미국산 쇠고기가 멕시코산 쇠고기에 섞여 위장 수입되었다는 보도에 연일 등장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기가 먹고 싶었다. 

“고기가 먹고 싶네. 요새 안 먹어서 그런가…?” 

초원에서 풀을 뜯는 듯한 기분이 드는 아침 식탁 앞에서 짐짓 무심한 투로 그렇게 말했을 때 아내는 금세 눈을 치떠서 나를 보고는 다시 밥그릇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내가 잘나가는 벤처기업의 대리일 때만 해도 달랐다. 뭐가 생각난다고 운만 떼도 이내 그날 저녁 식탁에 올렸던 아내였다. 그러나 내가 구조조정으로 백수가 되자, 대번에 낯빛이 바뀌었다. 무슨 말을 하든 코웃음이었다. 

“아무래도 몸이 허한 게 고기를 좀 먹어야 될 거 같은데….” 

아내가 운영하는 미용실 즈음에 차를 대며 다시금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고결한 채식주의자인 아내는 나를 짐승 보듯 바라보았다. 

“그럼 이따 나 데리러 오기 전에 사다놔.” 

마지못해 아내는 지갑을 열어 만원 한장을 던지다시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젠장, 고기 한번 얻어먹기 더럽고만. 나는 핸들을 꺾으며 투덜댔다. 


경기침체에 찌는 듯한 무더위까지 겹쳐서인지 오후의 시장은 한산했다. 무슨 고기를 먹을까 고민하다 결국 닭으로 결정했다. 대형마트나 정육점이 아니라, 재래시장을 찾은 건 재래시장의 닭집에서 직접 잡아 파는 닭이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팍팍한 닭보다 훨씬 육질도 쫄깃하고 배어나오는 맛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몇 군데를 서성대다 철창에 갇힌 닭들이 졸고 있는 어느 고깃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격 흥정을 끝내자, 주인 여인네는 내가 고른 닭의 날갯죽지를 틀어잡아 철창 우리에서 끄집어냈다. 한바탕 꽥꽥대던 주변의 닭들은 한놈이 빠져나가자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한놈이 잡혀나가면 한동안 평화가 찾아옴을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식칼을 집어든 여인네는 끄집어낸 닭의 울대를 서슴없이 푹 찌르고는 털 뽑는 기계원통 안에 닭을 훅 집어넣고 스위치를 켰다. 두닥닥닥. 원통 속에서 닭이 돌아가며 털이 뽑히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빤히 보고 있기가 뭣해서 나는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 가게 역시 닭이나 개, 흑염소 따위를 파는 고깃집이었다. 한데 열린 문으로 보이는, 안에 걸려진 고기의 모양이 왠지 이상했다. 돼지나 소라고 하기에는 모양이 너무 인체에 가까웠다. 나는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밖으로 뺐다. 머리와 손발이 잘리고, 가슴부터 배까지 활짝 열려 있고, 피부는 허옇게 바래 있었지만, 정말 인체로밖에 볼 수 없는 형태였다. 


“도리탕 하신다고 했쥬?” 

여인네가 묻는 바람에 나는 인체 모양의 고기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그렇다고 하니, 여인네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물을 마시고 모이를 쪼던 닭의 대가리를 잘라버리고, 배를 갈라 창자를 훑어 뜯어내고, 토막을 냈다. 다시금 건너 가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그 집 유리문에 서툴게 붙여놓은 문구를 보았다. 


사람고기 팝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건너 가게 유리문에는 빨간 선팅지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주인 여인네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여인네는 건너 가게에 가 있는 내 시선을 따라 보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왜유, 사람고기가 뭐 어때서유? 고기가 다 거기서 거기지.” 

사람고기가 뭐 어떠냐니….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계산을 하고 닭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살펴보니, 가게 안에 걸려 있는 고기가 사람의 그것이라는 건 더 분명해졌다. 어깨 부위에 새겨진, 하트를 꿰뚫는 화살 문신까지도 또렷했다. 게다가 가게 입구의 닭장 맨 위에 갇혀 있는 고양이가 맛있게 뜯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강한 욕지기가 치밀었다. 토르소 같은 인육에서 어깨 살을 식칼로 슥슥 떼어내던 주인장이 가게 앞에서 구토를 하는 나를 보고 툴툴댔다. 

“가뜩이나 장사두 안 되는데, 남에 가게 앞에서 뭔 짓거리요.” 

식칼을 들고 나를 노려보는 품이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내 어깻죽지를 잘라낼 것만 같아서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시장 입구에 세워두었던 차에 올라 한참 동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끝에 나는 휴대폰을 집어들어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이 사람이 더위를 먹었나….” 

시장에서 사람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있다는 내 신고에 경찰은 대뜸 짜증부터 냈다. 

“더위를 먹은 게 아니라, 정말이라니까요. 와서 직접 보면 알 거 아니에요?” 

“아니, 이 사람아, 사람고기 파는 게 어제오늘 얘기요? 그걸 갖고 무슨 신고를 하고 난리야?” 

아연실색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이놈의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기에 사람고기를 파는 게 당연시된다는 말인가. 과거 중국에서는 인육을 사고팔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는 기사를 어떤 책에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 중국의 얘기지,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엽기적인 범죄로 법정 최고형을 받아 마땅한 짓이었다. 그런데 인육을 팔다니…. 내가 행여 고기를 먹고 싶어 환장한 나머지 정신착란이라도 일으켰단 말인가. 집으로 달리는 내내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이 도무지 정리되지 않았고, 눈앞에서는 계속 고깃집에 걸려 있던 사람고기가 어른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집 앞까지 이르러 주차를 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우편함을 보니, 무슨 통지서가 날아와 있었다. 통지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육 대상자 결정통지서’. 

인육 대상자 결정통지서? 무슨 현역 입영통지서나 교통범칙금 납부통지서처럼 공공기관에서 발행된 통지서와 유사한 양식의 용지였다. 귀하는 금번 2/4분기 인육대상자에 선정되었으므로 이를 통지합니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장난을 한단 말인가. 통지서 뒷면을 보니, 인육대상자 선별기준이 명시되어 있었다. 사회질서에 반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자. 최근 5년간 본인의 수입이 전혀 없는 만 25살 이상의 성인남녀 중 해당기관의 무작위 추첨에 선정된 자. 남성의 경우 현역 입영하여 군복무를 필하지 않은 자.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거기까지 읽었을 때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어깨를 짚었다. 

“박봉팔씨?” 

두명의 덩치였다. 한놈이 버둥거리는 나를 붙들었고, 다른 놈이 손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이내 정신이 혼미해졌다. 의식을 잃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을 떴을 때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이 느껴졌다.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휴, 그럼 그렇지. 백수가 된 뒤로 어처구니없는 악몽을 자주 꾸곤 했다. 나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누워 있던 등부터 엉덩이까지가 배기는 걸 느꼈다. 바닥은 철창이었고, 그 밑에는 각종 오물이 악취를 풍기며 널려 있었다. 바닥만이 아니었다. 사방이 철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발가벗겨진 채 철창에 갇혀 있었다. 철창 너머로 식칼을 갈고 있는 여인네가 보였다. 나에게 닭을 팔았던 여인네였다. 두명의 덩치가 나를 덮친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 뒤로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여인네에게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어신경 자체가 없어진 듯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서 오세요.” 

고깃집 입구로 누군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내였다.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게다가 아내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던가. 나는 철창을 두드렸다. 아내가 무표정하게 나를 가리켰다. 주인 여인네는 철창문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인네를 밀치고 달아나고 싶었지만, 몸에 안정제라도 투여했는지 맥이 하나도 없었다. 주인 여인네는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나를 끌어다 목에 칼을 들이댔다. 식칼은 목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동맥과 식도와 기도가 한꺼번에 끊긴 것 같았다. 나는 힘없이 버둥거렸지만 여인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목 밖으로 솟구치는 피 때문에 컥컥대는 나를 여인네는 털 뽑는 기계원통 안에 훅 밀어넣고 스위치를 켰다. 


나는 고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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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비회원
  • 2011.10.15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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