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여름휴가 때 일인데, 친구들과 일주일 정도 국내 여행 다녔지.
그러다 전라남도 담양에 들렀어.
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 딱갈비로 유명한 신식당도 가고, 즐겁게 놀다가 밤에 목포로 이동하려던 중, 국도를 하나 탔어.
당시 아이나비 UP+라는 네비를 쓰고 있었는데, 얘가 원래 국도는 잘 못찼거든.
가다가다 보니까 진짜 불빛 하나 없는 길을 가게 되었는데, 어차피 오는 차들도 없겠다, 하이빔 키고 신나게 떠들면서 달렸었지.
그러다 담배나 한대씩 피우려고, (당시 동행은 나까지 4명, 그중 3명이 흡연자, 난 내차에서 절대 담배 인피워)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내렸어.
장난기가 좀 돌았던 난 라이트도 끄고, 시동도 꺼버렸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뭔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 있지?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 그리고 차 라이트 끄니까 진짜 불빛하나 없더라.
그래도 건장한 남자 4명이 뭐가 무섭겠어. 공기 맑다고 팔도 앞뒤로 흔들어보고,
그러다가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 즈음에 가로수길이 하나 보이더라고...
뭐 마을로 이어지는 길인듯 한데, 원래 가로수길이란게 낮에 보면 엄청 이쁘잖아. 근데 불빛하나 없는 밤에 안력하나에 의지해 거길 보니까 진짜 을씨년 스럽더라구...
근데 우린 지금생각해도 이해가 안가고, 그땐 미쳤었는지, 괜히 낄낄 거리며
"저기 가보자."
이러면서 갔었지.
그 가로수 길 끝까지만 찍고 돌아오자며 길을 걷는데, 저 앞에 뭔가 희끄므레한 게 보이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남자 넷이 뭐가 무섭겠어.
아무리 무서워도 또 친구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거잖아.
그래서 4명 모두 그 물체 앞으로 갔더니 왠 어린 여자애더라구.
6~7세 정도 되었을까. 흰색 원피스(밤이라 더 하얗게 보였어, 뭐 아이보리색이었을 수도 있지)에 옆으로 매는 작은 가방을 메고 실내화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어.
그때가 밤 12시 전후였으니 우리는 솔직히 정말 오싹했지.
저거 뭐야 진짜 귀신이란게 있는 거야? 하고.
아까도 말했듯이 그래도 남자들이라 허세는 좀 있었는지, 어떤 ㅂㅅ 생키(친구A)가 말을 거는거야.
그 애한테...
정말 평상시에 남자답고 의리있어서 좋아하는 놈이었지만, 진짜 그땐 죽여버리고 싶더라.
"몇 살이니? 여기서 혼자 뭐해요?"
그랬더니 애가 천천히 그놈을 한번 빤히 보더니 들릴락 말락 하는 목소리로
"나 여기서 놀아요."
이러더라.
그 목소리가 보통 애들 목소리랑은 뭔가 좀 달랐어.
뭐랄까 좀 더 날카롭고, 그리고 그 애의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몸의 다른 곳 어디에선가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소리. 도무지 몸이 떨려서 안되겠는거야. 우리는...
그 시간에 그 어린애가 혼자 거기 있을 이유가 없잖아. 길을 잃었다기에도 애가 너무 담담하고,
근처는 인가도 많지 않은 곳인데 부모가 그 시간에 애 안챙길리도 없고...
우리는 진짜 아무말도 못하고 덜덜 떨면서...
그 애 지나쳐서 가던 길로 갔어. 정말 치명적인 실수였던건 차로 다시 돌아간게 아니라, 진행방향으로 가로수길 안쪽으로 더 들어간거였지.
우리는 뭐랄까, 우리는 네가 귀신이란거 모른다. 아직 눈치못챘어. 이런 느낌으로...
계속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하면서 웃는척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아까 그 허세부린 친구A가 너무 심하게 막 덜덜 떠는거야.
"아아..씨발..씨발.."
막 이러면서.
난 "뭐야 이새끼야. 왜 지랄이야 갑자기."
라며 그냥 넘기려 했는데,
키가 190가까이 되고 고딩때 싸움으로 날렸던 그 새끼가 완전 잠겨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아아..씨..씨발..아까 그 꼬마애가 지금 가로수 윗가지 잡으면서 놀고 있다고..아아.."
그 말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는데,
진짜 욕이 절로 나오는게, 7살 정도밖에 안되보이는 꼬마애가 아름드리 가로수.
적어도 가장 낮은 가지가 3M는 되어 보이는 그 가로수 가지를 껑충껑충 뛰어서 툭툭 건드리고 있더라고.
진짜 온몸에 털이 다 곤두서는 것 같고, 소리라도 질러버리고 싶은데, 소리 지르면 그 애가 우리쪽 볼까봐, 무서워서 소리도 못지르겠고. 그 중 제일 마음약한 친구새끼는 거의 울먹울먹하고 있고,
나도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서 하필 거기서 내려서 담배를 피운것,하필 그 가로수길에 진입한 것, 하필 그 꼬마애를 지나쳐서 온 것.
다 후회가 되는거야. 진짜 입안에서는 계속 씨발, 젠장 이런 말 밖에 안나오고...
꼬마애를 약 50M 정도 등진 채로 벌벌 떨면서 서있다가, 도무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어.
애가 안보이더라. 친구들 다 시켜서 확인해봤더니 진짜 그 꼬마애가 안보여.
안도감에 결국 그 맘 약한 친구새끼는 흐느끼기 시작하고, 그 허세쟁이는 혼자 안 쫄은 척, 강한 척 하면서 이빨을 가기 시작하고, 난 다시 담배 하나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는데,
갑자기 쳐울던 그 친구새끼가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더라고,
이런 젠장. 한 10M앞에 그 빌어먹을 년이 서있는거야.
분명 적어도 50M이상 떨어져 있었는데, 잠깐 돌아보고 뒤돌았다가 다시 봤을 땐 없었는데...
"씨발, 어차피 귀신이래봐야 꼬맹이 아냐"
라고 친구A가 발악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친구B는 울부짖으면서 소리 지르고 지랄을 하는데, 나랑 친구C는 진짜 더 좆같은 광경을 보고 말았어.
그 꼬마애가 뭔가를 먹고 있는거야. 손을 연신 입으로 가져가면서. 믿지 못하겠지만, 너무 무서워서 오줌싼다는게 이런 뜻이구나 싶을 정도로 씨발,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버리지.
이런 생각 밖에 안들더라고. 그 년이 먹고 있던건, 지 손가락이었어.
그 조그만 손가락을 계속 자기 입으로 가져가서 조금씩 조금씩 뜯어먹고 있었어.
아무 표정없이, 자기 손가락만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계속 조금씩 조금씩 뜯어서, 피도 나지 않았어, 우두둑이라던지 찌익찌익 이런 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야.
그냥 아주 부드러운 뭔가를 먹는 것처럼 우물우물 거리는 소리만 들린 듯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