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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내친구의 여자친구

이 이야기는 내가 20살 때 겪은 일이다.

그 당시 나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해방감에 한창 놀기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내게는 성진(가명)이라는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있는데,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가 되어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x랄친구이다.

 

이 당시에는 우리 둘다 여자친구가 있어서 매일 같이 넷이 어울려 술도 마시고 놀러도 다니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성진이의 여자친구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또 같은 동네에 살았던지라 성진이와 사귀기

전부터 나와도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성격도 활발하고 얼굴도 이뻤기 때문에 성진이와 사귀게 되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도 기쁘게

축하해줬고 둘이 오래가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성진이의 여자친구인 정아(가명)에게는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는데, 그건 정아가 종종 이상한 것들을 보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성진이 한테 들은 것이지만 정아가 가위도 자주

눌리고 길을 가다가도 종종 귀신을 본다고 했다.

 

하루는 성진이와 내가 술을 마신 후, 우리집에서 밤을 새며 놀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성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에 누구인가 하고 성진이를 쳐다봤는데 성진이는 약간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상대방을 달래고 있었다.

 

"괜찮아. 그냥 꿈이야. 그러니까 무서워하지말고 알았지?"

 

대충 통화내용을 듣고 정아임을 짐작했다.

 

통화가 끝난 후, 내가 한밤중에 왠일이냐고 물어보자, 성진이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말해 주었다.

 

"정아가 잠을 자는데 꿈에 중학교 동창이 나왔데. 정아가 오랬만이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울면서 혼자가기 싫다고 같이 가지고 하더래.

 

정아가 가만히 친구를 보니 얼굴도 너무 창백하고 분위기도 이상해서 가긴 어딜가냐고 가기싫다고

말했데. 그러자 얘가 갑자기 막 화를 내며 '니가 그런다고 내가 안데려갈꺼 같아?' 라며 정아 팔을

막 잡고 끌더라는거야.

 

그래서 정아가 막 울면서 놔달라며 소리치다가 꿈에서 깼데.

 

깨고 나서도 너무 무섭고 해서 막 우는데 팔에서 통증이 느껴지더라는 거야. 그래서 팔을 보니 뻘겋게 손자국이 남아있더래. 그래서 너무 무서워서 나한테 전화 한거더라구...'

 

성진이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나는 기분이 싸해졌지만, 그냥 꿈이겠거니 생각하였고 성진이한테 별거 아닐거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몇 일 뒤 정아의 꿈에 나온 친구가 여행 중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성진이한테

들었을 때는 큰 충격과 함께 싸늘한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 갑작스레 정아까지도 무섭게

느껴지게 되었다.

 

내가 겪은 일은 저 일이 있은 후, 약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저 일이 있은 후, 나는 의도적으로 정아를 만나는 걸 기피했었다.

 

뭐. 사람들이 겁쟁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저런 일들은 그저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 내 주변에서는 처음이었기에 정아가 왠지 꺼름직하게 느껴졌었다.

 

정아를 피하다보니 성진이와도 자연스레 만나는 회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생각을 해보니 이건 좀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래. 뭐 친구 여자친구가 신기같은게 좀 있는거 같다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건 아니잖아.

괜히 혼자 쫄아서 오바떨지말고 예전처럼 잘 지내보자.'

 

마음을 먹고 성진이한테 연락을 했다.

 

'뭐하냐? 오늘 내가 쏠께 신천으로 정아랑 같이 나와. 우리 못본지도 좀 됐잖냐ㅋㅋ

간만에 술 한 잔 하자.'

 

성진이도 내가 정아를 피한다는걸 알고 있었고, 내심 그것을 섭섭해 하고 있었던 차에 내가 저렇게

나오자 반겨하였다.

 

'OK. 한턱 쏜다니 형님이 한번 가마. 니 여자친구도 나오는 거지? 간만에 넷이서 찐하게 마시자 ㅋ'

 

이렇게 하여 나, 내 여자친구, 성진, 정아. 넷은 간만에 모이게 되었고 오랬만의 자리라 그런지,

평소보다 과하게 마시며 새벽까지 놀게 되었다.

 

한참 먹고 떠들며 놀다보니 새벽 2시 쯤이 되서야 술집에서 나오게 되었고, 당시 우리와는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내 여자친구는 먼저 택시에 태워 집에 보낸 후, 나와 성진이는 일단 우리집 근처에 사는 정아를 데려다 주고 우리집으로 가서 같이 자기로 하였다.

 

당시 나는 빌라에 살고 있었고, 정아는 우리집에서 약 200m정도 떨어진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정아네 아파트는 아파트 단지 후문 쪽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는 자연스레 한적한 뒷길을 걷고 있었고,

이 길은 평소에도 자주 지나다니는 터라 이상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단지 후문으로 가는 길은 옆에 놀이터를 끼고 있었는데, 놀이터와 아파트 단지의 벽사이에 난 길이라 쭉 늘어선 가로등 외에는 인적이 드문 길이였다.

 

게다가, 새벽이고 하니 사람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살짝 으시시해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큰소리로 떠들며 길을 걷고 있었다.

 

한창 애들과 떠들며 길 앞 쪽을 슬쩍보니 쭉 늘어선 가로등들 중에 하나가 불이 꺼져있었다.

 

가로등들은 약 10m(솔직히 잘 기억이 안남ㅠ)정도의 간격으로 서있었는데, 마치 이빨이 하나 빠진 듯 한 곳만 불이 꺼져있어서 그 부분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려니 하며 신경을 끄고, 다시 애들과 즐겁게 술자리에서 했던 얘기를 나누며 길을 계속 걸었다.

 

그렇게 길을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불이 꺼져있는 부분까지 오게되었고, 마치 밟으면 안될 곳을 밟은 듯 불꺼진 가로등에 의해 어두워진 지역으로 발을 내딫는 순간 공포가 시작되었다.

 

평소에도 가위를 눌려본 적이 없어서 친구들이 얘기하는 가위눌린 경험을 들을때마다, 도대체 어떻길래 몸이 안움직일까 하며 궁금해 왔던 나였다.

 

하지만 그 곳에 발을 내딫는 순간. 이런게 가위눌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게 아니라, 걷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걷고 있을뿐이다.

 

분명 걷고는 있는데, 걷는것 이외엔 어떤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할 수도 고개를 돌릴수도 달리 수도 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또한 갑작스레 뒷골이 화~악 하고 땡기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마 평소에 가끔 컴퓨터를 하거나 무언가에 몰입했을때 뒤에서 누군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뒷통수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느낌은 그때의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뒷골이 땡기다 못해 뒷목에 소름이 쫙 돋았고, 뒷머리가 쭈뼛하고 서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분명 내 뒤에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난 돌아봐서는 안되고 어떠한 다른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

 

그저 이렇게 걸어서 이 공포를 빠져나와야 한다. 그 당시 내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 밖에는 없었다.

 

그저 앞만보며 일정한 보폭으로 길을 걸을 뿐이였다.

이유는 몰랐지만, 저 앞에 켜져있는 가로등까지만 가면 모든게 괜찮아 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지 10m 앞에 있을 뿐인데도, 그 곳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다.

 

'ㅅㅂ 뭐가 어떻게 된거지? 대체 뒤에 뭐가 있는거야? 얘들도 말이 없는데 나랑 같은 상황인건가?'

 

나는 이 이해할수도 없는 무서운 상황에서 눈동자를 돌려 친구들을 살펴보았다.

 

고개를 돌릴 수는 없어서 자세히는 못봤지만, 바로 옆에 걷고 있는 성진이도 표정이 하얗게 질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표정으로 봐서는 나와 같은 상황이리라.

그래. 저 앞의 가로등까지만 가면되 이렇게만 가면되는거야.

 

이런 바램을 가지고 뒤에서 느껴지는 믿기힘들 정도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내며 앞으로 묵묵히 걸었다.

 

만약 내가 이 상황에서 억지로 뒤를 돌아보거나 뭔가 다른 행동을 취하면, 마치 내가 죽을 것만 같이 느껴졌기에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였다.

 

이 잠시의 시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고, 마침내 앞의 가로등의 밝은 부분에 다다르자 다행히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싸늘한 느낌은 사라졌고, 온 몸의 힘이 쫙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휴우....'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짧은 시간동안 등이 축축히 젖을 정도로 식은 땀을 흘렸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비록 그 잠깐의 공포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우리는 정아네 집에 가는 길동안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묵묵히 걸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는 순간 그 공포가 다시 찾아 올까봐 무서워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고, 성진이나, 정아도 아마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다행히 후문을 지나 정아네 아파트까지 도착을 했고, 우리는 그저 잘 들어가라는 말만 한체 정아를

들여 보냈다.

 

정아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나와 성진이는 정아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니네 집에 갈때 놀이터 근처로 가지마.

아마 내 생각에 니네도 느꼈을거 같은데, 놀이터에서 여자귀신이 따라오던거...

 

나 너무 무서워서 말 안할라고 했는데, 니네가 그리로 갈까봐.

그 여자 너무 무섭게 생겨서, 그러니까 그리로 가지마 알았지?

 

그럼 나 올라갈께. 조심히 들어가..'

 

정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조용히 엘레베이터쪽으로 들어갔다.


'이런...ㅆㅂ'


그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성진이는 미친듯이 우리집으로 달려갔다.

물론 놀이터 근처가 아닌 먼 길을 빙 돌아서 말이다.

집에 도착한 후, 우리는 방에서 노래를 크게 켜놓고, 이불을 덮은 체 덜덜 떨면서 밤을 새우게 되었다.

 

그저 이런 일을 다신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이 일은 그저 사건의 시작일 뿐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바깥은 쨍쨍한 한 낮이 되어 있었다.

 

기지개를 피며 옆을 보니, 어제 아침이 다 될때까지 공포에 떨던 성진이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도대체 뭐였을까?'

 

어제 겪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려 보니 다시 한 번 공포가 엄습해 왔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잊자. 당분간은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성진이를 깨웠다.

 

"야. 임마 일어나. 주말이라고 언제까지 쳐 잘래! 라면이나 끓여먹자"

 

"으...으응"

 

성진이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고, 우리는 대충 얼굴만 씻은 뒤 라면을 끓여먹었다.

 

"있잖아. 어제..."

 

라면을 먹던 도중 성진이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아. 나도 몰라 ㅆㅂ 그냥 우리 당분간 어제 일은 얘기하지 말자 생각도 하기 싫어 알았지?"

 

나는 성진이의 말을 끊고, 약간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알았다"

 

성진이 역시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우리는 조용히 라면을 먹는데만 열중하였다.

 

식사 후 성진이는 한참을 우리집에서 뒹굴거리다 저녁이 다 되서야 집에 갔고, 그렇게 전 날의 일은

지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날 밤...

 

난 꿈을 꾸었다.

 

난 어제 걷던 그 길을 다시 걷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진이도 정아도 없는 나 혼자였다.

 

게다가... 어제와는 반대로 모든 가로등의 불은 꺼져있었고, 어제 당시에 꺼져있던 가로등만 홀로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뚜벅.. 뚜벅..'

 

어느덧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가로등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곳에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얼굴을 파묻고 쭈그린 체 가로등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아. 가면 안될거 같은데 ㅆㅂ'

 

나는 꿈에서도 그 여자 쪽으로 가면 안된다는걸 직감했지만, 내 몸은 이미 내 의지를 떠난 체 그녀가

있는 곳으로 걷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그녀와의 거리가 몇 걸음 체 남지 않았을 때였다.

 

 

"어딨어?"

 


착 가라앉은... 그리고 감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내게 물었다.

 

'뭐가 어딨냐는 거지? 이 망할년이 뭐라는 거야.'

 

너무 겁이나 속으로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지만, 내 입술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떨어지지 않았다.

 

"어딨어?"

 

그녀가 얼굴을 파묻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나한테 물어보았다.

 

나는 너무도 무서운 나머지 몸 전체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뭐가 어딨냐는 거지? 뭔지 알아야 대답을 할거 아냐.'

 

마음 같아서는 빨리 대답을 해주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녀가 무엇을 찾는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말 조차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고개를 숙인 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지마라. 일어나지마...'

 

나는 속으로 그녀가 그냥 앉아있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랬다.

 

"덥석!!"

 

순간 몸을 일으킨 그녀가 갑자기 내 손목을 꽉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내게 소리쳤다.

 

 


"그 년 어디있냐고!!!!!!"

 

 

 

 

 


"우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하아~ 하아~"

 

너무도 놀란 나머지 아직도 심장은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고, 이마와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눈가를 만져보니 눈물까지 살짝 맺혀있음을 느꼈다.

 

"뭐야 이건 ㅆㅂ"

 

너무나도 무서우면 화가 나는걸까? 나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꿈에서 본 그녀...

 

마지막 고개를 든 그녀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순간의 일이라 기억은 잘 안나지만 내 뇌리에 남은 그녀의 모습.

 

창백한 그녀의 얼굴에 있는 커다란 두 개의 검은 구멍.

그녀는 두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커다란 구멍만이 뚫려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붙잡고 성진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내 추측컨데 그녀가 찾는 사람은 정아이리라.

 

처음에는 정아한테 전화할까 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성진이였다.

 

한참의 신호가 간 후에야 성진이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성진아 ㅆㅂ 나다. 야! 나 방금 개 같은 꿈꿨다 ㅆㅂ"

 

나는 무서운 마음을 덜고자 꿈 이야기를 성진이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막 말을 시작하려는 찰라 성진이가 내 말을 끊었다.

 

"야. 혹시 너도 그 미친년 나오는 꿈 꿨냐?"

 

이건 뭐지? 성진이도 나와 같은 꿈을 꾼건가?

 

알고보니 성진이 역시 집에 도착한 후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고 꿈에 그 눈없는 여자가 나왔던

것이였다.

 

"그래서 넌 어디야? 집이야?"

 

나는 전화기 넘어 약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성진이에게 물었다.

 

"아니. 나 여기 니네 동네 pc방이야. 꿈에서 깨자마자 걱정되서 정아한테 전화걸었거든 근데 얘가

전화를 안받네. 그래서 일단 니네 동네로 오긴 왔는데 얘가 전화를 안받으니 갈데도 없고 해서 일단 pc방에 들어왔어. 계속 전화시도는 하고 있는데 정아가 자나 봐."

 

"야. 여기 왔으면 진작 전화하지. 기다려 나도 나갈께"

 

나는 무서운 꿈을 잊고자 pc방에 가서 게임이나 할 심산으로 옷을 입고 성진이가 있는 pc방으로 갔다.

 

그렇게 pc방에 도착해서 나는 성진이와 그 당시 유행하던 '포트리스'를 하고 있었다.

 

게임 도중에도 성진이는 정아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성진이의

표정을 어두워져 갔다.

 

"야. 별일 없을거야. 원래 정아가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모르잖냐. 걱정하지 말고 게임이나 하자.

너 때문에 우리팀이 계속 뒤지잖아. 애들이 너보고 계급값 좀 하랜다~!"

 

성진이를 안심시키고자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나 역시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우리를 따라왔던 여자일까?"

 

게임 도중 갑작스레 성진이가 물었다.

 

"누...누구말이야??"

 

난 성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지만 선뜻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꿈에 나온 그 여자말이야. 어제 우리 따라온 여자인거 같아. 아니면 너랑 내가 동시에 같은 꿈을

꿀리가 없잖아. 안그래? 틀림없어 그 년이 정아를 찾고 있는거야."

 

"설마...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냥 우연이 아닐까? 우리가 무서운일을 겪다보니까 꿈에서도

그 일이 나온걸꺼야. 원래 꿈이 그렇잖냐!"

 

ㅆㅂ

 

말을 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나 싶었다.

 

그렇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이미 꿈에서 깼을 때부터 나 역시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인정하는 순간 그녀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날것만 같은 불안감에...

 

둘이서 이런 얘기를 나누며 심각해져 있을때 갑작스레 성진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아!! 뭐했어? 잤어? 별일 있는거 아니지?"

 

전화를 받자마자 큰소리로 다그치는 성진이의 모습을 보니 상대방은 정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통화하는 내용을 보니 다행이도 정아한테는 별일이 없는 듯 싶었다.

 

정아와 통화를 마친 성진은 갑자기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왜? 어디갈려고?"

 

"응 나 정아좀 보고 올께. 잠깐 기다려"

 

"으...응 그래."

 


이런 병신...

 

난 차마 성진이에게 같이 가줄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셋이 다 모이면 무슨 일이 또 생길것만 같은 불안감과 공포심 때문이였다.

 

지금 생각을 해도 그 당시의 내 모습은 너무도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성진이는 나를 한 번 흘끗 쳐다보고는 pc방을 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게임을 하고는 있지만 정신이 온통 성진과 정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기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자식은 금방 온다는 놈이 왜 아직도 안와? 나간지 두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구만...'

 

나는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성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성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서너차례 더 전화를 시도한 후 결국 참지 못하고 정아네 쪽으로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때 성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 못가니까 집에 들어가 나중에 연락할께'

 

앞 뒤 설명없는 짧은 문자 한 통.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전화를 해볼까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지만, 나는 심란한 마음에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후 성진이에게 연락이 온 건 이틀 후였다.


"야. 이자식아 어디서 뭐했길래 이틀동안 연락이 안되? 휴대폰은 꺼져있는거 같고...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냐??"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화를 냈지만, 이번만큼 성진의 전화가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미안하다 사정이 생겨서... 밤에 뭐하냐? 가볍게 한잔 하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줄께"

 

이날 밤 집 근처 술집에서 나는 성진이에게서 그 날 pc방을 나간 후에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 통화를 해보니까 정아한테는 별일이 없더라구.. 하지만 하도 걱정이 되서 얼굴이라도 봐야

안심이 되겠더라.그래서 잠깐 아파트 앞으로 나오라고 했지.

그리고 내가 아파트로 가서 보니까 정말 괜찮아 보이더라구.

 

그래서 얼굴봤으니까 됐다고 올라가서 쉬라고 말한 다음에 다시 pc방으로 갈라고 하는데 얘가 왜그러냐고 계속 꼬치꼬치 묻는거야. 그래서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나랑 네가 꿨던 꿈들을 설명해줬어.

 

그러니까 정아가 완전 겁을 먹어서 울먹거리는거야. 그래서 한참을 달래준 다음에 다시 집으로 데려다 주는데...

 

와~ 나 지금 생각해도 온몸이 다 떨리네. 그 아파트 현관 앞에 계단 있잖아. 그 계단에 누가 쪼그리고 앉아있는거야. 처음엔 누가 새벽에 잠이 안와서 저러고 있나 하고 그냥 그쪽으로 갔는데...

 

아 ㅆㅂ! 그 년이였어 꿈에 나온 그 복장 그대로 계단 앞에 앉아더라구..."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꿈에서의 그 여자 모습이 떠올라 다시 한 번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

하였다. 성진이도 그 때의 기분이 다시 떠오르는지 떨리는 손으로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은 후

얘기를 계속하였다.

 

"그 년을 보고 너무 놀래서 정아를 쳐다봤는데, 이미 얘는 거의 실신 직전이더라구. 그 때 그 년이

갑자기 일어나는거야. 몸을 조금씩 뒤틀거리면서 천천히 일어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섭던지...

 

뭔가를 해야겠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겠더라구. 그 때 그 년이 우리한테 말했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아직도 그게 생생해.

 


'기다렸잖아...'

 


분명 '기다렸잖아' 라고 말했어. 그러면서 그 년이 살짝 웃음같은 걸 짓는게 느껴지더라구.

 

그 순간 정신이 확 깨는 느낌이였어.

 

그래서 무작정 정아 손을 붙잡고 뛰었어. 처음에는 반대쪽으로 도망갈려고 했는데 그 순간 정아가

나한테 소리치더라구

 

"성진아! 우리집으로 가자! 빨리~!!"

 

ㅆㅂ 현관 앞에 저년이 서있는데 집으로 가자니...

하지만 정아 표정을 한 번 보고 나니까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거야. 그래서 그 년 주위를 빙 돌아서 아파트로 뛰어 들어갔어. 그리고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정아네 대문을 막 두들겼지.

(참고로 정아네 집은 아파트 3층입니다)

 

그러자 문 따는 소리와 함께 정아네 아버지께서 나오시는거야.

 

야~ 알잖냐. 정아네 가족이 나 싫어하는거. 정아네 아버지를 보는 순간 내가 여길 왜왔나 싶더라.

근데 정아가 갑자기 내 손을 붙잡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거야. 그러더니 막 울면서 엄마를 찾더

라구. 그리고 정아네 어머니께서도 나오시고 동생도 나오고 새벽에 집안이 발칵 뒤집힌거지"


"꿀꺽...."


이야기를 듣는 도중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 귀신이 다시 나타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믿기지 않는만큼 너무나도 무서웠다.

 

"근데 한가지 신기했던게 정아가 어머니한테 우리가 겪은 얘기를 다했는데, 그 얘기를 정아 어머니가

의심도 없이 그냥 다 믿어줬다는거야. 솔직히 지금 내가 생각해도 내가 겪은 일이 믿기지 않는데

정아어머니는 그걸 다 믿더라. 그러더니 내일 스님을 찾아가자고 하더라구.

 

"왠 스님? 정아네가 불교였나?"

 

"응. 그렇더라고... 알고보니까 정아가 어렸을 때 부터 이런 일을 종종 겪어서 정아네 어머니가

정아랑 같이 자주 절에 다녔던 모양이더라구... 어쩔 때는 절에서 몇 일씩 자고 오기도 했었데"

 

"그랬었구나.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나? 솔직히 아파트 현관 앞에서 그 년을 봤는데 너 같으면 나갈 수 있겠냐? 다행히 자초지종을

들은 정아네 어머니가 나보고 자고가라고 해서 그 날은 쇼파에서 잤어. 근데 정아가 나보고 절에 같이 가자는거야 자기 무섭다면서...

 

와~ 나 솔직히 정말 가기 싫었거든. 근데 정아네 어머니도 보고 있고 해서 알았다고 했지.

그래서 우리집에는 너네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정아어머니 차 타고 절에 갔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다 잘 된거야?"

 

"몰라. 절에 도착하자마자 한 스님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하더라.구 그리고는 정아를 흘끗 보더니

 

'어린것이 잡귀에 또 홀렸구나' 하면서 혀를 차시는 거야.

 

그 후 정아는 스님이랑 따로 절 뒷편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 같은데로 들어갔어. 그리고 나는 정아어미니랑 같이 차를 마시면서 앉아있는데, 어찌나 뻘쭘하던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거야.

 

그때 정아어머니께서 나한테 말해주더라구. 정아가 어려서부터 이런 일을 종종 겪어왔다구...

 

근데 평소에는 그냥 별 탈이 없는데 한 번씩 어제와 같은 일이 생긴데. 정아어머니 말로는 귀신이

붙는다나 뭐라나. 가끔은 이승에 대한 미련이 깊은 귀신들이 정아한테 붙으려고 한데...

 

그럴때마다 절에 와서 스님한테 퇴마의식, 뭐 이런 걸 받는다고 하더라구. 게다가 정아가 워낙 영적으로 민감해서 가끔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이런 영적 체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랬구나.

 

그제서야 뭔가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는 영적인 경험과는 전혀 무관했던 내가 갑자기

귀신의 기운을 느낀것도, 그 날밤 꿈에서 그 여자가 정아를 찾은 것도, 성진이의 얘기를 들으니

모든 일들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주변사람들도 체험할 수 있다니... 그럼 앞으로 정아와 계속 어울리다 보면

이런 일을 또 겪을 수도 있다는 건가?

 

내 자신이 이기적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이러한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이번 일만 하더라도 다신 겪고 싶지 않을만큼 공포스러웠는데, 만약 이와 비슷한 일을 또 겪는다면?

 

정말 상상하고도 싶지 않았다.

 

나는 갑작스레 성진이가 걱정되었다. 나야 그렇다고 쳐도 남자친구인 성진이는 어쩐단 말인가?

 

나의 측은한 시선을 느꼈는지 성진이는 갑자기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에휴~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아는 스님이랑 암자에 들어간 후 한참 뒤에나

나왔는데 얼굴이 완전 눈물 범벅에 꼴이 말이 아니더라구. 그 모습을 보자니 측은해 지기도 하구...

나도 앞으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

 

"그래. 너도 참 답답하겠다. 저...그래도 이 일은 그렇게 잘 마무리 된거겠지?"

 

나는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넌즈시 성진이에게 물어보았다.

 

"나라고 뭐 알겠냐? 그냥 그런거 같아 스님이 돌아가 봐도 좋다고 했으니까.

정아도 그 후로는 별 말 없었고 나도 뭐 딱히 물어보고 싶지도 않더라고...그냥 뭐 잘 된거겠지."

 

"그래.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된걸까? 그녀는 왜 정아를 찾았던걸까? 그리고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난걸까? 그녀는 어떻게 된걸까?

 

이 몇 일간 일어난 사건에 대한 어느 것 하나 명쾌한 해답은 없었지만, 나는 막연하게나마 이 사건이

마무리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좋은쪽이든 나쁜쪽이든... 어찌 보면 이 일에서 나는 주연이 아닌 그저 조연에 불과했으니까.

그저 나는 마무리가 됐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면 될 뿐이였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겠지."

 

나는 혼자 씁쓸히 중얼거리며 내 앞에 있는 소주 한 잔을 입 속에 털어넣었다.

 

내 나이 20살.

 

밤공기가 차가운 늦가을 때의 이야기였다.

 


------------------------------------------------------------------------------------------

 


드디어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가볍게 기억나는데로 끄적거리기 시작했던 글인데, 어느덧 다 쓰고 보니 세 편으로

늘어나 버렸네요^^;;

 

별 내용없는 글을 너무 끌었나 하는 후회도 살짝 들고, 마무리를 너무 성급하게 지은 듯도 해서

읽어주신 분 들께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아무튼 저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답니다. 뭔가 명쾌한 결론을 바랬던 분들은 실망하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하지만 저 당시에 저는 그냥 저 사건을 빨리 잊고만 싶어서 일부로 더 알려고

하지를 않았었습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짐작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성진이와 정아는 얼마 못가서 헤어지고 말았답니다.

그렇다고 단지 저 이유만은 아니였구요.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구요.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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