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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둠 속에서 上
소문은 흡혈귀에 관한 것이다. 
문제의 거리는 아파트촌으로 향하는 2차선의 도로였다. 이 킬로 남짓 되는 그 거리에 흡혈귀가 출몰한다는 것이다. 
자정이 넘으면 절대로 혼자서 그 거리를 거닐어서는 안 된다고들 했다. 
모두들 안 된다고 한 그 거리를 앞에 두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한 밤중에 그 거리를 걸어오다가 사라졌을 것으로 예측되는 실종자가 세 명이나 되었다. 유가족들은 모두들 흡혈귀에게 당했을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그 사람들 모두 아파트촌에 사는 사람들인데, 내가 좀 알아봤거든……?" 
만수는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하늘색 제복의 가슴이 땀에 젖어 있었다. 
"한 명은 차가 끊어져서 어쩔 수 없이 걸어갔었던 것 같은데, 나머지 두 명은 앞 서 한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흡혈귀가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갔던 거야. 일부러 한밤중에 그 거리를 걸어갔던 거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어디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을 확인하려고 하냐?"
실종자들에 대한 경찰조사는 별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흡혈귀에게 당한 거야."
만수는 그렇게 단정짓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시체도 확인되지 않았잖아. 실종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무슨 이유가 있겠어? 흡혈귀가 나타난다는 그 거리에서 한 밤중에 사라졌다고. 땅으로 꺼졌겠냐? 하늘로 날아갔겠냐? 아니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가 분쇄기로 갈아버리기라도 했겠냐?"
"글세……"
나는 미소를 지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조소로 보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만수는 도무지 경찰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적어도 니가 예를 든 것들보다는 더 근사하고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만수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궁지에 몰린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끝내 미소를 보이며 일어섰다. 그것 말고는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딱히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흡혈귀라니……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소문이었다. 
7 만 명이 넘는 인구가 북적거리며 사는 동네에서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귀신 소문이 나 돌 수 있을까. 
하긴 흡혈귀의 얼굴을 정확히 봤다는 사람들도 몇 있으니 아주 근거가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목격자들이 갖은 스트레스에 절여 사는 고등학생들이거나 한 밤중에 펄럭이는 옷가지들만 보아도 기겁을 할 것 같은 젊은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말이나 담력을 무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이성이 극도로 마비되는 순간에는 얼마든지 헛것을 볼 수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병자들이 저승사자의 생김새를 줄줄 뇌까리며 두려워한다는 따위의 얘기들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얀 얼굴에 검은 입술, 붉은 눈동자를 지닌 저승사자가 정말로 보였을 것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모두 헛것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부인 할 수 가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이성이 마비되는 공포의 순간에 귀신같은 형상의 헛것을 볼 수 는 있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현실의 무언가가 변화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병자가 목숨을 잃는 이유는 앓고 있던 병(病) 때문이지 저승사자 때문이 아닌 것이다. 저승사자가 병자의 목이라도 조르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심리적인 불안정으로 인해 흡혈귀 같은 헛것을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람을 어떻게 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길거리를 문제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부의 문제인 것이다. 무서운 분위기에 쉽게 휩쓸려 버리는 나약한 이성을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헛것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해서 보게 될 것이다. 귀신이 있다고 믿는 마음이 문제지, 귀신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다. 
헛것을 보는 사람 그 자신의 문제라는 말이다. 
하지만 흉흉한 소문은 이미 땅거미처럼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는 아무도 그 찻길을 거닐지 않았다. 모두들 소문을 믿고 있는 것이다. 아니 흡혈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실제로 흡혈귀가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만수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실종자들과 흡혈귀의 소문을 당연하다는 듯이 연관짓고 있었다. 누군가의 안색이 조금만 창백해 보여도 곧바로 흡혈귀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 
소문 자체도 신빙성이 없는 것인데, 거기다가 모든 문제를 다 끼워 맞추려 드는 사람들의 태도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문이 연쇄 살인마에 관한 것이라면 차라리 수긍이 갈 법도 했을 것이다. 

"그럼 말이야……"
내 얘기를 듣고 동료가 말했다. 회식이 끝나 가는 자리였고, 모두들 취해 있었다. 
"네가 직접 증명을 해 보여봐. 어?"
"뭐를? 흡혈귀가 없다는 것을……?"
나는 같잖은 소리 말라는 표정으로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냐? 그런 증명이나 하고 있게? 소문 같지도 않은 소문, 믿고 싶으면 믿으라고 해. 그런 식으로 적당히 공포와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한심한 사람들에게 시간을 투자해 가며 애써 증명 같은 거를 해 보이긴 싫다."
"내가 증명해 보라는 것은……"
동료는 계속 말했다. 자못 진지한 모습이었다. 
"너 스스로에게 증명을 해 보라는 소리야, 임마."
나는 또 한잔을 들이키려다가 멈추고 동료의 말에 꼼꼼히 귀를 기울였다.
"니가 그랬잖아. 문제는 나약한 이성이지, 길거리가 아니라고. 그 말이 정말인지 스스로 그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시험해 보라고. 과연 확고한 이성과 의지만 있으면 소문 따위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는지 말야."
동료는 자신의 술잔에다가 술을 따랐다.
"내가 볼 땐, 그 소문이 진실이건 아니건을 떠나서 그 소문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타의가 만들어낸 공포가 이미 그 거리에 잔뜩 깔려 있다는 얘기야. 그 거리를 걷는 사람은 누구든 깔려있는 공포를 밟게 되어 있어. 넌 아까부터 자의 운운하는데, 그것은 자의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라고."
동료는 술잔을 들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 거리를 걸으면서 조금이라도 소문에 얽매여 어떤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너도 이미 그 소문을 함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야. 그렇지 않아?"
나는 동료의 말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술잔을 들이켰다. 
동료는 자신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웠다. 내가 공격을 해야 할 차례인 것 같은데, 어디를 어떤 식으로 공격해야 할 지를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미 취기 때문에 뇌가 둔화되어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 불과하니까, 신경 쓰기 싫으면 무시해도 돼."
동료는 그렇게 말하며 반론의 여지를 일축시켜 버렸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서 동료의 말을 계속해서 반추했다. 
그리고 나는 과연 자정이 지난 시간에 그 찻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개가 설레설레 저어졌다. 갈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이상한 결론이 도출되어 진다. 
실컷 소문은 거짓이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문제라고 떠들어댔건만, 정작 나 자신이 그 거리를 거닐길 꺼린다면…… 
내 이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전제를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결국 그 거리에 정말로 뭔가가 있다는 소문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길거리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던 내 말에 위배되는 결론이다.
만일 흡혈귀 따위가 출몰한다는 헛소문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면, 내 이성이 나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길거리의 소문이 문제가 아니라면 마음가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이론에 의하면 이성이 나약한 사람은 쉽게 소문과 분위기에 지배당한다. 공포 앞에 머리를 수그리거나, 간신히 타협을 하면서 산다. 
내가 그런 사람이란 말인가……

동료의 말처럼 그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나는 지금 문제의 2차선 도로변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조금은 느닷없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증명해 보이리라 다짐은 했지만, 성격상 충분히 차일피일 미루어 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차를 놓쳤던 것이다. 주머니에 몇 천 원인가 있었지만 집까지 가는 데는 부족한 택시 비였다. 
어쩔 수 없이 돈이 되는 데까지만 택시를 타기로 했고, 차가 멈춘 곳은 공교롭게도 문제의 도로가 막 시작되는 부분이었다. 
시계를 보니 기다렸다는 듯 자정이 넘어서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이 도로를 지나서 집에까지 가는 데는 삼 십 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하늘은 구정물처럼 흐려 있었고,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도로는 검은 아가리를 딱 벌리고 조용히 먹이 감을 기다리는 구렁이 같았다. 가끔씩 바람이 불어오긴 했지만 더운 밤이었다. 
나는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한 후, 나직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로변을 걸었다. 

오 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술기운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보는 게 얼마 만인가. 
문득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겁을 먹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걸음이 빨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무엇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걷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어둠이 지뢰밭처럼 두려운 것이다. 내 다리가 본능적으로 어둠을 거부하고 있었다. 어둠에 몸을 적시며 걷는 것이란 잠자는 맹수 곁을 지나는 일 만큼이나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띄었다.
'아직 술을 들 깼군…… 정신 차려라 바보야. 두려울 게 뭐가 있냐? 흡혈귀? 흡혈귀가 나타난다면야 물론 무섭겠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뭐?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운 거라고? 그 말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존재하기는 한다는 거냐? 넌 지금 그걸 믿고 있다는 거야?'
고개를 저었다. 술은 확실히 깬 듯 싶었다. 여전히 나는 좁은 보폭으로 걷고 있었다. 어서 이 어둠을 벗어나고 싶건만, 몸이 뜻대로 따라주질 않았다. 
뒤에서 으아아…… 하고 외치는 소리가 다가왔다. 나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뒤돌아 봤다. 소리는 거대한 먼지바람과 함께 볼을 갈기며 지나갔다. 
으아아아……앙…!
그것은 트럭이 도로를 질주하는 소리였다. 꼭 누군가가 길게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 같았다. 밤 도로를 달리는 차바퀴의 마찰소리가 이렇게 괴상했단 말인가. 
나는 억지로 걸음을 빨리 했다. 무언가를 증명해 내기도 싫었고,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냥 빨리 이 도로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서른 보 정도를 걸었을 때, 다시 으아아……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곧이어 닥쳐올 먼지바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다. 트럭도 지나가지 않았다. 으아아…… 소리만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폭풍이야기 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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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김레알
  • 2011.10.02
  • 수정: 2011.10.02 22: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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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rip
  • 2011.11.20

얘들 댓글 진짜 대충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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