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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내를 위해서

 

감은 눈에 벌겋게 햇살이 비치는 걸 보니 벌써 아침인 것 같다.

나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벼 뜨고는 흐린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같은 모양의 벽지가 내눈에 가득 들어왔다.

누렇고 때에 찌든 빛바랜 낡은 벽지가...

 

애써 몸을 일으켰다.

요즘은 몸이 더 약해진 것 같다.

벌써 반년 째, 내 오래된 친구인 ‘암’이라는 질병은

어제 밤에도 어김없이 내 오른쪽 폐를 갉아 먹고 있었을 것이다.

 

목이 말랐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면 갈증의 욕구보다 입이 심심하다.

나는... 담배가 피고 싶은 것이었다.

 

“여보... 여보...?”

 

걸걸한 내 목소리를 나 자신이 들은 지가 무척이나 오래된 듯 느껴졌다.

하긴,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은 나로선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도 모른다.

 

“여보..? 벌써 나간건가...”

 

언제나처럼 아내는 직장에 나가고 없는 듯했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가슴에 저며들었다.

아내는 내가 병석에 누운 이후로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해야했다.

 

항상 웃는 낯으로 나를 대했지만 그녀의 심정은 찢어질 듯,

고통으로 바래져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있다.

 

나는 손을 뻗어 머리 맡의 담배를 한개피 꺼내 물었다.

팔각성냥통에서 꺼낸 동강난 성냥개비를 갈색발화지에 긋자,

병든 나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피식’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

 

“후...”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망가져가는 폐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자, 통증이 왔다.

하지만 이 통증이 오히려 내게는 쾌감이 된 지 오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내게 담배를 피지 못하게 했지만,

언제부턴가 하루에 한갑씩 꼬박꼬박 담배를 사다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어차피 죽을 사람, 하고싶은일 마음껏 하라는 뜻이었을까...

아무튼 그런 아내가... 우습게도,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따르릉, 따르릉

 

방구석에 놓인 전화기에서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 멍하게 바라보다, 열번 쯤 울리고 나서야 기다시피 전화기로 다가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여보, 괜찮아요? 오늘 당신이 일어나기전에.. 나와서 미안해요.”

“아냐... 당신이 고생이지 뭐..”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요... 끼니 거르지 마시고요... 아셨죠?”

 

나는 매일같이 비슷한 내용의 아내 전화에 대꾸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집을 비운 사이 잘못될까봐 항상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내게는, 아내의 그런 전화가 나의 생명이 점점 사그러져 가고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지옥의 전화처럼 들리고는 했다.

 

거울을 쓱 바라보니, 야윈 얼굴에 쾡해진 눈, 검어진 피부색까지.. 이젠 익숙해져버린 몰골.

 

‘내가 어서 죽어야 하는데... 어서.. 하루라도 빨리...’

 

이런 생각을 하니 울컥 서러움이 복받쳐왔다.

반년 전 까지만해도 그렇게도 다정스러운 부부였는데.... 따스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는데...

반년 전 그날이 언뜻 머리에 스쳤다.

 

“여보.... 나.. 암이래.... 폐암... 그것도 말기....”

 

병원을 몇군데나 다녀봐도 같은대답에 지칠대로 지친 내가 어느날, 집에 들어오며 중얼거렸다.

아내도 각오하고 있었던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볼 뿐이었다.

 

“여보... 미안해... 호강 한 번 제대로 시켜주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체념한 내 말투에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세상이 무너져라 한숨을 쉬었고, 그녀는 아무말 없이 방을 나갔다.

내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듯 그녀는 한참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 후 들어온 그녀는 내 어깨를 살며시 껴안으며 말했다.

 

“어차피.. 고치지 못할 병이라면 당신이 죽는 그 날, 저도 함께 갈거에요... 전 당신 밖에없어요..”

 

반년전 그날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나는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인생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렇게 서글프고 쓸쓸하지만은 않겠구나... 하는....

 

지난 반년간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다.

좋다는 것은 다 먹어봤고, 병원은 물론 희한한 민간요법까지 다 해보았지만 결과는..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결국.. 죽음만 기다리는 공포가 나를 휘감았고, 아내는 그런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불쌍한 아내.... 결혼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며칠 전부터 하나의 계획이 떠올라 그것을 실행하려고 마음을 다 잡는 중이다.

그 계획은.... 하루라도 빨리 내가 죽어야 하는 것.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더 이상 아내를 고생시킬수 없다는 생각에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죽으려고하니 어느 방법이 적당할지 결정하는 데서 머뭇거리게 되었다.

목을 매달기엔, 그 숨막히는 시간이 너무나 무섭고,

칼로 배를 긋는다는 건 소심한 성격상 도저히 말도 안되는 짓이다.

또 높은곳에서 떨어진다면 사랑하는 아내가 처참히 짓이겨진 내 시신을 보고 오열을 할게 뻔하니 안되고...

그렇다면 결국 약인 셈인데.... 어설피 먹었다가는 목적도 이루지못할 뿐더러, 죽지못한다면 하루하루가 고통일 것이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나는 두가지 이상의 방법을 같이 병행하는 것이었다.

다만 모진 목숨에 쉽게 실행하지 못하고 질질 끌어왔는데... 오늘 아내가 늦는다고 하니,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일전에 한알 한알 사다모은 수면제를 장농에서 꺼내어, 한알 두알 삼키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나왔다.

아내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조금 먹기 편해졌다.

 

한주먹이나 되는 약을 다 먹고나자, 약기운이 벌써 퍼지는지 눈앞이 희미해졌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서둘러 손목에 커터칼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단숨에 그어 버렸다.

 

시뻘건 핏줄기가 얼굴에 튀어댔지만,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크게하고, 피가 흘러내리는 팔목 아래쪽을 다시 한번 더 그었다.

더 많은피가 흘러내렸고, 나는 이불에 반듯이 누워 따뜻한 물이 담긴 세수대야에 왼쪽 팔목을 담갔다.

 

물이 선홍빛으로 번져갔고 의식은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분만은 한없이 뿌듯했고, 행복함마저 느껴졌다.

아내에게 전하는 짧은 편지를 머리 맡에 올려두고 눈을 감았다.

야릇한 기분과 함께 온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아득하게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몸을 세차게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내가 죽지 않은건가? 아니면 죽어가고 있는건가...

 

아내의 분주한 몸짓이 느껴졌고, 어쩔줄 몰라하는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왔다.

수화기를 들고 ‘삑삑’하고 버튼을 누르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구급차를 부르려는 걸까.... 손을 들어 말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어차피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쯤이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아, 상규씨? 어떡하지? 남편이 자살을했어. 등신같이!

지가 안죽어도 어차피 죽을 걸, 뭐하러... 응, 그것 때문에 물어 보려고 전화한거야.

내가 자기한테 작년에 들은 남편 생명보험 있잖아? 그거 자살하면 못타는거지? 맞지?

아 역시..... 아, 기껏 잘해줬더니..! 덜컥 죽어버리다니 돈만 날렸잖아!

후, 이럴까봐 맨날 확인전화까지 했는데.. 응, 응, 그래 그건 잘됐지 뭐.

일찍 죽어버렸으니.. 남 눈치 안보고 상규씨랑 살날이 앞당겨진 셈이야. 응.. 나도 사랑해.”

 

아내의 그런 엄청난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지금껏 아내에게 속아왔다는 울분보다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나만을 위했던 착한 아내였다면 죽어가는 지금 이렇게 편안히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기에..

더불어 죽어서도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복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왜냐하면......

 

‘에이즈 합병증으로 인한 폐질환’이라는 나의 간접적인 사인(死因)은 그녀와 그녀의 정부를 경악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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