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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가시

"준아 오늘 생물샘이 말한 그거 기억나냐?"

"뭐? 생물샘이뭐? 나 자고있어서 기억안나는데?"

"아 하필 왜 그때 자냐. 연.. 연 뭐라고 하는 벌레가 있다고 그랬는데, 그게 사마귀같은 곤충몸에 기생해서 그곤충이 죽을때쯤이나 아니면 지가 알낳고 싶어질때 쯤에 물가로 유인해서 죽이고 튀어나오는 벌레가 있다 그러더라고 완전 시발 괴물아니냐?.그 뭐냐 저번에 김씨 아저씨네 텔레비죤 보러 갔다가 본 에일리언인가? 양키 놈들이 만든 괴수영화 기억나더라."

"아.. 그거라면 알것같다. 국민학교 댕길때 메뚜기 잡으러 옆집 김씨아저씨 집 뒤에 강물에서 멱감다가 메뚜기 몇마리가 물위에서 둥둥 떠 다니더라고, 뭔 메뚜기가 물위에서 헤엄치나 해서 살펴봤더니 똥꼬에서 뭐가 슬슬 기어 나오더라니 길쭉 하게 생겨가지고 꿈틀꿈틀 대는게 겁나 징그럽더라."

"그래 그거 맞는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준아.. 우리 멱감으러 안갈래?"

"병신.. 그냥 그게 보고 싶다고 말해."

"히히 그래 시발 그거 보러가자 메뚜기 한마리 잡아다가 보러가자 선생님이 말하는거 들어보니까 거의 대부분의 메뚜기나 사마귀 몸에 들어있다 그러더라고! 궁금해 궁금해."



학명 네마토모프. 연가시라고 불리우는 이 기생동물은, 어떠한 경로로 인해 숙주의 몸에 기생하다가, 이상 단백질의 분비로 숙주의 뇌를 조종해 산란기간이나, 숙주의 육체가 생을 끝내갈때 즈음 물가로 이동하게끔 만든다. 아직까지 연구결과가 많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베일에 감싸진 생물이다. 더욱이 놀라운것은 그 어떤 생물과도 진화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얽힌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준이의 짧게 자른 학생 머리를 따가운 한여름의 뙤악볕으로 부터감싸주는 학생모가 냄비처럼 달아오른다. 아직 중학생 밖에 되지 않은 철이와 준이는 김씨네 뒷마당에 흐르는 시원한 냇가를 발견하곤 사정없이 뛰어간다. 이곳에 온 이유야 어찌되었던, 지금은 한여름이고, 어린 두 중학생은 멱을 감고만 싶으니까.



실오라기 하나까지 다 벗어던진 두 소년은 냇가를 향해 각자 취향에 맞는 포즈로 다이빙을 하고, 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김씨다. 마을의 천방지축 장난꾸러기 였던 두 꼬맹이가 어느새 까까머리를 한 중학생이 되었는지 그는 찰나와 같은 세월이 놀라울 뿐이다. 



준이와 철이는 서로를 물속에 잠수시키며 장난을 치기 바쁘다. 이윽고, 두소년은 물을 한바가지나 마시고서야 그장난을 그만둔다. 김씨는 그런 소년들을 지긋이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옥수수 밭으로 갔다. 요즘들어 메뚜기 때가 더욱 극성이라 그런지 그의 안색은 굳을대로 굳어있다. 게다가 이번 장마는 지상에 물기를 머금어 주지 않고서 그냥 훌쩍 떠나버렸던 지라 옥수수는 가면 갈수록 말라만 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씨는 굳게 다문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을 막을수 없었다.



"흐음.."



그만 이런 걱정을 하는게 아니었다. 마을이 전부 지독한 가뭄에 흉년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일까? 박수무당이라도 불러다가 기우제라도 할판이었다. 징그럽게도 비가 내리지 않는 여름이었다. 고개를 점점 숙여가는 옥수수를 보다못한 김씨는 촌장에게 정말로 기우제를 상의를 해볼 생각으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



어른들의 이런 시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이와 준이는 물놀이에 한창이다. 이곳에 온 연유 마저 까먹었는지, 뜨거운 햇살아래 얼굴빛이 빠알갛게 물들어 갈정도로 시간가는지도 모르고 놀고있다. 그러다 마침내 철이가 냇가로 온 이유를 기억해냈는지 느낌표를 가득 머금은 얼굴을 하고선 멀찍이서 물고기 잡느라 여념이 없는 준이를 부른다.



"준아! 야!"

"뭐?! 야 거기서 그러고 있지말고 여기로 와봐 메기가 겁나 큰 메기가 겁나 많아!! 와하하!!"

"야! 그게 아니고 그 연 뭐야 그 에일리언 같은 벌레 잡으러 왔잖아 우리!"



그제서야 준이도 기억이 났는지 철이가 있는쪽으로 다가온다. 두 소년은 그제서야 진지한 눈빛으로 냇가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1급수로 판명된 시냇물이라 그런지 꽤나 듬직하게 남자다워 진 두 소년의 목까지 오는 깊이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바닥이 그대로 비친다. 일렁이는 투명한 물 표면사이로 초록색의 무언가가 휙하고 지나간다. 낙엽인가? 하고 유심히 살펴보자 그 초록색의 무언가가 몸부림을 친다. 사마귀다. 놀란 고양이눈을 하고선 철이가 흘러가는 냇물과 함께 떠내려 가는 사마귀를 낚아챈다. 그 뭉툭한 손으로 사마귀를 으개 버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준이였다.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철이는 꿈틀대는 사마귀를 검지와 엄지로 들고서 까딱까딱 흔들어 보인다. 



"이놈 실한데? 야 근데 생물샘 말이 맞는가보다. 어찌 사마귀가 냇물에 떠내려가냐? 실수로 나무에서 떨어질리가 없잖아. 이 영악한 놈이."

"물가로 유인한다고 하던데 맞는가본데? 야 그럼 그 연가시라는 기생충 나올때가 된거 아니냐? 물에 똥꾸녕 담가봐."



준이의 말에 호기심 어린눈으로 사마귀의 배아랫 부분을 냇물에 담궈보는 철이다. 호기심 어린 두눈은 반짝 반짝 빛이날 정도다. 두 소년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귀가 격하게 몸부림을 친다. 투명한 물속에 담궈진 사마귀의 항문에서 무언가 꿈틀대며 나오기 시작한다. 지렁이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실도 아닌것이, 거무 튀튀하고 기다란 것이 끊임 없이 나온다. 어쩌면 길이가 그리도 긴것인지 사마귀의 몸길이보다 한참이나 더 길게 삐져 나온다. 철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징그러운 괴물의 모습에 경악하던 철이는 이내 그것이 꼭 자신을 해할것만 같아 사마귀와 함께 멀찍한 곳으로 던져 버린다.



"겁나 징그럽네.. 더이상은 못보고 있겠더라."

"병신.. 그럴거면서 보러 오자 그랬냐?"



준이는 철이의 머리를 한대 쥐어 박으러 철이에게 다가가다 이내 뱃속을 강하게 뒤트는 변의에 냇가를 뛰쳐나온다. 괄약근이 힘을 주고는 있지만, 계속해서 삐져 나오는게 설사가 틀림없다.



"아.. 아까전에 니랑 물장난 하다 한바가지나 먹은 물때문에 그런지 설사나올것 같잖아!"

"뭐가 나도 많이 먹었는데, 설사는 무슨 저물이 얼매 깨끗한데. 야 나 먼저 갈께 똥이나 싸다 집에가라. 아 오늘 못볼거 본거 같다."

"지가 오자 그래놓고 의리없이."

"똥과 의리를 지켜야 하냐 더러운 우정 이로구나. 그럴바엔 집에서 기다리는 내 복실이와의 우정을 지킬랜다. 쾌변하길 기원하마."



킥킥 거리며 멀찌감찌 사라져 콩알 만해져 버린 철이의 뒷통수에 실컷 욕을 갈겨주는 준이였다. 준이는 가까운 곳에 덩쿨째 널부러진 호박잎을 따다 구깃구깃 구겨 조심스레 엉덩이를 닦고선 아무렇게나 던져버린후 아랫도리를 추스리며 집으로 향한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얼마나 정신없이 놀았는지 종일 떠있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 가고 있다. 저녁때를 못맞춰 들어가면 호통을 치는 아버지가 늘 두려웠기에, 준이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멀찍이 정든 대문이 보인다. 담벼락 사이로 고개를 내민 감나무가 마치 자신을 반기기 라도 하듯 잎사귀들을 흔들어 준다. 



"엄마 나왔어!"

"어찌 이리 늦었어! 얼른 손씻구와!"



대청마루에 널찍이 가족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호통이 웬일로 날아오지 않는가 싶더니,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한다. 아버지가 집에 안계시는가 보다. 할아버지의 거센 호통에 시무룩 해진 준이는 마당한켠에 깊게 파여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손을 대충 흘려 씻는다. 배가 무척이나 고픈 준이다.



"박 준 욘석아 오늘은 토요일이잖아. 학교 마쳤으면 얼른 얼른 집에 들어와야지. 또 남에 밭에가서 고구마 캐먹고 허기 달랜거야?"

"히히.. 엄마아들이 그런 도적질을 왜 하겠어. 철이랑 냇가에서 놀다보니까 시간가는 줄 모르겠더라구."

"니가 어린애냐 이제 중학생이면 어른이지! 얼른 밥먹어."

"네에~ 어무니~"



언뜻 언뜻 청년의 면모를 풍기는 준이를 지긋이 바라보던 어머니 유선은 이내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보리밥을 입에 틀어붓는 아들의 학생모를 다정히도 벗겨준다.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이다. 



"사내 놈이 방정 맞기는!! 콜록 콜록! 애미야.. 물좀 가져다 주려무나.. 요즘들어 왜이리 몸에 기운이 없는지.. 밥맛도 없구나.."

"네 아버님.."



할아버지의 호통에 잠시 시무룩 해진 표정으로 날랜 숫가락 질을 멈추었던 준은 이내 할아버지가 방문을 닫고 모습을 감추자, 다시금 숫가락질에 박차를 가한다. 나이 어린 동생들은 그런 형의 신들린 숫가락질을 신기한듯 쳐다만 볼 뿐이다.



"네 할아버지가 요즘들어 많이 편찮으신가 보구나.. 얼마전에 냇가에 한번 멱감고 오시더니 계속 저러시니.."



엄마의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어린 말도 한귀로 흘리고 배를 채우는데 여념이 없던 준이였다. 그런 철없는 그의 숫가락질을 단박에 멈춰줄 사람이 대문을 열고 등장 했으니, 호랑이보다도 무섭고 곶감보다도 무섭다는 준이의 아버지다. 



"케...케케켁!! 아.. 아버지 오셨어요?"



급하게 욕심 부리며 먹다 벌받은건지 사레가 들린 목소리로 아버지를 맞이하는 준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아버지는 힘없는 표정으로 아들에게 손을 한번 들어 보이더니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런 아버지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준이다. 그런 그의 뒤로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형이 먹다 남긴 반찬을 동생들이 허겁지겁 낚아챈다. 



이내 아버지를 맞으려 안방으로 어머니가 들어가고, 방안에서는 힘없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먹을만큼 나이를 먹은 준이는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창호지 너머로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 귀를 쫑긋 세우는 준이다.



"끝났어.. 우리 집안은 이제 끝이야.."

"여보.. 왜그러세요.. 무슨 일이에요?"

"직원 하나가 공장실수로 공장에서 협착 사고로 즉사했어.. 끝났어.. 우리 공장 망했어."



협착사고. 학교에서 기술과목을 배울때 얼핏 이 용어를 들은적이 있는 준이였다. 건설현장에서 철근따위에 사람이 깔리거나 구조물에 끼이거나 하는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큰 사고였다. 이내 방안에선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정신적으로 미숙한 준이는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생전 처음보는 아버지의 울음소리에 적지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아버지가 울고있단 말이다. 



더이상 듣고 있기가 불편했던 준이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마루에선 형이 남긴 밥을 마저 해치우고 있는 동생들이 아직도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밥을 먹고 있다. 준이는 방안에 틀어박혀 아버지의 눈물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가 운다. 회사가 망한다. 집안이 망한다. 가난해진다. 궁핍한 삶에 찌들리게 된다. 고등학교 갈 형편이 못된다. 



그제서야 처음보는 아버지의 눈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 일어날일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준이는 잠이 들었다. 



방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따가운 햇살에 잠을 얼핏 깻으나 더 자려는 준이였다. 허나 준이의 못다잔 잠을 깨우는 것이 또 있었으니, 아침부터 놀러온 철이였다. 철이는 말도 없이 방문을 열어재끼더니 준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강제로 깨운다. 무언가 급히 할말이 있는 눈치다.



"야야 임마 일어나봐 지금 시발 겁나 큰일났어! 그 에일리언 같이 생긴 벌레!! 그 연가시 있잖아! 그거 원래 동물한테도 나오냐?"

"우우움...아침댓바람부터 뭔헛소리야.. 그거 동물한테는 기생해도 곤충처럼 조종하지 못해서 별다른 증세 안보여."

"아니야! 복실이가 물가로 달려가더니 죽어 버렸다고! 똥구녕에서 그 연가시 인가 하는게 나왔단 말야!"

"뭐어..?"



말로만 들어선 믿을수 없는 소리다. 개구리나 생쥐같은 작은 동물도 아니고, 개 몸에서 연가시가 나와? 그것도 물가로 유인해서 죽게 만들어? 그냥 기생충이 나온걸 철이가 착각한게 아닐까 생각하는 준이였다. 하지만 철이가 덧붙여 말한 내용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가히 충격적인 것이였다.



"복실이 입에서 지렁이보다 더 두꺼운게 나오더라고 임마! 길이도 뱀보다 더 길더라 와 시발 나 그거보고 놀래가지고.. 아부지가 급류에 떠내려가는 복실이 몸에서 나오는 그거 잡을려다 급류에 쓸려 내려가버릴뻔 했잖아."

"말도 안돼.. 그럴리가.."

"너 지금 나를 못믿는거냐? 와 이건 진짜 대발견이야 괴물 발견이라구!"



흥분하다 못해 광분 한듯한 철이의 말과 행동에 준이는 짜증이 솟구쳐 하마터면 귀를 막아버릴 뻔한것을 겨우 참는다. 하지만 이어 문밖에서 들려오는 괴소음에 준이는 물론 철이마저 귀를 틀어 막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닭이 미친듯이 울기 시작했다. 우리에서 소소하게 키우던 열 댓마리의 닭이 한꺼번에 미친듯 날뛰며 울고 있다. 새벽도 아닌데 합창을 하며 울고 있다.



꼬끼오!! 꼬꼬대대대대대댁!! 꼬까오오오오 꼬끼오오 끼유우우우우우..



찢어질듯한 소음 이다. 새벽녘에 잠을 깨우는 닭의 울음소리 와는 뭔가가 다르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 듯한 울음소리 게다가 우리를 부셔버릴 것만 같은 닭들의 날개짓이 무척이나 공포스럽다. 사방에 닭털이 날리기 시작했고, 이를 보다 못한 유선이 마당으로 나와 빗자루로 우리를 치며 닭들을 진정시키려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닭들은 모두 조용해 진다. 얼핏보면 유선의 빗자루 질때문 이었으리라 생각할수 있었지만, 닭들이 조용해진 이유는 그게 아니다.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미친듯이 울며 날뛰다 죽어버린 것이다. 무슨 광우병도 아닌데 미쳐 날뛰다 죽은것 이다.



유선은 어이가 없어 빗자루를 손에 든채 마당에 주저 앉아버린다. 겨우 몇마리 안되는 닭이었지만, 집안의 소중한 재산이다. 어제부로 남편의 회사가 망했으니, 더욱 이 그랬으리라. 그런데 그 소중한 재산이 죽어 버렸다. 몽땅 다 죽어 버렸다.



철이와 준이도 이 상황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 일까 도대체. 안좋은 일은 한꺼번에 닥친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런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준이였다. 그때였다. 할아버지의 방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애미야!! 애미야!! 밖에 아무도 없냐!! 끄아아아아악!!!!"



무슨일일까? 어젯밤 몸이 많이 안좋아 보이셨던 할아버지다. 큰소리에 닭들을 넋놓고 바라만 보던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간다. 철이와 준이도 닭들을 지켜보다 이내 유선을 따라 방문앞에 선다.

방문을 열어 젖히자 눈앞에 어이없는 광경이 또한번 연출된다. 할아버지가 방안을 미친듯이 뛰어다닌다. 80이 넘은 노인이 방안을 미친듯이 뛰고 있다. 전력질주를 하듯말이다.



"아아아아악!!! 애미야!! 애미야!! 나좀 말려다오!! 아아아아악!!!! 애미야!!!"

"아..아버님!! 준아 철아! 할아버지좀 잡아!"



힘좋은 두소년이 완력으로 미친듯이 날뛰는 할아버지를 붙잡는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를 잡은 두소년의 발이 들썩 들썩 거린다. 어디서 나오는 힘일까? 준이와 철은 알수가 없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할아버지 였다. 방금전까지 미친 소처럼 날뛰던 사람의 모습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평온한 모습이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듯한 소년들의 몰골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와 안그래도 허름했던 철이의 옷이 갈기 갈기 찢어 져 버렸다. 80이 넘은 노인네 에게 말이다. 유선은 한꺼번에 들이 닥친 이 악재에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하룻밤새에 아버님은 미쳐버리고, 집안은 기울었으며, 피같은 재산은 모두 죽어버렸다. 이를 어찌해야 좋을까.



마음을 겨우겨우 추스린 유선은 지쳐있는 소년들을 위해 죽은 닭 한마리를 우리에서 꺼낸다. 어차피 죽은거 빨리 먹어치워야 되지 않는가. 간만에 고기를 먹을 소년들 이었다. 부엌으로 들어간 유선이 돌연 비명을 지른다. 소년들은 그소리에 놀라 부엌으로 달려간다. 



꿈틀 꿈틀. 잘려진 닭의 목에서 무언가가 꿈틀 꿈틀 거리며 나온다. 알수없는 생명체다. 기다란 모습에 거무튀튀하며 두꺼운 지렁이 같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본적이 있는 생명체다. 연가시다. 분명 연가시다. 그러나 그모습은 상상이상으로 거대하다. 손가락 정도의 두께다. 기겁을 하고 앉은채 뒷걸음질 하는 유선을 뒤로 한채 소년들이 밥주걱과 프라이팬을 들고선 닭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공기중에 나오게 되면 금방 죽게 된다는 연가시가 틀림 없다면 저대로 놔두어도 죽게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철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삐져나오던 연가시가 피가 계속 흘러나오는 닭의 목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습을 감춘 것이겠지만, 그 모양이 흡사 닭의 몸이 연가시를 흡입한듯 했다. 그러길 얼마지나지 않아 목이 달아나 몸체밖에 없는 닭이 돌연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부엌을 넘어 미친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두소년은 그 상황을 넋놓고 쳐다볼수 밖에 없었다. 현실범주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을 보았으니 넋이 나갈만도 하다. 두소년은 닭의 모습을 쫒아 부엌을 나섰다. 멀리 대문을 믿을수 없는 속도로 대문을 뛰쳐나가는 목없는 닭이 보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친듯이 날아 다니다 털이 빠져 병든 닭처럼 죽어있던 닭들이 하나 둘 일어나더니 목잘린 닭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소년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 이내 서로의 마음을 읽었는지 한손에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들고선 닭들을 따라 달려간다. 건장한 소년들이 전력질주를 했음에도 닭들이 더빠르다. 죽은 닭이 움직이는 것도 믿기지가 않지만, 자그마한 닭의 다리로 사람보다 빨리 달리다니. 믿을수 없는 초자연 현상을 계속해서 목격하는 두 소년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준이와 철이다. 두소년이 달리던 두다리를 멈춰선 곳은 김씨네 뒷마당의 냇가다. 두소년은 이윽고 눈앞에 보이는 괴현상에 그자리에 주저 앉아 뒷걸음질 쳐버린다. 물에 둥둥 떠서 날개짓을 하는 열댓 마리의 닭들. 부리와 항문에서 삐져나오는 손가락 두께의 거무 튀튀한 연가시. 게중 용트림을 하듯 하늘높을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한마리의 연가시가 꿈틀 꿈틀 대며 그 길이를 뽐낸다. 적게 잡아도 2미터는 될듯한 거대한 길이. 괴물이다.



두소년은 괴성을 지르며 달리고 또달렸다. 결코 아침에 철이가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된 준이였다. 믿을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저 기생충이 동물을 조종하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을수 없는 광경이었다. 목구녕을 뚫을듯 차오르던 숨이 차분해 졌음에도 두소년은 말한마디 없었다. 공포에 질린 철이는 그길로 집으로 가버렸다. 혼자가 된 준은 왠지 모를 불안함에 서둘러 집으로 향한 걸음을 재촉한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한다. 아침의 할아버지의 행동이 수상했다. 너무나도 불안하다.



끼이이익.. 



경첩이 달아 찢어지는 소리를 내는 대문이 열린다. 그리고 불안함은 현실로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한바탕 몸을 섞고 있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아버지를 때려 눕히는 할아버지다. 말도 안된다. 40대의 건강한 아버지가 밀리다니 말도 안된다. 혹시나 해서 다시 눈을 씻고 쳐다 보는 준이였다. 그러나 사실이다. 준이는 서둘러 달려가 아버지를 도와 할아버지의 몸부림을 막아낸다. 두 남자의 완력으로도 80먹은 노인의 광기를 좀처럼 잠재울수 없다.



"애미야 물을 다오!! 물이 마시고 싶다!! 물만 가져다주면 괜찮을 것같아!!!! 어서 물을 내놔!!"

"여보! 어서 아버지께 물을 가져다 드려! 어서!"



빨갛게 충혈된 눈을 더욱 붉게 물들이며 할아버지가 고함을 고래고래 지른다. 힘이 빠진 아버지와 준이는 자칫하면 노인의 팔을 놓칠까 걱정이다. 유선은 남편의 호통에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부엌에서 유리컵에 물을 한잔 따라와 날뛰는 아버님의 입에 가져다 댄다. 그러나 정신없이 몸부림을 치는 통에 유선은 유리컵을 놓치고 만다. 사정없이 날뛰는 유리파편이 한여름의 뙤악볕을 받아 사방으로 빛을 뿌린다.



쨍그랑.. 



"사발에 가져와!! 사발에 물을 가져오라고!! 누구코에 붙여 그 유리컵에 따른걸!! 아아아아악!! 아니야!! 대야채로 들고와!! 제일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와!! 끄아아악 아아아아악!!!!!"



순순히 아버님이 시키는 대로 할수 밖에 없는 유선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라도 남편과 아들이 나가떨어질 것 같았으니까. 유선은 우물에서 물을 길러 집안에서 제일 커다란 대야에 물을 채웠다. 물을 채우기가 무섭게 아들과 남편은 결국 80먹은 노인에게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미친듯이 대야를 향해 달리는 노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마리의 짐승과 도 같다. 언제라도 대야의 물을 다 들이켜 버릴 것 같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선 대야로 돌진하는 노인이다.



노인은 대야앞에 멈춰서더니 그대로 대야에 머리를 박는다.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들고선 두리번 거린다. 대야의 물로도 모자랬나 보다. 이내 노인의 시선이 멈춘곳은 우물. 준이는 앞으로 일어날일을 직감하고 할아버지를 향해 달렸으나, 할아버지와의 우물의 거리가 그와 할아버지의 거리보다 더 가깝다. 



풍덩.. 



우물의 쌓아올린 벽돌위로 작은 물기둥이 솓구치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준이는 공포에 몸을 떨며 용기를 내 우물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그리 깊지 않은 우물이다. 준이는 이내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친다. 도깨비 처럼 빠알간 눈과 말이다. 할아버지는 그대로 서서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고 있다. 다만 할아버지의 등뒤로 우물이 일렁거린다. 우물안에 할아버지 이외에 무언가가 또있다. 무엇일까. 결국 불안해 하던 일이 벌어졌다. 연가시다. 적게잡아도 사람의 목두께만큼은 될만한 거대한 연가시다. 그것이 서서히 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 꿈틀 거리며 준이를 향해 말이다.





즈즈즈즈즈즈...즈즈즈즛..





미끌거리는 몸이 벽에 닿아서 나는 소리가 절망적으로 들려온다. 준이는 그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할수없다. 공포에 온몸이 마비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미칠듯한 공포에 눈물이 흐른다. 거대한 연가시가 자신에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다. 멱을 감으러 가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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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테레이브
  • 2011.12.28
으으으..상상만해도 징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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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아아
  • 2011.12.29

ㅋㅋ 이런 곱등이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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