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2ch] 도토리 줍기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무렵의 이야기이다.
내 고향에서는 저녁이 되면 아이들에게 집에 돌아가라는 동네 방송이 나온다.
방송이라고는 해도 [빨리 집에 돌아가거라.] 라는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저녁 노을 작은 노을]의 멜로디가 스피커에서
지지직거리며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참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런 방송은 잡음일 뿐이었고, 방송이 울려퍼져도 날이 저물 때까지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방송은 어른들의 경고였을 것이다.
나는 그 날 혼자서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우리 마을에는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산이 있었다.
그 산은 아이들에게 거대한 놀이터와 같았다.
바삭거리는 낙엽을 밟으면서, 나는 예쁜 도토리를 찾아 걷고 있었다.
하나를 찾으면 주저 앉아 그것을 줍고, 근처에서 또 도토리를 찾아낸다.
그런 식으로 나는 계속 깊은 산 속으로 돌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도토리를 줍는 것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종종 하나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주변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곤 한다.
그 날 나도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멀리서 저녁 노을의 멜로디가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싶으면서도, 조금 더 주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도토리를 계속 줍고 있었다.
얼마나 되었을까, 손에 든 비닐 봉지에는 도토리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만족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내 겨드랑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갈래...]
무서움을 떨쳐내려고 나는 소리내서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발을 내딛었을 때, 나는 내가 산의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토리를 줍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따로 어디에 표시를 해둔 것도 아니다.
산을 올라왔는지 내려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 어느 동화를 떠올렸다.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였다.
빵을 뜯어서 표시를 하고 그것을 따라 돌아왔다는 이야기.
나는 거꾸로 도토리를 주워서 왔으니까 도토리가 없는 쪽으로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대단히 괜찮은 생각 가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토리는 어디에나 떨어져 있었고, 해가 진 상황에서 도토리가 없는 쪽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 앉아 어찌할 바를 모른채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멀리서 들려 오는 정체 모를 짐승의 울음 소리에 겁을 먹고 있었다.
점차 어둠 속에서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옛날 이야기에서 들었던 산에 사는 거대한 짐승.
산에서 조난당해 죽은 사람들의 귀신.
차례로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각을 보며, 내 정신은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죽는 것일까?
공복과 추위, 환각에 시달리던 나는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몽롱한 와중에, 나는 무엇인가가 낙엽을 밟으며 걷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해 소리를 들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역시 무엇인가가 걷고 있다.
소리에서 그것이 네 발 달린 짐승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인 것일까?
소리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사람일까?
만약 사람이라면 등불 하나 없이 이 시간에 산길을 걸어다닐 수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소리는 내가 있는 곳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왔다.
나는 정체 모를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소리는 나는데 모습은 안 보인다.
나는 두려워서 반대편으로 도토리를 던져 그것의 주의를 끌기로 했다.
하지만 비닐 봉지에 손을 댄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방금 전까지 들려오던 발소리가 분명히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발소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눈앞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내 주변을 빙글빙글 뛰며 돌기 시작했다.
주변의 풀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거기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풀이 흔들리고 발소리가 들리는데, 정체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리도 못 내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발소리는 점점 다가와서, 흔들리는 풀이 내 몸에 부딪힐 정도가 되었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
막연히 드는 그 생각에 눈물은 점점 더 넘쳐 흘렀다.
나는 눈을 감고 이빨을 악문 채,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
얼마나 지났을까?
어째서인지 발소리는 사라졌다.
풀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살았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한순간 숨을 멈췄다.
내 코 앞에 주름 투성이의 추악한 얼굴이 있었다.
마치 고대 유적에서 발굴된 미라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과 시선이 그대로 마주쳤던 것이다.
[안니모왓테기이타.]
기분 나쁜 목소리로 그것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살던 지방의 사투리와도 전혀 다른 독특한 분위기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몇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공포에 질려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현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분명히 들려오고 있었고, 점점 목소리가 험악해지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 나는 열심히 생각했다.
[안니모왓테기이타.]
생각하는 동안에도 소리는 계속 커져서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점점 그것의 눈이 데굴데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얼굴 전체가 덜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도토리가 가득한 비닐 봉지를 그것에게 내밀었다.
순간 흔들리던 얼굴이 멈추고, 눈의 초점이 내가 내민 비닐 봉지로 향했다.
그리고 큰 소리와 함께 그것은 내가 내민 봉지를 들고 크게 웃으면서 사라졌다.
그대로 나는 공포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아침까지 떨고 있었다.
내가 그 곳에서 움직인 것은 아침 해가 뜨고 나서였다.
밤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저려서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지만, 한동안 산 속을 걷자 나를 찾고 있던 어른들을
발견했다.
나는 안심한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펑펑 울면서 어른들을 불렀다.
어른들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밤새 울고 있었던 것인지 눈가가 부어 있었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한 대 때린 뒤 울면서 나를 껴안았다.
머리는 아팠지만,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는 산에서 봤던 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했지만,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며 한 대 더 맞았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산에서 봤던 게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마을 안에 소문이 돌면서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 왔었다.
할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마을에 사시던 분으로, 우리 마을의 역사에 관한 책을 쓰고 계신 분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봤던 것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여쭤봤다.
할아버지는 생긋 웃으면서 그것은 산신이라고 대답해주셨다.
[안니모왓테기이타.] 라는 것은 무엇을 가져왔냐는 질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마을에서는 먼 옛날 가을에 수확을 거두면, 산신에게 감사와 함께 내년의 풍년을 기원하며 공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 도토리를 내밀었었다.
할아버지는 만약 그 때 내가 도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나를 공물로 데려갔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셨다.
오래된 일이지만, 지금도 가을이 되서 해가 빨리 저물 때가 되면 그 때 그 산신의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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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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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의 유래는 조선인가...열도인가...중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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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중 '산'을 신성하게 여겨 형체화된게 '산신'이니 따지고보면 유래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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