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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톨게이트 2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의식을 차릴 수 있었어요.
간신히 눈을 떠보니, 같이 당직을 서던 경수 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경수 엄마가 새벽 4시반 쯤 당직을 교대해 주려고 정산소로 왔는데, 
제가 기절해 있었다는 거예요.
한손에는 손전등을 쥐고 있는 채로.
저는 놀라서 경수 엄마에게 그 표에 대해 물어보았죠. 경수 엄마는 그런 피묻은 표는 
보지도 못 했다고 했어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저는, 어안이벙벙한 채 나를 보고 있는 경수 엄마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산소 문을 열고 뛰어나가 비를 맞으면서 미친 듯이 그 표를 찾아봤어요.
손전등을 가지고 찾다보니, 바로 정산소 앞에 떨어진 표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빗물에 씻겼는지, 그 표에는 핏자국이 거의 않보였어요.


이번에는 진입지가 경상북도 M 톨게이트로 되어있는 표였어요.
경수 엄마는 그 표를 가지고 멍하는 서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어요.
저는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경수엄마에게 설명했지만, 경수 엄마는 오히려 제 말을 
믿지 않고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아요.
할 수 없이 저는 소장님이라도 빨리 출근하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어요.
소장님이 출근 하자마자, 저는 또 그 차를 봤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소장님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저를 대했어요.
똑같은 일이 똑같은 사람에게만 계속 일어 난다는 것이 좀 이상했나봐요.
다들 제가 졸다가 꿈꾼 것을 착각했거나, 그냥 지어낸 얘기로 생각했어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어주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어요.
소장님도 제가 피곤해 보인다고, 일찍 들어가 쉬라고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퇴근 준비를 하는데 소장님에게 전화가 한 통 왔어요.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받던 소장님의 표정 이 갑자기 변하더니,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뭐라고요? 경상북도 M 톨게이트라고요? 이번에도 똑같단 말이예요?’
M 톨게이트라는 말을 듣자 저는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무서워졌어요.
전화를 끊은 소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얘기했어요.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데요. 이번에는 경상북도 M 톨게이트에서 일어났데요.
지난번과 똑같이 정산소에서 표받던 직원 이 팔을 잘린 채로 처참하게 죽어있는 것이 
발견 되었다네요.
어쩌면 지연씨가 본 그 차에 진짜 범인이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휴...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야?’

다들 그 얘기를 듣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벽에 걸려있는 고속도로 지도를 보고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왠지 
지도에 자꾸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잘 알 수 없었어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멍할 정도의 전율과 두려움으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
뜨렸어요...


처음에 살인사건이 난 경상남도 L톨 게이트와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M 톨게이트 
사이에는 3개의 톨게이트가 있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살인 장소인 M 톨 게이트로부터 4 번째에 위치한 톨게이트는 바로
우리 톨게이트였어요.
지도에 따른다면, 다음 살인은 바로 우리 톨게이트에서 일어난다는 얘기였죠.
두 번째 사건이 있은 후, 모두들 공포에 떨었어요...
특히 야간 당직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더구나 저는 다음 번에는 우리 톨게이트 에서 살인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욱 무서웠어요. 
그래서 고속도로 관리공단 측 에서는 모든 톨게이트에 호신용 가스총을 비치하고,
야간 당직은 당분간 남자 직원들만 세우기로 했어요.
경찰의 추리에 의하면, 그 살인범이 정신 이상자이거나, 톨게이트만 노리는 살인강도
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살인범은 현장에서 살인만 했지 돈을 훔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단지 한적한 톨게이트를 골라 표 받는 직원들을 잔인하게 죽여왔다는 얘기가 들려
왔어요.
그러니 더욱 무서워졌죠. 차라리 강도면 그래도 나은데, 이건 살인을 일삼는 싸이코라니...


여하튼 제가 목격했던 그 차가 살인범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다시 그 젊은
형사가 찾아왔어요.
그 형사는 제 얘기를 듣더니, 제가 봤다는 차와 안에 탄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
보았어요.
그러나 저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어요, 사실 그 차와 운전사의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도 않았고, 특징적인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아요.
단지 어두운 색깔의 차와 기분 나쁜 냄새가 전부였어요.
처음에는 흥미를 가진 것으로 보였던 그 젊은 형사도, 저의 모호한 증언에 좀 실망한듯 
보였어요. 나중에는 암만 제가 강하게 얘기해도 건성으로 듣는 것 같았아요.
제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으로 보였나봐요.
더구나 그 차가 나타날 때 마다 꺼지는 전등과 라디오의 얘기까지 해주었더니 완전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더군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형식적으로 수사에 고맙다는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 형사에게 제가 처음에 받았던 피 묻은
표에 대해 물어봤어요.
형사는 피식 웃더니 그 검사결과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그 표에서 나온 피는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더군요.
그러니 저를 더욱 안믿은 거였어요.
이번에 받은 표도 거의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살인이 발생한 톨게이트들을 보면 다음은 우리 톨게이트 같다는 
얘기를 해주었어요.
형사는 그 얘기 역시 상상력 풍부한 저의 황당한 추리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어요.
수사에 참고 하겠다는 의례적인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고...
형사는 시간낭비 했다는 듯이 돌아갔어요.
제 얘기를 안 믿는데 안타깝고 답답했어요.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제 얘기가 지어낸 황당한 얘기를 들릴 수 있
을 것 같았아요.
형사 말대로 한 미친 놈이 돌아다니면서 닥치는대로 살해한다는 것이 사실이고, 제가 
본 것이 그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니 무섭고 끔찍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차라리 제가 헛것을 봤거나, 평범한 사람인데 겁에 질려 상상해낸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 마저 들었어요.
퇴근할 때마다, 야간 당직 때문에 출근하는 남자 직원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걱정
되었어요. 하지만 가스총 때문인지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살인마가 이제 살인은 멈추고 사라진 것 처럼 느껴졌어요.
강박관념처럼 저를 따라다니던 그 차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점심시간에 잡담을 하다가 경수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께.
우리 바깥양반이 톨게이트 지나자마자 있는 공원묘지에서 관리인을 하고 있잖아.
며칠전 그이에게 톨게이트 살인사건하고 지연이가 봤다던 그 시꺼먼 차에 대해서 얘
기 해 주었더니, 자기가 농담조로 그 범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지난 여름에 비가 엄청 많이 왔잖아.
그때 온 비로 남편이 근무하던 공원묘지도 난리가 났대.
너무 많이 온 비로 많은 묘지들이 유실되고, 시신들이 물에 쓸려 내려갔다는 거야. 
300 구가 넘는 시체가 훼손되었다는 거야.
불행중 다행인지 공원 묘지 근처에 강이 없어, 시체들이 다른 곳처럼 강물에 떠내려
가지는 않았대.
그래도 자기 조상이나 가족의 시체가 없어진 사람들은 난리가 났지.
빨리 시신을 찾아내라고 난리였대.
우리 남편도 몇주동안 그 없어진 시체를 찾아 묘지 근처를 돌아다녔대. 
대부분의 시체는 묘지 입구 어귀 밭에서 찾아냈대.
딴데보다는 쉬웠지만, 그래도 썩을대로 썩고 물에 불은 시체들을 찾는 것 정말 싫은 
일이었대.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했는데...
시체를 찾아주며 돈을 받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는거야, 글쎄...
남편은 처음에 별일로 돈을 다 버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기막힐 정도로 시신을 잘 찾아왔대.
그것도 가족이 원했던 그 시체라는 거야.
일주일도 안되서 300구가 넘는 시체를 다 찾아냈대.
그런데... 딱 1구의 시체는 찾지 못했대. 딱 1구의 시체를...
남편 말로는 그 사람들도 그 시체를 찾아달 라는부탁을 받아 찾으려고 했지만, 
못찾았다는 거야.

무서운 얘기는 여기서부터야.
부자로 보이는 노인이 와서 자기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며 거액을 내 놓더래.
그 사람들은 그 시체가 생전에 쓰거나 좋아 했던 물건을 하나 달라고 했는데, 
그 노인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날카로운 사냥칼을 주더래.
아무 생각없이 그 칼을 받아든 그 사람들은 똑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칼을 쥐고 
뭔가를 찾는 듯 했대.
그런데 예전에는 5분도 안 돼서 찾던 사람들이, 그 때는 1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거야.
그 뒤 아무 말없이 그 노인에게 받았던 돈을 돌려주고, 일행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더래.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낀 남편이 그들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어보았대.
처음에는 그냥 떠난다고 하다고 하다가, 자꾸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으로 이상한 대답을
하고 사라졌대.
‘우리는 시체만 찾는단 말이요! 돌아다니지 않는...’
남편은 그들의 이상한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데.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돌발스런 그들의 행동에 그 노인 역시 멍한채로
서있더래.
남편은 그 노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냐고 물어봤데. 
노인은 한 숨을 내쉬며 신세 한탄조로 얘기하더래.
‘휴... 이게 다 내 업보지. 자식 하나 잘못 둬, 이런 일까지 당했지...
죽어서도 속 썩이다니... 그 놈이 살았을 때는 지 마누라와 딸을 죽였던 잡놈이었소.
사형당한 시체를 수습해 여기다 묻었더니, 그 시체마저 없어져 속을 썩이고 있다우’
그랬다는 거야. 이 얘기를 해주면서 남편이 그랬어.
그 톨게이트에서 살인하고 다니는 놈이 찾지 못한 시체일지도 모른다고...
그럴 듯 하지?
자기 식구를 몰살시킨 살인자가 무덤에서 나와서 또 살인한다! 어때? 무섭지?’


경수 엄마의 얘기에 같이 듣고 있던 직원들은 막 웃으면서 재미있고 소름끼치는 
얘기라고들 했어요.
어떤 직원은 아예 모든 얘기가 경수엄마가 지어낸 것 아니냐고 놀려대기도 하고요.
경수 엄마는 자기 남편이 정말 겪었던 얘기라고 했고.. 
여하튼 분위기는 떠도는 으시시한 얘기를 들은 것처럼 가벼운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그 얘기를 듣고 서로 농담하는 그 분위기에서 저 혼자만은 이상할 정도의 
두려움과 불길함이 느꼈어요.
내가 본 그 차에 마치 그 사라진 살인범의 시체가 있었던 것 같은...
경수 엄마의 이야기가 제겐 그럴듯한 공포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 얘기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저도 그 무시무시한 얘기를 잊어버리려 했지만, 뇌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표 받을 때도 그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그 차가 지나갈 때 나던 기분나쁜 냄새가 생각났어요.
생각해보니, 꼭 시체 썩는 냄새 같았어요.
이런 생각까지나니, 그 살인마는 정말 무덤에서 나온 악령같이 느껴졌어요.
혼자만 고민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제 생각을 동료들에게 얘기했어요.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재미없는 농담하는 걸로 생각했어요. 
몇 번을 얘기했지만, 점점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더 이상 얘기하지 못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한동안 그 톨게이트 살인마가 잠잠 했어요.
저는 점점 마음이 놓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신경과민증상으로 생각했어요.
긴장이 느슨해진 것은 저 뿐만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남자직원들도 전부 야간 당직을 싫어했는데, 시간이 가고 아무 일도 않 생기
니까 모두들 야간 당직을 자기가 하려고들 하는 것이었어요. 
그 동안 그 살인사건 때문에 야간 당직을 모두 회피하니까, 공단에서 야간 당직 수당을
좀 인상했거든요. 
그 살인 사건이 잠잠해지자 남자 직원들은 야간 당직을 오히려 하고 싶어했던 거예요.
범인에 대한 단서도 잡지 못한 채,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지 어느덧 한 달이 좀 넘게 
지났어요.
그 사이에 톨게이트 일 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추석도 지났어요.


그런 평온한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여자 직원들은 모두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고, 야간 당직을 하기 위해 남자 직원
두 명이 출근하고 있었어요.
저는 혹시나 몰라 그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했어요.
그들은 지급 받은 가스총을 카우보이처럼 흔들더니 여유 있는 웃음과 함께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그들의 태연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오늘 밤에 가을 가뭄을 해소할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들었어요.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 예보를 들었어요.
밤에 잠을 이루려는데 자꾸 알 수 없는 무서운 느낌이 들어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잠이 덧든 상태에서 계속 기억도 나지 않는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았어요.
한참을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천둥소리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보니, 아직 밤이었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밤 3시 반이 좀 넘었어요.
번쩍 하고 번개가 치고, 좀 있다 하늘이 무너질 듯이 천둥이 쳤어요.
그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바로 비였어요.
두 번 다 그 살인마는 비올 때 나타나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 떠올랐어요.
두 번째 살인사건 이후로 그때까지 비가 한 번도 안 내렸던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소름이 쫙 끼치고 온 몸이 부르르 떨렸어요.
밖에는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어요.
잠시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침대에서 일어나, 톨게이트 사무실로 전화해봤어요.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안 받는거예요.
그러니까 더 불안했어요.
내가 틀렸겠지 하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잘 수가 없었어요.


옷을 챙겨입고, 차를 몰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톨게이트로 향했어요.
가는 동안 별 생각이 떠올랐어요.
불빛 한점없는 비오는 밤길을 달리다 보니, 무서워졌어요.
저 어둠 속에서 그 살인마라도 나타날 것 같았아요.
뭔가가 뒤에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저 길가 암흑속에서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
올 것도 같았어요.
비는 오고 어두워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자꾸 뒤가 신경쓰이는 것이었어요. 
운전 하면서 뒤가 불안해 힐끗힐끗 뒤를 봤어요.
어둠 속에서 뭔가 불길한 기운마저 느껴지기까지 했어요.
뭔가에 쫓기듯 빗속을 뚫고 톨게이트를 향했어요.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톨게이트 쪽에서 이쪽을 향하는 자동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 이었어요.
톨게이트를 지나오는 것 같은 자동차 불빛을 보자 좀 마음이 놓였어요.
자동차가 지나다닌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얘기잖아요.
괜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며 차의 속도를 좀 늦쳤어요.
그런데 그 차의 불빛이 갑자기 가까워지는 것이었어요.
그 차의 불빛을 보고 있던 저는 두려움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어요.
그 차의 불빛은 보통 헤트라이트 불빛이 아니었어요.
마치 지옥에서 나온 악마의 붉은 눈빛처럼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차가 다가오자, 무서워 미칠 것 같았어요.
내 정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일초라도 빨리 그 차에서 벚어나기 위해 속력을 높였어요.
그 차는 시시각각으로 기분나쁜 헤트라이트 불빛을 발하며 덮치듯이 나를 향해 다가
왔어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죠. 순간 그 차는 내 옆을 지나갔어요.
눈을 감았지만, 확실히 느낀 것은 그 차에 타고 있던 그 무언가가 나를 보고 웃었다
는 거예요.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전 느꼈어요.
그 차는 이제까지 내게 피묻은 표를 주던 그 차였고, 그 차를 운전하던 그 무엇은 나
를 보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순식간에 그 차는 제 옆을 지나갔어요.
혹시나 하고 백밀러를 보았는데, 아니나 다 를까 방금 전에 분명히 내 옆을 지나갔던 
그 차가 안보이는 것이었어요.
백 라이트라도 보여야 정상인데, 아무런 흔 적 없이 암흑만이 보이는 것이었어요.


불안해하는 도중에 톨게이트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정산소의 불빛이 다 꺼져있던 거예요.
비가 와서 톨게이트 안에 누가 있는지 잘 안 보였어요.
저는 차를 톨게이트 앞에 세우고 손전등과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어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천천히 정산소로 향했어요.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비소리 때문인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를 비춰보았지만,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었어요.
정산소 문앞에 서자 피비린내 같은 것이 났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 안을 비춰보았어요.
그 순간 저는 놀라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어요.


불과 몇 시간전만 해도 가스총을 들고 여유 있어 하던 남자 직원이 팔이 잘려 나간 
채 피투성이가 되어 난도질 당한 채 죽어있는 것이예요.
시체의 쾡한 눈은 흉칙함을 더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 정신없이 거기에서 뛰어 나왔어요.
시체가 벌떡 일어나 제 뒷덜미를 채갈까봐 비 맞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달렸어요.
나도 모르게 사무실 쪽으로 달려갔어요.
헉헉대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어요.
사무실 역시 불이 나가서 깜깜했어요.
누구 없냐고 소리쳤지만, 들리는 것은 비소리 뿐이었어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어요.
짧은 순간이나마 사방이 환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너무 끔찍한 것을 봤어요.
제 바로 눈앞에 고깃덩이처럼 너덜너덜해진 시체가 하나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시체
의 멍한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사방이 사람들로 북적되었을 때였어요.
경찰, 직원, 응급차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어요.
내가 깨어나자, 경찰들이 몰려와 사정없이 질문을 해대는 거예요.
저는 간신히 전날 밤 본 것에 대해서 얘기했죠.
하지만, 경찰들은 제 말보다는 왜 제가 한 밤중에 여기에 왔냐고 캐 묻는 것이었어요.
마치 용의자 심문하듯이 나를 심문하는 것 이었어요.
저는 밤에 본 그 기분 나쁜 차와 살인마가 비올 때 마다 찾아온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역시 아무도 안믿고, 오히려 저를 의심하는 것 같더군요.
무섭기도 답답하기도 해 미칠 것 같았어요.
경찰 말로는 피해자들이 사냥칼로 수십 번 난도질당한 채로 죽어있다는 것이었어요.


경찰의 심문이 끝나자 저는 톨게이트 근무를 해야 했어요.
사람은 죽었지만, 고속도로를 패쇄할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오히려 직원이 둘이나 죽었기 때문에, 일손이 딸리는 형편이 었으니까요.
경찰도 벌써 3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니 가 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각 톨 게이트마다
밤에 두 명의 경찰을 배치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무서워질 대로 무서워진 직원들은 야간 당직은 피하려고 했어요.
사실 톨게이트 에서만 살인을 저지르는 그 놈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제 생각에는 다음 비오는 날 분명히 또 나타 날 것 같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경찰 두 명이 지켜줄 때까지 우리 톨게이트 야간 당직은 1명으로 하기로 했어요.
죽기보다 하기 싫은 야간당직이었지만, 직장을 그만둘 형편도 못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도 하게 되었어요.
우리 톨게이트에서 살인이 일어난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경찰 역시 매일 밤 톨게이트 당직을 서야 하는 것에 피곤함도 느끼는 것 같았고요.
그러다 결국 그 날이 온 것이지요.
야간 당직 하게 되는 날이면 항상 일기 예보를 확인했거든요.
혹시 밤에 비라도 오는지.
그런데 그 날은 비 올 확률은 10%미만이라도 예보에서 나왔어요.
그걸 믿고 야간 당직을 서게 되었죠.
그 실수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예요.


저와 같이 야간 당직을 하게 된 경찰은 공교롭게도 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였어요. 
왜 이 쪽 담당도 아닌 그 사람이 저와 당직을 같이 하게 되었는지 좀 이상했지만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어요.
여하튼 아무 것도 모르던 저는 단지 아무 일도 없길 바라기만 하면서 정산소에 앉아 
있었어요.
그 형사는 저와 같이 정산소에 앉아 있었고, 같이 온 동료 경찰은 톨게이트 근처에
세워놓은 차에 앉아 있었어요. 
두 명의 경찰은 서로 교대하며 정산소와 차를 왔다갔다 했어요.
저는 낮에 푹자서 별로 피곤하지 않았어요.
매일 혼자만 앉아 있는 정산소에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려니 좀 이상했어요. 
그것도 경찰과...
밤이 깊어지자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어지고 무료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형사와 형식적인 대화만 나누다가, 슬슬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무서움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경찰이 지켜주고 있는데 괜찮겠지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것 저것 얘기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밤 2 시가 지나고 있었어요.
그 때까지는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않했던 그 형사가 점점 사건에 대해
이것 저것 질문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제가 보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얘기했어요.
그 무덤과 못 찾은 시체 얘기까지 다 해주었어요.
그 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제 얘기를 다들었어요.
제 얘기가 끝나자 형사가 살인사건에 대해 몇가지 의혹을 얘기해 주었어요.


‘음... 그랬어요... 하긴 이번 사건,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저도 많지는 않지만, 살인 현장은 꽤 봐왔거든요.
그런데 이번 살인 현장에서 받은 인상은 좀 이상해요.
살인범이 살인을 할 때 아무런 감정없이 사람을 죽인 것 같아요.
원래 살인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사람의 감정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범죄인데, 
이번 살인은 하나의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요.
무슨 껍데기만 있는 놈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상한 점은 더 있어요.
이 톨 게이트에서 발생한 살인만 해도 그래요.
두 명의 피해자가 똑같이 그렇게 심하게 난도질을 당했는데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마치 무슨 최면에 걸려있었던 것처럼,
또는 자다가 당한 사람들처럼 전혀 반항의 흔적이 없었어요.
자다가 습격을 당해도 그 정도의 난도질을 당하면 바둥거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당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살인범이 면식범일 가능성도 있어요.
혹시 모르죠. 지연씨 말한대로 무덤에서 나온 악령이 그 범인일지도...’


형사의 말을 들어보니 제 얘기를 비웃는 것 같기도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일기 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내리는 것이었어요.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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