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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톨게이트 3
오늘도 분명히 그 살인마가 나타날 것 같았어요.
그 형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안절부절 못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려 애썼어요.
하지만 두려움이 미칠 지경인 저는 빨리 여기서 도망가자고 소리쳤어요.
형사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걱정말라고 하며 저를 정산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지지직 거리더니 정산소 불빛이 꺼졌어요.
그 살인마가 나타날 때랑 똑같았아요. 비가 내리고, 정산소 불이 나가고.
저는 무서움으로 실신할 지경으로 소리쳤어요.
‘이제 그 놈이 나타난다고요! 그 놈이! 우리를 죽이러!!!’
불이 나가도 침착해하던 그 형사는 저를 진정시키다가,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었어요.
제 어깨 너머로 뭔가를 본 것 같았어요.
형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기 지연씨가 말하던 그 놈이 온 것같네요’
그 말에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악’하는 비명 소리를 질렀어요.
거기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그 어두운 색 차가 톨 게이트 앞에서 악마의 눈 같은 헤트
라이트를 밝힌 채로 서 있는 거예요.
우리를 노려보며...
형사는 그 자동차 불빛을 노려보며, 다급히 무전기를 들고 차에 있을 동료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러댔어요.
‘이봐 최 형사, 그만 자고 일어나!’
최형사라는 사람은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뭐야 무슨 일이야?’
‘기다리던 손님이 오신 것 같아. 톨게이트 앞쪽을 봐.’ 
잠시 있다 긴장된 최형사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잠깐... 어! 짙은 색 자동차가 한 대 보여. 저 차 왜 서 있지?’
‘그 놈일지도 몰라’
무전기 너머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러더니 최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시팔! 하필 비올 때 지랄하는거야! 차안에 우산도 없는데...내가 나가보지.’
그 말과 함께 무전기 너머로 자동차 문소리와 함께 빗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저와 같이 있던 형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기 에 대고 외쳤어요.
‘최 형사! 조심해! 혼자 설쳐대지 말고!’
그런데 비때문인지 무전기에서는 최 형사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어요.
하이빔을 켰는지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자동차 불빛 때문에 최형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아요.
최형사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무전기에서 들렸지만, 
뭐라고 말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고 지직거리며 목소리의 일부만 들려왔어요.
‘......지금......앞이야...........................................
차.......안.......아무도... 안............................
문......앞........경찰.............................
잠시.........차......내려..........’


나와 형사는 뭔가에 홀린 듯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차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그 상태에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왜 저와 형사가 그 순간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는지 의문이예요.
그때였어요.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최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뭐야!...........아악!!’ 
무전기에서의 비명과 함께 창 밖에서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와 동시에 총구에서 번쩍이는 듯한 불빛과 함께‘타앙’하는 총소리가
여러번 들렸어요.
총소리는 빗속에서 메아리쳤어요.
그리곤 죽음 같은 적막이 갑자기 흘렀어요.
총소리를 듣자마자, 저와 같이 있던 형사는 ‘제기랄!’하며, 제가 말릴 새도 없이 권총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어요.
빗 속을 헤치고, 형사는 그 자동차로 달려갔어요.
‘경찰이다! 꼼짝 말고 차에서 내려! 최 형사! 최 형사!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있어?’
불빛 때문에 형사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다급한 외침만 들려왔어요.
‘아니! 최 형사!! 어떤 새끼야!! 숨어있지 말고 빨리 나와!! 이 살인마 개새끼!!’
갑자기 분노한 형사의 목소리를 들으니, 최 형사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을 발견한 것 
같았어요.


저는 무서웠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해 미칠 것 같았어요. 
차의 불빛만 보이고, 형사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어요. 
‘지연씨, 밖으로 나오지 말고 꼼짝 말고 있어요!!’
그리고는 형사의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빨리 문열고 나와!! 손들고! 나와!! 이 개새끼야!!’
형사가 차안에 탄 누군가를 발견하고 외치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저는 차에 타있던 그 사람이 살인마가 아닐지도 몰랐지만, 형사가 그냥 그 사람
을 총으로 쏴버렸으면 했어요. 하지만 형사는 그러지 않았아요.
그 다음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게는 정말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나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어요.
‘철컥’하고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문소리와 함께 목이 쉰 것 같은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천천히... 천천히 나와...’
정말 숨막힐 것 같았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요.
그때였어요.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 겁에 질릴대로 질린듯한 형사의 처절한 외침과
비명이 들려왔어요.
‘뭐야...넌...설마...아악!!!’
형사의 절규하는 비명이 들리며,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총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총소리가 멈췄어요.
형사의 정신나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제발...더 이상 다가오지마!! 제발! 아악!!!!!!’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처절한 비명이었어요.
그리고는 갑작스런 적막이었어요...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아요.
그 차의 불빛은 살기를 띤 것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춰대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저 불빛 너머로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두 형사는 정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머리 속은 여기서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몸이 도저히 움직여 지질 않았아요.


그때였어요.
죽음 같은 적막을 깨고, 자동차 불빛너머로 뭔가가 휙 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어요. 
움직이는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 차릴 수 있었어요. 
그 움직이는 무엇이 이번에는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산소 문을 열려고 하는데, 왠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어요. 
미친 듯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릴 생각을 않는 거예요.
문밖에서는 뭔가가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놓고 창밖을 내다 봤어요.
여전히 눈 부신 자동차 헤트라이트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아요.
다시 문을 열어볼 생각을 하고,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어요.
그런데 꼼짝도 않던 문고리가 저절로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것을 본 순간 저는 무서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누군가 밖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것같았아요.
생각할 새도 없이 돌아가는 손잡이를 잡았어요.
하지만, 문을 열려는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해서, 필사적으로 두손으로 잡았지만 
계속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무서워서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았어요. 
이 문이 열리면 나도 칼로 난도질 당해 죽을 것 같았어요.
문밖에 무엇이 문을 열려고 하는지 볼 수 없었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잡은 채 주위를 둘러 보았어요. 
머리속은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어요.
두손으로 잡고 있었지만, 어느 새 문 손잡이 는 거의 다 돌아갔아요.
곧 문이 열릴 것 같았어요.
저는 온 몸으로 느끼는 공포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어요.


문이 열리는 순간, 아무 생각이 안들었어요.
단지 이 무서움에서 빠져 나가야 겠다는 생각에 몸을 전면 유리창으로 날렸어요.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큰 충격을 느끼며 창밖으로 나동그라졌어요.
떨어질 때 충격으로 잠시동안 몸을 가눌 수 없었어요.
유리의 파편 때문인지, 얼굴에 끈적끈적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어요. 
억수같이 내리는 비와 섞인 피는 입속으로 흘러들어와 찝찌름한 맛이 느껴쪘어요.
손이 유리 파편에 베어지는 것도 못 느끼면서,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어요.
문을 열려고 하는 그 놈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밖으로 떨어질 때 충격으로 몸이 비틀거렸어요.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과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춰지는 헤트라이트 때문에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 불빛 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어요.
뒤에서 그 무언가가 나를 쫓아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아요.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어요.
내가 그 때 할 수 있었던 전부는 단지 비틀 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것 뿐이었어요.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어요. 빗소리인지 그것의 발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언제라도 제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어요.


자동차 불빛을 지나는 순간, 저는 뭔가에 걸려 호되게 넘어졌어요.
발버둥치며 일어나려는데, 발에 걸렸던 것 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자동차 불빛에 비춰 보이는 그것은 바로, 나와 같이 있던 형사의 끔찍한 시체였어요.
가슴팍은 칼로 수십번 난도질당한 모습이어서, 허연 뼈까지 보일 듯 했어요.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을 본 것처럼, 
눈은 공포에 질린 채로 떠 있었어요.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불빛 너머로 그것이 다가오는 것이 언뜻 보였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놈이 한 손에 들고 있는 칼은 확실히 
보였어요. 
칼 끝에는 빗물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 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요.
저는 앉은 채로 뒷걸음질 쳤어요.
그 놈은 점점 제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앞을 보며 필사적 으로 바둥거리며 뒤로 갔지만, 
그 검은 그림자는 점점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손에 뭔가가 건들어졌어요.
피묻은 권총이었어요. 그 형사가 놓친 것 같았아요.
본능적으로 그 권총을 쥐어서 다가오는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권총이라 그런지,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요.
내게 다가오는 그 놈은 권총을 못 봤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내게로 걸어왔어요.
눈을 감고 있는 힘껏 방아쇠를 당겼어요.
눈을 떠보니, 그 놈은 총에 안 맞았는지 거침없이 바로 제 앞으로 다가와있었어요.
겁이 난 저는 다시 한번 권총을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권총이 무거워서인지, 아니면 너무 겁이 나서인지 총을 든 두 손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어요.
그 놈이 바로 제 앞에 서서 칼을 든 손을 치켜들었어요.
나를 난도질하려는 것이었어요.
이번엔 눈을 똑바로 뜬 채로 그 놈의 안보이는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어요. 
강한 충격과 함께 권총이 발사된 것을 느꼈어요.
그 놈의 머리가 터지면서 끈적거리는 피가 제 얼굴에 튀겼어요. 
그 피는 마치 썩은 것 처럼 악취를 풍겼고 불쾌할 정도로 끈적거렸어요. 
이번엔 제대로 맞았는지, 그 놈의 고개가 뒤로 재껴지면서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그 놈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총을 정통으로 머리에 맞았는데도 쓰러지기는 커녕 주춤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서는 것
이었어요.


그 놈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 놈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이 생겼어요.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무서움이 극도로 다달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랬나 봐요.
생각할 새도 없이 그 놈의 머리통을 향해 다 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어요.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 놈의 머리가 다시 한번 뒤로 제껴지며 몸까지 뒤로 밀렸어요.
알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저는 그 놈의 향해 계속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 놈은 총에 
맞을 때마다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어요.
그 놈을 차 있는 데까지 몰아부치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총소리 대신 철커덕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였어요.
몇번을 당겨봤지만, 철커덕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어요.
차에 기대고 있던 그 놈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어요.
얼굴은 총에 맞아서인지,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어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거기서 풍겨 나오는 사악함은 그것을 보는 사람을 하여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정도였어요.
저는 그 놈을 향해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계속해서 당겼지만,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철커덕 소리만 날 뿐 나가지 않았어요.
그 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칼을 든 손 을 다시 한번 높게 쳐들었어요. 
이번에는 정말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포기한 채로 힘없이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 순간 총알이 발사되는 충격과 함께, 자동 차가 펑하고 폭발하고 그 폭발력에 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날랐다가 바닥에 사정없이 내 팽겨 쳐졌어요.
갑작스런 폭발에 영문도 알 수 없이 나가떨 어진 저는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을 잃기전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칼을 든 그 놈이 화염에 휩싸인 채로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의식을 잃으면서도,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가누고 그 놈에게서 도망치려고 했어요, 
하지만 몸이 제 뜻대로 움직여지질 않았어요.
그 놈이 내게 다가와 내 몸을 난도질 할 것 같았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만 날 뿐 사방이 뿌옇게 되고 의식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사방은 밝아있고 경찰들과 사람들이 부산거리며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어요.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아요.
눈을 뜨자, 경찰들이 달려와 쉴 틈도 안주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영문도 모르는 저는 어제 어떻게 된 것인가에 대해 물어봤어요.
경찰 말로는 아침에 새까맣게 타버린 자동차 한 대와 갈기갈기 찢겨나간 형사 두명의 
시체가 그 주변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형체도 알 수 없게 타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도 한 구 발견되었고, 
좀 떨어진 곳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저를 발견했다는 거예요.
저는 경찰의 질문에 그날 밤 제가 봤던 일들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었어요.
아무도 제 얘기를 믿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 타버린 시체의 신원을 밝혀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심하게 타버린 데다가 
총에 맞아 치아와 턱구조도 박살이 나서 알아볼 방법이란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얘기해도 제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도 없고, 결국에는 미친 여자로 취급해 나를 
이 병원에다 가둔 거예요.
기자 아저씨, 제발 저를 미친 여자로 보지 말고, 믿어 주 세요.
직접 그 톨게이트 가서 조사해 보시면 제 말 이 맞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대로 여기 있다간, 언젠가 그 놈이 나타난 나를 죽일 거예요.
제발 부탁이예요...
제 말을 믿어주고,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나는 아무런 죄도 없고, 미치지도 않았어요.
부탁이예요... 제발!!!!”


그 여자의 믿을 수 없는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황당한 얘기를 믿어야 하는지...
더구나 처절하게 자기의 얘기를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여자가 미쳤다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재원이는 잠시 멍해있는 나를 보고 이제 나가자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왔지만, 여자의 얘기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병실에 머무를 수 없는지 재원이의 재촉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광기어린 눈빛으로 그녀는 외쳤다.


“저를 여기서 꺼내 주세요! 나를 놨두고 그냥 가지 마세요!!
무서워요!!! 제발!!!”
문을 열고 나가는 재원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그 여자를 보고 동정심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너무 기대는 마시고... 얘기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병실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여자를 돌아보았다. 사지가 결박되어있는 채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니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정신 병동 복도를 말 없이 걸어나오는데, 재원이가 말을 건넸다.
“저 여자 말 어때? 진짠 거 같아?”
“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래? 그런 내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줄게... 날 따라와. 저 여자를 담당하고 있는 
선배 레지던트를 만나보자.”
재원이는 나를 데리고 정신과 레지던트 당직실로 갔다.


거기에는 아까 재원이와 나를 병동으로 들어 가게 해 주었던 레지던트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아주면서, 그 여자 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일한씨라고 했죠? 어때요? 그 여자 얘기 들어보니깐...”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얘기는 그래도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상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잘 구분 못하겠어요.
그 여자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살인을 하고 다니는 악령을 본 것인지...”  
그 레지던트는 내 얘기를 듣더니, 빙그레 웃으며 담담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 환자의 얘기만 듣고는 아무도 그 얘기의 진실성을 알 수가 없죠.
일한씨, 그런 얘기 들어봤어요? 진실의 양면성이라는 것이요...
진실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래요.
그 환자의 얘기도 그렇게 생각하면 될거예요.
지금까지 제가 그 환자를 치료하고 검진해 본 결과, 그 여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진실만을 말하고 있죠...”
그 여자가 진실만을 얘기했다는 레지던트의 말은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사실을 말했다면...
그 여자가 본 것이 전부 사실이라는 거예요?”

당황한 나의 질문에 그 레지던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글쎄요...
그 환자가 진실을 얘기했지만, 사실을 얘기 하지 않았다고 해두는 것이 맞죠.
그 환자는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그 환자가 이 병원에 이송되었을 때는 환자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살인 용의자로 왔어요.
사람을 난도질해 죽인 범인으로 병원에 왔어요...”
나는 처음에는 레지던트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친절한 설명은 나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다.


“일한씨도 그 환자로부터, 무덤에서 나왔다는 살인자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그 살인자의 악령이 톨게이트를 돌아다니며 살인했다는 얘기였죠?
그 환자는 입원 첫날부터 그 얘기를 되풀이 했어요.
하지만 그 환자를 이송한 경찰의 보고서는 다른 진실을 보여 주었어요.
그 보고서에 따르면, 그 환자가 얘기한 모든 살인 사건은 바로 그 환자에 의해 저질
러진 것이라는 것이였어요.
젊은 여자가 칼로 그 많은 사람을 난도질 해서 죽인 것이지요.
경찰은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정황증거로 그 환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집
중 했다더군요.
그 환자가 받았다는 표에 묻었던 혈액은 다름 아닌 그 환자의 피로 판명이 되었데요. 
그래서 그 날 그 지역 경찰이 아닌 담당 형사들 이 정산소에 온 것도 사실은 유력한 
용의자였 던 그 환자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데요.
그러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서도 그 여자의 지문이 채취
되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 여자는 자기가 한 일을 전혀 기억못하고, 무덤에서 나온 살
인자 가 모든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검진 결과 그 여자는 정신질환자로 밝혀졌어요.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진짜로 기억못하고, 전부 자기가 굳게 믿고 있는 그 악령이 살
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고 있고...


아, 물론 약간에 의문은 있대요...
현장에서 태워진 채로 발견된 차는 도난차량으로 발견되었대요.
그리고 타버린 시체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대요.
경찰은 그 시체가 차를 훔쳐달아나다 죽음을 당한 차량 절도범으로 결론 짓고, 신원
파악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이고요...
또 짧은 밤 시간에 그 환자가 그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도 약
간 신빙성 없고요.
하지만 경찰 주장에 의하면 시속 160킬로 정도로 달리면 살인하고 돌아올 수 있다더
군요.
아무리 차가 없는 시간이라도, 심야 빗속을 그런 속도로 달렸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요...
그래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여자였기 때문에 살인범으로 체포했지만, 진술이 너무 
황당해서 정신감증을 의뢰했고...
결국은 정신질환자로 판명되어서 이 병원에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 환자가 말한 진실의 다른 면 이지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혼란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여자가 사람을 몇 명이나 난도질해서 죽인 살인자라니...
갑자기 의문이 머리에 스쳤다.
“그 여자가 진짜 살인범이라면 살인의 동기는요?
아니면,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미치게 된 원인은 도대체 뭐지요?”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그런 의문을 갖게 되지요...
다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상식 때문이예요...
모두들 정신병 하면, 뭔가 큰 충격이라던가 아니면 성장기에 겪은 비정상적인 일이 
원인 이 되어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직 정신질환의 정확한 원인은 의 학계에서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개인적 경험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고요...
쉽게 말하면, 이유없이 미친다는 것도 성립 될 수 있는 거예요.
멀쩡하던 사람이 자다가 이유없이 급사하듯이, 정상인이 어느날 갑자기 미쳐버릴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미친 사람을 마귀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이 환자도 이유 없이 미쳐 버린 수많은 정신질환자 중에 하나로 보는 것이 맞겠지요
...” 

나는 레지던트의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말이 휠씬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귀신의 존재가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할말도 잊고, 찜찜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당직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그 침묵을 깨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아스라히 들렸다.
멀어서 그런 지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 비명소리를 들으니 이상할 정도로 소름이 끼
쳤다.
그와 동시에 당직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레지던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요? 또 시작했다고요? 지금 제가 가보죠.”
전화를 끊고 레지던트는 다급하게 일어서며 멍해있는 나와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그 여자 환자가 또 발작을 시작했다더군요.
매일 심한 발작을 해요. 정말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지금 가 봐야하는데...”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도 없어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당직실을 나서는데 레지 던트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했다.
“사실 나도 그 환자의 얘기를 듣고 나름대 로 알아봤어요.
그 동네 보건의로 제 동기가 하나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환자가 말한대로 그 동네 묘지에서 시체를 한 구 못 찾았대요.
그것도 그 환자 말대로 살인 전과자의...
그리고 좀 무서운 얘기가 하나 있어요.
국립과학 수사 연구원에 다니는 선배가 얘기해 준건대요.
그 신원을 알 수 없다는 타버린 시체 있잖아요?
그 시체가 부검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부검하기 위해 시체를 옮겨 놓았는데, 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살아서 걸어나간 것처럼요...
국과수에서는 난리가 났더래요. 중요 피해자의 시체가 사라졌으니...
결국 용역회사의 착오로 화장된 것 아닌가 추측하고 종결지었다고 하더군요...
참 이상하지요... 그 환자 말대로 정말 그 시체가 살인마의 귀신이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 얘기를 던지고 레지던트는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황급히 걸어갔다.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멍하니 선 채로 음산한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레지
던트 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끝>


이 게시물을

댓글'3'
비회원
  • 2012.03.14
이글은 저작권이 있을텐데....

이 댓글을

닥터샘플
  • 2012.03.17

꽤나 재밌군요..

이 댓글을

릴케
  • 2012.05.10

어느날 갑자기 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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