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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내 동거녀는 유령이었다.

[2ch] 내 동거녀는 유령이었다.





예전에, 대학에 막 입학했을 무렵에


이사 갔던 아파트에서


유령과 살았던 적이 있다.









아파트 근처에는 값이 싼 슈퍼가 있었다.


나는 항상 집에 오는 할인쿠폰 광고지를


잘 정리했다가 쓰곤 했다.









어느날


쿠폰을 한 장 한 장 오리다가


테이블 위에 둔 채로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계란 할인쿠폰 한 장이 뒤집혀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이 몇 번 더 일어나고 나서야


내가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땐 기분은 좀 나빴지만 유령은 믿지 않는지라


어느날은 뒤집혀있던 닭고기 할인쿠폰을 써서 요리를 했다.

아마 유령을 믿는 사람이었다면 무서워서 못했겠지.



그 날 만든 요리는 양이 너무 많았다.


남은 건 다음날 먹으려고 테이블에 뒀다.


랩 씌우는 건 잊었다.









다음날


남겼던 닭요리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혹시 침대 아래에 사람이 숨어 있나 해서 찾아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반신반의하며 노트에 「당신은 유령입니까?」라고 쓰고


그 아래에


「네」 「아니오」라고 쓴 메모지 두 장을 내려놨다.









다음날 아침,


「네」가 뒤집혀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매일 밤마다 유령에게 질문했다.


그 사람(유령?)은 여자였다.


내가 그 방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거기 살았다.


이름은 「미카」


옛날 일을 물었을 때는 종이가 뒤집히지 않았다.


「옛날 일 물어 보는 건 싫어요?」라고 질문했더니


「네」가 뒤집혀 있어서


미카의 개인적인 사정은 더 묻지 않았다.









덧붙여서 이름은 이렇게 물어봤다.


수십여장의 종이에 여자 이름을 적어 뒀고


다음날「미카」라고 쓴 종이만 뒤집혀 있었다.









그런 걸 계속 하면서


나는 미카와 친구가 되었고


미카는 어느날 부턴가


하룻밤이 지나지 않아도 눈앞에서 종이를 뒤집어 줬다.









저녁밥도 할인쿠폰을 잘라 둘이서 같이 결정했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도 편성표를 잘라 결정했고


의견이 맞지 않아도 종이를 뒤집어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해결했다.


함께 생활하는 동안


미카의 센스가 꽤 좋다는 걸 알았다.


「이게 좋으면 「네」저게 좋으면 「아니오」


둘 중에 어느 쪽이 좋아요?」


라고 물어 보면


내게 어울리는 외출복을 골라주곤 했다.


아마 유령한테 의상 체크를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밖에 없을 것이다.









미카는 내 오타쿠 취미도 도와줬다.


나는 동인지를 만들었다.


행사 당일 정신줄 놓고 제본 하는 중에


이상하게 한 장만 뒤집혀 있는 걸 봤다.


잘 보면 호치키스 심이 비틀어져있었다.


표지로 쓸 그림을 몇 장 그리면


그중에 제일 좋은 걸 골라 뒤집어 주기도 했다.


나한테는 사활이 걸린 일이다.


미카가 그런 개인 취향을 존중해주는 착한 여자라 다행이었다.


다만...


미카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야한 건 좀 그리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취직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미카는 그 방을 떠날 수 없었다.


둘만의 생활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이사 전날 밤에는 역 앞에서


특상(特上) 초밥 세트를 2인분 사와서 같이 먹었다.


(미카는 내가 잠든 다음에 먹었지만...)


이사 가던 날.


다음에 이사 올 사람이 미카를 알아 볼 수 있도록


옷장 구석에 「네」 「아니오」종이를 몰래 두고 왔다.









그 이후로 미카를 만나지 못했다.


영혼 체험도 그 이후로는 전혀 없었다.


지어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다 실화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한 적 없다.


그냥


혹시 미카네 방에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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