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aMnoA
장마철이 되면 가끔씩 기억난다.
지금부터 10년 전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내가 살던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다. 그래도 고도는 그다지 높지도 않았고 남쪽에 있는 산 하나만 넘으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도시 가운데로 흘러가는 강이 도시구역을 나누었고 나는 북쪽에 있는 주택가에서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 오거리라는 장소가 있었다.
보면은 단순한 사거리일 뿐이다. 그런데 왜 사거리가 아니라 오거리라고 하는가하면,
두 개의 도로가 교차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1미터 정도의 큰 맨홀이 있는데, 그것이 다섯 번째 코너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물론 오거리라는 이름은 정식 명칭이 아니다. 누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건지는 모르지만, 물론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비오는 날 저녁, 오거리 맨홀에 가까이 가지 마라.]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도시 전설이었다. 남자 귀신이 손짓하고, 다가온 사람을 맨홀 속으로 끌고 간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였지만, 그러면서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이야기였다.
나같은 분류의 인간중에 해파리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내가 오컬트에 흥미를 가지게된 계기도 그 사람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그는 소위 보이는 사람이였다. 어린 시절, 집 욕조에 해파리가 몇 마리가 둥둥 떠있는 것을 보고,
그날부터 그는 보통사람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이게 뭔 개소리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그 말을 점점 믿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능력을 두고 [그냥 단순한 질병일거야.] 라고 자주 말했다. 질병이라는 말에는 뭔가 설득력이 있었다.
덧붙여서, 나는 당시 어느 쪽인가 하면 과학에는 영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존재가 재미있었다.
[오거리 맨홀 유령의 정체를 파헤치러 갈래?]
유월 중순이 지난 어느 비오는 날이었다. 클럽활동이 끝나고 하교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해파리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 도착한 나와 해파리는 일단 앉아서 멍하니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해파리를 나를 쳐다보더니, 창문 너머의 비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약간 귀찮은 듯한 얼굴을 했다. 해파리는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뭐, 평소에도 혼자서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았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었다. 이런 점이 바다에 떠 다니는 해파리 같은 점이었다.
[괜찮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안 돌아갈거야!]
그는 창밖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긍정의 의미로 씁슬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만, 서로 알만한 것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일단 해파리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슬슬 준비를 하고 우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만나는 장소는 도시를 남북으로 나누는 강이 흐르는 곳에 있는 붉은 다리.
해파리는 도시 남쪽에 살았다. 오거리는 해파리가 사는 남쪽에 있었지만, 우리가 함께 행동할 때면 약속장소는 항상 그곳이었다.
내가 다리에 도착하니까 해파리는 이미 먼저 도착한 뒤였다. 온종일 비가 내려서 강물은 갈색으로 탁하게 변해 있었다.
[너, 오거리 유령 본적은 있어?]
[응, 본 적 있지.]
내가 묻자 해파리는 태연하게 답했다. 그가 본적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남자 귀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거리를 향해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어땠어?]
[사람이었어. 날 보고 손짓하더라.]
[나도 남자란 건 알고 있다고!]
[후.. 몰라~ 가까이에서 본 건 아니니까.]
그러면 내가 살아있는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냐고 말하니까, 해파리는 [그건 아니야.] 라며 고개를 저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본 적 있니?]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사고로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더라.]
해파리가 그렇게 말한 뒤에 가볍게 하품했다.
나는 온몸이 뒤룩뒤룩 불은 인간이 내게 손짓하는 모습을 상상하고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오거리는 남쪽 주택가 변두리에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거리에 있었는데,
주변은 온통 주택의 높디높은 담들로 막혀 있어서 마치 성벽에 고립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바로 앞 몇 미터쯤에 맨홀 뚜껑이 있었다.
시간은 네 시 반 무렵이었다.
있을까? 내가 봤는데, 맨홀 뚜껑에는 아무도 없었다.
[... 저녁은 언제일까?]
[지금이 저녁 아니야?]
[오늘은 비가 내려서 해가 보이질 않네.]
[그럼 어두워지면 저녁이겠지...]
땅은 빗물로 축축했기 때문에 앉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그대로 서서 오거리 맨홀 유령을 기다렸다.
해파리와 함께 있으면, 나도 가끔 기묘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기도 했고, 떠다니는 창백한 빛 줄기기도 했지만, 해파리에게는 그것들이 더 자세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 질병은 감염될 수 있어.]
해파리의 설명으로는, 나는 감염된 것 같다.
[치료받고 싶으면, 내 근처엔 얼씬거리지 마. 그러면 저절로 치료될 거야.]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본다. 등골이 오싹오싹하는 이러한 체험은 매우 무섭기도 하지만, 반면에 재미도 있었다.
해파리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빗줄기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구름도 두꺼워졌는지 근처는 조금 어두워지고 있었다.
[타타타탁..]
빗방울이 우리가 쓴 우산을 소리 내며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리 아래의 강물을 보고 있었다. 물이 넘치기 전에 빨리 돌아갔으면..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 차가운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그 차가움에 깜짝 놀란 내가 옆을 돌아보니, 해파리가 집게손가락으로 천천히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길 봐봐.]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쳐다 본다. 뭔가가 있었다. 초점이 어긋난 영상처럼 그 모습은 희미했고 또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그냥 사람이었다. 오른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소문대로였다.
[손짓하고 있구나....... 더 가까이 가볼까?]
해파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해파리를 쳐다봤다.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이제 통금 시간이니까. 강물이 넘치면 곤란하니까. 만약 소문대로라면 위험하다. 무서우니까.
거절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놈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마다,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모습이 조금씩이지만 선명해졌다.
역시 인간이었다. 뒤룩뒤룩 살찐 사람. 키가 크다. 솔직히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랐다. 손짓하고 있다.
그 손이 닿는 3~4걸음 앞에서 나는 멈췄다. 옆에서 해파리가 뭔가 중얼거렸지만,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멈출 틈도 없었다. 그는 놈의 눈앞까지 다가갔다.
빗소리가 멈춘 것 같았다. 대신 내 심장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왔다.
맨홀이 열리고 해파리가 그것을 흡입한다. 순간 그런 것을 상상했지만, 무게만 해도 족히 수십 킬로는 될 것이다.
철제 뚜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해파리가 그놈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웠다. 빗방울이 해파리의 몸을 축축이 젖인다.
하지만 해파리는 그런 건 아무래도 관계없다는 듯이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 뿐이었다. 물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그건 미안..]
갑자기 해파리가 말했다. 우산을 다시 쓰고
[돌아가자.]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걷기 시작했다.
[.... 야 기다려!]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그때 한번 살펴봤지만, 그 녀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비에 젖은 맨홀만 남아있었다.
우리는 조용히 걸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아직도 희미하게 들려 왔지만, 잠시 걷는 동안 수그려 들었다.
해파리는 다리까지 나를 따라왔다. 나를 배웅하려고 한 것이다. 빗줄기는 여전했다. 우리는 항상 여기에서 만나고, 항상 여기에서 작별한다.
나는 다리에서 멈춰 섰다. 해파리도 똑같이 멈춰 선 것을 보고, 내가 입을 열었다.
[.... 결국, 거짓말이었어.]
내 말에 해파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사전에 조사하고 갔었던 것이다.
그 맨홀에 떨어져 죽은 사람은 확실히 있었다. 그것은 10년 정도 전에 하수구 개수 공사를 하고 있었던 작업원이었다.
갑작스러운 비에 떠내려가서, 발견 된 것은 며칠이 지난 후, 몇 킬로 떨어진 바닷가였다. 그 이후 그 맨홀에 빠져 죽은 사람은 없었다.
즉, 소문의 내용인 [경우에 따라 하수구에 빠져서 물에 휩쓸려 간다.] 라는 소문은 엉터리다.
그래서 내가 다가가 본 것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녀석, 뭐 하고 있었어?]
나는 해파리에게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나도 잘 몰랐어.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입 모양을 보니까, 나보고 돌아가라고 말하더라.]
해파리는 그 녀석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던 것인지, 입 모양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 우산을 씌워준 것이다.
내가 웃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빗발이 조금 약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봐... 내일은 분명 맑을 거야..
[그럼, 내일 봐.]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해파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옷이 아직도 흠뻑 젖은 것을 깨닫고,
[야~ 해파리. 감기 걸리겠다. 샤워만 하지 말고 목욕해~]
해파리가 나를 쳐다봤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의 눈썹에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이 녹아 있었다.
[..... 그러지 뭐.]
마지못해서 말하는 목소리였다.
[목욕은 싫어하지만.... 안 그러면 놈들이 귀찮게 굴기 때문에..]
그런 말을 남기고 그는 걷기 시작했다.
나도 돌아가기로 했다.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으면서, 체육 시간에 봤었던 그 뾰루지투성이의 몸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역시, 이상한 놈이야. 그리고 나는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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