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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카이도 여행 2]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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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온 지 3개월. 나는 지금, 도내의 역 앞에 있는 광장 벤치에 앉아 있다. 여름 더위도 끝났다. 거리에는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는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고 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거리의 색도 변하듯, 3개월 동안 나의 인생도 크게 변했다. 그날, 나와 함께 홋카이도를 여행한 오토바이는 사라지고 없다.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부서졌다. 나는 그 사고로 왼쪽 다리와 왼팔, 왼쪽 쇄골과 늑골 등, 네 군데가 골절하는 중상을 입었다. 전치 5개월이라는 진단이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전치 5개월인 인간을 불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나를 해고시켰다. 회사에서 돌아온 건 해고 서류 한 장뿐. 그 때문에, 오토바이도 잃어버리고, 직장도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약간의 저금과 반병신이 되어버린 몸뚱어리뿐이었다. 다행히, 후유증 없이 회복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왼팔의 회복이 이상하게 늦다. 왼쪽 다리, 늑골, 쇄골은, 이제 거의 다 나았는데도 왼팔은 아직도 꺾인 채다. 의사도 이상해하고 있었다.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때 왜 사고가 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사는 사고의 충격으로 일시적인 기억 장애라고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나는 사회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였다. 상처가 아물어도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직장도 없다. 나는 살아갈 자신을 잃고 있었다. 나는 사회의 낙오자로 찍힌 채로, 이대로 쭉 살다가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계속해서 그런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역 앞에 있는 광장의 벤치에 앉아 있는 이유는 일주일 전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병원에 가기 위해서 이 역을 이용하고 있다. 나의 몸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길을 걸어가다가 인파 속의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그때, 나를 도와주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 간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도움 따윈 받고 싶지도 않았다. 시기심이나 원망하는 기분도 없었다. 단지 나 자신이 비참해서 어쩔 수 없었다. 약하다는 것은, 고독하고 비참한 감정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하루하루가 울고 싶은 나날이었다. 역 앞 광장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예전의 일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그런데 갑자기 젊은 남자가 나의 옆에 앉는 것이었다. 젊은 남자는 담배에 불을 켜고, 연기를 내뿜더니 [형님, 위험한 상태네요.] 라고 말을 걸었다. 나는 조용히 사람들의 모습만 쳐다보았다. [달리 이상한 게 아니라, 지금 형님의 상태를 보고 있으면 도와주고 싶다는 감정이 마구 샘솟아요.] [도와준다고? 도움 따위 필요 없어. 몸이 나으면 나 스스로 알아서 살아갈 수 있어.] 젊은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 몸은 낫지 않아요. 나았다고 한들, 또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거에요.] 나는 조용히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말을 되받아칠 기운도 없었다. [일주일 후에, 여기로 오세요.] 그리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사라졌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저런 놈에게 저딴 잡소리를 들을 정도로 좆병신이 된것인가?

 

 

그날 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누나가 때때로, 나를 돌보러 오는 것 이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고독하고 좁은 맨션 안에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잠에 빠져들다가 갑자기 잠에서 깼다.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것도 사람 한 명이 들어가고 나올만한 정도의 구멍이다. 갑자기 생겨난 그 구멍을 보고 나는 개쫄아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밧줄로 꽁꽁 묶기라도 한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한순간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구멍이 뚫린 부분을 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려고 발버둥치는데, 뭔가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곳은 천장에 난 구멍 속이었다. 나의 온몸에 경계신호가 울려 펴졌다. 나쁜 기운이 구멍 안에서 차 넘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것은 꿈이라고 스스로 타일렀다. 그리고 눈을 뜬 다음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날 홋카이도에서 우연히 만난 그 미치광이 년이 구멍 안에 있었다. 나의 심장은 터지지만 않을 정도로 강하게 뛰고 있었다.

 

 

그 미친년은 조용히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몸 움직임 하나 없는 나는, 그저 조용히 떨고 있어야만 했다. 그 미친년의 입이 조금씩 우물우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껌을 씹는 것처럼.. 그러더니 갑자기 그년의 입에서 피가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피가 나의 얼굴에 방울져 떨어졌다. 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피는, 사람의 피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시체의 피. 내 머릿속에서 떠올린 건 그것뿐이었다. 나는 절규했다. 아무나 괜찮으니까, 누가 날 좀 도와줄래? 아무나 좀 도와줘! 그 여자는 나의 얼굴을 가득 메울 만큼의 많은 양의 피를 쳐 뱉고 있었다. 나는 외쳤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도와달라고.. 정신 나간 것처럼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그 여자가 구멍에서 엎드리듯이 몸을 쭉 빼내더니, 그래 천장에서 내가 누워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나의 심장은 정지 직전이었다. 떨어진 여자는 천장에 목이 매달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년 특유의 차가운 무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가운 피가 여자의 흰 원피스를 빨갛게 물들여갔다. 그리고 여자의 목에서 밧줄이 풀렸다. 꼭두각시의 실이 끊어져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듯, 그년도 내가 누워있는 곳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나의 공포는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 여자가 천천히 기어서 나의 귓가로 다가왔다. [이제 너는 나의...]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의 몸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무서워서 눈물이 폭포수 같이 흘러나왔다. [용서해줘~ 살려줄래?] 나는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그년은 나의 바람을 무시하고, 입술 박치기를 하듯이 불쾌한 키스를 해왔다. 나는 울면서 계속해서 절규했다. 그러는 와중에, 그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많은 양의 오물을 입에서 토해냈다.

 

 

아침. 눈을 뜬 내 주위에는, 내가 토한 오물투성이가 나의 상큼한 아침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거울을 손에 들고, 얼굴을 바라봤다. 여자의 피는 묻어있지 않았다. 침대 주위에도 여자의 피는 없었다. 천장에도 구멍은 없었다. 단지 나의 구토물만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나는 짐을 싸서 맨션에서 도망쳐 나왔다. 낮에는 역의 구내에서 쉬고, 밤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보냈다. 누구라도 상관없기 때문에, 사람이 있는 곳에 있고 싶었다. 그런 생활이 일주일간 계속되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끝까지 아물지 않는 몸. 익숙해지지 않은 생활환경. 나 마음의 모든 것들이 붕괴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업무를 처리하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생활해오던 사회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숙자와 다름없다. 그 이유는, 저 미친년한테 홀려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나는 지금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정신이상자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제 안 될지도 모른다.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내 마음은 반쯤 죽음을 달려가고 있었다. 뭐든지 간에 절망적으로 생각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역 앞의 광장 벤치에 나와 있었다. 거리는 여름의 더위가 끝나고, 찹디 차운 겨울의 기운이 감도는 추풍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괴담돌이 http://blog.naver.com/outlook_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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