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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ch] 거미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8UYqk



나는 거미를 매우 싫어한다.

그 원인이 된 사건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 집은 효고현(兵庫県)의 S라는 곳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동네 안에 아파트가 세 채가 있었고 그중 한 곳의 8층 제일 안쪽 집이었다.

8층에는 나와 동갑인 사내아이가 나를 포함하여 3명이 있었다. 

우리는 다들 사이가 참 좋아서 항상 아파트 앞 공원이나 여러 장소를 놀러다녔었다.

아파트 뒤에는 커다란 산이 있어서였을까 이 동네에는 유난히 거미와 모기가 많았다.

 

 

우리 세 명 이외에도 이따금 함께 노는 T군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T군은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는 조금 내성적인 아이였다.

밖으로 놀러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매일같이 모험하고 놀러다니는 우리 세 명과는 거의 한 달에 서너 번 정도밖에 놀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혼자 T군네 집에 놀러 갔다.

우리 아파트의 1층 어두컴컴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흐렸기 때문에 복도가 저녁때처럼 깜깜했기 때문에 T군의 집으로 들어갈때까지 꽤 불안해했던 것을 기억한다.

T군의 집을 두드리자 T군과 그의 어머니가 맞이해주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T군은 구급차와 경찰차 장난감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어린이답게 스토리를 지어내고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한동안 놀다 문득 위를 쳐다보니 T군네 장식장 안에 못보던 장난감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레일이 입체적으로 교차한 참으로 재미있을 것 같은 생김새였다.

 

"T군, 저 장난감도 가지고 놀자."

"망가져서 못 가지고 놀아. O군(나)가 망가뜨렸잖아."

"거짓말!!저런 장난감 본적도 없는걸 뭐."

"저번에 놀러 왔을 때 O군이 망가뜨렸잖아."

 

T군은 장난치는 기색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때 T군의 어머니가 방에 들어와서 세탁이 끝난 옷들을 널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T군이 자꾸 제가 장난감 망가뜨렸다고 거짓말 해요."

 

나는 T군의 아주머니에게 일렀다.

 

"어머, O군. 저번에 놀러 왔을 때 망가뜨렸잖니."


당시 나는 5살이었다.

특이하게도 나는 3살 정도부터 철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5살때는 친구의 장난감을 부쉈는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물론 나에게 그런 기억은 없었다.

애시당초 그 장난감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니에요. 내가 안 했어요."

"O군이 저번에 나랑 놀다 부쉈어~"

"그래, 요전날 O군이 망가뜨려서 더 이상 못갖고 놀았잖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조리]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잠깐 필사적으로 T군네 집에 놀러 갔던 날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점점 그 집에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어졌던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충격이었기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께도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도쿄로 이사하게 되었고, T군의 장난감에 대한 수수께끼는 미해결로 남게 되었다.

 

 

 

 

 

 

 

 


이사 가고 얼마 후 나는 숙모에게 생일 선물로 [파블로 곤충기]를 받았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나는 곤충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이사 간 곳이 도쿄치고는 자연환경이 가까운 구(区)였기 때문에 집 근처에서 여러 종류의 곤충을 채집하고 놀 수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미만큼은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정이 안 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거미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흘러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도 나의 거미혐오는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어릴 적 자랐던 동네에 대한 추억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가 그리워져 감상에 잠겨있는데 어머니가 불쑥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지금도 거미 싫어하지만 어릴 땐 더했어. 오밤중에 갑자기 [거미싫어!!!!!!!]라고 발작을 일으키지 뭐니."


위에도 썼다시피, 나는 또래에 비해 어릴 적 기억이 매우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한밤중에 자다가 울부짖으며 일어난 기억따위는 전혀 없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내가 울부짖는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마치 눈앞에 정말로 거미가 있기라도 한 듯이 벌벌 떨었다고 했다.

하도 그런 일이 빈번히 발생해서 부모님은 나를 병원에 데려갈까 진지하게 고민하셨을 정도라고 한다.

 

 

 

 

 

 

 

 


점점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심각한 일이었다면 기억을 해야 맞지 않나?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그렇다.

T군의 장난감 사건이었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떠오를 듯 T군의 어두컴컴한 방이 머리 속에 펼쳐졌다.

하지만 가닥이 잡힐 것 같은 순간 아슬아슬하게 기억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고, 그 이상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 때 어머니가 웃으며 한마디 하셨다.


"우리 살던 아파트 뒤쪽이 산이었잖니? 그래서 엄청나게 큰 거미가 가끔 나왔었어. 다 큰 어른 손만한게 말이야. 그렇게 큰 거미를 어릴때부터 봤으니 싫어질 만도 하려나."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몇가지의 이미지가 동시에 뿌려졌다.


T군과 함께 그의 방 안을 뛰어놀던 장면.

T군의 레일 자동차 위에 내가 넘어지는 장면.

T군이 바닥에 앉아 울고있는 나를 비난하는 장면.

 


T군, O군이 어떻게 하면 용서해줄거니?

T군의 어머니가 손보다도 커다란 거미를 들고

 

 

내 입에!!!!!


그 감촉!!!!!!!!

 

 

 

 

 

 

 

 

 

 

정신이 들고보니 나는 끙끙거리며 머리를 감싸 안고 방 안을 뒹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깜짝 놀라신 표정이었다.

나는 달아나듯 내 방으로 가서 그대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씌우고 파도처럼 선명하게 일렁이는 이미지들을 지우려고 발버둥쳤다.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그 후 몇 주동안을 되살아나는 기억들 때문에 일상 생활이 불가능 할 정도로 시달렸다.

 

친구들과 평범하게 이야기하다가도 돌연 머리를 감싸 안고 끙끙대기 시작하는 일이 많았다.

내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고 의심하는 친구도 분명 있었겠지.

 

 

 

 

 

 

 

 

 

"거미를 먹으면 용서할게."

"알겠어 T군. 엄마가 그럼 거미 잡아올게."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분 후 T군의 어머니는 거대한 거미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복도에 거미줄 치던 거미를 잡을까도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녀석이 있길래 이녀석을 잡아왔어."

"엄마 그 거미 무지크다!!!"

"자 O군, 그럼 이걸 먹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T군의 어머니는 정말로 거미를 먹이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가학적인 기쁨이 가득했다.

그녀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미를 들고 내 입 주변에 한동안 문지르다가 창문 밖으로 거미를 던져버렸다.


"O군. 어머니한테 이르면 혼날줄 알아. 거미를 먹였으니까 T군도 O군을 용서해주는거지?"

 

 

 


이것이 바로 내가 거미를 싫어하게 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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