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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람이 열리는 나무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fDfcY



서울에서 찻길로 네 시간. 강원의 산골 마을을 찾아 취재를 떠났다.


"수령 천 년? 그런 향나무는 경기 인근에도 수두룩하지 않아요? 굳이 강원도까지 취재를 갈 필요가 있어요?"


아까부터 한참을 스마트 폰만 끼적이던 후배 지연이 조수석에서 투덜거렸다. 푸념을 늘어놓고 싶은 건 오히려 나다. 짐꾼으로도 써먹지 못할 새내기 여 후배 겨우 하나 끼워주고, 망할 놈의 향나무 사진이나 찍어오라니. 차라리 혼자 보낸다면 그쪽이 더 편할 것을. 편집장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까라면 까야지…. 다만 무슨 일이 있어도 당일치기로 경쟁하자. 아니면, 내가 속이 타서 말라 죽으리라.


"네? 선배. 뭐하러 우리 강원도까지 가야 해요?"


뭘 왜 가긴 왜 처가냐. 편집장이 가라면 가고 죽으라면 죽고 그렇게 회사생활 하는 거야. 말할 수가 없어서 불에 달군 쇠꼬챙이가 속살을 태워 놓는 것만 같았다. 지연이는 깍두기로 취재 길에 올라온 것을 지각하고나 있는 걸까? 분명히 편집장은 걸리적거리는 새내기에게 마땅한 일거리가 없으니 나 같이 적당한 호구가 떠맡아 주길 바랐던 것이다.


"아, 선배!"

"아, 왜!"


무심결에 인내심이 팽하고 끊어져 "아, 왜!" 역성을 들게 하였다. 일순 위축되던 지연이는 곧 아니꼽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말 없는 도로 위 두 사람은 목에 철갑으로 깁스라도 두른 양 정면만을 보았다.


"선배, 저 화장실 가야 해요."


뛰어내려 그러면. 속으로 받아쳐 놓고 웃음이 찔끔 나와 버렸다.


"선배, 저 화장실 가고 싶다고요."

"휴게소가 있어야 서지."

"선배, 저한테 화났어요?"

"뭘, 내가 무슨 뭘 화가 나. 기다려 조금만 가면 휴게소 나와."


퉁명스런 대답에 지연은 울상을 지어갔다. 두통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정말 하느님 도와주세요. 저는 여자 후배는 길러 본 경험이 없어요! 그럴 능력도 인성도 못 돼요! 하느님! 듣고 있어요? 계세요?'


휴게소부턴 후배의 폭풍 같은 성깔 맞추기로 진땀을 빼야 했다. 화장실에 들어간 지연은 한 시간이 넘도록 나오질 않았고, 결국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걸자. 지연은 "전화하지 마요." 하고는 툭 끊어버렸다. 그냥 이참에 확 그냥 울어버릴까? 그냥 휴게소에서 다 큰 남자가 엉엉 울어버릴까? 내가, 스스로 참 딱하게 여겨졌다. 이후로 전화를 전부 끊어버리는 지연이 때문에 결국 휴게소 여자화장실 앞에서 "미안해. 잘 못 했어." 골백번 말하고서야 지연을 불러낼 수가 있었다. 눈이 팅팅 부은 지연이 "선배, 저 싫어해요?!" 하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아까부터 여자 화장실 앞에서 "미안해. 잘 못 했어." 소리치던 수상쩍은 놈은 휴게소를 이용 중인 사람들에게 공공의 개새끼로 오해의 눈총을 받고 있었다. 여자 울리는 개새끼. 내가 지연이 손톱이라도 만져봤으면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성과 열의를 다해 어르고 달래가며 지연의 눈물을 멈추자, 지연은 "배고파요. 선배." 하고 폭풍경보 해제를 알려왔다. 휴게소 가락국수로 끼니를 하며 밖을 내다봤을 땐, 벌써 해가 중천을 지나 한풀이 꺾여 있었다. 시계는 3시 13분. 당일치기는 개나 줘야 할 판이었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타 마시며 배 떠난 당일치기 계획의 여운을 가슴에 묻었다.


"지연이 너 여복은 챙겨왔느냐?"

"옷이 왜요? 오늘 당일치기잖아요?"

"사진만 달랑 찍을 거면, 인터넷에서 그냥 대충 향나무 사진을 전문으로 하나 내려받아서 기재하지.


인근 주민 인터뷰도 따고, 김성규 씨가 주변에 흔적 남긴 것도 좀 없나 훑어보고."


"그거하고 오늘 돌아가면 되죠?"

"늦었지. 지금 가도 다섯 시 반은 넘기게 생겼어."


지연이 입을 삐죽 내밀며 "제 탓이라는 거에요. 지금? "눈을 흘겼다.


"선배, 진짜로 저한테 감정 있죠? 제가 왜 싫어요?"

"내가 널 왜 싫어하니. 좋아한다. 지연아 형이 너 정말 좋아한다. 아끼고. 사랑하고 그런다. 그러니까 인제 그만 좀 하자."


지연이의 눈이 달덩이처럼 휘둥그레지던 말던 발길을 옮겨야 했다. 목적지인 '청송마을' 입석 간판을 지나쳤을 때는 날만 밝았지 시간이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차가 진입할수록 사방이 거불진 능선밖에는 없었다. 하늘과 푸른 산 밖에 보이질 않는 풍경. 적막감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마을처럼 보였다.

이 조용한 마을에서 정치인 비서 김성규 씨가 목을 매달았다. 김성규 씨는 청송마을에서 나고 열네 살까지 지냈던 사람이다. 정치에 인생을 바쳤던 그의 생은 쓸쓸히 고향 땅에서 끝이 나며 고작 손가락 두 마디의 작은 기사문으로 조용히 마감되었다. 김성규 씨가 연루 되었던 비자금 추문이 세상의 이목에서 벗어나고 1년. 편집장이 이 자살사건에 다시 눈독을 들인 건 다름 아닌 광고지 삼류 소스 때문이었다. 기가 차는 노릇이었다.


"선배 우리 진짜 하루 묵고 가야 해요?"

"그렇지. 오늘 취재하러 돌아다니긴 글렀어."

"향나무 사진만 찍고, 나머진 그냥."

"그냥?"


지어내자고 할 심산은 아니겠지.


"아니에요. 선배."


원래는 한 마디 따끔한 충고를 줘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랬다가는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구억리 길이 되리란 공포감이 들었다. 향나무의 위치만 대충 파악해 두고, 묵을 방을 찾을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장시간 운전을 한 탓에 눈에서 모래알이 구르듯 뻑뻑하게 말라 버렸다. 허리도 나사가 하나 풀린 것처럼 삐걱거리긴 마찬가지였다. 마을 회관을 찾아 동네 어르신들을 물색했다. 해가 다 저물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한 분, 마을 회관 앞을 지나치기에 물었다.


"할아버님, 여기 수령 천 년 된 향나무가 어디에 있어요?"

"뭐! 그거 왜!"


피부가 구릿빛으로 솔찮이 그을린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우렁찼다. 우렁찬 소리에 비례한 만큼 까끌까끌한 허스키 톤이 사람을 대뜸 긴장시켰다. 마치 역성이라도 드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요. 사진 촬영을 좀 했으면 해서요."

"사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더 격앙됨에 따라 할아버지를 그저 보내 드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저희가 알아서 찾을게요."


사람 죽었던 나무 사진 찍으러 왔다는 게 좋게 보일 리 만무했다.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여관이고 민박 따위는 없는 마을이었다. 다시 마을 밖으로 나가서 번화가를 찾아야 하나, 왔던 길의 풍경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선배, 우리 잠은 어디서 자요?"


지연도 오랜 찻길에 지쳤는지, 목소리가 처량했다. 


"왜! 잘 곳이 없어?!"


아직 근처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지연이가 놀랐는지 어깨를 번쩍 들썩였다. 


"아니요. 나가서 찾아봐야죠."

"나가서 찾을 라면! 한참을 찾아야 할 건데!"

"괜찮아요."

"뭐!"

"괜찮…."

"크게 말해야 돼! 크게! 잘 안 들려!"

"괜찮아아요!"

"아! 잘 데 없으면 회관에서 하루 자고 가! 내가 이장한테 말해 줄 테니까는!"

"그러면! 감사하죠!"

"근데! 그놈의 향나무 사진은 왜 찍게!"


자초지종을 짤막하게 설명하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들어가! 내가 다 말해 놓으면 다 되니까는! 응!?" 하며 할아버지는 자리를 떠났다. 도대체가 화를 내는 건지 친절을 베푸는 건지 큰 목청에 헷갈리는 사람이었다. 내일은 아침부터 빠르게 돌아서 취재를 마쳐야지. 생각하면서도, 아까부터 투덜투덜 구시렁거리는 지연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제발 하루 안에 마쳤으면, 빌며 눈을 감았다.


“선배, 한방에서 잔다고 이상한 짓 할 생각 말아요?”


지연이 헛소리에 대답 없이 잠을 청했다. 꿀잠이 밀려오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물어물어 떠나려던 길에는 인적이 단 하나 없었다. 지연이가 잠들어 있는 사이, 걸음 길로 천년송을 찾아 나섰다. 논 뚝 길을 지나 20분쯤 향나무를 담 치고 있는 돌멩이 담장을 발견하곤 다시 마을 회관으로 돌아왔다. 한참을 두리번거렸으나 돌아오는 길에도 인적은 없었다. 김성규 씨 생전의 주변인 인터뷰를 하여야 하는 상황에 앞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일단 트렁크에서 카메라 기재를 끄집어 올렸다. 언제 잠에서 깨어났는지 모를 후배 공주님이 다가왔다. 


“선배, 사진 찍으러 먼저 갈 거에요?”

“그래야겠지? 사람이 너무 없다.”

“좀 돌아다녀 볼까 봐요?"

"아니야, 어차피 돌아다니려고 해도 저쪽 논길로 나가봐야 해. 나무도 그쪽에 있고.”

“가방 하나 주세요.”


가방 하나만? 근 10kg가량의 짐을 전적으로 혼자 부담한 채 다시 천 년 묵은 향나무로 향했다. 와중에도 지연은 흰색 단화에 흙물이 든다며 우는소리를 했다.


“그러면, 먼저 회관에 가서 기다릴래? 아니면 사람이라도 좀 찾아보면 좋고.”

“선배 왜 아까부터 나만 버리고 행동해요?”

“너 힘들까 봐 하는 소리야.”

“힘 하나도 안 드니까, 얼른 앞장이나 서세요.”


왜, 내가 지연이의 하수인이 된 듯한 기분일까. 5분도 지나지 않아 뻐근해지는 어깨가 한스러웠다. 젊은 날에는 30kg 군장을 매고 12시간도 걸었는데. 굼뜬 걸음에 지연이가 뒤에서 “선배 빨리 가요. 우리 이러다 하루 더 묵어야겠어요.” 하고 말했다. 후배에게 진심으로 서운했다. 나이 먹은 선배를 배려해주었으면 오죽 감사다울까.


“그전에 차 타고 가면 안 돼요?”

“그러게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논두렁을 달리는 운전 기능은 후배에게 맞기면 그만이지. 굽이굽이 좁을 길을 지나 향나무를 둘러싼 담장까지 50분은 걸린 듯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 따위는 아랑곳 안은 채 지연이는 담장을 훌쩍 넘어가 향나무의 풍채를 감상했다.


“그래도 천 년 송이라는 게 박력이 있기는 하네요?”


지연이는 향나무 몸통이 남정네들 근육이라도 되는 양 쪼물딱 걸렸다. 숨이나 돌릴 겸 촐랑거리는 지연이를 내버려 둔 채, 가슴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재미있게도,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산골 마을이라 공기 하나는 좋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담장에 등 돌려 담장에 엉덩이를 걸쳤을 때였다. 언제부터 자리에 있었는지 모를 할머니와 만난 것은. 할머니는 귀신을 보고 놀라 망부석이라도 된 듯. 눈알이 빠지라 크게 눈을 뜨고 있었다. 못 보던 사람을 봐서 놀라셨나, 눈 깜빡임 한 번 없는 할머니가 걱정마저 들 때였다. 


“총각. 저기 아가씨, 저기가 무슨 나무인 줄은 알고 저러고 있는 건가요?”

“천 년 묵은 향나무잖아요.”


할머니의 얼굴엔 암울한 그림자가 주름살에 붙어 자욱이 배겨가고 있었다. 


“저기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원래 미신을 쉽게 믿는 어르신들이리라. 생판 남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맙고,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지연아!”

“네! 선배.”

“나와 있어. 거기 함부로 들어가는데 아니래.”


지연이가 씩씩한 걸음으로 다시 담장을 넘었다. 그나마 지연이라도 기운이 돋는 듯 보여 다행이었다. 지연이는 얌전히 내 옆에 다가와 다소곳하게 앉았다. 새근새근 하고 숨소리를 내는 게 “향나무 가서 조금 까불고 왔습니다. 선배!” 하고 보고하는 것만 같았다. 내친김에 할머니에게 김성규 씨에 대해 인터뷰를 하여볼까, 가슴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할머니는 두리번두리번 땅의 잡풀들을 눈으로 골라내고 있었다. 


“할머니, 혹시 김성규 씨라고 기억하세요?”


할머니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셨다.


“저 나무는 옛날에 으르신 둘께서 부르기를 인과목. 인과목이라고 부르셨었어요.”

“예?”


인과목? 그런 나무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무에 관한 지식이 얕다고 해도 인과목이란 나무 이름에는 의구심이 들 듯싶었다. 어르신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곧게 뻗은 나뭇가지로 시선이 어른거리던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사람 과일이 열매를 맺는다고, 인과. 그래서 인과목이라고 부르셨었지요.”

“향나무에서 열매가 맺어진다고요?”


실웃음이 나왔다. 사람 열매? 향나무에 무슨 열매가 피어서 사람을 빗대 열매라 칭했을까. 

향나무의 열매를 들어 본 일이 없어서 기억을 더듬었다. 먹어봤다는 사람도 못 들어 봤다. 


“저 향나무에서는 열매가 맺어져요. 총각. 사람 열매.”

“열매 모양이 사람 같은 모양인가요? 할머님. 음. 인삼 같은 모양을 말씀하시나요?”

“아니, 아니. 사람이 목을 걸고 있는 날이 많아서 사람 열매라고들 그랬지.”


지연이가 소름이 끼쳤는지 내 소매를 덥석 잡아왔다.


“처녀 딱하게 됐소. 내가 미리 왔었으면 음 알려 주고 갔을 텐데.” 


할머니의 낮음 음성이 지연이를 더 겁먹게 하고 있었다. 지연이는 몸을 바싹 붙여오며 아주 팔짱을 끼어들었다.


“저 담장을 넘어간 사람치고, 저 나무에 목을 걸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어요.”


믿음이 가지 않는 지방 미신이었다. 나에게만큼은. 그에 반해 지연이는 어느새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지연이가 바들바들 팔뚝을 흔드는 통에 취재에 방해되었다. 할머니와의 대화는 원을 그렸다. 질문에 대한 답은커녕 저의를 벗어난 대답들은 동문서답에 서문동 답을 반복했다. 인터뷰다운 인터뷰는 끝끝내 이루어지질 못했다.


"할머니, 김성규 씨 어릴 적 모습은 알고 계세요?" 말을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뒤를 돌아섰다. 대꾸도 없는 할머니에게 치매가 든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할머니가 향나무 언덕의 완만한 길을 내려가자, 사방 풀잎들이 바스락거리며 요란스럽게 떨어댔다. 키 작은 풀들이 정신 사납게 흔들리자, 지연이는 팔뚝을 쥐고 있던 손에 꾹 힘을 주며 주먹을 쥐어 살을 꼬집어 왔다.


"야! 씨, 그런 걸 믿느냐? 강아지 새끼처럼 발발 떨래! 형 있으니까, 겁먹을 거 없어."

"선배, 그게 아니고요."


지연이가 대답함과 동시에 입에서 희뿌연 김 자락이 피었다. 한겨울에나 볼 수 있는 짙은 흰 연기는 꾸물꾸물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무리 아침나절이라 하나, 봄이었다. 심지어 근 한 시간을 걸었기에 몸에선 미지근한 열기가 돌아야 정상이었다. 지연이가 이를 악물고 한파 속에 파묻힌 사람처럼 헛바람을 연거푸 내뱉었다. 그때마다 현실감과 동떨어지는 연기가 한 덩이씩 토해지고 있었다.


"저 추워요. 선배."

"너 무슨 소리…."


내 얼굴을 바라보고 말한 지연이의 입김이 겨울밤 내내 밖에서 얼어붙었던 서슬과 같았다. 

지연이가 잠깐 뱉어낸 입김이 얼굴에 날아들자, 꽃샘추위 칼바람을 쐰 것처럼 왼뺨이 얼얼하게 굳어갔다. 지연이가 이를 달달 떨자, 이빨이 부딪히며 반복적인 탁음이 속도감 있게 들려왔다.


"야, 너 괜찮아?"

"선배. 저 추워요."


지연이의 초점이 명확하질 않았다. 풀려 있는 동공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연이의 흐리멍덩한 눈빛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야! 너 업혀!"

"아, 싫어요."

"왜 싫어 인마!? 업혀!"


날씨 탓이고 나발이고 병원부터 가봐야 했다. 도시생활만 했던 여자아이가 나와 섞여 풀숲을 쏘다녔으니, 이상한 균에 전염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까 향나무를 비비적대던 것도 괜히 머릿속을 스쳤다.


"싫어요."

"왜! 춥다며!"

"가슴 닿잖아…."


이 상황에 가슴 같은 소리를, 그럼 진짜 공주처럼 안고 가리? 지연이의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녀석을 들춰 업었다.


“아, 진짜. 선배 잠깐만, 잠깐만 내려줘요. 선배, 저 내려줘요.”

“헛소리할 생각 하지 마. 형도 인내심에 한계선 있어.”


떼를 쓰는 목소리가 귀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냉랭한 입바람이 뒷목을 스치며, 일순 허리에서 가슴까지 경련이 한 차례 타고 올라왔다. 더 심각한 것은 지연이와 맞닿은 등이었다. 얼음장을 들춰 맨 듯 등이 시려 따끔거리는 통증이 들었다. 지연일 업고 10분쯤, 달리듯 걷듯 발을 옮겼을까. 담장 길에 카메라와 녹음기를 떨궈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지연이가 아픈 와중이었지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혹여 다른 사람이 주워간다면, 몇백 만 원어치의 기재가 한 방에 날아가는 것이었다. 발길을 돌려 기재를 주워 와야 하나, 등 뒤를 돌아보니 향나무 담장이 멀게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이 동동 굴렀다. 등에 업혀 있는 지연이의 냉기가 등을 계속해 따갑게 만들어 이제는 등에 마비증세가 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제기랄, 훔쳐가기만 해봐, 어떤 새끼든 진짜.”


계속 걸어야 했다.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디 있어. 나를 달래며 젖 먹던 힘을 다했다. 지연이를 병원에 바래다주고, 쏜살같이 돌아와야만 한다. 속으로는 그 생각뿐이었다. 필사적인 수십 분여가 지나 마을 회관으로 접어드는 어귀, 심장이 토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리 여자라지만 등에 메고 뛰기엔 내 체력이 너무 저질스러웠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가슴에 격한 통증과 구토증세가 밀려왔다. 입과 입술이 바싹 말라, 한 모금 삼킬 침조차 부족했다. 땀이 비 오듯 내려야 정상이었으나, 등에서 찬 기운을 펄펄 풍기는 지연이 덕에 땀도 별반 나오질 않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회관 앞으로 도착했을 땐, 눈앞이 하얗게 번져버렸다. 분명히 회관 앞에 주차 되어 있어야 할 내 승용차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지연이 다리를 꼬아 쥐고 있는 오른손을 뻗어 주머니를 확인하니 뾰족하고 딱딱한 감촉이 허벅지에 느껴졌다. 분명히 자동차 키는 나에게 있었다. 견인? 아니다. 그럴 리 없었다. 마을 회관 앞길이라고 견인을 해갔다고? 이 산동네에서? 여러 생각이 겹쳐 떠오르자, 머릿속은 십 중 추돌 사고가 일어난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움직여야 하는가. 지연이는 송장처럼 차갑게 굳어만 가고 있었다. 수 백만 원 어치 기재는 저 멀리 땅바닥에 때굴때굴 구르고, 이 망할 놈의 승용차는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설상가상으로 지연이를 받치고 있는 팔 근육이 한계를 맞이했다며 서서히 힘을 풀어가고 있었다. 입술을 적시려 내밀은 혀에는 고린내 풍기는 마른 침만 남아 끈적거렸다. 생각해야 했다. 생각을.


급한 대로 마을 회관으로 들어가 지연이를 눕혔다. 이 부 더미를 집히는 대로 지연이에게 둘둘 감싸곤, 복잡해 가려던 머리를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상황이 매우 급하자 멍청한 나는 생각을 정리해야 해, 생각을 정리해야 해! 하는 등신 같은 생각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119.”


구급대를 부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체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지연이 붙어 돌봐야 한다.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 것은 지연이다. 지연이다. 정신없는 머릿속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방에 누운 지연이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몸이 떨리는지 이불 밖으로 빼꼼히 나온 손이 가엽게 떨리고 있었다.


“전화기.”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구조가 익숙지 않은 마을 회관에서 전화기를 찾으려면 시간이 소비될 듯싶었다. 멍청하게도 바지 주머니 속에 휴대전화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황금 같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전화기가 어디에 있는 거야, 이 제기랄 진짜 욕 나오네. 아!”


악하고 소리 지른 덕분에 돌대가리 속으로 전력이 조금 흘러간 것일까, 주머니를 뒤적여 황급하게 119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통화음은 울릴 생각이 없고, 웬 아주머니의 안내 논평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지역은 현재 발신이 불가능한 지역이오니, 확인하시고 다시 통화하여 주십시오.”


뭐? 무슨 헛소리야, 어젯밤에 늦게까지 휴대전화기로 인터넷까지 했구먼! LTE도 잘만 터져 왔구먼! 머릿속이 A4용지 한 장 분량의 새하얀 공백으로 변해버렸다. 다음은? 내 차부터 찾아야 하나? 도로로 달려나가서 지나가는 차를 잡아볼까? 그게 아니었다. 지연이를 다시 등에 업고는 아무 이불이나 하나 집어 들었다. 이불을 지연이의 어깨까지 씌운 채 위 모서리와 아래 모서리를 각각 잡아당겨 매듭을 지었다. 이 이상 체온을 떨궈선 안 될 듯싶었다. 나가서 차를 기다리다 사람을 끌어 오는 것도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최대한 지연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한 채 마을 밖을 향해 걸어야 했다. 걷는 동안 지나가는 차를 얻어서 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수밖엔 없었다. 내 차를 찾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였다만, 만일 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시간만 늘어진다면, 지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의학에 무지한 나에게는 모든 것이 불상사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선배 나 업지 마라니까….”

“너 진짜 혼날래? 형이 지금!”

“나 무가운데….”

“무가! 무, 무거, 후~.”


머리가 폭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아직 지연이의 의식이 온전하다는 것이었다. 


“야, 조금만 참아? 어? 대답해. 지연이? 어?”

“가슴, 닿아….”


산기슭에서 엽총으로 때려잡은 잡은 멧돼지 마냥 어깨에 들춰 내버릴라. 


“가슴 타령 좀 그만해!”

“….”

“야.”

“….”

“아, 아!! 진짜!!!”


지연이의 팔이 내 몸을 감아 오질 않았다. 고개는 푹 수그러들어 내 왼뺨에 찰싹하고 달라붙었다. 정신이 온전하다면, 절대로 이렇게 행동할 리가 없었다. 뛰어야 했다. 미친 듯이 뛰지 않으면, 정말 후배 하나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절망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검은 해일의 그림자에 묻혀 있는 불안함과 최악으로만 치달아 가는 예감이 시야를 어둠 속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한참을 뛰어 도로에 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양말 바람이었다. 날이 서 있는 작은 돌멩이에 발바닥을 찍히고서야,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주변이 보이고 있었다. 거불진 뱀 꼬리 같은 능선들, 온통 산만 있는 풍경을 벗어나려면 진심으로 죽을 마음으로 달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차가 지나가리란 한 말을 희망 따위는 접어두기로 한 채 계속해서 땅을 찼다.


“지연아! 야! 최 지연! 정신 좀! 하….”


청송마을 입석 간판부터 마을까지도 상당히 밟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달려서 가더라도, 병원이 있는 곳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 가늠이 안 됐다. 내장을 전부 입 밖으로 뱉어버리고 싶은 고통을 눌러가며 달렸다. 하늘에는 점차 노을이 지어갔다. 노을이 지고서 부탄 무섭게 날이 어두워져만 갔다. 그리고 초승달이 뜨면서부터 내 불길한 예감이 불연 듯 머리를 스쳤다.


‘나는 지금 바른길로 달리고 있는 건가? 반대 길로 달렸던 것은 아니겠지. 아니지?’


아니라고 누가 대답을 좀. 누가. 제발.


‘입석 간판이 나올 시간쯤은 지난 거 아닌가?’


뒤를 돌아보자, 남 푸른 밤하늘과 시커먼 산의 경계, 어렴풋이 달빛에 반짝이는 아스팔트, 좌우로 끝도 없이 이어진 논밭만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흔한 바람 한 점조차 불지 않자, 마치 세상은 멈춰 있는 듯 보였다. 어찌, 풀숲이 이렇게 펼쳐졌는데, 벌레 새끼 한 마리 없는가.

봄기운 냄새 맞은 개구리며, 뱀들은 밤잠을 청하고 있나? 


‘어떻게 이렇게 조용하지.’


앞으로도 뒤로도 똑같기만 한 풍경은 내가 마을 초입에서 좌측을 돌아서 나왔었는지, 우측을 돌아서 나왔었는지조차 모호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대로 앞으로 가면, 마을을 지나 입석 간판의 반대방향이라 손 치더라도, 어딘가가 나올 것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다. 어떤 마을이건 번화가건 연결이 돼 있을 법도 하다. 시대가 어느 때인가. 90년대만 같았어도, 미래 예상도 그리기 대회에서 하늘 나는 자동차를 그리기 바쁘던 2013년도다. 어딘가로는 이어졌을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차분함을 되찾고 싶었다. 어딘가로 이어진 것이 더 깊은 산 속이나, 강변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차분해질 수도 있을 듯했다. 왜,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자동차는 정말로 몇 시간 동안 단 한 대가 지나가질 않는 것일까. 매달려오지 않는 지연이 때문에 한참을 구부정하게 걸었다. 허리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아픈 것이, 혹여 이미 끊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선배, 저 내려줘요.”

“뭐?”

“선배, 저 내려줘요.”

“너 정신이 들어?”

“잠깐만 내려줘요. 선배, 저 내려줘요.”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리면서부터 주변의 들풀이며 산자락이 부산스레 나풀거렸다. 풀잎이 서걱거리는 소리에 대비하여 큰 바람이 날아들까,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먼 곳에서 분 바람이었는지 차가운 밤바람에 얻어맞지는 않았다.


“선배, 저 내려줘요.”


지연이의 정신이 돌아왔다고 하나, 멈춰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직 지연이의 몸은 식을 대로 식어 있었고, 방향까지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체될지 모르는 마당이었다. 휴식을 취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치명적, 지연이, 잃어버린 길, 시간. 잡스러운 단어들이 머리를 맴돌면서도 나는 흙바닥에 지연이 엉덩이를 살살 내려놓았다. 핑계를 찾은 듯, 마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라도 “네가 내려달라고만 하지 않았으면.” 하고, 대꾸할 핑계를 손에 쥔 듯, 지연이를 땅으로 내려놓았다.


“너 언제부터 정신이 들었어?”


차가운 몸의 지연이와 매듭을 지어 놓은 이불을 풀었다. 마침 또 바람이 한 번 일어난 듯 사방의 풀잎들이 나부껴 춤을 추었다. 지연이와 몸을 때자, 밤기운이 등으로 달라붙었다. 분명히 쌀쌀할 것이라 예상하던 봄밤 기온이었으나, 지연이의 몸이 떨어져 나가자, 난롯불을 쬐는 듯 금방 따뜻하게 등이 달궈져 갔다. 


“지연아.”

“….”

“지연아?”

“선배, 저 내려줘요.”

“뭐?”


뒤를 돌아보자, 퍼런 이불이 형체를 잃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이불을 감싸고 있어야 할 지연이를 찾아 고개를 바쁘게 돌렸지만, 지연이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질 않았다.


“선배, 저 내려줘요.”


마치 귓가에 대고 직접 속삭이는 듯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 한 차례 풀잎이 요동을 치더니, 밤 그림자에 숨어 있던 들 고양이 한 마리가 풀숲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선배, 저 내려줘요.”


온통 검을 털의 들 고양이는 어둠에 몸을 섞으며 유유히 내게로 다가왔다. 고양이의 눈빛이 아스팔트 길을 초록빛으로 도배할 만치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선배, 저 내려줘요. 끅! 컥! 선배, 저 내려줘요. 컥!”


고양이는 목을 길게 빼며, 목이 막혀버린 듯 토악질을 시작했다. 고양이가 목을 뺄 때마다 헛바람이 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헛바람이 통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지연이는 “선배, 저 내려줘요.” 하고 나를 불렀다. 그 소리가 너무 명확해, 귀에 입을 대고 말하는 듯 마치 지연이의 입바람까지 귓불에 와서 닿는 것처럼 생생했다.


“선배, 저 내려줘요.”


고양이는 고통스럽게 입을 벌리며 고개를 땅으로 하늘로 젖히고 박기를 반복했다. 이내 고양이 입에서는 차가운 은빛 딸의 네모 반듯한 쇳덩이 같은 것이 반짝이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선배, 저 내려줘요.”


언제 저것을 삼켰을까. 아니 어떻게 삼켰을까. 고양이는 자기 머리통보다도 곱절은 긴 녹음기를 힘겹게 땅으로 내려놓고 있었다.


“아, 진짜. 선배 잠깐만, 잠깐만 내려줘요. 선배, 저 내려줘요.”

“헛소리할 생각 하지 마. 형도 인내심에 한계선 있어.”


녹음기에선 낮 동안 향나무 앞에서 있었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고양이는 목젖을 괴롭히던 녹음기를 게워내 속이 시원해졌는지, 새침하게 돌아서선 풀숲 사이로 냉큼 뛰어들었다.


“선배, 저 내려줘요.”


녹음기에선 지연이의 목소리가 계속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지연아.”

“선배, 저 내려줘요.”

“지연아!”

“선배, 저 내려줘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 검은색 거대한 운영이 내 앞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림자에 놀라 몸을 움츠러들었지만, 금방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다.


“선배, 저 내려줘요.”


눈앞에 지연이가 보였다. 지연이는 초승달에 매달린 듯 밤하늘 허공에 걸린 채 팔을 죽 늘어트리고 있었다. 늘어진 팔이 마치 날개라도 되는 양, 지연이의 몸이 상하로 올랐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힘없는 날갯짓을 했다. 또 한 번, “선배, 저 내려줘요.” 소리가 귓가에 울렸을 때는 시야에 지연이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질 않았다. 도로를 따라 지연이가 부양하는 방향을 쫓아 박차를 가하는 동안 할머니의 불길한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저 향나무에서는 열매가 맺어져요. 총각. 사람 열매.”


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뛰고 또 뛰어도, 지연이를 잡을 수 없을 듯했다. 하늘을 유영하듯 지연이의 몸은 유유히 떠내려갔다. 그 몸은 점차 도로와 거리를 벌리는 방향으로 뻗어 있는지, 지연이는 곧장 산 너머로 몸을 띄웠고, 도로는 지연이의 진로와 평행하지 않고 점차 거리가 벌어지는 사선을 그렸다. 


‘이렇게 멍청하게 바른길로만 달려갈 수는 없다.’


오른편의 풀숲으로 냅다 발을 찼다. 고만고만하게 자란 풀의 키가 눈을 현혹했을까. 생각한 것보다 몸이 깊이 꺼져 내려가, 착지하는 발목이 휘청였다. 가슴에서 어깨까지 솟아있는 풀 속을 헤엄치듯 지연이를 향해 달렸다. 이게 모두 편집장의 탓이었다. 그깟 삼류 광고지 정보로 사람을 이런 흉흉한 동네에 보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소스도 명확하지 않은 정보였잖아. 오지 말았어야 해. 다른 일도 할 것이 산더미 같았다고.’


“김성규 전 비서실장 자살사건 기억해?”


편집장의 물음에 그게 뭐 어쨌냐고 물어볼 것을. 왜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하고 대답했을까.


“그 당시에 김성규 씨, 자살 현장에선 아무도 취재사진 따오지 않은 것도 알고 있느냐?”

“사인이 뭐였죠?”

“자기 고향에서 목을 맸는데, 그게 동네 한복판에 있는 향나무래.”

“그런 자살이었어요?”

“가볼래?”

“예?”

“김성규 씨가 목을 맨 장소에서 조약돌이 얹어 있는 유서가 나왔기 때문에 명백한 자살이라고, 수사 종결됐던 건 알아?”

“그런 건 신문에서도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그래. 근데, 그 유서가 아주 말릴 수 없어.”


유서 따위가 뭐가 어쨌냐. 그런 취재는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 바보처럼 편집장 비위나 살살 맞추며, 신기하네요. 재미있는 취재네요. 편집장이 나를 보냈다는 말도 내 핑계인가. 이번 여름에 대비해서 살짝 흥 돋는 납량특집 취재로 할까 봐요. 분위기 잡아가며, 생각해보면 이 미친 산골동네에 가겠다고 자처한 꼴이잖은가. 죄 없는 지연이까지.


“저, 선배랑 단둘이서만 가는 거에요?”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이다. 모두 내 탓이다.


“유서 문을 좀 읽어 봤는데 말이야. 이게 정말 기삿감이야. 김성규 씨가 제정신이 아니라고밖에는 말 못하지 이런 상황이면. 들어봐 여기부터 읽어줄게.”


「청송마을 천영수 향나무에는 사람이 열린다는 소문이 있다. 천 년 동안 숱한 전쟁의 역사 속, 사람들 주검의 산이 그 향나무 앞에 쌓여왔다. 가슴앓이 하던 아낙, 과부들 자살도 줄줄이 이 나무에서 이루어졌다. 하루에 서너 구의 시체를 매달고 있었던 날도 있더라는 구전. 이전까지는 믿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 실을 내 몸소 체험한다. 이 나무는 사람이 이끈다. 나는 자살을 선택하려 고향 땅에 찾아든 것이 아니다만, 이 나무는 나의 목을 자신의 팔에 매달고 싶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증거로, 나는 이 향나무 주변만을 맴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나무에 결박당했다. 이 나무는 자신의 표적을 놓이지 않을 셈인 듯, 나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엮어 가축처럼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죽으나, 그것을 자살이되 자살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나무에 살해당한다. 이 나무가 내 목숨을 원하기에 나는 이곳에 목을 건다. 어차피 나는 나무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네요. 편집장님. 가볼게요. 한 번.”

“갈 때, 지연이도 좀 같이 가.”

“혼자서도 괜찮은데요?”

“가서 일도 좀 가르쳐 주고 그래라. 예쁜 여 후배 좀 챙겨준다 생각하고.”

“그래요. 그럼. 좋죠. 뭐!”


좋죠. 뭐? 등신 새끼. 좋죠! 뭐가 아니잖아. 눈을 지연이에게만 고정한 채 정신없이 앞길을 헤쳤다. 푹푹 꺼지는 풀 길의 물웅덩이로 종아리까지 젖어버렸다. 


“선배, 저 내려줘요.”


또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녹음기는 도로 위에 버려둔 채 왔기 때문에 들리지 말아야 정상이었다.


“선배, 저 내려줘요.”

“어떻게 들리는 거냐고!”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를 쫓아 등을 돌아봤을 때, 김성규 씨 유서 글이 떠올랐다.


‘나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엮어 가축처럼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


그 헛소리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 사방천지의 풀이며 능선은 사라지고, 눈앞에는 돌멩이가 차곡차곡 쌓인 돌담과 덩치가 커다란 향나무가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향나무에는 지연이의 몸이 목을 매단 사람처럼 걸려 있었다. 달빛에 비추어 보이는 지연이의 목에는 밧줄 따위는 없었으나, 그 모습이 대롱거리는 게 나뭇가지에 목을 걸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허공에 떠있을 뿐인 그 모습에 넋을 잃어야 했다.


“선배, 저 내려줘요.”


나무로 달려가, 지연이의 발을 잡아당기자, 지연이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퍽 무거운 지연이의 몸을 받아내다가 나까지 바닥을 나뒹굴고 나서야 주변이 좀 더 보여 오기 시작했다. 돌담길을 따라 둥그렇게 패인 자국. 달그림자 운영이 옴폭 팬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돌담을 따라서 수백도 넘어 보이는 자국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발자국?’


나는 계속해서 이 담 안에만 있었던 것인가. 지연이를 살포시 땅에 내려놓고, 돌담길 발자국에 발을 올려보니, 내 발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겹겹이 덮씌워진 발자국을 따라 계속해서 발을 옮겨보았다. 걸음의 보폭이 아닌, 뜀박질의 보폭.


‘지연이는 계속 업은 채였나?’


아무리 환상에 빠져, 이 흙바닥을 뛰어다녔다는 추론을 내세워도, 발자국이 깊게 파여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좀 전까지 아스팔트를 밟았던 냉랭하고 딱딱한 감촉은 무엇이더란 말인가?


“지연아, 괜찮니?”


도로 위를 달렸던 것이 현실이든, 지금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었든. 우선순위에는 변함이 없었다. 겉옷을 벗어 지연이의 몸에 걸치곤, 일으켜 앉혀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겉옷 주머니에 넣어주려 손을 잡으니,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 다행이었다. 좀 전과 같이 비현실적인 냉기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연아, 대답할 수 있어?”


정신이 있다면, 성질을 부리겠지. 선배, 어디를 껴안아요. 어서 풀지 못해요? 하고. 지연이는 성을 내는 대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무의식중의 대답일까? 아니, 잠꼬대라면, 잠꼬대라면 좋겠다. 깨기 전까지 마을로 돌아갔으면, 마을 회관 앞에 주차 되어 있는 내 차에 오를 수 있다면. 떠올리는 생각들이 희망사항처럼 느껴졌다. 이것마저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 나무에 목을 맨 듯 지연이가 두둥실 떠있던 모습을 보았다.


‘그걸 현실이라고 말 할 수 있나?’


방금 전 직접 지연이를 끌어 내렸었다. 무섭게 떨어져 내리던 지연이를 받아 낸 그 무게감이 확실하게 손에 남아있었다. 반면, 얼음장 같았던 지연이의 차가움도 아직 등짝에 남아있었다. 양말바람인 사람에게 십 원어치 동정도 없던 아스팔트. 그 위를 달렸던 감촉도, 날이 서있던 돌멩이를 밟아 생긴 발바닥의 상처도 그대로였다. 만신창이로 체력이 방전 된 몸 상태만이, 어느 쪽에서도 설명이 가능한 유일의 사실이었다. 정말 가축처럼 가지고 놀다가, 지쳐 스스로 목을 맬 때까지 기다릴 공산일지도 몰랐다. 목을 매야 한다면, 그게 내가 이 환각 같은 현실을 오가는 이유라면, 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면이라도 걸린 듯 두 개의 현실 속, 갈피 한 자락 못 잡는 상황이 기에 마음 어딘가에서 향나무에게 패배를 인정 해버렸을 지도 몰랐다. 다만, 지연이 만큼은 아니었다. 목을 맬 땐 매더라도, 후배 하나 못 챙기고 가는 팔푼이 선배가 될 순 없다. “야, 춥냐?” 물으니 지연이가 또 웅얼대었다.


“아까부터 뭐라고 대답하니?”


지연이는 내가 묻는 말에 한 번을 안지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왔다. 하지만 매번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방언 그 자체의 웅얼거림이었다. 지연이를 업어 담장을 넘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논길에서 굴러떨어지지 나 않았으면 좋으련만.


“…워!”

“응?”


내가 말을 붙인 것도 아니었는데, 지연이의 알 수 없는 방언이 또 터져 나왔다. 


“으으으.”


완만한 언덕길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지연이의 방언이 점차 소리를 더해갔다. 아까 전과 같이 바람은 한 점 없는데, 주변의 키 작은 나무와 풀잎들이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며 사라락 요란을 피웠다.


“야!”

“아! 씨, 깜짝 아.”


지연이가 버럭 고함을 치는 바람에 등골이 한 번 오싹해왔다. 이것도 혹 환각일까? 지연이의 몸이 휘청하고 내 무게중심을 흔들어 댔다. 마치 나를 넘어트릴 심보인 듯, 좌로 우로 반동을 주며 상체를 심하게 움직였다. 몸을 흔드는 기이한 힘에 휘청이며 생각했다. 이건, 지연이인가? 나는 또 나무에 속아 담장 안에 지연이를 두고 온 것은 아닐까? 지연이를 향해 등 뒤를 돌아보자, 지연이가 내 등을 향해 푹 꺼져왔다. 지연이의 이마가 내 뒤통수를 들이받으며 소소한 충격이 일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주목해야만 했다.


“봐라! 이것이 네가 감히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존재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내게 소리치는 건가? 향나무에는 목에 줄을 달고 있는 사람으로 나뭇가지가 빼곡히 들어 차있었다. 사람이 얼기설기 붙어 목을 매고 있는 풍경이 향나무를 버드나무와 같이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단 한 사람도 도망쳐 본 일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야?”


내가 묻자, 향나무 대신에 지연이가 또 옹알이했다. 내 귀에 바싹 붙어 속삭이는 목소리. 분명히 아까부터 비슷한 소리만을 내는 듯, 지연이의 방언은 집요하기만 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

“선, 배 이르그으.”

“뭐?”

“선, 배 일이르그르 으으으.”


지연이의 말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었다. 우연일까, 지연이가 입을 한 번씩 열 때마다, 밤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연아, 다시 말해봐.”

“선배.”

“어.”

“선배.”

“그래.”

“선배, 일어나요.”

“어?”

“선배, 일어나요.”


지연이가 다시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나는 지연이의 몸짓에 겨우 중심을 잡으며 지연이에게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뭘 일어나!”

“선배! 일어나요! 일어나요! 제발 좀!”

“왜, 내가 일어나!”

“선배! 일어나 봐요! 나 좋아한다며! 대답 안 들을 거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좀 일어나 봐! 좀! 선배!”


지연이의 흔들거림에 결국 몸이 경사 길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지연이에게 저항하려 쏠린 무게 중심이 앞을 향하며, 이마부터 땅에 머리를 빻으려던 아찔한 순간, 나는 뜨고 있었던 눈이 다시 뜨임을 느꼈다. 마침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선배? 선배 일어났어요?”

“뭐?”

“선배, 걱정했잖아요!”


세상은 한나절이었다. 해는 중천에서 한없이 빛을 쏟아내고 있었고, 비처럼 내리는 봄날 뜨뜻한 기운에 새싹들이 고개를 번쩍 치켜세우고 있었다. 지연이는 내 머리맡에 자기 허벅지를 내어준 채였다. 내 어깨를 감싼 손에서 미미한 떨림이 전해졌다.


“우리 여기 언제 왔지? 지연아. 언제 왔지?”

“뭘 언제 와요. 아까 아침 댓바람에 선배 따라온 거잖아요.”

“나 언제부터 누워 있었어?”

“몰라! 내가 향나무 좀 구경하고 있다가 보니까, 쓰러져서!”


지연이가 나를 냅다 밀쳐내는 바람에 머리를 땅에 빻고 말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적인 감각. 


“우리, 무슨 할머니 만났었나?”

“무슨 할머니요?”

“아니야.”

“무슨 소리 해 진짜! 사람 불안하게!”

“우리 여기 얼마나 있었어?”

“두세 시간? 진짜. 휴대전화는 회관에 두고 오고. 선배는 졸도하고! 내가 진짜!”

“가자.”

“응? 사진은요.”

“사진이고 취재고 나발이고, 가자. 다 필요 없어.”

“미쳤어요? 편집장한테 어떻게 깨지고 싶어서 이래요!”


다짜고짜 지연이 손을 빼앗아 잡았다. 지연이 에겐 사람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야, 너 어디 아픈 데 없지?”

“없는데요? 아, 선배 손은 좀 놓죠? 선배! 손은 좀 놓죠?”


담장 앞에 늘어진 기재들을 급하게 주웠다. 반은 달리다 싶게 걸음을 큰 폭으로 걸으니 지연이가 숨이 찬 듯 헐떡였다. 


“아! 이 사람 왜 이래 진짜?”


회관 앞으로 도착하니, 내 승용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번 똥차 소리를 듣는 놈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야, 회관 들어가서 너 물건 다 챙겨서 나와.”

“챙길 거 핸드폰 말고는 없어요.”

“아! 무튼 빨리 핸드폰 가지고 나와.”


차에 시동을 걸고, 차를 빠르게 선회시켰다. 오른쪽으로 존재하고 있을 향나무의 존재감이

가려진 시야에서도 극명하게 전해오고 있었다. 지연이가 보조석에 오르자마자 엑셀을 힘껏 밟았다.


“선배! 차 또랑에 빠지겠네!”


잘 달리지도 못하는 차 엑셀레이터를 있는 대로 눌러 밟아 5분 쯤 청송마을 입석간판이 순식간에 차 옆을 지나갔다.


“선배, 살살 가요! 뭐가 이리 급해?”

“야 두고 온 거 없이 다 잘 챙겼지?”


청송마을로 들어오며 지나쳤던 길들이 계속해서 옆을 스쳐갔다. 곧 있어 번화가로 통하는 2차선 도로가 나오고, 그 다음부턴 사람들이 북적대는 큰 동네가 나온다. 다 왔다 이제. 이제 곧. 


“선배 이거 빠트릴 뻔 했잖아요.”

“뭘?”

“아! 선배 앞에 보고 운전해요!”

“뭘 빠트릴 뻔 했는데.”

“녹음기.”

“어?”


지연이가 자기의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검붉은 자국이 덕지하게 달라붙은 녹음기를 손에 쥔 지연이가 말했다.


“뭐야? 이거 녹음 중인데요? 언제부터 켜놨지?”

“야! 그거 버려!”

“예?”

“그거 버려!”


지연이의 손에서 녹음기를 빼앗아 들었다. 녹음기에 묻어 있는 기분 나쁜 끈적임에 손을 타고 허리와 뒷목까지 소름이 돋쳐왔다. 멍청하게도 창밖으로 던지려던 녹음기는 내려가 있지 않았던 차 유리에 부딪히며 튕겨 나와 차 바닥을 굴렀다.


“야! 그거 주워서 버려!”

“왜 그래요! 아까부터 진짜!”


지연이가 소리를 돌아오고 지르자, 귀가 멍멍해왔다. 징 하는 귀의 울림이 다른 소음들을 전부 막는 와중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음량 낮은 녹음기의 소리.


“사람 과일이 열매를 맺는다고, 인과. 그래서 인과목이라고 부르셨었지요.”

“향나무에서 열매가 맺어진다고요?”


할머니와의 대화. 이건 녹음되지 않았어야 한다. 녹음될 수 없어야 하잖아.


“저 담장을 넘어간 사람치고, 저 나무에 목을 걸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어요.”


지연이는 자동차 밑에 떨어진 녹음기를 찾느라 헤매고 있었다.


“선배, 녹음기가 얼로 떨어진 잘 모르겠어요.”

“지연아, 빨리 찾아, 제발 빨리.”

“그럼 차를 잠깐 세워 봐요?”


차를 세워?


“아! 찾았다!”


지연이가 녹음기를 들어 보였다.


“이제 버려.”

“뭐야? 이거 내 목소리 아니에요?”


녹음기에선 지연이가 춥다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좀! 버리라고 좀!”

“선배, 이거 이상해요. 이거 내 목소리인데.”


지연이가 녹음기의 음량을 높이며 녹음된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야! 형 말 좀 들어!”

“이거, 이상해요. 고장 났나 봐.”

“야!!!!!!!!!!!!!!!!!!!!!!!!!!!!!!!!!”


지연이가 내 귀로 녹음기를 붙여왔다. 녹음기 스피커가 찢어질 듯 음량이 올라간 상태에서 반복된 음성이 재생되고 있었다.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정녕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녹음기의 음성을 들으며 자동차는 커다란 커브를 돌아 나왔다. 시야에는 이 전보다 키가 더 높아져 있는 향나무가 보이고 있었다. 향나무에는 벚꽃 잎처럼 사람시체가 주렁주렁 달려 바람에 흩날렸다. 지연이는 신이 난 것처럼 내 귓가에 녹음기를 들이대며 웃었다.


“가긴 어딜 가 선배. 나 여기서 내려줘요. 응? 선배, 나 내려줘요. 나 좋다면서. 선배? 선배. 나 내려줘요. 저기 향나무 앞에서 나랑 같이 내려요. 나랑 같이 내려요.”



-끝-






"[웃긴대학] 사람이 열리는 나무":http://r.humoruniv.com/W/fear6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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