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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열일곱 고개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FztR0



내가 사는 지역에 열일곱 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는 우리 지역에서는 조금 유명하다.

소문에 의하면 그 고개에서 넘어지는 아이는 17살 때 재앙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이 고개는 무서운 이야기 중의 하나로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대단히 유명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나는 M이라는 친구와 다른 친구들 몇 명이서 같이 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같은 반이던 일진 패거리와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진 패거리 얘들이 담력 시험 삼아서 열일곱 고개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다 보니 우리 패거리도 같이 가기로 했다.

잠시 후 열입곱 고개에 도착한 우리. 하지만 담력 시험이라고 해도 그냥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

열일곱 고개가 조금 가파른 것을 빼고는 콘크리트로 된 구조와 도심지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낮에는 밝기 때문에 그냥 고개에 있는 것만으로는 담력 시험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진 패거리 애들이 언덕 중간에서 일부러 자전거 핸들에서 손을 떼거나 페달에 서거나,

일부러 넘어질 것 같은 재주를 부리면서 자신들의 용기를 서로 경쟁했다.

우리 패거리는 담력 시험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지 일진 패거리 얘들이 쇼하는 것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일진 패거리 중의 한 명이 우리에게 [야! 너희도 뭐 좀 해봐!]라고 말했다. 

 

우리는 마지 못해 담력 시험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자전거로 언덕 고개를 내려가면서 손을 떼고 운전했다. 그리고 두 발을 페달에서 떼고 V자로 벌려서 타기도 했다.

하지만 일진 패거리 얘들은, 자신들도 별로 대단한 묘기도 못 보인 주제에 나에게 겁쟁이, 병신이라고 놀렸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박수를 치고,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로 박수치며 자전거를 타주는 정도는 돼야 놀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재주를 선보였다. 그럴 때마다 일진 얘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자전거에서 노래를 부르며 안장 위에 올라서서 타려고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 마침내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언덕 중간지점에서 넘어져서 콘크리트 바닥에 손과 팔꿈치 부분이 찢어지고 피가 났다.

일진 패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엄청나게 웃어댔고, 하나같이 나에게 [넌 이제 17살에 죽겠네!]라며 놀리기 시작했다.

내 패거리 애들은 나를 걱정해서, 자전거를 타고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내가 문득 고개 위를 쳐다보니, 나랑 특히 친한 친구인 M만이 홀로 남아있었다.

내 근처에 오지 않고 위에서 자전거를 탄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어째서 M은 안 오는 걸까.. 내가 궁금해하자, 다른 친구들이 [무섭기 때문에 그래.]라고 말했다.

비겁한 구석이 있었다. 왜 M은 오지 않는 걸까.

M은 고개를 내려오는 게 무서웠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던 것이었다.

담력 시험도 끝났고 일진 패거리 얘들도 만족한 듯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상처도 치료할 겸해서,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M이 있는 고개로 올라갔다. M하고 2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을 때, M이 갑자기 [와우!]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에게 밀린 것처럼 나를 향해 돌진했다.

M은 내 옆을 지나치더니 언덕 중턱까지 가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구르는 바람에 얼굴이 콘크리트에 그대로 부딪쳤다.

오른쪽 얼굴의 절반이 피투성이가 된 M.

M은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냥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M이 넘어질 때의 충격음에 놀란 근처 아줌마가 다가왔다. 아줌마는 곧바로 구급차를 불렀고, M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검사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얼굴이나 팔꿈치, 어깨, 손 등에 많은 상처가 생겼고

특히 관자놀이 부분에는 큰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

몸에는 큰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열일곱 고개의 충격이었는지 말을 걸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게 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M 군이 넘어지기 전에, 언덕에서 갑자기 내려온 이유를 알고 싶어서, M에게 찾아가서 물어봤다.

M의 말로는 누군가가 뒤에서 밀었다고 말했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길래, 누구지 싶어서 뒤돌아보려는데, 갑자기 밀렸다고한다.

내가 언덕을 올라가서 M에게 다가갈 때, 언덕에는 M밖에 없었고, M을 밀만 한 사람은 주변에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M은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그냥 섬뜩한 느낌만 막연히 남긴 채, 내 기억 속에 고개의 추억은 그렇게 새겨졌다. 


M과 나는 다른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점점 사이가 멀어져갔다. 

열입곱 고개 사건은 당시의 내게는 상당히 인상적인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잊혀져 갔다. 

물론 열입곱 고개에서 넘어진 나와 M이 

17살에 재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상상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이 변한 것은 M과 내가 15살이 되어 고등학교에 입학 한 지 얼마 안 될 무렵이다. 

 

중학교에서는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만나려고 생각했는지, 

M과 다른 친구들이 15살 때, 내 집을 찾아왔다. 

나는 M을 보자 마자 엄청나게 놀랐다. 

M은 중학교 시절, 반에서 조금 잘나가는 놈이 되면서, 

그에 걸맞게 약간 불량스러웠다. 

하지만 놀란 건 그런 게 아니라, M의 얼굴에 있던 멍이었다. 

마치 판다 같이 크고 검붉은 멍. 

 

M이 그때 열일곱 고개에서 넘어지면서, 관자놀이에 생긴 상처. 

그 부분을 중심으로 반경 5cm 정도, 그 멍 부분이 오른쪽 얼굴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M의 얼굴에 그런 것은 없었다. 

중학교 시절, 여러 번 만났을 때도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저주에 걸린 것처럼, 

지난 몇 년 동안 갑자기 그런 멍이 들어 있었다. 

M에게 물어보니까, 의외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고, 

하물며 저주 같은 건 생각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멍부분에서 가끔가다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통증이 느껴진다. 

 

한 날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통증 때문에 

균형을 잃고 위험한 일을 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일들이 저주의 영향 때문에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았지만,

멍 부분이 아플 때마다, 아무래도 17살의 재앙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M은 아직 15살. 

재앙이 일어날 나이인17살과는 관계가 없다. 만일 어떤 저주나 재앙이 

일어난다고 해도, 2년 후에나 일어날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2년 후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른다면서, M이 농담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때는 같이 넘어진 나도 무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둘이서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헤어진 후, 우리는 16살 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약간 노는 아이처럼 보이는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호쾌한 인상을 보여주던 M. 

하지만 16살 때 집에 찾아온 M은 그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몹시 마르고 수척한 모습이었다. M은 자신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극도로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의 멍은 15살 때보다 더 커져 있었고,

얼굴의 절반 정도 크기로 되어 있었다. M은 15살 때, 나와 만난 후에도 

상처 부위의 통증 때문에 몇 번이나 위험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6살이 되고 나서, 오토바이 면허를 취득했지만,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으면 

마치 그를 죽이려고 노린 것처럼 갑자기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려고 승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지하철이 홈에 접근할 때, 

갑자기 통증이 느껴져서 하마터면 선로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때 그의 겁먹은 모습에 당황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M이 말하는 엉뚱한 이야기를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변변한 조언도 해주지 못한 채, 무섭다고 말하는 그를 무리하게 집에서 쫓아 버렸다. 

 

M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건 그로부터 2주 후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16년이라는 매우 짧은 생애였다. 

상처의 아픔이 사고에 영향을 끼쳤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단지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M이 16살이고 17살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옛날부터 알려진 열일곱 고개에서 일어나는 재앙이 아니었다. 

M의 장례식에서 오랜만에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화제는 M이 죽은 원인과 열일곱 고개에 관한 이야기였다. 

누가 말하기 시작했는지, 그때 모두 열일곱 고개에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장례식 다음날에 모두 모여서 그 고개로 가게 되었다. 

 

어디서 섭외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칭 무속인이라는 중년의 여자를 불러왔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몸을 깨끗하게 정화할 소금만을 가지고, 

아이들은 그 다음 날 곧바로 열일곱 고개로 향했다. 

친구들은 무속인과 함께 굿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 굿에 참여하지 않았다. 

싫은 추억이 있는 열일곱 고개에 갈 생각도 없었고, 그 굿 자체가 M의 죽음을 

모독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두 굿을 하러 갔고, 

나는 집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굿판에 참석한 아이들이 안색을 바꾸고 내 집으로 달려왔다. 

아이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열일곱 고개가 없어졌다!]라고 말하며 소란을 피웠다. 

아무리 찾아도 열일곱 고개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있어야 하는 위치인데도.. 

나는 그 일 이후로,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열일곱 고개가 없어질 정도로 

큰 공사를 했다는 소리도 기억도 없다. 나는 분명 뭔가 착각한 거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은 진정시킨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30대 중반의 중년이 된 나. 

요즘 들어 M이 자꾸 생각난다. 전설처럼 17살에 죽지 않고 16살에 죽어버린 M. 

물론 나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M의 죽음과 열일곱 고개는 관계가 없는 걸까. 

나는 그것을 확인하려고 마음먹었고 수십 년 만에 열일곱 고개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집에서 열일곱 고개가 있는 곳까지 가면서, 나는 M을 생각했다. 

그 17살의 재앙이라는 건, 실제로는 옛날에 사용되던 한국 나이로 17살이고, 

현대로 고치면 16살의 재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M이 16살에 

재앙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에는 모순이 없게 된다. 하지만 왜 나한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그렇게 보면 또 모순되는 것이다. 

 

그때 굿하던 친구들이 없어졌다고 난리를 피우던 열일곱 고개는 

당연하다는 듯이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내 키가 커졌기 때문인지, 

고개가 조금 작아진 느낌이 들었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옛 모습과 틀린 게 없었다. 

나는 M이 자전거에서 넘어진 장소와 똑같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M이 무서워하며 자전거에서 내리지 못했던 가파른 고개. 

고개 중턱에는 나와 M이 넘어진 장소도 있었다. 

나는 당시를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사람의 시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놀라서 되돌아보니,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작은 아이가 서 있고, 그 아이가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거기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시선을 내렸을 때, 

순간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와 눈이 맞고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는 느낌. 

나는 한기를 느끼고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땀을 흘렸다. 

나는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지금까지 느껴지던 느낌과 시선이 사라지고, 

눈앞에서 느껴지던 인기척도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긴장도 서서히 풀려갔다. 

내 앞에 서 있던 건 누구였을까? 초등학생 시절, 그때 M을 밀었던 그 누군가였을까? 

나는 긴장이 풀린 후에도 그 자리에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고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M을 위해 산 꽃다발을 고개 근처에 있는 도로 옆에 두고, 

두 손 모아 M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고개를 올려다봤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고개 위에 누군가가 있고, 

이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떠나려고 등을 돌리자, 누군가의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 보지 않고 그대로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열일곱 고개를 뒤로한 채로 말이다.






괴담돌이 http://blog.naver.com/outlook_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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